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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동현 | 2016.10.30 12:40 | 조회 3834


    1. 말씀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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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5: 35-49























    여자가 아무리 똑똑하고 잘나도 그 여자의 인생은 어떤 남편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나는 누구를 만나느냐? 하나님을 만나느냐? 마귀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욥기35:6-8 네가 범죄 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면 네 죄악이 관영한들 하나님께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겠느냐 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이나 해할 따름이요 네 의는 인생이나 유익하게 할 뿐이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의 죄가 차고 넘치는 것도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으며, 반대로 우리가 잘하는 것, 옳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잘해서 하나님께 교회 앞에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데, 그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말씀들이 있습니다. ‘너는 내 말만 좇고리브가가 야곱에게 한 말이 있어요. ‘주께서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마리아가 혼인집 하인들에게 이야기 한 말씀입니다. ‘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엘리야가 사르밧과부에게 한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그럼 먼저 우리가 누구인지 성경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창세기 2:7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우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3: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우리의 출생지는 흙이기 때문에 우리는 흙에 속한 자입니다.

    21: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여기서 말하는 여종은 하갈을 의미하는데, 하갈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을 나았는데, 그 아들은 아브라함의 기업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둘 다 똑같이 아브라함의 씨로 태어났지만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스마엘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습니다. 그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낳은 아들로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50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말씀에도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마엘이 아무리 잘해도 하나님의 약속에서는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고전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 6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지요?

    (8:6~8)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로마서 8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도, 굴복도 안 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진실하게 살아도 출생 자체가 육이기 때문에 절대로 기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기업을 잇고 은혜 입고 싶어도 하나님이 안 받으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뭘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과 함께 기업을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27장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으로 아버지께 별미도 해다 드리며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며 섬기지만 하나님의 기업을 받을 때는 거기서 제외됩니다. 반면, 아버지께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야곱이 복을 받습니다. 에서가 아버지에게 복을 달라고 빌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야곱이 자기를 두 번이나 속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여겼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형에게 팥죽을 주고 장자의 명분을 산 것만 보면 야곱이 야비하고 잔꾀를 부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전체 그림을 펼쳐놓고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이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업을 얻을 언약은 야곱에게만 있었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한 에서의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업은 누가 받습니까? 우리로서는 길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45절을 보겠습니다.

    (고전15:45~48)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조금 전에 산 영이 된 아브라함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땅에서 난 아브라함은 기업을 받을 수 없고 하늘에 속한 예수님이 살려준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난 예수님은 어떤 분이지 찾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121절을 보십시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디서 왔습니까? 요한복음 638절을 보면, 예수님이 내려오신 것은 예수님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려고 인간이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왜지요?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셨단 말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와 같이 계시려고 우리와 같은 몸을 입으셔야 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15,16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거룩하다고 나와 있습니다.

    또 요한계시록 15장 말씀도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전능하신 이, 만국의 왕이시며 의롭고 참되시다고 말씀하십니다. 첫 사람 아담은 땅에서 났고 행악의 종자이며,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했기 때문에 거룩하신하나님의 기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불의한 자, 그리고 혈과 육은 하나님의 유업을 얻지 못한다 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절대 하나님의 유업을 얻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완전하고 거룩할 뿐만 아니라 살리는 분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과 예수님이 하나가 되면 유업을 얻는 문제는 해결될 수 있겠지요?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유업을 잇는 자가 된 것은 오직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입니다.

    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흙에 속해서 기업을 받을 수 없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나는 십자가에서 끝이 나고 내 안에 주님이 들어와 계시는 겁니다.

    내 안에 주님이 살면 나는 어떤 조건에서도 살게 되어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갇혀 있고 냄새가 나도 주의 말씀이 들어가니까 나사로가 살아나는 겁니다. 나사로는 병에 끌려 가고, 죽음에 끌려가는 인생이지만 나사로에게 살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들려지니까 나사로는 죽음도 이기고, 썩음도 이기고 살아나는 겁니다. 나사로로 살 때는 죽어야 되고, 무덤에 갇혀야 되고, 썩음을 당해야 되지만 예수님의 말씀으로 살 때는 다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인간이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변하여 새 사람이 된단 말입니다.

    고린도전서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이와 같은 자들은 고전 69절과 10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우리 가운데서 위에 기록된 말씀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불의한 자인데,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씻겨지고,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의 유업을 이를 자격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걸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해 오셨고, 그 일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그 분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그 분이 내 안에 사시면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듯이 우리를 살려 새 삶을 살게 하면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똑같은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이 나사로를 찾아가듯, 우리에게도 기도할 때 묵상할 때 때로는 사건들을 통해 찾아오셔서 우리 마음을 살려내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거룩함과 의로움을 주십니다.

    에베소서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서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고, 영접하는 자 즉 받아들이는 자인데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말씀을 영접하고 받아들이면 우리 안에 그 말씀이 살아서 우리를 바꾸고 마음이 살아나니까 몸도 살아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심령은 능히 병을 이기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마음 안에 예수님이 들어오고 말씀이 들어오면 그 어떤 병도 이기며, 그 어떤 것에도 끌려 다니지 않고 살게 됩니다.

    로마서 11장에서는 주님과 우리의 이런 관계를 나무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돌감람나무 가지를 꺾어서 참감람나무에 접을 붙여서 그 진액을 함께 받는 자 중에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가지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진 그 날부터는 자기가 살고 싶어 사는 게 아니고 죽고 싶다고 죽는 게 아니고 참감람나무에서 올라오는 진액으로 인하여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안에 계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어 있습니다.

     

    나사로를 무덤 밖으로 이끌어 낸 그 말씀이 소경의 눈을 띄우고, 앉은뱅이를 걷게 했던 것처럼 우리를 형편과 생각에서 건져내어 새 삶을 살게 합니다.

     

    에스겔 36:26, 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하나님의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 할 수가 없는데, 우리 안에 하나님의 신이 거하시면서 주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시듯이, 우리가 말씀을 받아 들일 때 그 말씀이 우리를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인데, 리브가가 에서 대신에 야곱을 아버지 앞에 밀어 넣어서 그 복을 받게 하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축복의 약속은 조건이 없습니다. 단 하나 그 이름을 믿는 자 모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이 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322절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께서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마음이 합했다는 것은 바로 돌감람나무가지가 꺾여져서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져 참감람나무와 하나가 된 상황을 의미합니다.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올라오는 진액을 함께 받는 자 중에 있는 것이 마음이 합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돌감람나무 가지는 농부에 의해서 관리가 되고 돌봄을 입습니다.

     

    누가복음서에 보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친구가 강도를 만나 거반 죽도록 두들겨 맞고 버려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그 길로 지나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는데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에게 다가와서 그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치료해주어 주막으로 데려 갑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면서 주막 주인에게 부비를 주고 떠납니다. 그리고 부비가 더 들면 돌아올 때 갚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 사람은 주막주인에게 돌봄을 입을 자격을 은혜로 얻었습니다. 그는 강도를 만나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는데, 사망의 자리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었고, 그 이후에도 돌보심을 받을 수 있도록 주막주인에 항상 곁에 있습니다. 이 주막주인은 선한 사마리아인과 똑같은 마음으로 이 사람을 돌보아 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주막 주인의 돌보심안에서 살게 되는 것처럼 돌감람나무가지를 꺾어 접을 붙인 것은 참감람나무의 진액으로 인하여 이 가지를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이제 육체 가운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예수와 똑같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우리를 예수님 안에 옮겨놓고 모든 것을 공급해주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돌감람나무 가지를 보겠지만 하나님은 그 안에 있는 예수님을 보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쳐다보면서 나는 안 돼라고 이야기 할 때가 많은데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고 우리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와 똑같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쳐다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사울은 자신만 쳐다보았습니다. 골리앗 앞에 섰을 때 사울은 자신의 모습을 보니까 무서워 벌벌 떨 수밖에 없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쳐다보니까 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죽고 사는 것은 나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달렸어. 그러니까 골리앗 너는 하나님을 믿는 내 손에 죽을 거야이 마음으로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있으니까 손에 칼이 없고, 단창이 없어도 다윗은 담대합니다. 다윗의 죽고 사는 것은 뿌리의 진액으로 말미암는 것이지 다윗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에 다윗이 어떠하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지가 죽고 사는 것이 뿌리의 진액에 달려있듯이 다윗이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으니까 다윗은 자기를 쳐다보지 않고 담대합니다.

    우리가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누구에게 속해 있습니까? 우리의 의지와 생각이 아니고 오직 여호와의 손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믿으십시오. 말씀을 믿으면 말씀이 여러분 삶속에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까?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까?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더 이상 여러분의 생각이나 옮음을 이야기 하지 말고 말씀을 이야기 하시고, 복음을 이야기 하십시오.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 말씀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안에 들어오신 예수님이 우리를 믿음으로 살게 해 준다는 말씀입니다. 진액이 올라와서 잎을 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듯이,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믿음으로 살도록 우리를 인도해 가십니다. 우리를 다른 사람을 살리는 복된 삶으로 인도해가신단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아무도 살릴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을 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면 여러분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납니다.

     

    마태복음 28:16-20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데, 살아계신 예수님을 보고도 예수님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향해 너 왜 믿음 없이 의심해.’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의심하는 것을 그대로 놔 두고 너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내가 분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 그리고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심하는 너와 함께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있으면 의심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까? . 아무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돌감람나무가 접이 붙여져 있는 상태에서 돌감람나무가지의 모양이 나온다 할지라도 이 나무는 참감람나무입니다. 나사로가 죽었다 살아났다 해도 여전히 나사로입니다. 나사로가 마사로로 바뀌는 게 아닙니다. 나사로가 여전히 나사로일지라도 그를 살게 하신 분은 예수님이시고, 앞으로 그를 살게 하실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나사로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았듯이 우리 또한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 2819절과 20절에 나와 있는데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무엇을 기뻐하는지 그 마음을 발견한 바울은 평생을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사는데,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아도 그것에 개의치 않고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의심해도 괜찮고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진액을 받아서 열매를 맺는 것처럼 주님의 마음을 받아서 복음을 전하십시오. 이 삶이 주님이 기뻐하는 삶입니다.

     

    사도행전 5: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사도들이 복음 전하는 것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았는데, 이들은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복음 때문에 매를 맞는 일은 없지만 때로는 무시를 당할 수도 있고 짓밟힐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됩니까? 복음 때문에 밥 좀 굶으면 어떻습니까?

     

    오만원 권 지폐가 사정없이 구겨지고 짓밟히더라도 5만원이라는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듯이 우리가 좀 무시를 당하고 짓밟혀도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시를 당할수록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은 더 강하게 빛을 내시고, 우리가 짓밟히는 만큼 주님은 강하게 나타나십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아도 그 안에 계신 성령은 힘 있게 일을 하셨습니다. 박옥수 목사님도 사람들에게 모함을 당하고 수모를 당했지만 하나님은 그 종을 통해 힘 있게 일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주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면서 내가 어떤 마음을 가졌든, 어떤 생각에 잡혔든 그거 상관하지 않으시고 복음전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며, 복음 전할 수 있는 진액을 흘러 주고 계십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하십시오. 주님이 기뻐하는 이 복음을 전할 때 주님은 우리를 천 가지 만 가지로 도우십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모든 것을 지키시고, 여러분의 삶을 승리하는 삶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여러분을 사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하나님을 절대로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이 말씀을 따라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마음속에서 의심이 일어나도 따라가시고, 생각이 일어나도 말씀을 따라 복음을 전하십시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잘 하든, 못 하든, 복음을 잘 전하든, 못 전하든 개의치 말고 말씀을 따라 발을 내 디디시면 주님이 도우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땅에 빛이 들어오면 그 땅이 다시 어둡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십니다. 그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주님의 말씀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사시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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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 주일 낮 설교(2016.10.09) 김미선 2016.10.09 4029
    102 주일 낮 설교(2016.10.02) 김미선 2016.10.02 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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