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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선 | 2017.02.26 12:08 | 조회 3313


    1. 말씀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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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26. 주일 오전예배

    열왕기하 51~16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 주인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계집아이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아람 왕이 가로되 갈찌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나아만이 곧 떠날쌔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개와 의복 열벌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주소서 하였더라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줄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21가로되 나의 섬기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 나아만이 받으라 강권하되 저가 고사한지라

    빛이 없으면 정말 살아가는 게 되게 힘들 것 같아요. 몇 년 전에 제주도에서 동굴에 간 적이 있습니다. 화산 폭발로 생긴 동굴인데 동굴 안이 무척 캄캄해서 꼬마전구를 달아서 길만 겨우 보이도록 불을 밝혀놨습니다. 동굴 속으로 계속 들어가는데 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꼬마전구 빛이 비치지 않는 부분하고 빛이 비치는 부분이 달랐습니다. 빛이 비치는 부분에는 바닥을 보니까 녹색을 띤 식물들이 잎이 송송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똑같은 땅인데 빛이 비치지 않는 부분은 그냥 시커먼 땅이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녹색 잎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걸 보고 나오면서 또 하나 놀란 게 있었습니다. 입구 가까이에도 햇빛이 들어오는 부분과 안 들어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굴 안에서 햇빛이 들어왔다가 나왔다 하는 부분을 보니까 빛을 많이 받는 부분과 적게 받는 부분이 굉장한 차이가 있는 겁니다. 식물들잎이 누가 가져다 심은 것처럼 줄을 쫙 서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자꾸 키가 작아져서 안쪽 깊은 곳에서는 잎이 땅바닥에 붙어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난 게 창세기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땅을 창조했는데 그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 혼돈의 문제도 그냥 두고 공허한 문제도 그냥 두고 흑암이 깊은 문제도 그냥 두고 그냥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빛이 딱 들어오니까 그 문제들이 다 정리가 되었습니다. 빛과 어두움이 나뉘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살아온 환경이나 삶은 다르겠지만 여러분도 사람들을 만나왔고, 저도 사람들을 만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창경원에서 호랑이를 보셨겠지만 저는 6살 때 제 옆 동네에서 봤습니다. 우리가 늘 산사람이라고 불렀던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멧돼지를 잡으려고 만들어놓은 웅덩이에 어느 날 새끼 호랑이가 빠져버렸습니다. 저도 같이 보고 왔는데 꼭 고양이 새끼처럼 생겼더라구요. 저는 호랑이 새끼, 멧돼지, 노루, 사슴, 토끼, 살쾡이도 보며 자연 속에서 컸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도 참 많이 만났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겠지만 자연과 사람을 만나면서 제 마음에도 만들어진 세계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 의지할 수 없는 사람, 신뢰가 가는 사람과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많은 걸 부딪혀 왔는데 제 인생의 그림은 너무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저희 집에 돌아가신 아버지 빈소가 차려져 있었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 비바람이 너무 많이 분 날, 저희 집 둘레에 있던 감나무 중 부엌 뒤쪽에 있던 감나무가 부러져 떨어지면서 부엌이 내려 앉아버렸습니다. 그때 제가 부엌 위채에 있었는데 누군가 저를 업어다가 사랑방 빈소에 던져 놓았습니다. 그 빈소를 쳐다보는 순간 멋진 게 아니라 무서웠습니다. 얼룩덜룩하고 그렇잖아요. 저를 업고 갔던 것이 누나였는지 모르겠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갔고 저는 마당을 쳐다보면서 너무 무서워서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하도 울어서 누군가 다시 저를 업고 갔습니다. 그 다음에 제가 6살 때 같은데, 저희 집안이 종교로 인해 큰 파탄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가정에 불화가 생기고, 가족 간의 의가 상하면서 어렵게 인생을 살다가 제 인생이 구겨지고 찢어지고 망가지면서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할 수 없는 절망 속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 온 폐결핵까지. 제 인생의 목을 조여 왔습니다.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아 길바닥에 뒹굴고 잠잘 곳이 없어 몸부림 치고, 추위와 싸워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 인생의 그림은 외롭고, 서럽고, 슬프고, 어렵고, 힘들고 배고픈 그림 밖에 없었습니다. 학창 시절은 너무 싫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아침에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회비 안 가져왔냐고 제 이름을 부릅니다. 그리고 학생들 보는 앞에서 쫓겨났습니다. 집에 가도 돈이 없으니까 하루 종일 개울가에 앉아 있다가 친구들 수업 마치면 같이 올라가곤 했습니다. 제 인생의 그림은 좋은 그림이 없었습니다. 그런 제 인생에 26년이 되는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왔습니다. 물론 제게 도움을 준 사람들이 전에도 있었지만, 그때 제 인생의 그림을 바꿔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 나아만이란 사람이 그렇습니다. 1절에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인 나아만은, 그 주인인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보니까 여호와께서(하나님께서) 전에 저로(존귀한 자가 되기 전에 나아만으로) 구원하게 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나아만이 전쟁을 하면서 적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고 모든 싸움을 이기게 한 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아만이 승승장구 하면서 아주 위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저는 큰 용사나’, ‘~는 별로 안 좋은 말이죠? ‘문둥병자더라이 말만 없으면 참 멋지죠. 저는 큰 용사가 맞는데 문둥병자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읽다가 제 마음에서 나아만이 그 많은 전쟁에서 죽지 않고, 하는 전쟁마다 승리하게 하셔서 군대장관으로 크고 존귀한 자가 되었는데 그렇게 도와줬던 하나님이 왜 문둥병 하나 못 막아 주셨을까? 하나님이 문둥병을 막아 줄 힘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내가 너를 잡고 너와 싸우던 자들을 내가 싸울 것이며 내가 허망하게 만들 것이며 네가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나아만의 몸을 막 괴롭히는 문둥병을 안 막아줬을까요? 전쟁을 이기게 해 주신 하나님이 이 문둥병을 걸리도록 허락하셨다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존귀한 자가 되고, 큰 자가 되면서부터 나아만이 말을 안 듣습니다.

    내가 언제 교회의 말 안 듣고 고집 부리는가 생각해 보니까 선교학교를 나오면서부터였습니다. 선교학교 가기 전의 내 마음과 선교학교에 있을 때의 내 마음, 전도사 되었을 때의 내 마음은 달랐습니다. 잠 잘 곳이 없어서 길바닥에 뒹굴고 있을 때 내가 가졌던 마음, 그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이 먹을 것을 주고 옷을 주고 집을 주고 뭐든지 다 주셨습니다. 그렇게 많은 은혜를 입어 집을 얻고 먹을 게 있고 옷이 있고 주머니에 돈이 있으니까, 신기한 것은 내 마음에 안 듣는 소리가 있고 싫은 게 있는 겁니다. 길바닥에 버려질 때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는데 이게 어디서 왔지? 하나님은 저희에게 일을 하고 싶으신 겁니다. 제가 정말 어려운 환경에서 정말 힘들게 살다가 하나님이 제 인생을 승승장구하게 하셨고 운동으로 탄탄한 대로를 펼쳐 나갔었는데 허리가 부러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허리 부러지고 폐결핵이 걸려서 버려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박희진이라는 인생에게 내가 그리는 그림 말고 하나님 당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는 겁니다. 그 그림을 그려 주시려고 제가 26년이라는 인생을 사는 동안 형성되어 온 옳음과 철학 들을 하나님이 철두철미하게 꺾으시고 깨뜨리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에게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화려한 군대장관, 존귀한 용사. 나아만의 그림의 시작은 참 멋있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이 외면하고 가까이 안하는 문둥병을 넣어줘서 그 그림을 완전히 망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걸로 끝내지 아니하시고 이 집에 계집아이를 보냅니다. 나아만은 그냥 한 아이를 데려왔을 뿐인데 이 계집아이가 들어오면서부터 나아만 집에 변화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완전히 물감이 쏟아져서 다 버린 그림인데 계집아이가 이 그림을 바꾸기 시작한 겁니다. “우리 주인님이 사마리아에 계시는 선지자 앞에 계시면 좋겠나이다. 그 선지자가 우리 주인님 문둥병을 고칠 겁니다.” 신기하게도 나아만이 계집아이 말을 듣습니다. 나아만이 계집아이의 말을 들으면서부터 그 인생에 변화가 왔습니다. 나아만이 우여곡절 끝에 엘리사 앞에 갔는데 거기서도 자기 옳은 생각 때문에 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다가 또 마음 꺾고 요단강에 내려가 몸을 일곱 번 담가서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나아만이 갑옷 벗고 요단강에 들어 갈 때 그날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이 나아만이 문둥이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문둥이가 요단강에 딱 들어가니 사람들이 미쳤다고 합니다. 두 번째 들어갈 때도 여전히 문둥이, 여섯 번째 들어갔을 때에도 여전히 문둥이로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일곱 번째 들어갈 때에도 분명히 문둥이였습니다. 그런데 나올 때는 문둥이가 아니고 달라져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그 살이 나아서 어린아이 살과 같다고 돼있습니다. “, 문둥이가 다 나았다. 일곱 번째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문둥이였는데 나올 때는 그 문둥이가 어디가고 없어졌네. 다 나았네.”

    저에게도 그런 인생이 있습니다. 제 기억에는 밥을 먹은 것보다 굶었던 기억이 더 많습니다. 이산 저산을 다니면서 주워먹었던 머루, 다래, 땅을 파서 캐먹었던 도라지, 이 밭 저 밭을 찾아다니며 캐먹은 고구마, 그게 다였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불쌍하니까 희진아, 우리 고추밭에 가서 고추 따먹어라. 깻잎 따 먹어라.” 그런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렇게 살았는데 구원을 받고나서 하나님이 내 허리도 고쳐주시고 폐결핵도 낫게 해주셨습니다. “내가 병이 나았어. 폐결핵이 나았어. 늘 밥을 굶고 약도 안 먹었는데 하나님이 내 폐결핵을 고쳐주셨어. 내가 피를 안 토하는 정상인이 되었네.” 그냥 제 인생에 하나님이 어떤 부인을 보내주셨습니다. “희진아, 나와 함께 교회가자. 네 형도 예수 믿고 병이 나았잖아.” 그 분을 따라 가서 말씀을 들은 거 밖에 없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하나님이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서 정상적인 사람으로 바꿔줬던 것처럼 나를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린 내 인생의 그림은 폐결핵 환자로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배고프고 서럽고 고통스럽고 살아야 할, 이유도 모르는 어두운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자매님을 통해서 내 인생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은 너무 멋진 겁니다. 절대로 나는 내 그림을 그렇게 그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아만 마음의 절망을 하나님의 물감으로 지우시더라구요. 인생을 지우는 지우개 그게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나아만의 인생 그림을 다시 복구하는데 문둥병이라는 먹물을 쏟아 다 망쳐 버린 그림을 하나님이 그 먹물을 다 없애고 예수님이 계시는 그림을 그리니까 군대 장관뿐만 아니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빛이, 영광이, 능력이, 역사가 나타나는 존귀한 자가 되어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나아만이 계집아이의 말을 하나 들은 것밖에 없는데 이 아이는 계집아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나아만의 집에 일을 하시려고 들어온 겁니다. 그 하나님이 내 인생에 들어와서 이 망가진 박희진 인생의 그림을 가장 멋지고 화려한 그림으로 바꾸어 놓으셨던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의 그림을 그렇게 그리고 싶으셔서 우리에게 아픔을 주시고 때로는 어려움을 주시고 이러저런 문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저주하신 게 아니라 그걸 통해 우리 인생을 바꾸고 싶어 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쫒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예레미야 29:11~14]

    하나님은 제게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고 하셨습니다. 내 눈에는 온통 저주로밖에 안 보이는데 내 장래에 소망을 주고 싶으셔서 제 아내에게 암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너 잘못한 거 없어. 내가 너를 사랑해서 더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 거야.” “난 싫어요.” “싫어도 할 수 없어. 내가 주었어.” 저는 도저히 받을 수 없었습니다. 안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좋은 겁니다.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내가 하나님을 내 생각대로 알고 내 마음대로 섬기다가 그대로 끝났을 텐데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하나님과 제 마음이 끊어져있는 걸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 편에서는 충성스럽게 주를 섬기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하나님과 제가 마음이 다르다는 걸 가르쳐주셨습니다. “네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지리니 내가 만나주겠다.” 하나님이 나와 하나가 된 그날부터 제 아내 몸의 암은 끝이 났습니다. 모든 저주와 재앙이 끝나고 소망과 평안으로 바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참 놀랍게도 하나님이 저를 그렇게 이끌어주셨습니다. 많은 일들이 제 주변에 있었지만 전부 다 하나님이 다 바꾸어주셨습니다. 최수현이 척수염으로 죽어갈 때 하나님이 제 마음에 믿음을 주시고 이끌어오게 하셨고 수원에 올라갔을 때 땅과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는 문제를 종에게 들고 나갔을 때 하나님이 말씀대로 풀어주셨습니다. 옛날에 저는 다 내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만약에 나아만이 문둥병에 안 걸린 상태에서 계집아이가 들어와서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 선지자 앞에 가면 좋겠습니다. 선지자 앞에 서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랬다면 그 날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망을 당했을 겁니다. 종은 주인의 소유물이잖아요. 어떤 주인이 종의 말을 듣습니까?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나아만을 문둥이로 만들어 마음을 팍 꺾어서 계집아이 말을 듣게 한 겁니다. 그러니까 나아만의 문둥병이 낫고 새 삶을 사는 복을 입은 것입니다. 제 허리를 부러뜨리고 폐결핵을 줘서 제 인생을 꺾어놓으니까 거부라는 것이 없어지더라구요. 그냥 그 분의 말에 끌려 따라 갔는데 말씀이 들어오고 그 말씀이 내 인생을 바꾸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십니다.

     

    나아만에게 뭘 가르쳐 주시려고 이런 혹독한 문둥병을 줬을까. 성경에 보니까 그게 답이 있더라고요. 다시 열왕기하 513~14절로 넘어갑시다.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이 사실은 나아만 본인도 알고 같이 왔던 신하들과 요단강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가 있습니다. 보세요. 15절에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나아만 마음에 이스라엘 사람이 믿는 하나님도 신이고 아람 사람들이 믿는 바알도 신이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문둥병이 나으면서 그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외에는 모두 가짜다. 이 세계가 보인 겁니다.

    그 다음을 보십시오. 청컨대(바라건대 그 말이죠?) 당신의(엘리사를 가리키죠?) (이 종을 누구를 가리켜요? 나아만 자신을 가리켜요.)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엘리사가 극구 거절합니다. 가로되 나의 섬기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 나아만이 받으라 강권하되 저가 고사한지라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다. 내가 이걸 받으면 나는 저주 받아. 나는 다만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전한 것뿐이고 너는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문둥병이 나은 것이다. 문둥병으로 하나님이 네게 두 가지를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 외에는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너의 주인으로 하나님이 나를 세워놨다는 것. 너는 아람나라에 가면 큰 용사이지만 하나님이 나를 너의 주인으로 세우셨다. 너는 내 말을 들어야 산다. 그 뜻입니다. 나아만은 지금까지 자신이 존귀하고 큰 용사로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 인생을 이끌었는데 이제 자기의 주인은 자신도 아니고 아람 왕도 아니고 하나님의 종 엘리사임을 발견했습니다. 종은 결정권이 없습니다. 종은 기뻐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습니다. 주인이 기쁜 게 기쁜 거고, 주인이 슬픈 게 슬픈 것입니다. 종에게는 어떤 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러분이 기쁘면 기쁘고 슬프면 슬프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마음에는 주님이 안 계신다 그 말입니다. 정확하게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이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누구인지와 내 영혼의 목자 되신 이가 내 주인임을. 성경을 좀 찾아서 이야기를 드릴게요.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공급하였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에서가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창세기27:37~40]

     

    원래 출생순서로 따지면 에서가 주인이 되고 야곱이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뒤집어서 야곱을 주인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에서에게는 이것이 복입니다. 에서가 야곱을 주인으로 대하고 섬길 때 에서가 삽니다. 창세기 41장에서도 하나님이 대국의 왕인 바로의 주인으로 요셉을 세웁니다.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해서 애굽을 치리하게 하소서 그러면 이 애굽에 칠 년 흉년이 왔을 때 망하지 않고 살게 됩니다.” 그 때 바로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 모든 걸 너에게 알게 한 자가 하나님이 아니냐? 우리가 어떻게 신에 감동된 자를 얻을 수 있겠냐? 네가 내 집을 치리해다오.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다.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다.” 그리고 바로는 요셉의 다스림 속으로 들어갑니다. 나아만 집에서도 지금까지는 나아만이 모든 권한을 쥐고 살았습니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이제 엘리사가 나아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나아만에게 엘리사를 주인으로 섬기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하나님을 만나면 이 세계가 발견되게 되어있습니다. 바로도 요셉의 말을 통해서 그걸 발견할 때 그는 종의 자리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주인이 누구십니까? 여러분 인생을 누가 좌지우지합니까? 여러분 마음에서 결정을 누가 합니까? 다 여러분이 하시잖아요. 성경에서 깨달은 말씀까지 보태서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성경적으로 펼쳐가잖아요. 예수님이 정말 그걸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24, 25절을 보겠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25절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 주인, 치리자 즉 예수님에게로 돌아왔다. 그 말입니다. 여러분 마음은 누가 다스려주고 누가 이끌어줍니까? 생각입니까? 말씀입니까? 여러분 마음에서 말씀이 짓밟히고 무시당한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짓밟고 무시하고 있는 겁니다. 아말렉을 자기 생각대로 진멸한 사울 왕에게 하나님은 네가 나를 버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단에게 속아서 내가 주인 자리에 앉아 보디발처럼 요셉을 끌어들여놓지만 자기 방식대로 이끌어갑니다. 그게 불행해지는 겁니다.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 역시 자기가 자기 인생을 이끄는 동안에는 죽음으로 가지만 엘리야의 말을 들으면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이 말씀을 들어야할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의 소리를 거부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나아만을 하나님이 복되게 하게 하기 위해서 계집아이를 집에 보내줬습니다. 박희진 인생을 복되게 하시려고 저에게 한 부인을 붙여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복되게 하시려고 교회를 주셨고, 목자를 주셨습니다. 감독자를 주셨습니다. 나아만은 문둥병이 나으면서 그 세계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나아만의 인생에 그림을 다시 행복한 그림으로, 멋진 그림으로, 소망과 기쁨의 그림으로 정말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에 계집아이를 보내주신 겁니다. 여러분과 내 인생의 그림을 주님이 그렇게 멋지게 그리시려고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고, 종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과 여러분 마음이 일치가 되는 그 은혜를 입으신다면 나아만의 인생을 바꾸셨던 하나님이 여러분 인생도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그 은혜를 입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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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 주일 낮 설교(2017.07.16) 김미선 2017.07.16 2541
    132 주일 낮 설교(2017.06.25) 김미선 2017.06.25 2745
    131 주일 낮 설교(2017.06.18) 김미선 2017.06.18 2444
    130 주일 낮 설교(2017.06.11) 김미선 2017.06.11 2724
    129 주일 낮 설교(2017.06.04) 김미선 2017.06.04 2748
    128 주일 낮 설교(2017.05.28) 김미선 2017.05.28 3217
    127 주일 낮 설교(2017.05.14) 김미선 2017.05.14 3082
    126 주일 낮 설교(2017.04.09) 김미선 2017.04.09 3675
    125 주일 낮 설교(2017.04.02) 김미선 2017.04.02 3494
    124 주일 낮 설교(2017.03.26) 김미선 2017.03.26 2960
    123 주일 낮 설교(2017.03.19) 김미선 2017.03.19 3507
    122 주일 낮 설교(2017.03.05) 김미선 2017.03.05 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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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 주일 낮 설교(2017.02.12) 김미선 2017.02.12 3352
    118 주일 낮 설교(2017.02.05) 김미선 2017.02.05 3636
    117 주일 낮 설교(2017.01.29) 정혜원 2017.01.29 3653
    116 주일 낮 설교(2017.01.22) 송동현 2017.01.22 3479
    115 주일 낮 설교(2017.01.01) 김미선 2017.01.01 3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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