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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동현 | 2015.03.02 19:35 | 조회 6060

    주일 낮 예배

    본물말씀 [요한복음 8:31-47]

     

    이 말씀 32절에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많은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3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식민지 생활을 해왔던 조상들의 서러움과 고통이 있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살았던 곳은 산악지대인데, 나무들을 실어 나르려고 산중턱까지 닦은 길이 있고, 또 6~8명이 끌어안아야 안아질만한 커다란 소나무 그루터기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습니다. 동네 어르신 이야기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때 마을의 젊은 사람들을 끌고 가 산에 있는 나무를 하게하고 일본이 그걸 다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이쪽 지역은 곡창지대라 농사지은 곡식을 일본인들이 전부 빼앗아 달구지, 수레에 실어 날랐습니다. 전주에서 군산 바닷가까지 연결된 도로가 있는데 ‘전·군도로’라고 합니다. 그 길이 일제 강점기 때 곡식을 실어 나른 길로 지금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힘없는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8월 15일 한국이 일본에서 해방됐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대한민국 사람들은 곳곳에 숨겨두었던 태극기를 꺼내 만세를 부르며 해방을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 후 어느 누구도 나무나 곡식을 공출하는 일이 없었고, 일본법을 따라서 사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해방되었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의 법이나 말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삽니다. 그것처럼 성경에서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했습니다. 진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 옳음, 법에 잡혀 매여 있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띄우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하셨습니다. 즉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작년 월드캠프 때 서울에서 해운대까지 열차를 빌려 타고 갔는데, 스와질랜드 청소년부 장관이 박목사님과 함께 그 열차를 탔습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목사님께서 기차 안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비 오지 않게 기도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때 이 장관은 ‘지금 오는 비를 그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비가 그칠까?’ 라는 굳은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에도 비는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해운대에 도착하니까 비가 그친 것이었습니다. 더 신기한 것은 저녁 행사 때 해운대 바닷가에는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 캠프에 부산시장을 초청했었는데, 비서진들이 비가 오는데 행사 하느냐고 해서 우리는 비가 오는데 ‘비 안 옵니다.’고 대답하자 그 사람들이 우리보고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개막식 시작할 시각이 되니까 비가 그쳤습니다. 이 장관님에게 지병이 있었는데 그 광경을 보면서 ‘비를 그치게 해달라고 기도하니까 비가 그치게 해 준 저 종에게 내가 안수를 받으면 병이 낫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면담 신청을 했는데, 목사님께서는 안수기도를 안 해주시고 복음을 전하셨고, 이 분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사야 53장에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는 말씀을 우리는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구절 앞에 네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이 내 죄만 가져간 것이 아니라 병도 가져간 것이라고 장관님이 받아들였습니다. 복음을 전했는데 병도 나았고 마음의 평화도 찾았습니다. 이 분이 며칠 후에 검사를 해 보니 실제 병이 다 나았다고 합니다. 그 후 이 장관님은 그 나라의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를 초청했습니다. 우리는 한 장관님을 초청해서 장관 포럼에 참석할 수 있게 하고, 섬겨 드리고, 말씀을 듣게 해서 이 분이 구원을 받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에게 그 나라의 청소년 문제를 담당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2015년 목사님의 신년사 말씀처럼 우리 앞에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일이 펼쳐집니다. 스와질랜드에서 국왕을 만나는데, 국왕이 저녁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시간을 비워두고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구원받으려고 준비했다는 마음이 듭니다. 한 나라의 국왕이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을 텐데 구원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는 마음이 듭니다.

    지난 2004년에 민간외교로서 선정된 두 팀이 있었는데 기쁜소식 해외의료봉사팀과 코이카였습니다. 우리 선교회가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하고 있는데, 많은 핍박과 대적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는 항상 대적과 핍박이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5장에는 복음을 막으려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는데, 신기한 것은 옥문도 닫혀있고, 자물쇠도 채워져 있는데, 사도들이 성전에 들어가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겁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더 이상 내 자신의 생각에 매이거나 구속받지 않고, 말씀에 끌려가는 힘 있는 삶을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나를 그렇게 이끌어 주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가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강하게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냥 종교적인 형식에 매여 살지 말씀을 받아들여 그 말씀을 내 삶 속에 적용시켜 살려하지 않기 때문에 말씀은 우리에게 아무 일을 못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37절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무엘하 18장 말씀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압살롬이 다윗을 반역해서 다윗과 압살롬 사이에 전쟁이 있을 때, 다윗이 전쟁하러 나가는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이야기 하는 장면이 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장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 이 “명하여” 라는 말은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라는 뜻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지 안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모든 군사가 다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윗의 한 신복이 전쟁을 하다가 상수리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압살롬을 발견하고 요압에게 달려와 그 상황을 보고하자 요압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 요압이 그 고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뇨 내게 네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라는 요압의 말에 신복은 12절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개를 받는다 할찌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소년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 신복은 압살롬을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일 수 없었습니다. 이 신복은 다윗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자신도 요압처럼 압살롬을 죽일 마음을 가졌지만 다윗의 말을 들은 그 순간부터 이 병사의 마음에는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는 다윗의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그에게 들려졌던 ‘내 아들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라는 다윗의 말씀은 부탁이 아닌 왕의 명령이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말로 전달되어 이 병사의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 마음이 들어온 그 날부터 이 신복은 다윗의 마음으로 전쟁을 합니다. 다윗의 마음으로 전쟁을 하니까 자기 앞에 반드시 죽여야 되는 압살롬이 있지만 못 죽이는 겁니다. 다윗의 마음을 빼내면 압살롬을 죽일 수 있는데 그 마음 때문에 죽일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요압은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라고 하며 창 세 자루를 들고 달려가서 압살롬을 죽였습니다. 요압도 다윗의 입에서 하는 말을 들었지만, 그 말이 요압의 마음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자기 마음으로 사는 거예요. 자기 판단과 생각, 옳음을 따라 일을 결정하고 처리했는데 요압의 판단과 생각, 요압의 상식으로는 압살롬을 죽이고도 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마음에 거할 곳이 없으므로 너희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요압은 다윗에게 속한 군대장관인데도 요압의 마음에는 다윗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다윗의 마음 없이 자기 마음으로 사니까 압살롬을 죽이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에는 무엇이 들어 와 있습니까? 다윗의 마음이 들어와 있는 그 신복은 다윗의 마음으로 전쟁하고 다윗의 마음으로 쫓아가고 다윗의 마음으로 압살롬을 대하고 다윗의 마음으로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8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안다. 그러나 너희 마음에 내 말이 거할 곳이 없어 너희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요압은 다윗의 군대 장관인데도 그의 마음에는 다윗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압살롬을 죽이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의 말이 내 마음에 들어오면 내 마음은 죽어버리고 다윗의 말이 살아서 나를 움직입니다. 몸은 내 몸이지만 다윗의 마음으로 전쟁하고 다윗의 마음으로 압살롬을 쫓고 다윗의 마음으로 압살롬을 대합니다. 그러면 그 앞에서는 어떤 잘못과 상관없이 압살롬은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 친구는 비록 병졸이지만 다윗의 마음을 받아들이니까 압살롬의 행위와 상관없이 그는 살려야 하는 존재로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와 우리의 삶을 보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예수님은 우리를 살립니다. 그 마음을 가진 종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만 그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오늘도 법을 이야기하고 행위를 이야기하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요압 역시 그 마음에 다윗의 마음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너무 대조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누구의 말이 여러분 마음에 머물러 있습니까? 이 병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이 그 마음을 지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말을 들은 그 날, 다윗의 말 앞에 자기가 끝나버렸습니다. 내가 보는 눈, 내가 느끼는 것, 내 옳음을 다 끝내고, 다윗의 마음으로 전쟁을 치르고, 다윗의 마음으로 압살롬을 쫓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마음으로 압살롬을 살려두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나를 대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심령을 대해보면 우리는 그들을 살릴 겁니다. 법은 우리를 죽이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러 오셨습니다. 결박된 우리를 풀어주러 오셨고, 갇혀있는 우리를 해방시키러 오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를 풍기며 무덤에 갇혀 있는 나사로를 살리셨으며, 야이로의 딸이 죽어 있을 때에도 주님은 살리러 가셨습니다. 38년 된 병자를 일으켜 새 삶을 살게 해 주시려고 찾아가셨습니다. 그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마음을 가진 하나님의 종이라면 우리를 보고 뭘 하라고 하지 않을 겁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를, 결박된 자를, 갇힌 자를, 귀신들린 자를 살려주고 풀어주셨던 것처럼 그와 똑같은 삶을 살 겁니다. 그게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나 요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기 눈에 보이는 압살롬을 죽이려면 먼저 다윗을 죽여야 합니다. 다윗의 말을 무시하는 겁니다. 그래야 압살롬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의 마음 안에서 다윗은 짓밟히고 무시를 당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반면 이 병사의 마음 안에서는 다윗이 살아있고 병사의 마음은 끝이 났습니다. 그 차이입니다. 말씀이 마음에 들어온 사람은 말씀이 마음에 들어온 즉시 자기가 끝이 나고 말씀이 일을 합니다. 말씀이 마음에 안 들어온 사람은 자기 마음이 살아서 말씀을 전하는 그 사람을 죽여 버립니다. 그 사람은 항상 자기 옳음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고 싸우고 시끄러운 겁니다.

     

     

    마가복음 7:24절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준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찌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똑같은 말씀이 마태복음 15장 21절과 28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이 필요했습니다. 자기 딸이 귀신들린 문제를 두고 나름대로 해결해 보려고 수없이 발버둥을 쳐봤을 겁니다. 그러다가 길이 없고 방법이 없어서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 걸린 여자도 12년 동안 많은 의원을 찾아다니며 많은 괴로움을 받았지만 병이 더 중하여 졌던 차에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제 더 찾아갈 의원도 없고 돈도 없어서 예수님에게 찾아 갔습니다. 이 여자 역시 자기의 병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예수님께 있음을 안 것입니다.

    요 14: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38년 된 병자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필요하며, 죽은 나사로에게도 말씀이 필요합니다. 내 인생에도 예수님만 있으면 됩니다. 왜? 그분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니까요. 그분은 생명이기에 나를 살리고 내 인생의 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이 여자는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내 딸을 귀신에게서 풀어주고 살려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수님밖에 없기 때문에 그분을 찾아가는 겁니다.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이 필요하고 이 교회가 필요합니까?

     

    열왕기하3장에 보면 여호사밧 왕이 에돔 광야 길에서 죽음 앞에 놓였을 때, 그에게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 음성을 듣기 위해 여호와께 물을만한 선지자를 찾았습니다. 여호사밧왕은 아무도 대접해 주지 않는 엘리사를 찾으면서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다.’ 라고 합니다. 여호사밧왕은 엘리사가 하는 말을 듣고 그대로 개천을 팝니다. 그도 사람이고 더구나 왕이기에 배운 것도 많고 지혜로울 텐데 모래가 펄펄 날리는 광야를 파라고 하니까 그대로 개천을 팝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미친 짓처럼 보였지만 말씀대로 개천을 파니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그렇게 한번 살아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한번 파보십시오. 메마른 여러분 마음을 파 헤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옳음과 관념을 파 헤치고, 여러분의 마음에 담아둔 수많은 물을 비우고 빈 항아리를 두면 하나님이 그곳에 물을 채우실 것입니다.

    여행 중에 있는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를 찾아와서 상처를 싸 메고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 치료해주고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 주막주인에게 돌봐 주라고 부탁을 합니다. 사마리아인이 돌아올 때까지 ‘돌봐주라’ 고 하면서 부비를 주고 갑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은 어디에 맡겨져 있습니까? 주막은 교회를 말하는데, 정말 이 교회가 여러분의 생명이고 진리이고 길이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이 교회를 믿는 다면 교회의 뜻 앞에 여러분 의 뜻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백 번, 천 번 옳아도 옳은 여러분을 꺾고 교회 뜻을 따를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창세기 41장에 바로왕은 요셉에게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고 했습니다. 저주를 받아 기근으로 멸망할 애굽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요셉밖에 없고, 그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이 진리고 생명이기에 요셉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해하고 깨닫는 세계서 살려고 하지, 자기 자신을 맡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누구의 말을 두고 사십니까? 예수님은 ‘내 말이 너희 마음에 있을 곳이 없어서, 네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 고 하셨습니다.

    왜 내 마음에 말씀이 들어올 공간이 없습니까? 항아리가 비워지기 전까지는 물이 채워질 수 없습니다. 비워졌을 그 때 주님이 일을 합니다.

     

    저는 요한복음 14장 6절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사업에, 여러분의 인생에 이 말씀이 능력이 되어 여러분 가정의 문제를 풀어주고 사업의 길이 열리는 기적을 경험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이제 여러분 마음에 이 말씀을 두십시오. 요셉과 바로가 연결이 되니까 ‘애굽’이 살고, 바로가 살고, 가족이 삽니다. 나와 예수가 연결이 되면 우리는 살아납니다. 그분이 내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말씀이 진리가 되고, 예수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길이 되시고, 생명이 되셔서 그 예수님이 질병과 고통과 생각에서 나를 풀어내어 자유케 하시고, 그 분으로 말미암아 내 인생이 복 되어 지는 그런 은혜를 입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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