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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선 | 2016.10.09 13:03 | 조회 4031


    1. 말씀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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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룻기 1:1~22]

     

    제 아내가 동물을 참 좋아합니다. 어젯밤에 아내와 함께 사무실에서 집으로 올라가다가 아내가 고양이 한 번 보고 가자고 해서 보러 갔습니다. 어두운 밤이었는데 제가 보니 고양이가 죽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휴대폰 조명을 켜서 보니 목이 졸려 죽어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목줄을 만들어 달아 주었는데, 줄을 당기면 고리가 작아지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누군가 고양이를 위해 마음을 쏟아 끈을 묶어 나무에 걸어두었는데, 잡아당기면 목줄이 조이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고양이가 줄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목이 줄려 죽었단 말입니다. 본인도 그걸 몰랐겠지요. 묶어 놓아야 차에 치이지도 않고 안전하니까 고양이를 위해서 한다고 한 것이 고양이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덫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위해서삽니다. 내 자식, 부모, 가족, 주변 사람, 회사, 마을, 사회를 위해 산단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 삶을 돌아봤을 때 정말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산 결과가 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비참한 비극을 끌어오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열왕기하 3장에 보면 여호사밧 왕이나 여호람 왕, 에돔 왕이 모압을 점령하기 위해 의기투합해서 군사와 군량미를 모아 전쟁을 하고 갑니다. 이 왕들 어느 누구도 자기 백성, 신하, 장군을 죽이려고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들이 펼친 작전이나 그들이 모은 의견, 전술은

    나를 따라주고 있는 병사와 백성들을 해하기 위한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위해서한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에돔 광야로 끌고 가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모압의 조공을 받아 백성들이 힘들지 않게 살게 하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 결과는 모압을 점령하기는커녕 전쟁에 따라갔던 신하나 군인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가는 비극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지혜와 경험은 죽음이라는 결과를 가져다주었지만, 하나님의 종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절망과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게 하는 기적이 만듭니다. 이것이 열왕기하 3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룻기 1장에서는 나오미의 가족이 흉년으로 인한 어려움을 안 당하고 잘 살아보려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압이라는 이방 나라로 내려가게 됩니다. 모압에 가면 흉년이라는 어려움을 떠날 수 있을 거라 여기고 모압을 향해서 갔을 것입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내려간 이유는 룻기 119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절 같이 한 번 읽어볼게요.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나오미가 베들레헴을 떠날 때는 풍족하게 나갔다 고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보면, 나오미의 가족은 배가 고파서, 가진 것이 없어서 베들레헴을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족함이 없는데, 베들레헴에 있으면 망할 것 같고, 손해 볼 것 같으니까 살림을 정리해서 모압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모압에서 사는 동안 남편이 죽고, 아들 둘이 죽고 가지고 있는 재산까지 다 탕진하고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자 나오미의 귀에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권고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돌아올 때 전능자가 나를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라고 이야기 하는데, 베들레헴은 비어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며, 나의 것으로 살 수 없는 세계가 바로 베들레헴입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떠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남편의 인도를 받고 있는 동안, 또 자기 생각의 이끌림을 받고 있는 동안 그 생각과, 그 옳음과, 그 경험은 나오미를 베들레헴에 머물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고 떠나도록 하는 일을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의 상식이나 세상의 경험이나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은 말씀을 믿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불신하게 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내려놓고 그냥 단순하게 믿으면 됩니다.

     

    구구단을 외울 때 한 번도 거기에 의문을 품어보지 않고 가르쳐주는 대로 배우고 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 말씀에 대해서는 불신하고 자기와 맞지 않는다고 어려워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갖고 있는 많은 것들이 말씀을 못 믿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똑같이 성경을 읽고 이해해도 말씀을 믿는 부분에 대해서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자기를 불신하는 사람들은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지만 자기를 믿는 사람들은 말씀을 절대 믿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말씀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그 삶 속에는 믿음이 수반되지 않습니다.

    우리 링컨학생들이 충장축제 기간에 패션쇼를 했습니다. 처음 연습할 때는 걷는 것이나 폼 등 모든 것이 엉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축제 때 무대에 섰을 때는 연출하는 동작 하나하나가 어찌나 멋있던지 장대비가 쏟아지는데도 사람들이 아무도 자리를 안 떠나고 의자에 앉아서 다 보고 있는 겁니다. 패션쇼를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학생들이 이렇게 전문가처럼 연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을 준비하고 가르치는 선생님이 시키는 그대로 하니까 작품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이처럼 우리가 진짜 무지하고 바보여도 괜찮습니다. 학생들이 아무것도 몰라도 가르쳐 주는 선생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라가니까 멋진 패션쇼가 되는 것처럼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바보여도 예수님만 따라가면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 자꾸 내 것을 가미하니까 망치는 겁니다. 룻기를 보면, 베들레헴이 흉년이 들었을 때 나오미 가족 외에는 아무도 베들레헴을 떠나지 않습니다. 흉년이 왔는데도 그들은 어떻게 대처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돌보아 주신 겁니다. 모압에 있는 나오미에게 이 소식이 들리면서 나오미는 그제야 자신이 틀린 것을 깨닫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은 내가 망한 인생임을 깨닫고 돌아오기만 하면 그 인생을 새롭게 바꿔주십니다. 나오미가 남편과 자기 생각의 영향을 받고 있는 동안은 베들레헴에서의 삶이 괴롭고 힘듭니다. 그래서 결국은 베들레헴을 떠났습니다. 성경에 이런 이야기들이 몇 군데 나옵니다. 창세기 4장 을 보면 처음으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나옵니다.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창세기 4:13~16)

     

    에녹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동행하다라는 뜻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과 함께 한다고 말은 하지만 하나님을 떠나 있습니다. 가인이 힘들어하고 자기를 만나는 자에게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할 때, 하나님이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라고 분명히 약속하시고 아무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인은 말씀을 버리고 그 표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 놋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성을 쌓고 성 이름을 에녹이라 짓고 아들 이름도 에녹이라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인이 왜 하나님을 떠났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의 말씀도 듣고 표도 받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그걸 다 버리고 자기 생각을 따라 자기 스스로 위로받고 쉴 만한 곳을 찾아 떠난 겁니다. 그곳이 바로 에덴 동편 놋 땅입니다. 가인은 거기서 자기를 위해 성을 쌓은 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실 거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 결과 훗날 성 안에 엄청난 비극이 일어납니다.

     

    창세기 13장에도 아브라함과 롯이 하나님이 명하신 곳에서 살다가 그 땅에 기근이 오자 기근을 피해 가나안땅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사는데, 아브라함과 롯이 자꾸 부딪히면서 싸우게 됩니다. 이들이 싸우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소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지는데, 롯이 눈을 들어 물이 넉넉한 요단들을 택해 아브라함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곳은 하나님이 멸하실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롯은 왜 그 땅을 택해 갔으며, 반대로 아브라함은 왜 가나안 땅에 남았을까요? 아브라함이 롯과 함께 하란에서 떠나 나올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약속을 롯도 들었습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이 지시 하신 땅이 바로 가나안 땅이었고,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그 곳에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기근을 만나기도 하고, 재물이 많아지기도 하면서 아브라함은 그 마음이 약속 안에 머물러 있는 반면 롯은 약속은 사라지고 자기 원함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지만 약속 안에 머물기보다 내 원함과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롯의 삶과 다름이 없고, 그 삶은 나오미가 남편과 함께 갔던 모압과 같은 곳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 우리가 머물 때 하나님은 약속을 믿는 자에게 반드시 약속대로 일을 하십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오셨든지 간에 지금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온다면 하나님은 그 약속대로 여러분에게 행하실 것입니다. 창세기 415절에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표를 주셨는데, 가인은 그 약속을 버리고 자기가 자기를 지킬만한 땅을 찾아가 성을 쌓고 살았지만 그 성이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롯 또한 자기 손에 있는 재물과 짐승떼를 지키고 싶어서 요단들을 택해 갔지만 결국은 다 불에 타서 없어지고,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어 버리는 비참한 결과를 만났습니다. 약속을 버리고 자기 보기에 좋은 것을 따라가는 것의 결국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우리 보기에 좋은 것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잠시만 멈추어 서서 하나님 나는 이것이 너무 좋은데 하나님 당신 보기에도 이것이 좋으십니까?’ 라고 물어보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도 좋다.’ 라고 말씀하시거든 그 때는 그 길을 가시면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아까워도 버리시고 하나님의 약속 편에 서십시오. 창세기 16장에서는 하갈이 사라 덕분에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 잉태를 하게 되면서 사라의 학대를 피해 사라를 떠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학대를 피해 편하게 살아보려고 떠나 나왔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네 여주인 사라에게 돌아가 복종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하갈은 사라를 떠나면 뱃속에 있는 아이를 지킬 수가 없고 고통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났다가 돼지우리에서 주려 죽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아버지께 돌아가 복되게 사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런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는 나를 믿으면 망하는 구나, 내 보기에 좋은 것 쫓아서 따라가면 망하는 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이 중요한 것입니다.

     

    , 녀가 만나 데이트를 하려고 해도 약속한 장소로 나가야만 합니다. 약속한 장소에 가다가 너무나 경치가 좋고, 분위기가 좋은 곳이 있어서 그 곳에 머물러 버리면 내가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이 틀린 것을 발견하기까지 10년이 걸렸는데, 10년 동안 나오미에게 일어났던 일은 남편이 죽고, 두 아들이 죽고, 과부가 되어서 더 이상 의지할 곳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나오미의 귀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 모압을 버리고 다시 약속의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마음을 품게 됩니다.

     

    룻기 1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년 즈음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자 나오미는 아들을 결혼시켜 가정을 이루게 하고, 거기에 마음을 붙이고 살아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마저 죽은 겁니다. 그러니까 나오미가 바라보거나 의지할 대상이 하나도 없는 것이죠. 10년 동안 나오미에게 일어난 일은 죽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일 후에 나오미에게 베들레헴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돌아보시고 권고하시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서 허랑방탕하게 사는 동안에는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분대로 막 살았겠지요? 그렇게 살다가 가진 재산을 다 탕진하고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돼지 치는 직장을 구해 일을 하는데, 월급은 고사하고 밥조차 먹을 수가 없어서 주린 배를 끌어안고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려고 하는데, 그 마저 주는 자가 없으니까 그 때 이 친구는 자신의 죽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죽음이 발견되니까 둘째 아들의 마음에 비로소 아버지 집이 떠오릅니다. 자신은 남의 품꾼으로 살면서 쥐엄 열매조차 먹지 못하는데, 자기 집에 있는 품꾼들은 양식이 풍족하다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둘째 아들은 거기서 처음으로 자기 판단, 자기 생각, 자기 결정이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에게서 돌이켜 아버지 집을 향해 가게 됩니다.

     

    열왕기하 3장에서는 유다 왕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왕 여호람 그리고 에돔 왕이 모여 모압과 전쟁을 하려고 철저하게 모든 것을 갖추어서 전쟁하러 갑니다. 그런데 이 세 왕이 에돔 광야길로 진행하다가 물이 떨어져서 군사들과 생축이 다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전쟁을 하러 나오긴 했는데,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목 말라 죽게 되었으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여호사밧왕은 자기가 자기 백성을 죽이고 자신을 죽일 수밖에 없는 틀린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종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통해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이 이해가 되든 안 되든 그는 그 음성을 따라 개천을 팝니다.

    언제 왕이 개천을 팔 수 있습니까? 이 왕들이 모압과 전쟁을 해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개천을 파라고 하면 개천을 파겠습니까? 아닙니다. 선지자를 미친 사람 취급하면서 가버리겠지요.

     

    내가 틀렸을 때,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나오미의 귀에 하나님이 일하신 소식이 들려지기 시작합니다. 잘 살기 위해 찾아왔던 이 모압이 죽음의 장소이며, 자신의 판단을 믿은 결과가 자기를 망하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오미가 발걸음을 옮겨 베들레헴으로 가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나오미가 약속의 땅에 돌아오자 놀라운 일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육신이 남편도 죽고 아들도 죽었지만 하나님이 나오미의 남편이 되어 나오미를 축복의 세계로 이끌어 가십니다. 나오미에게 임한 축복은 나오미가 약속의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되듯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약속을 주셨고, 롯에게 약속을 주셨고, 우리에게도 약속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눈에 형편이 커 보이고 두려움을 주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가 보기에 두렵고 큰 형편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크신 하나님의 약속 안에 여러분이 머물러 계시면 하나님은 크신 능력으로 반드시 우리에게 약속대로 일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행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어 25년 동안 인간의 방법으로 살았지만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권고하시고 돌아보시면서 약속대로 아들, 이삭을 주시고 그 이름을 창대케 하시면서 복의 근원을 삼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잘 못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 못한 것을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다만 하나님이 일하실 수 없는 영역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해 주실 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돌이켜 약속 안으로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 약속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여러분 마음 안에 품고 사신다면 하나님은 그 약속대로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승리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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