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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명진 | 2013.07.17 10:23 | 조회 7294

    2013714일 주일오전 말씀

    본문말씀 [3:1~18]

     

     산에는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그 맛이 있어서 사람이 어느 곳에 마음을 주게 되면 그 속에 많이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하나님에게 안 줘서 그렇지 하나님에게 마음을 주면 하나님하고 데이트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 잘 모르시죠? 성경을 펴놓고 하나님을 만나는 취미생활은 돈이 안 듭니다. 참 좋은데 여러분 그런 삶을 한 번 살아보시면 좋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이 쪽은 바다가 가까운데, 바다에 가면 참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 기어다니는 게가 있습니다. 이 게는 기어다니는데  왜 기어다니는지 아세요? ,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기때문이에요.

    너는 평생 기어다녀라.”

    그렇기때문에 그 게는 교육을 시켜도 안 되고, 때려도 안 되고, 지느러미를 쥐어뜯어도 안 되고, 집게다리를 분질러도 안 되고, 그 게는 원래 태생이 옆으로 가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만드셨어요. 그 게는 자기 다리를 부러뜨린다 해도 그걸  알면서도 옆으로 가요. 그는 옆으로 가도록 구조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잖아요

     그 게가 어떻게 하면 반듯이 갈 수 있어요 그 게가 반듯이 갈 수 있는 방법은 그 게를 잡아서 박희진이가 양복주머니에 넣고 내가 반듯이 걸어가면 이 게는 반듯이 걸어가요 이 게는 나하고 상관없을 때도 옆으로 기어갔고 내 주머니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옆으로 기어다녀요 이 게는 생명이 끝날 때까지 어디 있든지간에 옆으로 기어다녀요. 근데 내 양복주머니에 들어온 그 날부터는 내가 반듯이 가면 게도 반듯이 가고, 내가 삐딱하게 가면 게도 삐딱하게 가고, 내가 거꾸로 가면 게도 거꾸로 가고, 그 때부터 이 게는 나하고 같이 가는 거예요. 그렇죠?

     

     우리 인간은 죄인이고 거짓되고, 행악의 종자, 마귀새끼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거예요.

    이런 우리를 보고

    너 반듯이 안 살래? 너 믿음으로 살아야 돼. 너 구원받았으니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돼. 너 성실하게 살아야 돼.”

    , 인간이라는 자체는 그 존재자체가 하나님이 원하는 의를 이루어줄 수 없는 인간이에요.

    성경 로마서 8장에는 ,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자체가 굉장히 완전한 법인데, 이 율법이 인간을 보고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마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라고 요구합니다. 

     율법은 전체적인 법 조항이 613가지인데 이 모든 율법을 누가 지켜야 하느냐? 사람인 내가 율법을 지켜야 되고 그 율법 중에 한 가지라도 범하게 되면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게 또한 인간인 우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세워주신 새 언약이 있어요.

    31:31~34절 말씀에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내가 세울 언약은!”

    내가 애굽에서 인도하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다.”

    지키지 못하는 법을 또 주지 않겠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새 언약을 주겠다고 했는데,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그게 하나님이 세워주기로 한 새 언약의 정의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워준 새 언약은 돌판이 아닌 그들의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겠다고 했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다시는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어요.

     

     성경은 하나님이 전부 다 당신이 하시겠다고 약속을 해놨어요. 성경은 그렇게 기록이 돼 있는데, 왜 오늘날 교회에서는  인간인 우리를 보고,

    열심히 교회 다녀라.”  새벽기도 빼먹지 마라.”  주일을 지켜라.” 십일조 떼먹지 마라.”

    봉사해라, 착하게 살아라, 선하게 살아라, 죄 짓지 마라...”

    성경과는 다른 견해와 논리를 가르치고 행하라고 하고 있습니까?  이런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내가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을 갖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뭘 하라고 했습니까?

    나 좀 믿어다오.”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당신을 믿으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쨌든지 안 믿으려고 해요

    어떻게? 그래도 내가 믿음으로 살아야지. 내가 믿음으로 살아야 되지, 어떻게 내가 그냥 가만히 있어?

     

    사람의 몸이 병이 들고 망가지면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의사 앞에 가면 발견이 되고 고쳐주고 치료가 됩니다.

    그러면 내 마음이 망가지고 변질된 것은 어디 가서 알 수 있습니까? 나는 내 나름대로 신앙을 잘 한다고 하고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이게 잘못되어있는지 옳은지를 어디 가서 알 수 있느냐? 그걸 알 수 있는 유일한 곳은 하나님 말씀 앞에 내 마음을 비추어볼 때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내 마음을 비춰보지 않으면 내가 지금 병들어 있는지 틀린지, 올바로 가고 있는지, 내가 지금 죄악 속에 빠져 있는지, 믿음으로 사는지 아닌지를 전혀 모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말씀이 세워져 있으면 절대로 말씀 앞에 다른 이야기 안 합니다. 말씀이 그 분들 마음에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말씀이 세워져 있으면 말씀과 다른 판단이나 견해를 낼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참 많은 교단이 있고 참 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말씀을 무시해 버리기 때문에 자기들의 교리를 이야기하고 사상을 이야기하고 자기 느낀 걸 이야기하고 자기 깨달은 걸 주장하고 있지 말씀과는 다른 길을 가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성화를 이야기해요. 들어보셨죠? 왜 그렇습니까? 그 사람 성경 몰라서 그래요. 성경 알면 그 말 하고 싶어도 못 해요. 성경은 뭐라고 되어 있느냐? 성경안에서  하나님이 우릴 보고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로마서 34절에  

    사람은 다 거짓되되 하나님은 참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건 성경에 기록돼 있는 말이고, 우리는 나는 참되고 하나님은 거짓되다.’라고 생각해서 자꾸 성화라는 소리 하고 앉아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전적으로 은혜를 입는 거에요.  은혜를 안 입으면 살 길이 없어요.

     

    룻기 31절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여기까지는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며느리인 룻을 복되게 해 주겠다는 겁니다. 안식할 곳을 구해주고 복되게 해 주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어떤 곳인지 들어보니까 뒤 이야기를 좀 볼게요. 2절에,

    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일을 네게 고하리라.”

    5,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 안식할 곳이 어디에요? 복되게 될 장소가 어디에요?

    지금까지 보리를 베는 사환들을 따르면서 이삭을 줍던 밭주인인 보아스가, 오늘 밤에 이제 모든 곡식을 거두었으니까 타작을 하고 곡식을 까부를 거다. 오늘밤에 그가 잠잘 때 어디서 자는지를 잘 봐뒀다가, 그 잠자고 있는 이불을 들고 그 이불 속에 네가 들어가라.”

    그냥 가지 말고, 너는 지금부터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내려가서 아무에게도 네 몸을 보이지 말고 있다가 너는 보아스가 어디 있는지만 잘 봐 둬라. 그리고 그가 잠자는 이불 속에 들어가서 같이 자라.”

    그런 얘기잖아요?

     진짜 내가 안식할 곳에 가려면 여기 가야 해요. 그런데 룻이 만약에 자기 생각이나 자기 마음을 갖고 있다면 나오미가 하는 말이 용납이 안 될 겁니다. 룻이 자기 마음이 끝나면 나오미가 하는 이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갈 수가 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성경에 룻은, 나오미가 시키는 그대로 해요.

     룻은 보아스의 발치에 누워 보아스에게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라고 합니다.

    이 성경에서 보아스의 옷자락으로 룻을 덮었다는 말은 안 나와요. 근데 룻이 덮여져 있어요. 보아스가 만약에 이 사건을 드러내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현장에서 끽 하고 죽습니다. 이 룻이 범한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그의 신분은 모압의 족속이고, 모압 족속은 영원히 여호와의 회중에 들어올 수 없는 낙인이 찍혀 있는 저주받은 민족입니다 이 여자가 한 행동은, 법에 비추면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보아스는 룻의 말대로  룻을 덮습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는데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다.”

    내가 여기 들어온 것은 내 기업을 찾으러 왔다. 잃어버린 기업을 찾으러 왔다.”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물러 줄 자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저주를 마다하지 아니하고,

    내가 당신이 나를 덮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는 걸 알면서, 나의 신분은 죽었다 깨나도 당신에게 올 수 없는 저주받은 민족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입니다.”

    이런 나를 풀어주고 이런 나를 용서해 주고 이런 나를 살려줄 수 있는 분은 당신 밖에 없기 때문에 그 앞에 왔다는 거예요.

    그 때 보아스가 뭐라고 합니까? 10절에,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11,

    내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11절에 보아스의 마음이 나옵니다.

    두려워 말라. 네 말대로 네게 다...”

    뭐하리라? 행하리라.

    그렇게 해 줄게. 그렇게 해 줄게! 네 기업을 물러 줄게. 그렇게 해 줄게.”

    그러면서 뭐라고 말하냐면,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 이 여자, 현숙한 여자. 여러분 이해가 돼요? 저주받은 모압 족속의 딸이에요. 신분 자체가 현숙한 여자가 될 수 없는 저주받은 민족의 딸이에요. 나는 신분 자체가 절대로 의인이 될 수 없는 죄에게 속박된 사람이란  말입니다. 이런 나를 보고 하나님은 의롭다고 하셨어요.

    이 성읍에 모든 사람이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안다.”

    이 여자가 무엇으로 현숙한 여자가 되었습니까? 뭘 했길래? 이 여자가 한 짓거리는 밤에 남자 잠자는 이불을 뒤집고 기어들어가는 죄악된 삶 밖에 안 살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현숙한 여자가 됩니까?

     

    여러분과 저는 지금까지  우리 나름대로는 올바르게 반듯이 살았지만 마치 바닷게가 평생을 옆으로 기어가는 것처럼, 우리는 눈만 뜨고 입만 열면 죄 짓고 살아가는 게 우리 인생 아닙니까? 그런 우리를 보고 하나님은 의롭대요

     여러분, 이해가 돼요? 여러분 볼 때 그게 맞아요? 내가 나를 봐도 웃음 밖에 안 나와요. 내가 어떻게 의롭냐? 세상에 나같이 비열하고 세상에 나같이 악한 놈이 또 있겠어요?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날 보고 의롭대요. 온전하대요. 거룩하대요. 그것도 모자라서 날 보고 당신 아들이래요. 내가 자꾸 웃음이 나와요.

     

    , 이 성경에서 이 보아스가 룻을 보고,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안다.”

    룻이 한 것은 죄 짓는 것 밖에 없었는데 보아스의 의로 룻을 덮어버리니까 이 의가 룻을 싸고 있으니까 보아스처럼 온전한 자가 되는 거예요.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 이 보아스는 유력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 박희진을 덮어, 박희진의 모든 게 가려졌어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니까 그걸 바라본 모든 사람은 나를 의로운 자로 보는 거예요. 이게 보아스가 룻에게 베풀어준 은혜입니다. 여기서 나오미가 룻을 보고 목욕을 하라고 했어요. 그 다음에 뭘 하라고 했어요? 기름을 바르고, 그 다음에 의복을 입고.... 그랬어요. 목욕, 우리를 죄에서 씻는 죄 씻음을 이야기해 줍니다. 기름은 성령을 가리키고요, 옷은 의의 옷을 갈아입는 걸 말합니다.

     

    창세기 27장에 보면 리브가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나옵니다.

     아버지가 어느 날 큰 아들 에서를 불러놓고,

    너 들에 가서 사냥해 고기를 잡아오너라. 별미를 만들어 와라. 내가 음식을 먹고 축복하여야 하겠다.”

    리브가가 그 소식을 듣고 야곱에게 짐승떼에 가서 염소새끼를 잡아오라고 했어요.

    네 아버지가 에서에게 복을 주려고 한다. 염소새끼를 한 마리 끌고 오너라.”

    하니까 아들이 뭐라고 했어요 

    엄마,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아! 아버지는 틀림없이 나를 만질 거야. 틀림없이 죽어. 저주받아. 내가 왜 그 짓을 해야 해? 말 같은 소리를 해!”

    너는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와. 모든 저주는 내게로 돌릴테니까 그렇게 해!”

    그렇게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서 염소를 끌고 오고, 염소를 잡아서 요리를 해서 아이의 손에 쥐어주고 의복을 갈아입히고 털을 붙이고 야곱을 이삭 앞에 세웁니다.

    너 누구냐?”

    , 아버지의 아들 에서입니다.”

    너 어떻게 그렇게 빨리 왔냐?”

    하나님이 순적하게 만나게 하셨습니다.”

    , 네 목소리가 꼭 야곱 같다? 이리 와봐.”

    만지니까 털이 있어요.

    목소리는 야곱인데 만져보니까 에서로구나.”

    그러고 음식 다 드시고 축복을 하셨어요. 에서가 찾아왔을 때에야 아버지가 속은 줄을 알았어요. , 어머니 리브가의 말대로 야곱이 복을 받아요. 야곱의 생각으로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자기였는데 어머니가 요리해준 요리를 손에 들었고 어머니가 꾸민 대로 어머니가 입혀준 옷을 입고 어머니가 넣어준 말을 뱉었습니다.

    여기 야곱은 전부 다 어머니 리브가가 꾸며줬어요. 어머니 리브가가 모든 것을 덮어줬어요. 아버지 앞에 섰을 때 복을 받는 거예요. 만약에 야곱이 자기 것으로 섰다면 저주를 받아 죽었을 겁니다. 분명 야곱이 볼 때는 저주의 자리가 틀림없었지만  어머니가 요리한 음식, 꾸며준 옷을 입고 넣어준 말을 뱉을 때 그것은 자기를 덮고 의로운 사람, 당당한 에서로 서게 만들어주는 거예요. 내 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덮어 주실 때 우리가 당당하게 그 기업을 이어서 대를 잇는 삶을 삽니다.

     

    12절에,

    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코자 아니하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울찌니라.”

    너는 여기 머물러 있거라. 여기가 어딥니까? 보아스의 품에 룻이 머물러 있습니다. 이 보아스는 하나님의 그림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장 안식할 수 있는 곳은, 룻이 모압에 올라와서 추수하는 사환들을 따르면서 보리밭에서 이삭을 주울 때,

    너는 가지 말고 여기서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룻으로 하여금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한 움큼 두 움큼 뽑아서 가져가게 해라.”

    참 많은 은혜를 입고 사는 것이 룻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리를 베는 이삭을 따라가면서 룻은 많은 은혜를 입습니다. 룻이 볼 때는 이것만큼 복된 장소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나오미가 볼 때는 이 여자가 쉴 곳이 아닌 거예요. 룻이 안식할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아니고, 이삭을 줍고 한 움큼 두 움큼을 주워서 볶은 곡식을 가져와서 기뻐하고 충만한 삶으로 만족하지 않고,

    내가 네게 안식할 곳을 구해야겠다.”

    이 여자의 안식할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남자의 품에 들어가야 해요.

     

    여러분과 내가 안식할 곳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품에 가야 해요. 그래서 이 나오미는 이 여인을 보아스의 품으로 밀어넣는 거예요. 그 자리는 나오미의 마음이 아닌, 내 마음과 내 눈과 내 판단으로 보면 그 자리는 죽음과 저주의 자리에요.

    네가 거기 가야 돼. 네가 쉴 곳은 거기야. 거기가 네가 안식할 수 있고 복된 자리야.”

    누구를 만나야 합니까? 보아스를 만나야 해요. 그리고 보아스의 씨를 받아야 해요. 우리 하나님을 만나야 해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생명을 이어가는 삶을 살아야 해요. 그 세계 안으로 우리를 몰아넣는 거예요.

    이 밤에 여기 머물러라. 여기 머물러라. 참으로 내가 네 기업 무를 자냐? 나보다 유력한 자가 있다. 그에게 물러주라고 할게. 그렇지 않으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는데 반드시 네게 물러줄게.”

    그 유력한 자가 누굽니까? 4장에 들어가면 아무여,”라고 나옵니다.

    아무여,” 율법의 그림자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셨다고 로마서 8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는 여기 머물러라. 내가 반드시 네 기업을 물러줄게.”

    그 룻이 표면적으로는 그 날 거기서 나올 때 옷자락에 보리를 여섯 번 되어서 이워가지고 나왔습니다. 마음에는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내가 반드시 네 기업을 물러줄게!”

    껍데기로 보면 타작마당 이불 속에서 룻이 그 날 밤을 보낸 것처럼 보이지만 룻이 약속 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보아스의 약속,

    반드시 네 기업을 물러줄게.”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가! 이 룻의 마음에 보아스의 이 약속이,

    됐다. 이제 끝났다. 됐다.”

    이 약속이 이 여인을 쉬게 만들고 이 여인을 자유케 만들고 이 여인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에게 해 준 약속, 오래 전에 제 아내가 암에 걸려서 병원에 누워 있었습니다. 제 마음은 절망이었고, 길이 없었는데 그 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이 있었어요.

     예레미야 2911절에서 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좇아보냈던 열방들을 돌아오게 할게, 희진아. 이거 재양 아니야. 평안이야. 네 장래에 소망이야.”

    내 손에 들었던 성경을 집어던졌습니다.

    하나님, 내가 81년도에 당신을 만나 지금까지 살면서 뭘 잘못했습니까? 내가 왜 이런 저주 와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칠흙 같은 고통, 어둠 속에서  말씀을 더듬어 찾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았어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깊은 터널에 빠져 있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 있었던 제게 찾아온 말씀이 예레미야 2911절에서 14절 말씀이었어요. 마음에 말씀이 찾아왔어요.

    이게 재양이 아니라고? 웃기지 마세요.’

    마음안에서  싸움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상하게도 그 말씀이 빠져나가지를 않는 거예요. 지금도 안 빠져나가요. 신기하게도 말씀이 어느 덧 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하고, 내가 가진 상식과 지식이 무너지고, 말씀이 내 마음을 잡으면서 신기하게도 그 말씀대로 제 아내가 기적처럼 살아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말씀이 저를 쉬게 해 주었어요. 내 앞에 있는 형편의 아내는 병원에 누워있고 치료를 받고 있고, 날로날로 내 아내의 모습은 정말 보기 싫을 만큼 쇠약해져 가고 있는데, 말씀은 변하지 않는 거예요. 형편은 더 안 좋은 쪽으로 변하는데 말씀은 강하게 제 마음을 잡고 있는 거예요. 형편을 믿을 거냐, 말씀을 믿을 거냐?

    그래, 내가 하나님의 종인데 이 말씀을 믿자.’

    제 마음을 말씀 편에 정하게 하셨어요. 참 놀랍게도 그 말씀은 제 마음에 있는 불안도 이겨내 주었지만 내 앞에 있는 아내의 몸을 잡고 있는 병과 싸워서 이기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쉬시겠습니까? 내가 안식할 곳이 어디입니까? 저는 제가 만났던 하나님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죽어가는 그런 사람을 살려주신 주님을 만나 적이 있습니다. 그 때부터 주님은 거기서 저를 쉬게 해 주셨습니다.

     

    나오미는 압니다. 룻이 어디 가야 안식하고 쉬는지를. 어디 가야 이 여인이 복되게 사는지를 압니다.

    리 주님, 여러분과 내가 어디 가야 복되게 살고 안식할지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나오미가 보아스의 품으로 룻을 밀어넣듯이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를 하나님 안으로 오늘도 이끌고 계십니다.

     

    당신의 약속의 말씀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는 이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거예요. 거기서 나를 쉬게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주님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거예요. 이 여자, 평생을 살아도 남자를 못 만나고 자식을 얻을 수 없는 버려진, 저주받은 여자인데 어떻게 이 여자가 보아스의 품에 가서 보아스의 씨를 받아서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라가는 이런 복을 입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내가 하나님의 이 계보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아들이 누리는 이 모든 영광을 누릴 수가 있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이 세계로 이끌어오셨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그 주님이 여러분과 나를 또 이 세계로 끌고 있습니다 보아스의 의가 룻을 덮으니까 현숙한 여자로 바뀌어버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의가 우리를 덮어줄 때 우리가 그 당당한 의로운 아들로 살게 됩니다.

     

     시편 851절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로 돌아오게 하셨으며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저희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셀라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저희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누가?

     하나님이 우리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우리 죄를 덮으셨다.

    뭘로?

    보아스의 옷자락으로 룻을 덮으니 룻이 현숙한 여자가 되어버렸다는 것처럼,

    예수님의 의로 박희진을 덮으니 당당한 의로운 아들이 되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의가 여러분을 덮으시니 여러분 또한 의로운 자가 되었단 말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찾아오는 그 자에게 이 의를 덮어주십니다. 그리고 약속을 주십니다.

     

    출애굽기 25장에서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성막을 지어놓고 성소 안에 지성소에서 법궤 앞, 시은좌에 앉아서 너희를 만나리라. 거기서 너희에게 행할 것을 이르리라.”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성막 안 지성소, 법궤 앞에 서야 합니다. 거기서 우리를 만나겠다고 약속하셨고 거기서 내가 어떻게 행할 것을 가르쳐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오미가 룻을 그 자리로 밀어넣습니다. 보아스의 약속을 받을 수 있는 자리

     하나님의 약속을 얻을 수 있는 그 자리. 우리 주님은 또한 우리를 그리로 이끌어주십니다.

     야고보서 519절에서 20절 말씀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라고 하셨고요.

    에스겔 168절에서 16절 말씀은,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다고 하셨고요.

    시편 91편 말씀은,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덮어주십니다.

    언제? 보아스의 품에 들어왔을 때. 이 말씀 안에 우리가 들어왔을 때 천 가지, 만 가지의 허물과 죄를 당신이 덮어버리시고,

    내 기업을 물러줄 약속을 룻에게 해줬던 것처럼, 하나님이 내게 해 준 약속이 뭡니까?

    너는 의롭다. 온전하다. 거룩하다. 너는 내 아들이다.”

    그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이에요. 그 약속을 받을 때 우리는 쉬게 될 겁니다. 자유케 될 겁니다. 우리 주님이 오늘도 여러분과 나를 이 세계로 이끄셔서 주님의 기업을 이어가는 그 믿음의 삶으로 인도해 가고 싶어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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