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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동현 | 2017.01.22 12:56 | 조회 3478


    1. 말씀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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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2일 주일 오전말씀

    룻기 11~22

     

     

    룻기 1장을 다 읽었습니다.

    신분과 계급을 떠나서 모든 사람들은 자기를 믿는 아주 강한 어떤 힘이 있습니다. ‘나는 주관이 있는 사람이야. 목이 칼이 들어와도 나는 바른 소리하는 사람이야.’

    이렇게 나름대로 고집 아닌 고집을 부리면서 그걸 좋게 평을 합니다. 본인은 그것을 주관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 쓸모도 없는 고집, 우스갯소리로 똥고집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기 옳음만 내세웁니다. 자기가 틀린 것이나 부족함을 발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배우거나 가르침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옳고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아버지가 이렇게 아주 곧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당신은 술을 드시면 죽습니다. 그냥 조금도 아니고 한 방울만 먹어도 죽습니다.”라고 진단을 내렸습니다. 가족들이 술을 못 드시게 아예 대문 밖 출입을 막았습니다. 1년쯤 지난 어느 날, 이분이 긴히 가야 할 회갑잔치에 가신다고 해서 만류하는 가족들과 한 시간을 싸웠습니다. 잔치에 가도 술은 안 마시겠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결국 가족들이 졌습니다.

     

    잔칫집에서 친구분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1시간쯤 지나자 이분 마음에 이상한 생각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술을 먹어도 꼭 안 죽을 것 같은. ‘의사 선생님이 한 방울만 먹어도 죽는다 했으니까 한 방울은 안 먹고 1cm만 먹자.’ 이런 생각으로 옆에 있는 친구에게 술잔에 술을 1cm만 따르라고 합니다. “아니! 이 사람아. 자네 술 한 방울만 먹어도 죽는다면서?” “한 방울이 아니고 1cm. 1cm 먹으면 안 죽을 것 같아. 친구야 1cm만 컵에다 따라봐.” 그래 이분이 술 1cm를 다 마셨는데 아무렇지가 않은 겁니다. 그러니까 너무 기분이 좋아서 술을 계속 마시면서 재밌게 놀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집을 가려고 일어서서 나가는데 배가 사르르 아파왔습니다. “아이고, 배야.” 하면서 잔칫집 대문 앞까지 나오다가 쓰러지셨는데 그 길로 돌아가셨습니다. 술을 먹어도 안 죽겠다는 생각을 따라서 1cm만 마셨는데, 1cm가 한 잔이 되고,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그러면서 술을 드시다가 결국 그렇게 되신 겁니다. 왜지요? 의사의 말을 무시해서 그런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펴 놓고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감각하면서 믿음의 삶을 살려고 합니다. 그것은 참 좋은데 여기서 우리가 처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어르신은 의사의 말도 들었지만 당신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받아들인 것이 본인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독이 됐습니다. 오늘 읽은 룻기 전반부를 보면 나오미라는 여자가 베들레헴을 떠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가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많은 재물을 가지고 풍족한 가운데에 베들레헴을 떠났다가, 돌아올 때는 괴로움을 받고, 하나님 앞에 징벌을 받아 남편과 아들도 버려진 채 다 비워져서 그냥 돌아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베들레헴을 떠날 때 여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돌아올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또 어떤 마음의 변화가 와서 베들레헴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을까요? 그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가 가져야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신앙의 선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말씀의 선이 분명해야 합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사단이 하는 말은 생각을 통해서 나오는데, 말씀과 생각을 구분하는 분명한 선,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의 선이 분명하지 않으면 내 신앙은 분위기, 기분, 형편을 따라 움직입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살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영과 혼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말씀은 나눕니다. 예를 들어, 입었던 바지, 양말, 속옷을 새 옷에 집어넣으며 그냥 멋대로 사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방은 어지럽혀져 있고, 먹었던 반찬과 안 먹은 반찬, 사용한 그릇과 새 그릇이 같이 있어 설거지를 한 건지 안 한 건지 구분이 안 되는 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 남자가 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너무 깔끔한 겁니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신은 양말은 빨래통에 넣고, 정리 잘 하는 부인과 살면 처음에는 엄청 피곤하겠죠. 하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여섯 달이 지나면 그 남자도 선이 분명해지겠죠? 남자도 신은 양말은 빨래통에 넣겠죠. 그것은 그런 사람과 함께 살다 보면 내 삶이 달라져 가는 것입니다. 나는 할 줄 모르는데 할 수 있는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와서 살면 나도 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말씀은 절대로 영과 혼을 섞지 않으니까 혼은 혼끼리, 영은 영끼리 딱 구분이 됩니다. 그러면 나는 멍청하고, 바보 같고, 형편없고, 분별이 없어서 영이 뭔지 육이 뭔지 혼이 뭔지 몰라도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세워져 있으면 나는 영적인 사람이 되기 싫어도 영적인 사람이 됩니다.

    저는 사람이 좀 이상합니다. 내가 잘 돼야 하는데 남이 잘 되는 걸 보면 성질이 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내 마음에 주님이 들어온 그날부터 주님이 제게 그 삶을 못 살게 만듭니다. 그런 마음이 막 올라오다가도 그걸 잠재우고 오히려 반대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제가, 제가 사는 삶을 봐도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습니다. ? 어느 날 보니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계시면서 예수님이 그 삶을 살게 만드시는 겁니다.

     

    이번에 카메룬과 토고, 베냉을 다녀왔습니다. 카메룬에서 청소년부 장관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카메룬의 청소년 문제를 꺼내 놓으면서 이 나라 청소년들에게 마인드 교육을 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카메룬 수도에청소년이 70만 명 살고 있는데 이들의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며 청소년 천 명을 모아주면 교육해 주겠냐고 물었습니다. 이렇게 마인드 교육에 관한 의논이 일사천리고 진행되면서 카메룬을 다 얻은 것처럼 마음이 충만했습니다.

     

    다음날 베냉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지방 도시로 왔는데 비행기가 연착해서 저녁 6시에 출발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공항에서 6시간을 놀았는데 6시가 되어도 직원들이 출근을 안 해서 알고 보니 6시가 아니라 11시가 출발시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보니 베냉으로 가는 직항인데도 엉뚱한 나이지리아로 가 버렸어요. 그리고는 비행기에 문제가 있어서 더 이상 못 간다고 다 내리라는 겁니다. 그리고 나오니까 여권을 다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 비행기가 언제 출발한다는 약속도 안 해 주고 내일은 비행기가 없다면서 그냥 내리라니까 이게 말이 되냐며 싸웠습니다. 저는 그 날 베냉 가서 모임을 해야 하는데 길이 없어서 대사관에 전화를 했습니다. 처음에 대사관 쪽에서 이 나라가 그런 줄 모르냐고 하길래 제가 좀 화가 나서 따졌습니다. 이국땅에 와서 느닷없이 이렇게 되어 도움을 받으려고 연락한 건데 그렇게 하시냐고 했더니 다음날 아침 일찍 그 나라에 파송된 총영사님이 나오셨습니다

     

    고맙게도 이 분이 공항을 안 떠나고 하루 종일 우리를 위해 일을 해 주셨습니다. 토고에서 베냉으로 가는 비행기가 있어서 저와 통역하는 자매는 먼저 급히 토고로 출발했습니다. 나머지 일행들은 육로로라도 오려고 했는데 버스가 없어서 다음날 오려고 호텔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항공사 측에서 연락이 왔는데 항공사 전용기를 내 준다는 겁니다. 이것은 유례없는 일이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어려움을 내놓고 도움을 청하니까 영사가 공항에서 우리를 위해서 일을 한 겁니다. 그러니까 항공사에서 전용기 비행기를 띄워서 우리 모두가 베냉으로 넘어왔단 말입니다.

     

    길이 없고 방법이 없으니까 막 부딪히고 싸우더라고요. 그리고 방법이 없으니까 정부에서 파송한 대사관에 연락을 해서 도움을 청하더란 말입니다. 길이 없을 때 찾아오라고, 도움을 구하라고 우리정부에서 그 나라에 파송한 한국대사가 있단 말입니다. 그러면 살면서 길이 없고 방법이 없을 때 찾아오라고 하나님이 파송한 대사가 있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찾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길이 없으면 떠나버립니다. 나오미에게 흉년이 와서 길이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을 찾아야 되는데 그냥 생각을 따라 엉뚱한 데로 가 버리는 겁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하시는 주님을 찾아가면 길이 있고 방법이 있는데 나오미는 베들레헴을 떠나서 생각을 따라서 모압에 가 버렸습니다. 거기서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길이 없습니다. 시편 107편을 한번 펴보십시오.

    [시편1717~21] 미련한 자는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곤난을 당하매 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 가깝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고 떠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은 말씀을 보내어서 저희를 고치고 위경에서 건져냈다고 하십니다. 내가 어렵고 힘들 때 길이 없고 방법이 없는 이국나라에서 비행기도 없고 언제 갈 수 있는지도 모를 때 그 나라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런 상황이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거기는 우리나라 정부를 대신해서 있는 곳이기 때문에 감사하게도 이분이 아침 일찍 나와서 도와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전용기를 띄워서 우리 식구들 전부 다 목적지에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너무 좋은 거지요.

    신앙도 내가 어렵고 길이 없고 방법이 없을 때 예수님을 향하여 SOS를 치면 거기서 하나님이 말씀을 보내어 우리가 거기서 벗어날 때까지 일하십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말씀을 보내주시는데 우리는 그 하나님을 찾는 게 아니고 내 방법대로 하다가 안 되니까 떠나버리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고 싶어도 못 도와주는 겁니다. 흉년이 왔으면 흉년을 주신 주님을 찾아가면 주님이 길을 열어 주실 텐데, 다른 사람 아무도 안 떠나는데 왜 나오미 가족만 떠납니까? 뒤에 보니까 풍족한 가운데 나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룻기 120, 21절을 보면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워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고 나를 비워 돌아오게 하셨다고 나오미가 고백합니다.

    나이지리아 공항에 딱 떨어지니까 마인드 교육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수양회 1100명 앉혀 놓고 말씀 전하고 변화 받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도 다 없어지고 베냉 수양회에 2000명가량 모여 있는 것도 없고 학위 준다는 것도 없고 그렇게 마음에 있던 것이 다 없어지고 하나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여기서 18명 이렇게 있어야 합니까?’ 이 마음뿐이었습니다. 너무 난감한 겁니다. 하나님과 나만 딱 남았는데 길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300명이 넘는 사역자들하고 교제를 해야 하는데 왜 교제를 막으십니까?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 날 보고 , 그 마음 가지고 가면 300명 다 죽여. 그래서 내가 안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앉아서 내 마음을 쳐다보니까 마음에 은혜 입은 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걸 다 비우시더라고요. 다 비우고 거기 앉아 있는 내 모습은,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나님만이 나를 도와주셔야 하는 그 길밖에 없는 겁니다.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길을 여시는데 너무 신비로웠습니다.

     

    제가 한국에 여행사 연락해서 알아보는데 도저히 길이 없는데 비행기 표 두 자리가 있다고 연락이 왔어요. 알아보니까 토고 교회에 한 달 전에 구원을 받은 자매가 있는데 여행사를 하는 자매인데 거기 연락해서 표 2장을 구했대요. 그 목사님 말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박희진 목사랑 통역하는 자매는 나이지리아를 떠나게 만들어라 그래서 그 자매가 다 제쳐놓고 그 표를 잡은 거예요. 나오자마자 표를 끊어 놓고 그 비행기를 타고 나왔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모임을 가졌는데 하나님께서 그 짧은 시간에 은혜 입은 거, 충만한 거 가득가득 넣어 놓은 걸 정말 다 비우고 아무것도 아닌 박희진이의 모습으로 다시 돌려보내놓고 일을 하시려고 하신 겁니다. 그 제서야 제 마음에 , 내가 이 마음을 가지고 돌아가서 교제했더라면 많은 사람을 죽였겠구나. 바른 소리를 할지라도 내 입에서 주의 마음이 나오지 않는다면 다 죽일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하나님 먼저 나를 비우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튼 저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잘 모릅니다. 너무 당신의 수가 높으셔서. 그런데 하나님이 거기다 딱 던져 놓으니까 아무 대책이 없는 겁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 자리에 딱 던져 놓고 , 그 동안 어떻게 살았냐? 너 누구 믿고 사냐? 네가 어려울 때 왜 원망을 하냐? 누가 핍박하고 모함할 때 너는 왜 거기에 휘말리느냐? 내가 너와 함께 있지 않냐. 내가 네 원수를 제거할게. 내가 싸울게. 내가 너한테 그렇게 말하지 않았냐. 내가 말씀을 줬잖아 내가 능력의 손으로 너를 잡고 너와 싸우겠다고 말하지 않았냐? 왜 네가 그 사람을 향하여 원망을 하냐? 너는 복음을 전해. 말씀만 전해. 교제만 해. 네가 은혜 입은 것도 네 마음에 두면 안 돼. 너는 복음만 전해. 내가 다 처리할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제 마음을 바꿔주시면서 그 다음날 길을 열어 전용기를 띄워서 일행들을 데려다 놓는데 기가 막히는 거예요. 사역자들이 깜짝 놀래요. “목사님,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회사가 돈이 안 되어서 안가고 비행기를 돌려보냈는데 어마어마한 경비를 투자해 전용기를 띄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상상도 못할 일을 하나님은 하십니다. 이 나오미가 다 비워지니까 하나님이 나오미를 다시 베들레헴으로 이끌어 오는 겁니다. 비워진 나오미 마음에 무엇이 있는가 보니까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다른 어떤 것들을 담아 두는 걸 원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만 담아 두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생각의 지배를 받아서 모압에서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았던 십년 동안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운 겁니다. 그가 돌아올 때 뭐라고 말합니까? 나를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라 해라. 나오미가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 줄 발견합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없이는 누구도 살릴 수 없는 여자다. 그래서 내 인생에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 마음을 지배할 때 말씀을 버리고 우리는 나오미처럼 생각을 따라 그 길을 쫒아갑니다. 그것은 불행한 길인데 우리는 그것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불행을 당하고 나서야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 이야기를 좀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나오미 인생에 나오미가 의지하고 있던 모든 걸 하나님이 끊어버리셨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삶으로 나오미 인생을 끌고 가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과 내가 현재 있는 이 자리는 슬픔의 자리도, 원망의 자리도 아니고 가장 복된 곳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거기다가 이끌어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깨우쳐주고 싶은 거예요. 하나님이 거두어 주지 않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임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입을 수 있는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겁니다. 그게 우리가 가야할 세계예요. 정말 내가 하나님 없이 잘 살 수 있는 게 뭐가 있냐? 하나님이 돕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느냐? 아무것도 없어요. 전도? 유창한 설교는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안 도우면 한 사람 마음도 못 바꿉니다. 하나님이 안 도우시면 한 명도 교회 안에 못 이끌어옵니다. 그래서 여러분 구원받은 지 10, 20년이 되어도 여러분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 없잖아요. ? 하나님이 안 도우면 안돼요. 하나님이 도우면 구원 받은 지 이틀이 되어 몇 십 명을 데려올 수 있고, 몇 십 명이 구원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이 안 도우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돼요.

     

    제가 서두에 어떤 목사님 아버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를 믿는 강한 믿음 때문에 의사 말을 무시하고 결국은 술 마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말씀을 버리고 떠나면 결국은 망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성경에 악한 자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오죠?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왜지요? 성경을 보면, 사울이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하게 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울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사울을 더 이상 쓸 수 없어서 다윗을 세워서 일을 하신 겁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을 떠났지 하나님이 나오미를 떠난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고 하죠?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버리신 겁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떠나고, 목사를 떠나고, 하나님을 떠나고 말씀을 짓밟고 무시한 겁니다. 여러분과 내 마음이 말씀 앞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룻기 1장을 보면 나오미에게 처음으로 말씀이 들리는 시점이 있습니다.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있던 곳을 떠나고 두 자부도 그와 함께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다가

     

    모압에 들어간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모압에서의 삶속에는 죽는 역사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떠나 있는 자기 인생을 발견합니다. 그 때 처음으로 말씀이 들려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도 돼지 먹는 쥐엄열매도 먹을 수 없어 죽음을 앞에 두었을 때 비로소 아버지 집을 생각하게 되고 아버지에게 돌아갈 마음을 갖습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멀었습니다. 형편은 망했어도 마음은 망하지 않아서 하나님 찾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렵고 힘든 것은 사실이겠지만 마음은 하나님 앞에 있지 못합니다. 시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따라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수단이나 요령, 세상의 논리를 따라가거나 세상의 옳음을 따라가지 않고 말씀만 따라갑니다. 나오미가 그냥 떠난 게 아닙니다. 말씀을 버리는 사람이 그냥 버리는 게 아닙니다. 유다의 마음에 사단이 생각을 넣어주니까 그 생각을 받은 유다는 예수를 팔아버립니다. 마음에 뭘 두고 있느냐?

     

    [시편 1199~11]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여러분 마음의 보좌에 누가 앉아있습니까? 여러분이 일을 결정할 때 누가 결정합니까? 예수 이름으로 여러분이 결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주의 이름으로 내가 보기 좋은 것, 내가 옳은 것, 내가 깨달은 것을 따라 살았지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사람은 아니었단 말입니다. 은혜 입은 것 굉장히 많았습니다. 저는 그것 가지고 막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은혜 입은 거지 주를 믿지 않았단 말입니다. 나를 믿고 살았단 말입니다.

     

    신앙의 시작은 나를 불신하는 겁니다. 자기를 믿었던 나오미는 베들레헴을 떠납니다. 반대로 자기를 불신하는 나오미는 모압을 떠납니다. 말씀은 나오미를 베들레헴으로 이끌고 생각은 모압으로 이끕니다. 사단은 오늘도 여러분과 나를 말씀이 아닌 깨달음의 세계로, 옳음의 세계로, 판단의 세계로 이끌고 가고 있지만, 말씀은 나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베들레헴으로 이끌고 계세요.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늘도 광야로 끌고 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가 아닌 안정된 세계를 추구하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시편 119편을 보면,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다고 말합니다. 나오미 마음에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에 형편을 따라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편 11949~50]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예레미야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내 인생에 무엇이 소망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마음에 그 하나님을 두고 사는 사람은 모든 소망을 주께 두고 살며 눈에 보이는 형편에 요동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관심도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어렵고 힘들 때 위로가 되어 나를 살리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기 때문에 나를 살린다는 겁니다.

    말씀을 보내어 나사로를 살리고 야이로의 딸을 살려낸 것처럼, 말씀을 보내어 귀신을 쫓아내고 정상적인 삶으로 바꿨던 것처럼 말씀이 나오미에게, 베드로에게 들어와 바꿨던 것처럼 여러분과 내 마음에 말씀이 들어오면 그 말씀이 우리를 살립니다. 말씀에 잡혔던 나오미가 모압을 버리고 은혜와 긍휼이 있고 축복이 있는 베들레헴으로 옮겨가 버린 것처럼 여러분을 그 세계로 이끌어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그 세계로 이끌고 싶으셔서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때로 어려움과 문제를 주어서 하나님을 찾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마음에 두신다면 마음에 들어온 말씀은 여러분 인생을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이 마음에 없는 사람은 오늘도 의지나 각오, 결심으로 어리석은 삶을 살 텐데 이제 그 모든 삶 내려놓고 주님 앞에 여러분 마음 열고 말씀을 받아들여 보십시오. 이제 형식적인 신앙을 끝내시고 정말 하나님을 찾아보십시오. 여러분 마음에 주님이 계시는지, 여러분 자신을 한번 말씀 앞에 비추어보십시오. 모압에 가서 사는 동안에 나오미는 자기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걸 발견합니다. 남편을 지킬 수 없는 여자. 아들을 지킬 수 없는 여자, 결국은 남편도 죽이고 아들도 죽일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생명과 끊어진 자기를 발견하면서 그 생명 되신 하나님 앞으로 나오미가 돌아오면서 그가 함께 따라온 룻이라는 여자도 복을 받고 삽니다. 나오미가 하나님과 연결될 때 여러분과 내 마음이 말씀과 연결이 될 때, 이 말씀은 우리를 살리는 일을 하십니다. 그 은혜 속에 여러분이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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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4 주일 낮 설교(2017.08.06) 김미선 2017.08.06 2417
    133 주일 낮 설교(2017.07.16) 김미선 2017.07.16 2540
    132 주일 낮 설교(2017.06.25) 김미선 2017.06.25 2745
    131 주일 낮 설교(2017.06.18) 김미선 2017.06.18 2443
    130 주일 낮 설교(2017.06.11) 김미선 2017.06.11 2724
    129 주일 낮 설교(2017.06.04) 김미선 2017.06.04 2748
    128 주일 낮 설교(2017.05.28) 김미선 2017.05.28 3217
    127 주일 낮 설교(2017.05.14) 김미선 2017.05.14 3082
    126 주일 낮 설교(2017.04.09) 김미선 2017.04.09 3675
    125 주일 낮 설교(2017.04.02) 김미선 2017.04.02 3493
    124 주일 낮 설교(2017.03.26) 김미선 2017.03.26 2960
    123 주일 낮 설교(2017.03.19) 김미선 2017.03.19 3506
    122 주일 낮 설교(2017.03.05) 김미선 2017.03.05 3163
    121 주일 낮 설교(2017.02.26) 김미선 2017.02.26 3313
    120 주일 낮 설교(2017.02.19) 김미선 2017.02.19 4122
    119 주일 낮 설교(2017.02.12) 김미선 2017.02.12 3352
    118 주일 낮 설교(2017.02.05) 김미선 2017.02.05 3635
    117 주일 낮 설교(2017.01.29) 정혜원 2017.01.29 3653
    >> 주일 낮 설교(2017.01.22) 송동현 2017.01.22 3479
    115 주일 낮 설교(2017.01.01) 김미선 2017.01.01 3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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