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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혜원 | 2016.05.22 14:03 | 조회 4592


    1. 말씀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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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5. 22. 주일 낮 예배

     

    본문말씀 [히브리서 11:7]

     

    많은 사람들에게 갈등을 주고 힘들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도대체 믿음이 뭡니까? 다들 한 번쯤은 믿음이 아니라고 하는 부분에 부딪히게 되고 그러면 여러분은 기분이 상합니다. 왜 그러냐면 나 구원 받았다.’ 는 것이 전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본인은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데, 교회나 다른 사람들과 문제가 많이 생기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문제가 심각한 것인데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것 뿐입니다. 성경 속의 하나님이 문제를 삼고 있다면 자신도 문제로 삼아야 하는데, 자신이 믿는 하나님에게 속아 있는 것이죠! 자기가 마음속에 세워 놓은 하나님은 자기의 마음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은 가짜입니다.

     

    성경에 노아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120년 뒤에 일어날 물로 심판할 경고를 들었습니다. 경고란 주의하라고 미리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노아는 경외하심으로, 두려워하고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그 마음으로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들여 방주를 예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그것이 느껴지지 않거나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대처하겠습니까? 말씀대로 안 하겠죠. 그러나 그 경고가 마음에 느껴지고 보이면 마음으로 대처를 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심으로 방주를 예비해서 그 집을 구원하였습니다. 그 이야기가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되어 있고, 자세한 이야기는 창세기 6~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노아에게 한 경고를 보겠습니다. 창세기 65절부터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여기서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실 때 마음을 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을 볼 때는 여러분 마음안에 좋은 것, 선한 것, 옳은 것, 착한 것, 깨끗한 것도 있고 더러운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 마음의 생각이나 계획이 항상 악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6절에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그 다음에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하나님께서 이 땅에 있는 생명체를 다 쓸어버리겠다는 겁니다. 사람, 착한 사람, 나쁜 사람, 기는 것, 공중의 나는 새, 육축 한 마리어떤 종류도 예외 없이 다 쓸어버리겠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죄악이 세상을 관영했다는 겁니다. 관영은 차고 넘쳤다는 뜻입니다. 사람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멸시하고 버린 것이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는 사람은 사탄의 말을 듣습니다. 요한복은 1837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진리에 속한 자는 예수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심으로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히브리서 117절로 돌아가겠습니다. 7절 서두에 믿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이름 앞에 믿음으로라는 말을 넣어 여러분의 삶을 이야기해 보십시오. 그러면 할 말이 없습니다. ‘열심 으로’, ‘옳음으로라면 할 이야기가 많지만 믿음으로는 한 게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노아는 믿음으로 산 사람입니다. 다음에 보면 노아는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믿음을 배우려면 노아의 삶을 배우면 됩니다. 창세기 6, 7장을 계속 연구하고, 묵상하고, 하나님과 노아가 대화할 때 노아의 마음에 들었던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하다보면 노아의 마음이 감각이 됩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 동안 좋은 날만 있었겠습니까? 싸움과 갈등, 어려움, 고통도 있었지만 노아는 믿음으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노아가 말씀대로 방주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방주를 짓기 시작하니까 하나님이 방주를 지을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 필요한 재료 등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누가 방주를 짓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노아가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했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떨림으로 섬겼다는 겁니다. 노아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인 겁니다. 이것을 보고 하나님은 노아에게 믿음이라는 단어를 붙여 주었습니다. ‘믿음의 노아. 믿음의 사람 노아, 믿음의 종, 믿음의 일꾼 노아...’

    노아뿐만 아니라 아브라함, 아벨, 에녹 등의 하나님의 사람들 앞에도 믿음으로라는 단어가 붙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이름을 붙여줄 만한 과정이 있습니다. 창세기 6장으로 돌아가서 노아가 어떻게 믿음의 사람이 되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13~18)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하 삼층으로 할찌니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22~73)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 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 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 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7.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9.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 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13.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15. 무릇 기식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16.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 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지어라,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하심대로 했더니 하나님이 문을 닫으셨습니다. 이게 노아가 믿음의 조상이 된 과정입니다. 경고를 받고 경외한 것이 이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말씀을 들으면서 어떻게 사십니까? 하나님 말씀을 경고로 받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십니까?

    노아 당시의 사람들은 왜 죽었습니까? 그들이 죄가 있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노아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업신여겼기 때문에 노아를 통해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방주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노아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방주에 못 들어옵니다. 반면 노아의 말에 이끌렸던 짐승과 사람은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문을 닫으셨고, 방주밖에 있던 그들은 물로 쓸어버림을 당했습니다.

    68절을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라고 나옵니다. 120년 동안의 삶을 오로지 방주 짓는 데에만 쏟고 살았는데 무슨 은혜를 입었다는 말입니까? 영어 성경을 보면, 노아는 여호와의 눈 안에 있는 은혜를 발견했다고 나옵니다. 사람들을 살리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매를 들 때 미워서가 아니라 아들의 마음을 꺾기 위해서라는 것을 아들이 발견한다면, 아버지가 원망스러운 게 아니라 존경스러울 것입니다. 노아는 그것을 봤습니다. 살리고 싶어 하는, 구원해 주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봤습니다. ‘살 수 있는 길이 이것밖에 없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이끌어 가시는구나.’

    그 은총을 발견한 노아는 누가 뭐라 해도 방주 짓는 삶을 사는 겁니다. 방주를 지어야 자기뿐만 아니라 가족, 마을, 내게 속한 짐승이 사니까 그 방주를 짓는 겁니다. 그리고 그 방주가 아무리 커도 원망스럽지가 않는 겁니다. 대충 지으면 안 되니까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짓는 겁니다. 그러니까 방주 짓는 일이 노아에게는 무척 소망스럽겠지요?

    여러분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 마음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그 마음을 만나신다면 절대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고 은혜입기를 바랄 뿐입니다.

    120년 동안 노아가 방주를 짓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마음을 만난 사람들은 노아와 같은 삶을 삽니다. 그 분이 필요한 사람은 그 말을 듣고 따라갑니다.

     

    열왕기하 3장에 보면 여호람, 여호사밧, 에돔 왕 - 이 세 왕이 나옵니다. 이들은 모여서 전쟁을 치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모압 땅을 치기 위해서 에돔 광야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준비한 물이 바닥나서 죽음이라는 문제가 찾아왔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찾지 않았던 여호사밧 왕이 여호와께 물을 만한 선지자를 찾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왕의 신복 중 한 사람이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다라고 말합니다.

     

    12. 여호사밧이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다 이에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하나님이 왜 이 무리들 가운데 엘리사를 두셨을까요? 하나님은 이들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미리 당신의 종을 그 무리 가운데 넣어두신 겁니다. 찾기만 하면 바로 도와주시려고 말입니다. 그리고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을 찾으니까 엘리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개천을 파라. 너희가 바람도 비도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이곳을 물로 채워주신다.” 이 말을 들은 여호사밧이 개천을 팠습니다. 그리고 물을 얻어서 죽어가던 모든 사람들이 살아나고 전쟁에서 이겨서 노략물을 얻고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이 없어서 광야에서 죽어가는 상황인데 여러분에게 개천을 파라고 하면 파겠습니까? 믿음으로 살라고 하는데 왜 믿음으로 못 삽니까? 하나님을 못 믿으니까 못 사는 겁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부으라고 하십니다. 마리아가 그 하인들을 보고 주께서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인들은 그대로 합니다. 예수님이 물을 부으라고 하면 그대로 하면 됩니다. 떠서 갖다 주라고 하면 갖다 주면 되는 겁니다. 하인들은 그대로 했습니다. 믿음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개천을 파라고 하면 파면 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다.” 여호사밧은 엘리사가 하는 모든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기 때문에 그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교회에서 들려지는 소리가 하나님이 음성으로 들린다면 네가 틀렸니, 내가 옳으니라는 싸움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여호사밧왕이 엘리사가 하는 이야기를 사람의 말로 들었다면 개천을 파지 않았겠지만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니까 개천을 팔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이 어떠하든지 말씀을 그대로 마음에 받아들여 놓고 그 말씀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십시오.

     

    요한복음 2장의 하인들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인이기 때문에 주인의 소유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인이 아닌 왕의 마음, 군대 장관의 마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교회가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인의 마음을 갖고 산다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서 5-17절 사이에서 기록된 말씀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믿음을 더해달라고 했을 때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가 뿌리째 뽑히어서 바다에 심기웠을 거다. 고 예수님이 대답하시는데, 이 말은 믿음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어떤 종이 있는데 하루 종일 들에서 일하고 돌아왔는데 주인이 돌아온 그 종에게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내 수종을 들라 고 명하는데, 그 명을 다 지켰다 해서 그 종에게 사례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우리는 무익한 종이오니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하라.’ 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명받은 것을 다 행하는 것이 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기에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또한 말씀 그대로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날 보고 의인이라 하시면 의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다 하시면 우리는 거룩한 것입니다. 내가 볼 때는 분명히 물인데 주님께서 갖다 주라고 하시면 갖다 주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말씀하시니까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옵니다. 나사로는 말씀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없으니까 말씀 그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말씀 앞에 많은 이유와 변명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에스겔 41장에 보면 성전 문지방에서 스며나온 물이 흘러가서 닿는 곳마다 소성함을 입어, 강에는 물고기들이 번성하며, 물가에는 많은 나무가 자라서 그 나뭇잎은 약재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나는데 오로지 진펄과 개펄은 소성함을 입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진펄과 개펄은 밀물 일 때는 바다가 되었다가, 썰물 일 때는 육지가 되는 곳인데, 하나님도 믿고 자신도 믿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일을 하실 수가 없습니다. 사무엘상 15장이 사울왕은 하나님도 믿고 자기도 믿고 있습니다. 그런 사울을 향해 사무엘은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8년 병자도 일으키고, 죽은 야이로의 딸도 살리는 이 말씀이 왜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주지 못합니까? 사울의 마음에는 하나님도 있고, 자기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울을 쓸 수 없어서 버리고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다윗을 세워 당신의 뜻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다윗이 사울보다 부족한 게 많고 죄도 많이 지었습니다. 사울은 왕위에 있으면서 인간적인 흠이 없는 반면 다윗은 남의 아내를 빼앗고, 그 죄를 덮기 위해 갖은 술수를 쓰고, 그 방법이 먹히지 않자 그 남편을 청부 살해까지 하는 악랄한 인간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윗을 쓰셨습니다. 왜요?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노아를 통해서 방주를 지었는데, 신앙은 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나무를 접붙이면 나무껍질끼리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나무속에 있는 물이 흘러가는 물관부영양분이 흐르는 체관부도 하나로 연결이 됩니다. 그리고 세포분열을 통해 나무를 굵어지게 하는 부분이 형성층인데, 그 형성층까지 하나로 연결이 됩니다. 그래야만 접붙여진 나무에 물관부를 통해서 물이 흘러가고, 체관부를 통해 영양분이 흘러들어가면서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자라게 되면서 잎이 나고 꽃이 피면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형편없는 죄인이라도 거룩한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예수님 속에 있는 거룩이 나의 거룩이 되고, 예수님의 능력과 지혜가 나의 지혜가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노아의 마음속에 들어와 하나가 되니까 하나님이 짓고 싶은 방주를 노아가 짓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마음이 다른 사람을 절대 쓰지 않습니다.

     

    저는 선교회안에서 버스를 많이 구입해봐서 중고차 사는 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고 난 차인지, 도색을 새로 했는지, 판금을 새로 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를 지으신 우리 하나님이 왜 우리를 모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말씀을 보내시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보내서 사막 같은 우리 마음을 바꾸시고, 바다 물결처럼 요동치는 우리의 마음도 잔잔케 하십니다.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은 땅이지만 하나님이 그 땅을 향하여 말씀하시니까 그 땅이 다 변해서 아름다운 꽃을 내고 열매 맺는 과목을 냈습니다. 말씀이 임하면 땅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우리를 속여서 이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나와 맞는 말씀만 받아들이고 내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은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말씀이 우리 속에 일을 하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노아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서 방주를 짓기 싫었을 텐데,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그 분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니까 자기 마음을 버리고 말씀을 따라 방주를 지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대로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성격이 고약하든 양처럼 순하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신령한 사람이라도 말씀을 안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일을 하실 수가 없고, 반대로 개천을 파라 할 때 개천을 파는 사람에게는 바람도 비도 보지 못하지만 물이 채워지는 기적을 맛보게 되어 있습니다. 적은 떡을 만들어 가지고 오라 할 때 적은 떡을 만들어 가지고 오는 사람은 그 항아리가 가득 채워지는 기적을 삶을 맛보게 되지만 말씀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가루가 바닥이 나 사망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똑 같은 항아리인데 왜 어떤 항아리는 하나님이 가루를 채워주시는 기적의 항아리가 되고, 어떤 항아리는 가루가 바닥나서 바닥을 득득 긁는 고통과 괴로움의 소리를 내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노아가 은혜를 입었더라고 한국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영어 성경에서는 이 표현을 노아는 하나님의 눈 속에 있는 은혜를 발견하였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을 발견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방주를 지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 보신 적이 있습니까?

     

    성전 문지방에서 스미어 나온 물 때문에 모든 바다가 소성함을 입듯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하나님의 마음과 말씀이 교회 안에 흘러오고, 종의 마음에 흘러와서 우리의 마음까지 흘러오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을 적신다면 여러분은 그 분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삶이 바로 믿음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니까 그 말씀이 38년 된 병자를 낫게 해서 걸어가게 했습니다. 그 말씀 속에는 일어 날 힘도 있고, 걸어 갈 힘도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만큼 쉬운 것이 없습니다. 신앙은 말씀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데, 여러분이 그 말씀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여러분을 말씀대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니까 그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방주를 짓게 했고, 38년 된 병자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는 말씀을 받아들이니까 그 말씀이 그 속에서 그를 낫게 하고 걸어가게 했던 것처럼 여러분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여러분을 말씀대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사단에게 속아 이런 저런 형편을 들이대면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을 하실 수가 없습니다.

     

    진펄과 개펄에는 수많은 물이 스쳐 지나가지만 소성함을 입지 못하는 것처럼 자기 옮음 속에 자기 주관 속에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일을 하실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옳은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 편에서 여러분을 한 번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보일 것이고, 자신이 발견 되면 자기를 버리고 말씀에 이끌려 가는 믿음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속에 말씀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은 생각입니다. 여러분이 무익한 종이 되면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도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인의 위치에 있으면 들을 수 있는 소리가 거의 없지만 종의 위치에 있으면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무익한 종의 위치가 우리의 본 모습입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의 본 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삶을 사시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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