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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동현 | 2014.08.18 19:06 | 조회 7021

    본문말씀 (창세기 27:5 – 24)

     

    길들여진 짐승이나, 사람이 만든 물건 가운데 전자기기 제품들은 다른 프로그램을 입력하기 전까지는 입력해 놓은 프로그램대로 움직이고 일을 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휴대폰과 아이패드에 알람을 맞춰 놓았는데, 제가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다시 알람을 재설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 또한 마음속에 말씀이 들어오거나 생각이 들어오게 되면 그때부터 그 말씀이나 생각에 의한 행동과 말을 하게 됩니다. 우리 예배당에 설치된 카메라 중 한 대는 저를 쳐다보고 있고, 한 대는 여러분을 찍고 있습니다. 이런 기계들은 내가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까지도 잡아냅니다. 그것처럼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세계가 모두 행동으로 옮겨지진 않지만 하나님은 다 잡아 놓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걸 잡아놓고 우리를 대할 때에는 ‘너 이런 마음으로 지금 살잖아. 너는 지금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잖아. 이 마음 가지고는 안 돼.’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비춰 주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읽었던 성경에 보면 어머니 리브가와 아들 야곱이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야곱과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의 아버지 이삭과 에서가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큰 아들 에서에게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서 내게로 가져와라 그래서 내가 그걸 먹고 죽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네게 축복을 하려고 한다.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럼 이 별미는 아버지가 갖고 있는 모든 복을 아들에게 넘겨주는 그 일을 하는 별미입니다. 이 사냥한 고기로 만들어진 별미는 아버지 앞에 드려지는데 아버지 이삭이 갖고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아들에게 넘겨주기 위한 것이에요. 그 모든 이야기를 엿들었던 리브가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야곱을 불러다가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 겁니다.

     

    6, 7절 - ‘리브가가 그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여기까지는 이야기를 듣는데 아무 부담이 없습니다.

    그런데 8-11절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야곱이 그 모친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찐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찌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리브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야곱을 이 일에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내가 별미를 만들어 줄 테니 네가 나가서 복을 받아라’ 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에게 고맙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형편을 이야기 합니다. ‘형은 털 사람이고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데 아버지 이삭이 눈이 어두워 잘 분간하지 못해도 만져보면 들통 나서 축복은커녕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이 말은 그럴 것이면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야곱이 갖고 있는 마음이에요. 그런데 리브가는 야곱이 털이 없는 것도 알고 아버지가 야곱을 만질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걸 다 알면서도 리브가가 야곱을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리브가에게는 이걸 다 이기고 넘어갈 수 있는 믿을 만한 배경이 있다는 것입니다. 큰소리 칠 때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람들 앞에서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죄가 없습니다. 의롭습니다.’ 라고 큰 소리 치는데 이 소리는 절대 그냥 해 보는 소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모든 사람이 미쳤다고 할 걸 뻔히 알면서 이렇게 큰 소리 칠 때는 확실한 근거를 가진 분명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의롭다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든지 간에, 내 인품이 어떻든지 간에, 성질이 어떻든지 간에, 내 모양이 어떻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 하신 그날부터 나는 의로운 사람인 겁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죄인이라는 소리를 못합니다.

     

    13절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이 말은 모든 저주는 내가 다 받을 테니 너는 내 말만 듣고 따르라는 이야기입니다. 길을 모를 때에는 길을 아는 사람이 설명 해주는 이야기를 잘 듣고, 자기생각을 보태지 않고 그대로 따라가면 정확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이 모르는 다른 세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야곱에게 ‘너의 모든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너는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라고 분명하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리브가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창세기 25장 19절-26절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사십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아이들이 그의 태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 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세이었더라.

     

    이 말씀처럼 리브가가 쌍둥이를 낳았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고 해서 이름을 야곱이라고 지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들이 장성하여 오늘 읽었던 27장의 이 장면이 펼쳐진 겁니다. 아버지 이삭이 나이가 들어 죽을 날이 가까워져서 하나님으로 받았던 모든 복을 그 아들에게 넘겨주려고 에서를 불러놓고 사냥하여 와서 별미를 만들어 가져오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리브가가 여기에 야곱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리브가가 모든 저주를 자기에게 돌리면서까지 야곱이 복을 받게 하려고 이삭 앞으로 내모는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부모님들이 자식들과 많이 싸웁니다. 자식들은 ‘공부하기 싫다’, 부모들은 ‘공부해라’ 하고 싸웁니다. 부모님들이 그렇게 자식들과 싸우는 이유는 나이 들어 보니까 ‘배우지 않고는 못 살겠다. 무시당하지 않고 사람답게 살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처럼 리브가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길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야곱을 밀어 넣는 겁니다. 야곱은 안 하려고 하구요.

     

    그런데 창세기 25장 23절에서 하나님이 리브가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복은 누구 것입니까? 이 복은 야곱이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셨는데, 야곱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야곱에게 그걸 깨우쳐서 복을 받을 수 있는 세계로 밀어 넣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 야곱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야곱의 몫입니다.

    창세기 27: 14- 그가 가서 취하여 어미에게로 가져왔더니 그 어미가 그 아비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야곱이 염소 떼에 가서 염소 새끼를 취하여서 어미에게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는 “엄마, 복은 고사하고 저주 받아. 못해.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절대 못해.”라고 살았습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내가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 내가 어떻게 복음을 전해? 나는 몸도 약하고 정신도 약해. 나는 배운 게 없어. 박 목사님이나 믿음으로 살지,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살아?” 라면서 살아왔습니다.

    박옥수 목사님이 믿음으로 산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목사님이 하나가 되었을 때 그 말씀이 목사님을 그렇게 살게 만든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말씀과 하나가 되면 말씀이 나를 그렇게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부족한 게 문제가 됩니까? 안 됩니다. 못난 것도, 멍청한 것도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내가 안하려고 하는 이것이 문제란 말입니다. 이게 어디서 온 겁니까? 야곱이 왜 리브가의 말을 안 받아들이려고 했습니까? 그는 ‘자기는 매끈매끈한 사람이고 형은 털사람’이라는 형편을 본 겁니다. 부딪혀보지도 않고 믿음으로 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말씀을 안 믿고 자기를 믿는 길을 택한 겁니다.

     

    열왕기상 17장에서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는 뭐라고 했습니까? 「나에게 작은 떡을 하나 만들어 가져 와라. 난 떡이 없고, 이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먼저 작은 떡을 만들어 가져오고 네 말대로 해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한다.」 그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지금까지 사르밧 과부는 나름대로 절약해서 떡을 조금조금 만들어 먹고 살아왔는데, 이제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와서, 자기를 위하여 먼저 작은 떡을 만들어오면 하나님께서 통의 가루와 기름이 없어지지 않게 하신다고 합니다. 과부가 그 말씀을 믿는다면 작은 떡을 만들어 오고, 못 믿으면 떡을 만들어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야곱이 리브가가 하는 말을 듣고 리브가를 믿는다면 염소 떼에서 새끼를 끌고 오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안 믿으면 못합니다.

     

    야곱이 염소 떼에게 가서 새끼를 끌고 왔습니다. 리브가의 말을 믿은 거지요. 리브가는 이런 야곱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주고 짐승의 껍질로 털을 만들어주어 아버지 앞에 세웁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에게 갔습니다. 야. 너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냐? 예.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순적히 만나게 했습니다. 아버지 드시죠. 목소리가 야곱의 목소리인데, 이리로 와보라. 내가 한번 만져보자. 만져봤습니다. 목소리는 야곱인데…. 그러니까 야곱이 뭐라고 했습니까? 아버지, 저 진짜 에서가 아니고 야곱입니다. 양심이 찔려서 도저히 못 있겠네. 저 야곱입니다. 그랬지요?

    우리는 양심의 소리를 합니다. 이 소리는 육에서 나온 겁니다. 육은 사탄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의 말을 해야 합니까? 야곱이 리브가의 말을 들은 그날부터 자기 소리가 아닌 리브가가 넣어준 말을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양심의 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넣어준 말을 해야 합니다. 형편이나 느낌, 보는 것, 깨닫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말을 대언해야 하는 것이 믿음의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의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의롭게 해 놓았다, 나는 의롭다, 사는 것이 엉망이어도 나는 의롭다’고 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야곱은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야곱의 성품, 느낌은 죽을 때까지 그대로입니다. 그런 야곱을 리브가가 에서로 바꿨단 말입니다. 너 누구야? 에서입니다. 이 말은 나는 의롭습니다. 거룩합니다. 온전합니다.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막에 쓰이는 아카시아 나무는 진짜 형편없는 나무입니다. 이 나무를 자르고 깎아서 금이나 은, 놋으로 싸서 성막의 기명으로 사용했는데, 그 속은 아카시아나무로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나무를 금으로 싸는 그 날부터 영광이 됩니다. 그 아카시아 나무는 보잘 것 없어도 금으로 쌓여있는 동안에는 영광이단 말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부족하고 못났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당당한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27장의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를 믿을 때 아버지 앞에서 저 에섭니다. 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주의 오심이 임박했습니다. 우리 시대에 주님이 오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주변의 가족과 친척들이 이 복음을 듣고 주님이 오실 때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그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 복음을 들고 가서 외쳐야 할 때입니다. 그냥 육신이 원하는 형편에 안주하고 머물러 살아야 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마음이 리브가와 연결되었을 때 그 야곱의 말과 행동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염소 떼에 가서 염소새끼를 끌고 와서 어머니의 손에 드리고, 어머니가 입혀준 옷을 입고, 꾸밈을 받고 아버지 앞에 나가 ‘나는 에서 입니다’ 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우리 어머니가 이런 약속을 받으셨구나 하나님이 날 보고 큰 자가 된다고 하셨네 그럼 이 복은 내 것이네 내가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속아서 살았네.’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사르밧 과부가 자기 것을 내려놓고 엘리아의 말씀을 따라 가루를 가지고 떡을 만들어 엘리아에게 드리고 나니까 가루 통에 가루가 다시 생겼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서 퍼내고 또 만들어서 다른 사람도 살리고 이렇게 하나님이 지면에 비를 내리는 그날까지 사는 겁니다.

    언제? 믿을 때.

     

    사단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많은 소리를 속삭이면서 이 말씀을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아는 게 없고, 가진 게 없고, 배운 게 없어서 세상적으로 못난 사람일지라도 여러분의 마음과 말씀이 연결 되면 이 말씀은 나를 야곱처럼 사르밧 과부처럼 살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창세기 27장의 야곱이 입었던 이 은혜가 야곱의 간증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간증이 되는 은혜를 여러분의 삶속에서 입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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