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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동현 | 2015.02.15 02:14 | 조회 5805

    주일 낮 예배 (2014,12,14)

    본문말씀 [사무엘상 30:11-20]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인간의 죄를 해결해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 죄 문제를 우리에게 묻지 않으시고 예수님께 담당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2000년 전, 처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유대 베들레헴 땅에 오셨습니다. 아무도 반겨주는 자가 없었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대적하고 죽이려 했지만 예수님은 묵묵히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마치셨습니다. 그것이 요한복은 19장 30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 영혼이 돌아가셨다는 것은 육체의 몸을 빌려 왔던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갔다는 말입니다. 이 모든 사실을 목격했던 사도들이 기록한 책이 성경책입니다. 그래서 사복음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과 삶, 죽음, 부활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을 읽어 보면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루어진 사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약속을 이루신 모든 것을 목격하고, 들은 사람이 전해준 내용을 토대로 기록된 성경이 누가복음서입니다.

     

    신앙은 성경에 있는 말씀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 그 날부터 ‘나’라는 인생을 통해 말씀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가 성경을 얼마나 알고, 이해하고 있느냐는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 구절을 외우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필요한 말씀을 이야기한다 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그 말씀을 통해 어떤 삶을 살고,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무슨 일을 해주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저들의 말은 맞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였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말은 하는데 삶은 살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되면서 ‘통행금지법’ 이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82년 국회에서 통행금지해지법이 통과되어 모든 사람이 통행금지법에 대해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밤12시, 새벽1시, 2시에 다녀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은 죄에 끌려 다니지 말고 자유하게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살인, 도둑질, 음란, 이런 것들도 죄지만 성경이 말하는 죄는 근본의 사탄을 뜻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생각, 도덕, 이런 모든 것들이 모두 죄에서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여기에 매여서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옳음이 있고, 기준이 있고, 여러분의 성실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죄로부터 왔다는 말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여러분 생각에 끌려가지 않고 말씀에 구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성령의 법에 지배를 받을 때만 율법에 대한 자유가 옵니다. 성령에 잡혀 있는 사람은 생각, 판단, 옳음, 양심, 가책 어디에도 끌려가지 않고 말씀에만 이끌립니다. 이것을 해방, 자유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그냥 육체를 즐기는 삶을 사는데 이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육체는 사단의 본거지입니다. 육신에서 형성되는 모든 것은 사단으로부터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나 말씀에 이끌리는 성령의 삶을 사는 것이 원래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죄가 없다는 논리는 붙잡고 앉아있으면서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삶은 살지 않습니다.

     

    성경의 여호수아는 모세의 인도를 받고 살다가 모세가 죽고 난 후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갑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갈렙과 살몬 두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모세 당시 열 두 지파의 족장들이 가나안땅을 정탐하러 갔다 돌아왔는데, 열 지파의 족장들은 ‘그들은 장대한 사람이고 우리는 그 앞의 메뚜기같다. 우리는 거기 가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당시의 살몬과 갈렙도 똑같이 가나안을 정탐하러 갔는데 열 명의 족장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들이 본 것도 열 명의 족장들이 본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는데, 그들은 그들의 느낌과 판단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때 정탐꾼 살몬은 여리고성 안에 사는 기생 라합을 만나는데, 살몬을 만나서 라합은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됩니다.

     

    라합은 여자로서의 행복한 인생을 수없이 꿈꾸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기생이 되는 바람에 그런 모든 기대가 날아가고 아무런 소망 없이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라합에게는 꿈이고, 희망일 뿐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이방인인 ‘살몬’이 라합을 사랑했습니다. 라합은 ‘살몬’을 만나서 모든 게 달라집니다. 그 라합과 닮은 사람이 또 한사람 있는데, 그가 바로 오늘 읽은 사무엘상 30장의 애굽소년입니다. 이 애굽 소년은 애굽 사람인데 아말렉군에 속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저 자신도 가족에게 버림을 받아 본 적이 있는 터라 이 소년을 마음으로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그 가족들을 향해 원한을 품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이 집 저 집 먹을 것을 구걸하고, 길바닥에 버려져 흙 묻은 고무마를 먹으면서 가족을 향해 이를 갈았던 내 마음처럼 그 친구도 아말렉왕을 향해서 그런 마음을 가졌겠지 하면서 마음으로 그 친구의 심정을 더듬어 봅니다. 그렇게 독을 품고 살다가 복음을 가진 친척 아주머니를 통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만났는데, 그 하나님께서 저를 이끌어 주신 것을 생각하면 그 감사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날 이후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버리거나 섭섭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내가 무엇이 필요할 때마다, 내가 주님 앞에 구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셨습니다. 운동하다 다쳐서 거의 병신이 된 허리와 폐결핵도 고쳐주셔서 제가 지금 이렇게 건강합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붙잡고, 이사야 41장의 말씀처럼 당신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나 ‘박희진’을 붙잡고, 제 앞에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와 친히 당신이 싸우시면서 그것들을 무너뜨리고,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제가 구원을 받았을 그 때 저는 성경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나중에 성경을 읽어보니까 그렇게 해주겠다는 말씀이 있었고, 이미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삶을 먼저 얻었습니다. 구원받고 이 복음의 길을 가는 30년 동안 주님은 제게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만약에 제가 이 주님을 안 만났다면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제 삶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30여 년 전에 이미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인생이었습니다. 버려진 이 애굽 소년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다윗이 일구어 놓은 시글락을 다 불질르고, 다윗의 아내와 자식을 포로로 잡아가고 다윗에게 있는 모든 양떼와 소떼를 노략질해 아말렉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이 친구가 한 짓은 다윗을 짓밟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윗을 만납니다. 병이 들어 버려져 길바닥에서 죽어가고 있는 이 친구를 다윗이 만났단 말입니다. 나 같으면 괘씸해서 그냥 죽여버리고 가 버렸을텐데 다윗은 이 소년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그를 먹이고 살려내었습니다. 이 친구가 다윗에게 받아 먹은 물과 떡은 그냥 떡이 아니고 그냥 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물과 떡을 먹으면서 ‘나는 다윗을 짓밟고, 죽이려고 했는데, 이 사람은 나에게 이런 사랑과 은혜를 입혀주는구나!’ 하면서 이 애굽 소년이 다윗의 사랑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윗의 사랑 앞에서 이 친구에게 있는 모든 것이 끝이 납니다. 그가 기운을 차렸을 때 ‘나를 네가 전에 섬겼던 네 주인에게로 인도해주겠니?’ 라고 다윗이 물었을 때 애굽 소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 30: 13-14절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뉘게 속하였으며 어디로서냐 가로되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우리가 그렛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갈멜 남방을 침로하고 시글락을 불살랐나이다.

     

    이 말은 “나는 애굽 소년으로 당신의 처자식을 잡아가고 시글락을 불살랐던 아말렉왕의 종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말렉의 종이 되어 별 짓을 다했는데, 내가 병이 들자 주인이 나를 버렸다” 그 이야기잖아요. 다윗이 이 말을 듣고 「네가 나를 그 군대에게로 인도하겠느냐?」 그랬지요? 그러자 이 친구가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내 주인의 수중에 붙이지도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으로 맹세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당신을 이 군대에게로 인도하리이다.」라고 말하잖습니까? ‘당신이 나를 죽이지 아니하겠다’는 말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심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는 죽는 자리이기 때문에 당신이 나를 살려줘야 삽니다. 당신은 내 생명의 책임자입니다. 여기는 길이 없고 소망도 없고 방법도 없습니다. 나를 거두어 주십시오.’라는 의미입니다. 그때 다윗이 이 친구를 거두어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행전을 보면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잔해하고 감옥에 집어넣고 죽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예수님 믿는 사람을 잡으러 다메섹에 올라 가다가 하나님을 만나서 그 날부터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 그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많은 사람들이 사울(바울)에게 올라가지 말라고 말립니다. 거기 가면 사람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금식하며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걸 알면서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복음의 사명을 위하여 조금도 자기 생명을 귀히 여지지 않고 복음을 전하러 올라갑니다. 왜 그랬을까요? 디모데전서 1장 12절 이하 바울의 간증을 읽어보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짓밟고 결박하고 포획하고 감옥에 집어넣는 일들을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를 받으시고 참으시며 사랑하시어 당신의 종으로 삼아 복음을 맡기셨다.’는 말입니다. 자기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니까 자기 목숨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렇게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내 죄 다 가져가셨다. 죄 없다.” 이 말은 아는데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해주셔야 할 그분의 마음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죄 없다’고 소리는 치면서도 여전히 자기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자기 판단과 옳음, 자기 주관을 갖고 살지 말씀을 믿지는 않는단 말입니다.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마음이 들어오면 우리 마음으로 살라 해도 살 수가 없을 겁니다. 사춘기 때 그렇게 부모의 속을 썩이던 자식들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부모의 마음을 만나게 됩니다. 살면서 많은 일들과 부딪히면서 아이의 마음이 무너지고 깨뜨려지면서 아이 마음속에 부모의 마음이 흘러들어오게 되면 가정을 돌아보고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자기 생각을 꺾고 원함을 내려놓게 됩니다. 서툴지만 아버지 편에서 생각하고 아버지 편에서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이런 사랑 만나보셨습니까? 그게 진정한 가정이고 행복이며 사랑이란 것입니다. 가정은 음식을 먹고 잠을 자는 곳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서 하나가 되어, 내 마음 아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고 믿음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우리가 이 마음을 만나지 못하도록 그냥 숭배의 대상, 섬김의 대상으로 예수님을 대하게 만들어버립니다. 행위로 신앙하는 종교인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마치 아이들이 부모님을 자신들의 필요를 들어주는 기계처럼 생각하지 마음을 나누거나 사랑을 나누고 아픔과 즐거움 등 모든 것을 같이 나누면서 살아가는 대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자주자주 이 애굽 소년을 찾아갑니다. 어쩌다보니 저하고 처지가 비슷해서 자유롭게 만납니다. 저도 말씀에서 주님을 만나 새 삶을 살았고 이 친구도 다윗을 만나 새 삶을 사는 겁니다. 이제 죽을 일도 없고, 버려질 걱정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윗이 다 책임지니까 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죄, 내 잘못, 내 생각에 끌려간 것 때문에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주님이 다 해결해 주시니까요. 나는 망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과 내가 합해지면 주님이 안 망하니까 내가 망할 수가 없는 겁니다. 저도 제가 잘 살아보려고 했을 때는 몸을 못 쓰게 되고 병들어 버려지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병든 나를 병들었다고 무시 안 하고 받아주시고 거두어 주셨습니다.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 주님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를 그렇게 이끌어 주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모든 죄를 끝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누구든지 그 분의 사랑 안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거기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거기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을 심으시길 원하십니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땅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그 땅에 식물이 나게 하고, 꽃들이 피고, 열매가 맺혀 그 땅이 아름다워졌던 것처럼 ‘박희진’이라는 흑암이 깊은 이 마음에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심고, 소망과 기쁨, 은혜를 심어서 그것으로 살기를 원하셔서 저에게 그 일을 해주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주님이 지금 우리 마음에 일하고 싶어 하십니다.

     

    성경에 열왕기상 17장의 사르밧 과부는 그 지혜와 방법으로 기근에 맞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당신의 종 엘리야를 보내 이 여자 손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가루와 기름을 뺏는 일을 합니다. 마지막 남아있는 가루로 떡을 만들어서 엘리야에게 주면 여호와께서 이 땅에 비를 내리는 그날까지 네 통에 가루와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다 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 여인은 지금까지 자기방법으로 살아왔는데, 여기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 지혜와 내 방법으로 살았는데 그 결과는 자신과 아들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르밧과부는 하나님의 종의 말씀을 따라 자신을 무시해버리고 말씀을 따라 갈 선택을 합니다. 버림을 받았던 애굽 소년은 지금까지 아말렉 왕을 믿고 자기를 믿은 삶의 결과가 버려지고 죽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소년은 여기서 결정을 해야 합니다. 다윗의 말을 들을 것인지? 내 고집대로 갈 것인지? 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 예수를 믿고 살 것인지? 나 자신을 믿고 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르밧과부는 엘리야의 말을 듣고 말씀대로 떡을 만들어 엘리야게게 드렸는데, 신기하게도 자기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채워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과부는 다음에도 말씀을 의지해서 발을 디디고 살 것입니다.

     

    다윗이 버려진 애굽소년을 살려주고 싶으니까 ‘네가 뉘게 속하였으며 어디로 서냐?’ 라고 묻는 거지요, 죽이려 했으면 물도 주지 않고 떡도 주지 않은 채 그냥 버리고 가든지 밟아 죽이든지 했겠지요. 살리기 위해 그를 거두고, 떡을 주고, 물을 주어 정신이 돌아오자 ‘네가 뉘게 속했으며 어디로 서냐, 네가 나를 그에게 인도해주겠느냐?’ 라고 하자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않고 주인에게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소서. 그리하면 인도 하겠나이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결국 이친구가 다윗을 인도해가서 아말렉을 진멸하고 노략물을 얻어 돌아오는 이야기가 오늘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애굽소년은 지금까지 살기 위해서 아말렉왕을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버림을 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사르밧과부 또한 자기 방법대로 살면 결국은 죽게 될 것이기에 하나님은 이 여인을 살리고 싶어서 엘리야를 보낸 것입니다. 이 여자가 자기를 믿는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대로 하였더니 통의 가루와 기름병의 기름이 채워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주고 싶어하십니다. 저 또한 나를 믿고 산 결과는 병이 들고 버려져 죽음을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30여 년 전 저에게 찾아와 생명을 주셨고,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제 인생을 이끌어 주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마음을 정하십시오. 언제까지 여러분을 믿고 사시겠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과 여러분의 마음을 연결시켜 보십시오. 이 애굽 소년이 버려져서 죽어야 되는데, 다윗과 연결되니까 살고, ‘라합’이라는 여자가 정말 비참하게 살다가 죽어야하는데, ‘살몬’과 연결되니까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족보를 잇는 복된 여인이 됩니다. 저 또한 예수님을 만나서 상상도 못했던 복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과 연결 된 그 날부터 주님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이끌어 주십니다. 여러분도 동일하게 그런 은혜를 입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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