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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혜원 | 2016.04.03 14:19 | 조회 4816

    1. 말씀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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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낮 설교

    본문말씀

     마3:13-17

     

    제가 요즘 젊은 세대들이 자신을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뒷받침해주시는 부모님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까? 를 생각하다가 저를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어려서는 부모님에 대해 감사한 마음 없이 컸습니다. 저희는 형제가 10남매인데 먹고 살기가 힘들어 밥상이 들어오면 밥 좀 더 먹어 볼 거라고 밥숟가락 먼저 들고 설치다 맞은 기억만 나니까 부모님의 사랑이란 걸 느껴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서 내가 가장이 되고 자식을 키워보니까 저를 키워주셨던 부모님의 마음에 대해 탁탁 부딪혀오면서 가슴이 뭉킁뭉클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고 살면서 조금씩 발견해가는 마음의 세계들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경쟁의 삶만 살았기 때문에 뒤를 돌아보거나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1살 때 허리를 다쳐 인생이 구겨지면서 그 때서야 다른 것을 돌아보고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삶 앞에 제 자신을 비추어보면 저는 절대 그런 삶을 살 수 없는 인생입니다. 저는 남을 위해 희생하거나 남을 위해 내 마음을 꺾는 그런 마음을 가질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걸으셨던 그 길을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걸을 수가 없는데, 예수님은 어떻게 그 길을 걸으셨을까?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런 삶을 사셨을까? 그런 것들이 참 많이 궁금했었는데, 제가 어려서는 몰랐던 부모님의 마음을 나이가 들면서 뭉클뭉클 느끼게 되는 것처럼 주님의 마음도 말씀을 대하면서 조금씩 알아가고 배워가게 됩니다. 오늘은 제가 발견한 주님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사야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 말씀이 제 마음속에 있고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 안에 또 다른 힘이 제 마음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을 그 전까지는 알 수가 없었는데, 어느 날 내 마음 안에 말씀을 거부하고 말씀을 변종시키는 어떤 힘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내 마음을 지배하면 말씀을 따라가다가도, 또 다른 어떤 힘이 나를 지배하게 되면 따라가던 말씀을 버리고 생각을 따라 가버리는 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도 저처럼 산 사람이 하나 있는데 바로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이야기하다가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을 이야기하자 그 말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서 예수님은 나를 사탄이라고 하시는구나! 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내 자신을 사탄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라고 나에게 묻고 있는데 저는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의 실제 모습이 말씀 앞에 비쳐지면서 이 말씀이 바로 저에게 하고 계신 말씀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지, 또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의 상태인지를 성경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이사야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1절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 할 것이라

    12절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하나님이 의로운 오른손으로 나를 붙들고 있다면 하나님이 하고 싶은 일을 나를 통해서 나타내시고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른팔의 능력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는 겁니다. 이사야 말씀의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호와의 팔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났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잡혀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일을 나타내고 싶은데 우리는 그 하나님을 어떻게 대했는지 보겠습니다.

     

    이사야 53:2,3

    그는 주 앞에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셔서 십자가의 멸시를 당하셨는데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르고 예수님을 무시하고 멸시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참 많이 원망했습니다. 저는 판사가 되고 싶어서 어릴 때부터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가난이 정말 싫었습니다. 호롱불을 켜놓고 공부하면 공부하기가 너무 좋은데 간솔로 불을 밝히려면 불 붙이다가 시간 다가고 공부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가 주무시는 거 확인하고 호롱불을 밝히면 어머니께서 귀신같이 알고 일어나 야단을 칩니다. 그러면 제가 공부도 못 가르칠 걸 왜 낳았냐면서 대들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무 말씀 안 하시고 돌아앉아 우셨던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그때는 그 울음의 의미를 몰랐는데 지금은 그 의미를 알기 때문에 그 때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멸시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멸시했다고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는데, 우리는 그 예수님을 무시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런 고통과 멸시를 받으시면도 자기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통과 저주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저희 형님이 병에 걸려서 7년 동안 움직이지도 못한 채 누워만 계셨습니다. 어머님은 형님을 살려 보겠다면서 이곳저곳 의원을 찾아다녔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글을 모르셔서 편지 봉투 안에 돈을 넣고, 겉봉에 가는 방법을 적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길을 찾아갔습니다. 어떤 날은 제가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빙판길에 넘어지셔서 한 쪽 얼굴이 씻겨나가 핏물이 엉겨 붙어 있는데 그 손에는 아들을 위한 약 봉투가 들려 있는 겁니다. 그때는 그러는 어머니가 창피하고 싫기만 했었는데 지금 그때 그 상황을 연상하면 그 속에 담겨있는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애절하셨는지 느껴지면서 어머니에 대해 함부로 대했던 제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러워집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이렇게 자식을 위해 사셨고 지금도 많은 어머니들이 이런 마음으로 자식들을 대하십니다.

     

    성경 속에 나타난 예수님이 바로 우리를 위해 그렇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그렇게 사셨는데 우리는 그 분을 무시하고 멸시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을 멸시한 우리를 당신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잡고 이끌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다슬기는 알을 슬면 그 때부터 죽음을 준비합니다. 알에서 깨어난 어린 다슬기가 어미의 몸안에서 엄마의 살을 갉아먹고 자라는 겁니다. 그것처럼 우리의 부모님들도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 당신들의 꿈과 야망을 접고 오로지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사십니다. 그 희생과 사랑을 먹고 우리가 살고 있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그 삶을 살아주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읽었던 이사야 53장 이야기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다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예수님의 그 고통이 나 때문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나를 싫어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나를 사랑하셔서 내 오른손을 꽉 잡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죄와 질병과 생각에 끌려가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하시려고 예수님께 우리 죄를 담당시키시고 십자가의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6절에 보면, ‘우리는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그 일을 이루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121절을 한 번 펴 보십시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고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휘어잡고 있는 이 사탄의 세계 속에서 우리를 풀어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공급받아서 하나님처럼 살 수 있는 세계를 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님은 우리 죄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가 당할 저주와 수모를 대신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뜻을 이루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어느 날 임금님이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불쌍히 여겨 그의 빚을 다 탕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서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보고 빚을 갚으라고 옥에 가둡니다. 일만 달란트의 빚은 탕감 받았는데 빚을 갚을 수 없는 자기를 불쌍히 여긴 임금님의 마음은 전혀 받지 않은 겁니다. 임금님이 빚을 탕감해준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너의 빚을 탕감해 준 것처럼 너도 그렇게 살아라.’ 는 것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일만 달란트의 빚만 갚아주신 게 아니라 임금님의 마음을 넣어주고 싶으신 겁니다. 그가 임금님의 마음을 받았더라면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불러다가 그의 빚을 탕감해 주고 오히려 그에게 백 데나리온을 주었을 것입니다.

    우리 어머님께서는 일생을 사시면서 나를 위해 희생하시고 무시와 멸시를 당하시면서 한 번도 섭섭한 내색을 안 하셨습니다. ‘철부지 같은 저 아이가 언젠가 내가 살았던 삶을 느낄 때, 내 마음을 느낄 때 마음이 바뀌어 새 삶을 살게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돌아앉아 눈물 흘리시면서 사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에서 죽으신 우리 주님의 죽음의 의미가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신 그 날, 사단에게 속아 하나님을 거절하고 생각을 따라 사는 인간의 마음을 뽑아버리고 하나님 마음을 우리 속에 심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받아 살기를 바라시는 겁니다. 말씀을 통해 그 마음이 우리 마음에 세워질 때 우리가 비로소 새 삶을 살게 됩니다.

     

    예레미야 31:31-3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서 우리에게 새 언약을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던 날에 세웠던 언약이 율법인데, 지금 세우는 언약은 그 율법과 같지 않다고 하십니다. 율법을 주셨는데 사람들이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하니까 지키지 못하는 율법 대신에 그 법과는 다른 법, 즉 새 언약을 주시겠다는 겁니다. 새 언약은 우리마음에 기록되는 것이기 때문에 새 언약이 세워지면 하나님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새 언약을 이루러 오신 분이 예수님이신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 땅에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새 언약을 이루신 것을 믿는 사람은 그 마음에 새 언약이 기록되어집니다. 요한복음 1930절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진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이루어진 것이 믿음으로 내 마음 안에 이루어질 때 내 마음에서 죄가 끝나고, 생각이 끝나고, 병이 끝나고, 고통이 끝나고 새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죄가 해결되어 있으면 죄가 유혹해도 끌려 다니지 않습니다. 죄를 이길 수 있는 예수님을 가지고 있으니까 죄를 이길 수 있게 됩니다.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 심이라 하니라

    10:9-10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새 언약을 세우려면 옛날의 언약을 없애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첫 것을 폐한다는 말씀이고, 둘째 것은 새 언약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죄를 위해 드린 제사는 영원한 속죄 제사입니다. 율법을 따라 드린 제사는 매일, 일년에 한 차례, 이렇게 제사를 드리지만 예수님은 단번에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10:16-19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 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당신의 몸을 속죄 제물로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져 우리가 온전케 되었는데, 그 일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성령님께서 이 사실을 증거하고 기록해주십니다. 저는 이기적이고 성질도 더럽고 누구와도 섞일 수 없는 사람인데 신기한 것은 내 안에 새 언약이 기록된 그 날부터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주관하시고, 나를 끌고 다니면서 모든 싸움에서 이기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내가 연리지처럼 하나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연결된 그 통로를 통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힘이 들어오기 때문에 나는 타락하고 그릇된 길로 가더라도 하나님께 거기서 나를 끄집어내고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게 된 것은 우리 행위로 말미암아서가 아니고 나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죄와 나의 불법을 기억치 않는다고 하셨기 때문에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기억 속에 살면 괴롭습니다. 그러니까 내 기억을 무시하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 눈으로 보면 말씀시간에 졸고 있는 여러분이 불편스럽지만 주님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바꿀 것이기 때문에 감사하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도단에 있을 때 아람군사들이 엘리사를 잡기위해 성을 포위하고 있었는데, 엘리사의 사환의 눈에는 아람군대밖에 안 보이니까 너무 너무 두려운 거예요. 그런데 엘리사가 기도해서 사환의 눈이 뜨여지니까 다른 세계를 보게 됩니다. 엘리사가 보는 세계를 사환도 보게 되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불말과 불병거들이 엘리사를 지키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형편밖에 보이지 않지만 주님의 눈으로 보면 형편 뒤에 계시는 능력의 주님이 보이니까 어떤 문제 앞에서도 당당하게 부딪쳐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을 두고 싶어하십니다. 말씀이 우리 마음에 오면 어떤 문제가 있든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끝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그 일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통해 주님의 마음을 만나신다면 여러분의 마음으로 살지 아니하고 주의 마음으로 남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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