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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동현 | 2013.10.24 17:06 | 조회 7918

    본문말씀 (마태복음 22: 1-14절)

     

    이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천국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설명해주기 위해서 예를 들어서 한 이야기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7년 대환란 기간에 일어나는 재앙들을 설명할 때 “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라는 표현이 있는데 1세기의 사람들이 20세기가 지난 현대과학에서 만들어진 무기를 보고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핵무기나 미사일 또는 탱크 같은 것들을 전갈같은 그 당시의 사물에 빗대어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영원한 세계에 한 번도 보고 들어 본 적이 없는 육에 속해 있는 우리들에게 천국에 관한 이야기를 설명해줄려고 하니까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 것입니다. 제가 수년전에 인도에 가서 한 주간 수양회를 하면서 컴퓨터 이야기를 하는데 통역하시는 분이 못 알아 듣는 거예요. 그래서 알아보니까 이쪽 사람들은 컴퓨터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컴퓨터 이야기를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인도 사람들도 컴퓨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주신 말씀 가운데 오늘 읽은 마태복음 22장은 천국을 설명하기 위해 비유로 이야기 해주신 것입니다.

     

    어떤 임금이 잔치를 베풀어놓고 사람을 청한 이야기, 예복을 입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를 하는지 이것이 천국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예요.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 라고 하시면서 임금이 원하는 사람들을 종들을 보내 초청했는데, 초청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다 반응이 없는 거예요. 우리 교회도 주말마다 찾아가는 문화공연을 하고 있는데, 우리 생각 같으면 사람들이 몰려와서 다들 말씀 듣고 눈물 흘리면서 구원받고 싶다고 나오기를 바라잖아요? 그런데 들렀다가도 그냥 가는 사람도 있고 전단지를 줘도 그냥 가버리고 많이들 안 오십니다. 그 분들은 우리 이야기를 듣고 이 공연에서 무얼 하는지 잘 알고 있지만 안 온단 말입니다. 오지 않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올 수 없는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죠.

     

    마태복음 22:3-6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이 마구 요동하는 걸 느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목사라는 옷을 입고 살면서 이런 마음으로 살았구나. 수많은 말씀을 읽으면서 나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하나님은 왜 내게 이 이야기를 설명해 주고 있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잔치를 벌여 놓고 당신의 사환 즉 말씀을 전하는 종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들었을까? 그 종은 끝없이 나의 영혼을 청하고 있었는데 나는 아예 관심 없이 그냥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이 성경에 보니까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혼인잔치에 오기를 싫어하는 거예요. 이 혼인잔치는 하나님이 일하는 그 장소인데, 지금 하나님이 하고 계시는 일은 바로 복음을 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형제자매들을 통해서 이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일하고 계시는데, 나는 육체가 원하는 삶을 따라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놀고, 싶을 때 놀고 그냥 그렇게 세상 사람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제 모습이 보여 지는 거예요.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 싶어 형제를 불러서 매주 공원에 가서 링컨학생들과 대학생들이 댄스도 하고 다양한 공연도 하면서 복음을 전하자고 했습니다. 고맙게도 형제가 제 마음을 그대로 받아서 일을 해 주었습니다. 근간에는 날씨가 좀 쌀쌀해서 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구청에 연락해서 이미 스케줄이 다 잡혀 있더라구요. 그래서 시간대를 오후로 바꿔 계속 하게 되었습니다.

     

    왜 내가 이렇게 살지 못했을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그 일에 함께하는 삶인데, 마태복음 22장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는 삶에 대해서 전혀 함께 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인 거예요. 그러니까 거들떠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자기 상업차로 가고, 자기 일터로 가고, 그 다음엔 가기를 싫어하고, 그나마 남은 사람은 종들을 잡아서 능욕하고 죽여 버리더라고요. 다시는 이런 소리하지마라 면서 죽여 버리는 거예요. 여러분은 사람을 죽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종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죽여 버렸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마음에는 다시 다른 종을 보내는 것처럼 어떤 말씀을 해 줘도 더 이상 들려지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금이 안 되겠다 싶어 왕의 마음을 거절하고 짓밟고 외면했던 이 동네를 불살라버리고 당신의 종을 죽였던 사람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혼인잔치는 예비 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잔치에 오라고 청했는데 그들은 청함을 거절했기 때문에 나의 잔치에 올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환들을 사거리로 보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다 데려오라, 악한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다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임금이 청한 사람들이 있어요. 이 사람들은 전부다 왕의 잔치를 거절한 사람들이에요. 어느 누구하나도 따라오는 사람이 없이 다 거절했어요. 이것은 성경에서 율법의 그림자입니다. 두 번째로 임금이 사거리에 나가서 만나는 대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다 데려오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여기서는 예복을 입지 않은 자가 버림을 받아요. 잔치에는 그냥 오면 되요. 임금이 청할 때 청함을 따라 그냥 오면 됩니다. 그래서 잔치에 오는 사람이 준비해야 할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앙은 말씀을 따라 그냥 가면 되는데, 말씀을 따라 그냥 갈수 없는 게 우리들의 마음이에요. 그래서 성경에 우리는 합당하지 않다고 되어 있습니다. 임금이 다시 사환들을 보낼 때에는 임금이 모든 것을 갖추어놨다라고 설명을 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했는지를 설명을 합니다.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았고 모든 걸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과 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해놓았습니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이 이 사람들이 그냥 천국에 들어 올 수 있도록 다 준비해놨습니다. “짐승을 잡고” 라는 말은 내 대신 죽어 주신 희생 제물을 말합니다. 이미 내 대신 모든 걸 끝내놓으신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오면 되는데 그걸 못하는 거예요.

     

    오늘도 법에 잡혀있는 사람, 생각에 잡혀 있는 사람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내가 무얼 해야된다는 생각에 잡혀있습니다. 예배는 이렇게 드려야 되고, 이것은 이렇게 해야 되고, 저렇게 해야 되는데 하면서 많은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선교 학교에 있을 때에 예비군 훈련 때문에 자리를 비운 사역자 대신 수요일 저녁 예배 때 말씀을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더운 여름이었는데, 넥타이를 매지 않고 단상에 올라가 말씀을 전했는데, 말씀을 다 마치고 내려왔는데 어떤 모친 한 분이 엄청 화를 내시는 거예요. 처음 오신 분이 어떻게 단상에 올라갈 때 넥타이를 안 매고 올라가느냐 면서 저를 엄청 혼을 내셨어요. 그 날 이후로 넥타이를 꼭 매고 다닙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장로교회에서는 예배드릴 때 꼭 넥타이를 매야 한다는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준이고 법이잖아요. 그 사람은 그 법속에 갇혀 사는 거예요. 넥타이를 매고 안 매고 이것보다 중요한 건 말씀이잖아요. 정확하게 말씀과 연결되는 사람은 법에 안 매인단 말입니다. 그렇듯이 임금의 소리가 전해져서 임금의 마음이 전달된 사람은 지금까지는 자기 상업차가, 자기 일터가 중요했는지 모르지만, 잔치를 베풀어놓고 나를 청해준 임금의 마음을 전달 받은 사람 같으면 자기하는 일을 중단하고 임금이 연 잔치에 갈 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오랜 옛 친구가 아들이 결혼한다고 소식을 전해오면 그 친구 아들의 결혼이 내가 하고 있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면 회사에 결근을 하든지, 가게 문을 닫든지, 다른 사람에게 내 일을 부탁하더라도 꼭 거기에 참석하지 않습니까? 그럼 여기에 임금이 아들의 혼인잔치를 준비하는 소식은 들었지만 임금의 마음은 전달이 안 되기 때문에, 그 잔치가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그러니까 무시하고 그러니까 거역하고, 그러니까 대적하고, 그러니까 죽이고, 능욕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겁니다.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지가 임금이면 다야 왜 나를 불러, 내가 거기 왜 가?” 이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사환들이 잔치에 청하는 소리가 너무 듣기 싫은 거예요.

    그런데 임금의 마음이 전달되는 사람은 “ 이것만큼 고맙고 감사할 때가 없지 않느냐!” 하면서 잔치에 가겠죠!

     

    자 이걸 바꿔 이야기 하겠습니다. 노아 홍수 당시 하나님이 노아를 시켜서 방주를 만들어 놓고 그 방주 안에 사람들을 불러들이라고 했습니다. 120년 동안 노아가 방주를 만들면서 심판이 온다는 소식을 수없이 전해줬고, 방주를 다 만든 후에도 일주일동안 방주 문을 활짝 열어놓고 방주에 들어오라고 외쳤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노아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들었지만 하나님이 싫은 거예요, 하나님을 안 믿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는 일을 못 마땅해 하는 거예요,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무슨 말을 해도 이 사람들의 마음에는 전달이 안 되는 거예요. 방주를 만들었느니, 심판이 오니, 하는 말은 다 알아듣는데, 심판은 무슨 심판, 하늘이 저렇게 멀쩡한데 비가 온다고, 웃긴 소리 하지마라 그러면서 노아가 하는 말을 다 그렇게 쳐내고 밀어낸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방주에 들어가야 할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는 거예요.

     

    임금의 잔치에 가야할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고 임금이 보낸 사환들을 무시하고 능욕하고 죽였단 말입니다. 임금이 진노해 군대를 보내서 이 마을을 불사르는 심판이 오는 것을 볼만한 눈이 이 사람들에게 있었다면 이들이 이렇게 살 수 있었을까? 하나님이 노아를 통해 방주에 들어오라고 그렇게 애원하고 부르짖는 그 음성 뒤에 기다리고 있는 심판이 보였더라면 이들이 그리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못할 것입니다. 노아 당시 사람들이 노아가 하는 말을 다 알아 들었지만, 그 방주 안에 들어간 사람은 노아의 식구 8명밖에 없었습니다. 이유가 뭐냐? 그들은 이 방주가 싫은 거예요. 하나님이 싫은 거예요. 하나님을 안 믿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는 일이 못 마땅한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무슨 말을 해도 이 사람들의 마음에 전달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라는 말이 나옵니다. 은혜를 입었다 는 말은 하나님 안에 있는 은총을, 은혜를 발견했단 말입니다. 어떤 은혜? 죽일 수밖에 없는 나, 죽어야 할 우리를 살리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애절한 마음을 노아는 읽은 것입니다. 그 마음을 읽어버렸기 때문에 세상을 버리고, 자기 삶을 버리고,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가는 거예요. 그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삶이에요. 사람들의 죄악이 관영하고 그 마음이 강폭하고 썩어있는 사람들을 쓸어버리고 싶어 하는 그 강한 의지 속에 숨겨있는 그들을 살리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노아는 발견 했다고 성경은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잔치에 왜 불렀는지 그 마음을 발견하는 사람은 거기에 반응을 하겠지만, 그 마음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 친구들처럼 하나님이, 임금이 하는 일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거스르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자 사단은 우리 마음속에 뭘 가르쳐 줍니까? 지금도 여러분 마음속에 이런 저런 생각을 집어넣어서 말씀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만들 겁니다. 이 이야기는 뭘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임금의 잔치는 지금 우리가 말하는 복음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들어가기를 주님은 원하고 계시는데 거기 오기를 싫어한다 라고 했습니다. 그것처럼 우리는 말씀을 듣기를 싫어합니다. 임금이 전해주는 이야기, 성경 이야기를 듣기를 싫어 한다는 겁니다. 노아 당시의 사람들도 그랬고 지금 우리도 똑 같습니다. 모든 걸 준비해놓고 오라 하시는데 내 안에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 의지가 오라고 하는 말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기 때문에 못 가는 거예요 .

     

    요한복음 1: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고...

    이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인데, 이 말씀을 들을 때 어떻게 듣고 있느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말씀이 나야, 너 이 성경 읽을 때 어떻게 읽느냐 나를 대하느냐, 나를 받아들이느냐, 이 말씀을 읽고 어떤 삶을 사느냐” 라고 우리에게 묻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의 이 동네 있는 사람들은 왕을 무시하기 때문에, 현 시대를 살고 있는 나는 성경을 무시하고 말씀을 안 믿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산다는 겁니다. 성경은 열심히 읽어놓고 삶은 내 맘대로 살아간다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죽어야 되고 진멸을 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안 믿는 사람은 반드시 심판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은 1장은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하셨으며, 누가복음 1장에서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말씀의 목격자 되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의 말씀은 사람의 손에 의해 쓰여 진 게 아니라 이루어진 사실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럼 우리는 뭘 믿어야 됩니까?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즉 임금님이 혼인잔치에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그냥 오기만 하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찾아와 세례를 받는 이유가 뭡니까?

    마태복음 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 당시에 제사장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에 보면 세례요한에 대한 소개가 나오는데, 여자가 나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고 되어 있죠?

     

    마태복음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우리가 보았을 때 훌룡한 사람도 많고 뛰어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세례요한이 가장 큰 자로 보였습니다. 두 번째 누구복음 1장에서도 세례 요한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때 천사가 나타나 세례 요한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지만 그걸 믿지 못하는 사가랴는 벙어리가 됩니다. 약속대로 아들을 낳았는데, 아버지 사가랴가 서판에 요한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면서 입이 풀립니다. 그가 하나님이 주신 이름을 기록할 때 입이 풀려져서 말을 하게 되는 것이죠. 세례 요한은 가장 큰 자이면서 아버지 제사장으로부터 태어나 30년 동안 광야에 살다가 서른이 되면서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서른 살이 되면서부터 광야에서 외치는 제사장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종 제사장으로서의 자격과 가장 큰 자의 자격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은 세례요한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죄를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세상의 대표자이면서, 죄를 넘길 수 있는 제사장의 자격을 갖춘 세례 요한에게 죄를 넘겨 받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은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이 말씀은 하루 전 날 요한 자신에게 세례를 받은 예수님을 가리키며 요한이 외친 말입니다. 요한은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고 있는 예수님을 쳐다보라고 외칩니다. 그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이 요한복음 8장에 가서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여자와 만납니다. 사람들은 이 여자를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다시는 가서 죄를 범치 말라” 고 하셨습니다. 이 여자는 간음이 취미고 삶이예요. 우리도 이 여자처럼 육체적 간음은 아닐지라도 영적인 간음은 수없이 해 왔다는 것입니다. 간음은 죄이고 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고 하셨어요. 어떻게? 그 여자는 죄를 안 지을 수가 없어요. 그 여자의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이 들어가면 죄를 짓고 싶어도 안 짓습니다. 내 컴퓨터 안에 뭘 받아 들이냐에 따라 나오는 게 다르듯이 내 마음 안에 무엇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죄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셔서 모든 일을 끝을 냅니다. 죽음으로 끝을 냅니다.

     

    요한복은 19: 30절에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이루신 게 무엇이냐?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냐?

     

    로마서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은 것도 확실하고 다시 살아나신 것도 확실한 사실입니까?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고 확실하게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예, 분명한 사실이고 확실한 사실입니다. 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내게 미친 영향은 나의 죄가 끝이 나고 나는 의롭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록한 게 성경입니다.

     

    골로새서 2:12-15절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우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우리를 예수님이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 합니다. 이것은 마치 그 청함 받은 사람들이 왕의 말을 사환을 통해서 듣는 것처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듣고 있는 겁니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순간 악한 맘을 품고 말씀을 거절하면 우리는 죽습니다. 길이 없습니다. 성경말씀은 사실을 기록해 놓은 것이기에 이 말씀을 받아들이면 삽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사환의 말을 받아들이면 살지만 거절하고 안 받아들이면 진멸당하고 다 죽는 것처럼, 여러분과 내가 할 일은 다른 게 없습니다. 이미 이루어져있는 이 세계를 받아들여 내가 이미 의롭게 되었네 라면서 이 사실을 누리면 됩니다. 성경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분 앞에 가서 그 분과 함께 마시고 먹고 즐기고 사는 삶을 누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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