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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동현 | 2013.12.03 18:34 | 조회 7851

    본문 말씀(로마서6 :1 -14)

    여러분 이 말씀을 읽다 보면 여러분 마음이 좀 혼돈스러워 질 겁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은혜’ 라는 말인데, 우리가 오늘 읽은 성경 11-13절에는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넘어지게 한다고 되어있는데, 그런데 율법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성경은 율법을 몽학선생이라고 표현해 놓았습니다. 몽학선생은 옛날 서당에서 공부할 때 집의 도련님을 서당까지 데려가서 훈장선생님께 인계하고, 공부 끝나면 다시 데리고 오는 이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아버지 품에서 훈장 선생님에게까지 데려다주는 일을 하는 사람을 몽학선생이라고 하는데, 율법은 우릴 법으로 잡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데로 정확하게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율법을 잘 모르는 사람은 그 율법에 걸려서 넘어지고 자빠집니다. 율법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했으니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사랑을 해 보려고 노력 해 본 사람은 이웃뿐만 아니라 내 아내나 자식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제 아내가 병에 걸려 제가 수발을 하는데 제 몸이 힘들고 한계를 넘으니까 아내에 대해 짜증이 나더라고요. 아내가 섭섭해 할 걸 알면서도 내가 힘들고 어려우니까 안 하게 되더라고요. 왜 그렇지요? 저는 아내보다 저를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 속에 기록된 말씀은 율법은 아닌데 우리를 보고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고 되어 있습니다. 이 성경 속의 얘기를 말씀만 들으면 법으로 들리는데, 로마서 6장에서 이 말을 기록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한 여자를 보고 예수님이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이 여자는 간음하고 싶은 마음이 끝없이 올라올 텐데 거기다 대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한다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컴퓨터 게임에 중독된 친구들이 컴퓨터를 덮고 안 한다는 것은 자기 정신으로는 불가능 합니다. 하루 이틀 삼 일 씩, 먹지도 않고 잠도 안자고 컴퓨터에 빠져있어요. 그런 아이들에게 컴퓨터 하지 말라고 하면 더 집착하는데 신기하게도 컴퓨터를 하고 싶은 마음보다 더 센 마음이 들어가서 그 아이 마음을 잡고 나오면 벗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나는 나 자신을 의의 병기로 드릴 수 없지만, 나는 내 자신을 죄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게 할 수 없지만, 죄를 이기는 어떤 힘이 내 삶을 잡아주면 성경이 말하는 이 삶을 너무 쉽게 살 수 있다는 거예요. 미국에 가는데 걷고 헤엄쳐서 간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가지만, 비행기 타면 영화 보면서, 밥 먹어가면서, 누워 잠자 가면서 편안하게 미국 갈 수 있습니다. 나는 잠자고 놀고 그러는데 어떻게 미국을 갑니까? 비행기라는 힘을 의지하게 되면 그 비행기나 나를 미국까지 태워다 줍니다. 나는 내 자신을 의의 병기로 못 드리지만 주님이 나를 잡고 이끄시면 나는 그 삶을 살기 싫어도 살게 되는 거예요.

     

    골로새서1:13-18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이 말씀의 ‘그’ 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흑암의 권세에서 즉 어두운 사단의 세력을 말하는데, 마귀의 세력에서 우리를 건져 내었다고 합니다. 바꿔 말하면 물에 빠진 사람을 물 밖에 건져내 놨다는 말입니다. 그럼 이 사람은 다시는 물과 상관없는 삶을 살며 물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건져내사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놓았다는 것은, 그 사람을 다른 세계 즉 하나님의 아들의 세계로 옮기셨다는 것입니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어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세계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이들은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들어온 그 날부터 애굽의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애굽에서 살았던 삶이 통하지 않는 또 다른 세계속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가나안은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에 40년 동안 끌고 다니며 믿음을 가르치셨는데, 믿음을 못 배운 그들은 또 다시 가나안 족속에게 지배를 받으며 포로가 되고 짓밟히게 됩니다. 약속했던 가나안을 줬지만 믿음이 없으니까 못 누리고 지배를 받고 끌려가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나를 구원하셔서 다시는 죄에 끌려가지 않는 세계로 옮겨 놓았지만 죄악을 이기는 하나님이 내 마음에 세워져서 그 분과 삶을 살아야 하는데, 믿음이 없으니까 또 다시 죄에 끌려 다니며 죄의 종노릇 하는 거예요. 그것을 설명 하고 있는 게 로마서 6장 이야깁니다.

    사무엘하 9장에 보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있는데 두 발이 다 절뚝발이입니다. 할아버지 사울이 왕으로 있을 때 기세가 등등하여 세력을 얻고 살다가 사울의 시대가 무너지고 다윗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이 므비보셋은 어디에 가 있습니까?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살고 있었죠. 다윗이 왕권을 잡았으니 틀림없이 우리 할아버지와 연관되어 있는 후손들을 잡아죽일 거다 라고 생각하며 살아남기 위해 꼴이 없는 목장에 숨어 살게 된 겁니다. 살려고 살려고 찾고 찾아가 숨은 곳이 로드발 암미엘의 집인 거예요. 이만하면 됐다고 갔는데 죽음의 자리인거예요. 둘째 아들이 살려고 갔는데 죽음에 도달했고 아브라함을 떠났던 롯이 요단 들을 바라보며 ‘너무 좋다. 에덴동산 같다. 애굽의 들판 같다’ 면서 요단들을 택해 행복하게 살려고 떠나갔는데, 결국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그와 두 딸을 통하여 모압과 암몬의 족속이 만들어집니다. 모압과 암몬 족속은 저주를 받아 영원히 여호와의 회중에 들어오지 못하는 민족입니다. 잘 살려고 떠났는데, 그곳이 멸망의 장소였다는 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믿음이 없을 때 가장 추하게 사는 겁니다. 수단과 방법으로 살아야 되고, 세상 사람들을 끌어 들여야 되고, 정치인을 끌어들어야 하고, 인간의 방법으로 사는 법을 배우게 되는 거죠. 예수님, 사도바울, 믿음의 종들은 그리 살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위해서만 살았습니다.

    이 성경에서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당신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겼다고 되어 있는데, 므비보셋이 살아온 곳은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 죽음의 장소였단 말입니다. 다윗이 그를 이끌어 내어 다윗이 사는 왕궁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다윗은 아버지 요나단과의 약속으로 인해 일방적으로 므비보셋을 죽음의 장소에서 왕궁으로 옮깁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의 아들 중에 하나와 같이 왕자로 살 수 있는 특권을 얻고, 사울 할아버지의 모든 재산과 자기 소유물을 다시 되돌려 받고, 종까지 얻게 됩니다. 다윗은 그가 두 발이 절뚝발이였기 때문에 사울을 섬겼던 시바를 므비보셋을 섬기는 종으로 줬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다윗이 망명을 갈 때 므비보셋은 안 따라 갔어요. 압살롬이 죽고 다윗이 환궁해 올 때 므비보셋이 달려 나가서 다윗을 맞이하는 이야기가 사무엘하 1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당신이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수염을 깍지 아니하였으며, 내 종 시바가 나를 참소하였고 나를 속였나이다. 그래서 내가 당신과 함께 못갔다’ 라고 합니다. 그가 시바에게 속았다는 말이 과연 합당한 말입니까? 주인이 종에게 속았다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죄에 대해 죽은 우리, 의에 대해 사는 우리’ 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고린도전서에 보면 ‘값으로 산 내 것이니 사람의 종이 되지 마라.’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누구에게 끌려 다니면서 살고 있습니까? 이 이야기의 므비보셋이 시바에게 속은 것처럼 우리 또한 사단에게 속아 내 육신에게 끌려 다니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몸은 지금까지 마귀를 섬기며, 생각에 이끌려 생각이 주는 걸 따라서 행동하고 살던 몸인데 하나님께서는 영으로써 육신을 쳐서 하나님 말씀 앞에 살게 하기 위해서 이 몸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시바를 왜 므비보셋에게 주었습까? 너 절뚝발이쟎아. 너 병신이니까 시바의 몸을 네 몸으로 써! 시바의 두 다리 네 다리로 써! 시바는 네 종이야. 종은 주인의 마음대로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종은 선택권이 없고 주인의 필요에 의해 쓰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에 끌려 다니는 삶은, 마치 내가 원할 때 마음대로 쓰려고 돈을 주고 산 차를 내가 필요할 때 타지 못하고 차가 원하는 대로 끌려 다니는 삶과 같습니다. 므비보셋은 왜 시바에게 속아야 하고, 시바에게 끌려 다녀야 합니까? 왜 여러분과 나는 생각에 끌려 다녀야 되고, 형편에 끌려 다녀야 하며, 육신의 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거기에 지배를 받고 살아야 됩니까? 나 스스로는 육신을 이길 수 없지만 이길 수 있는 주님이 내 안에 세워지면 육신에 끌려 다니지 아니하고 주님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6: 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죄에 거할 수 없다는 이야기죠. 왜 없습니까?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에 다시는 죄 가운에 들어가 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에베소서 2:1-3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여기서 그때란 말은 허물로 죄로 죽어있을 그때를 말하며, ‘전’ 이란 살림을 입기 전을 말합니다. 에베소서 2장은 허물과 죄로 죽었을 때에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삶을 설명해 놓았는데,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고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의 지배를 받았고,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걸 좇아 살았던 삶이 죽었을 때의 삶입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 6장에도 ‘죽었다’고 되어 있어요.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2:4-5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렸다. 예수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 사는 것이고, 끊어지는 것이 죽은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인해 하나님과 끊어졌고, 끊어진 동안 내가 살았던 삶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고, 불순종의 영의 지배를 받았고, 육체에 끌려 다녔고, 생각에 끌려 다니는 삶인 것이죠. 그런 내가 다시 예수와 연결이 되면 다시는 육체에 안 끌려가고 생각에 안끌려 가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에게 안 끌려가는 겁니다. 로마서 11장에는 돌 감람나무 가지를 꺾어서 참 감람나무에 접붙이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 가지는 분명히 돌 감람나무 가지인데 참 감람나무에 접붙여지는 그날부터 돌 감람나무 가지는 참 감람나무에서 올라오는 진액을 받으면서 잎이 나고 줄기가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요. 유자를 사서 차를 만들고 그 씨를 심으면 탱자나무가 나옵니다. 귤 먹고 나온 씨를 심어도 귤나무가 안 나오고 탱자나무가 나옵니다. 껍데기는 유자고 귤인데 씨는 탱자라는 말이쟎아요. 이건 무얼 뜻합니까? 현대의 발전된 기술로 모양은 바꿀 수 있어도 씨는 못 바꾼다는 것입니다. 근본은 안 바뀝니다. 씨는 안 바뀝니다. 말과 나귀를 교배 시키면 노새가 나오는데, 거기서 나온 노새와 노새를 교배 시키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권한이기 때문에 종은 안 바뀝니다. 탱자를 변종시켜서 귤로 바꿀 수 있지만 씨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근본이 행악의 종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건져내어서 옮겨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 끊어진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세계로 접을 붙여 놨어요. 다시는 죄의 세계로 끌려가지 아니하게 하려고. 전에는 죄와 연결되어 있으니까 육체가 끄는 대로, 생각이 끄는 대로 살 수 밖에 없어요. 이걸 로마서 7장에서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바 선을 행치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이 어떻게 바꾸어 놓으셨느냐?

     

    해방직후 우리나라에는 통행금지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82년도에 통행금지 해지법이 세워집니다. 우리나라는 신법이 구법보다 우선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통행금비 해지법이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밤 12시 넘어 다녀도 통행금지법에 저촉을 받지 않고 구금당하지도 않습니다. 새로운 법이 세워졌기 때문에 자정을 넘어 돌아 다녀도 죄가 안 되는 것입니다. 옛 법인 통행금지법 앞에서는 죄인인데, 새 법인 통행금지해지법 앞에서는 자유 한 거지요. 절대로 옛 법에 매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통행금지 해지법이 나를 자유케 한 거지요. 에베소서 2장에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상태, 즉 하나님과 끊어진 상태가 죽은 상태이고. 다시 하나님과 연결된 걸 살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었을 때에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는데 이런 우리를 예수님이 살려주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에서는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이 말은 예수와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이며 육체와 마음이 끄는 죄의 삶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입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세계로 왔다는 이야기잖아요.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에 다시 그 가운데 들어가 살 수 없습니다. 마치 통행금지해지법이 제정되면서 통행금지법의 효력이 끝나 더 이상 어느 누구도 그 법에 매이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로마서 6: 6-14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이 말씀의 뜻은 너희가 통행금지법에 있지 아니하고 통행금지해지법 안에 있음이니라. 이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죄의 법이 아니라 은혜의 법 아래에 있으며, 돌 감람나무 가지가 꺾여져서 참 감람나무에 접붙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네 껍데기는 돌 감람나무가 맞는데, 잎도 그렇고 줄기도 돌 감람나무지만 너는 돌 감람나무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사람이 다치면 성형수술을 하는데 엉덩이 살이나 허벅지 살을 뜯어다가 뜯겨져 나간 팔, 다리에 붙여 꿰맨다고 합니다. 그것이 오랜 시간이 되면 세포조직끼리 결합이 되어서 제 살이 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같은 내 몸의 조직이라도 세포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싸우면서 엄청 아프고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같은 편이라는 걸 알고 하나의 조직이 되면 그때는 안 아프겠죠. 전에는 엉덩이 살이었던 녀석이 팔에서 나오는 신경을 공급받고 모든 영양분을 공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다른데서 받았지만 팔에 붙는 순간 팔에서 오는 걸 받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기에 그 안에서 공급되는 말씀을 받아들일 때 내게서 올라오는 생각의 세계를 이길 수 있게 됩니다. 내게서 올라오는 이 육의 생각을 나는 못 이기지만 말씀을 받아들이면 이 말씀이 내게 들어와서 내 육의 성품을 죽이고 이 말씀이 당신의 일을 시작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제가 손가락을 다쳐서 수술을 하는데 손에 부분 마취를 하고 수술을 했습니다. 의사는 수술을 하고 저는 가려져서 손이 안 보이니까 의사 얼굴 쳐다보며 얘기를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한 30분 지나니까 ‘목사님 다 됐습니다. 한 30분 지나면 아플 겁니다.’ 라고 해서 보니까 다 꿰매 놨더라구요. 진짜 30분지나 마취가 풀리니까 통증이 오는 거예요. 신기한 건 내 손을 칼로 찢었고, 신경을 찾아 꿰매는 데 나는 아무것도 못 느꼈다는 것입니다. 왜죠? 통증을 느끼는 신경을 마취시켜 죽이니까 못 느끼는 거쟎아요. 그것처럼 마귀가 우리 마음에 말씀을 마음에 감각하지 못하도록 우리 마음을 생각으로 죽이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막 살아나게 만들어요. 뿌리에서 올라오는 진액이 가지에 공급이 돼서 가지가 자라게 되는데,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우리 마음의 감각을 일으켜서 복음을 향해 달려가게 해주는 진액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사단이 우리 마음 안에 말씀에 대한 불신을 집어 넣어버리니까 말씀을 들어도 말씀이 우리 속에서 아무 일도 못하는 거예요. 생각의 마취에 잡혀서 전부다 생각에 끌려 다니는 거예요. 말씀을 읽어 놓고 말씀대로 안 믿고 자기 생각대로 사는 거예요. 기록된 말씀대로 믿으면 됩니다. 살았다고 하면 살았다고 믿으면 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성경에서 뭐라고 하냐면,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아! 예수가 십자가에 죽을 때 나도 죽고 없어졌으며 예수가 부활할 때 나도 부활했다. 난 이 몸이 새 몸이다. 전에는 육체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끌려 다니며 쓰던 몸이었는데 이 몸을 의의 병기로 쓰려고 다시 살려놓으셨구나. 나는 의의 병기가 되어 있으며, 새 사람이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여러분의 눈으로 쳐다보니까 새 사람은 커녕 형편없고 낡아빠지고 꼬장꼬장 한 거지요? 여러분이 보는 여러분은 형편없고 더러운 게 맞아요. 그런데 예수 안에 있는 나는 ‘새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내 눈으로 보는 박희진은 절대 안 바뀌는데 예수 안에 있는 박희진은 의롭고 완전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돌 감람나무 가지를 잘라서 접을 붙여 놓은 그 순간부터 그 가지는 다시는 돌 감람나무가 아니에요. 다시는 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나라는 인간은 그때부터 의로운 자가 되고 의인이 되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바고 하나님이 보시는 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우리는 올라오는 내 소리에 반응하고 살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단 하나 여러분 눈으로 성경을 읽으면서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받아들이십시오. 영어를 배울 때 알파벳부터 외우면서 배우잖아요. 신앙도 그렇습니다. 말씀을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데,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아서 그것이 내 마음 안에서 검증이 되고 내 마음에서 합리화가 될 때 믿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인생 자체는 처음부터 틀린 인생인데 선하신 하나님에게 속한 말씀이 내 마음 안에서 합리화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우린 틀린 인생이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며,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안 되면 우리가 평생 설교를 듣고 말씀을 읽어도 내 마음이 원하는 또 다른 것을 찾아가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의 그 생각이 진리가 아니고 이 성경이 분명한 진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말씀을 믿으시렵니까? 생각을 믿으시렵니까? 성경은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놨다고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통행금지해지법을 통해 통행금지법의 효력을 해지했습니다. 그 이유는 통행금지법의 지배를 받으며 살지 않고 마음껏 자유롭게 경제 활동해서 자녀들 교육시키고 어려운 가정 일으키라고 ...그들을 위해서 세워준 것이 통행금지해지법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걸 누리고 살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왜 누리지 못하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의 옳음을 주장해야 하고 내 소리를 내야하는 어리석은 삶을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보고 들으면서도 이 말씀을 안 믿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돌 감람나무 인데 참 감람나무 가지에 접을 붙여 놓으면 참 감람나무 열매를 맺지 말라고 해도 맺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뿌리의 진액이 그렇게 만드는 거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주님에게로 옮겨 놓고 우리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리는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이지, 그렇게 안 해놓고 그리 살라고 하면 절대 그렇게 못 산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이미 아들로 삼아 놓고 다윗의 왕자처럼 왕궁에서 살게 두었단 말입니다. 마음껏 시바를 부릴 수 있는 권력도 주고... 무얼 해도 그는 다윗의 아들입니다. 다윗의 망명지에 함께 갔든 안 갔든 그는 다윗의 아들입니다. 므비보셋 자신이 자기를 위해서 할 게 없고 누리면 되고 무엇이든 마음껏 끌어다 쓰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돌 감람나무가 가지가 접붙여지는 그 날부터 다시는 돌 감람나무 가지가 아닙니다. 그는 참 감람나무에 접이 붙여져서 참 감람나무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 아니고 의인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입니다. 의롭다 하신 분이 하나님이기에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왜 죄가 우리를 주관치 못하느냐?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고 말합니다. 내가 어디에 와 있느냐? 돌 감람나무 가지인데 참 감람나무에 접이 붙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에 속해 있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로드발 암미엘의 집이 아니라 왕궁에 있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아들이 아니고 다윗의 아들이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왕의 아들인데,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왕궁이 내 것인데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가 내 것인데 뭐가 문제가 됩니까? 하나님이 내 아버지인데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믿으시든지, 생각을 따라가든지 그건 여러분의 몫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믿음을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을 믿으십시오’ 라고 권할 수는 있지만 믿게 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보다 자기 자신이 옳고 잘나고 똑똑하다면 어떻게 말씀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말씀보다 부족하고 못나고 바보가 되어야 말씀을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까지 여러분의 옳음을 갖고 사시렵니까? 이제 자신의 옳음을 내려 놓고 성경이 뭐라고 했는지를 마음에서 비춰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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