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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동현 | 2016.06.10 12:45 | 조회 4439

    1. 말씀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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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6. 5.

    주일 낮 예배

    본문말씀 [마태복음 1:18 25]

     

    우리는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듣고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성경을 연구해서 학위를 얻은 박사들도 많이 계시고, 그들이 성경에 대해 주장한 내용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성경의 내용은 하나인데, 그 사람들이 쓴 글이나 논문을 읽어보면 다 다른 소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성경은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가보다하고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약속의 말씀이며, 더 분명하게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판결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대하여 가타부타 할 필요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으면 되는데 그대로 믿지 못하고 자기 생각과 교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말씀이 왜곡됩니다. 성경만큼 쉽게 기록된 책은 없습니다. 누가 읽어도 정확하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굉장히 어렵게 받아들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처음부터 성경을 아예 읽지 않으려고 합니다. 성경에 대해 알아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하는 말을 듣고 맞아, 그럴 거야.’ 하면서 받아들이고 그냥 따라가게 됩니다.

     

    말씀은 듣고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가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신앙의 기준이 되지 않으면 그 신앙은 말씀과 다른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말씀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어떻고, 우리 목사님은 뭐라고 했다.’ 같은 말은 어리석은 이야깁니다. 내가 신앙을 잘하든 못하든, 내가 교회를 오래 다녔든 이제 막 다니든 신앙은 성경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뭐라고 되어 있는지 제대로 알아야 우리가 가진 믿음이 제대로 된 믿음인지 점검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은 118절부터 25절까지 읽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요셉이라는 사람이 마리아와 정혼을 했는데 결혼 전에 일이 터졌습니다. 요셉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고 이해 안 되는 일이 터졌습니다. 여러분 생애에도 그런 일이 있습니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절대 안돼!’라고 하는 일들 말입니다. 사연을 보니 정혼했던 마리아라는 여자가 배가 불러오기 시작합니다. 그걸 눈치 챈 요셉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이 마음에서 소화가 안 되는 겁니다. 18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그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경으로 잉태된 것이 타나났더니여기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아이를 가졌는데 인간적인 순리와는 전혀 다른 방향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말미암아아이를 가졌는데, 그것이 서서히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인만 알았던 사실을 주변의 사람들이 알게 되고, 정혼한 요셉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요셉은 어떠했을까요? 그것을 아는 순간 요셉의 마음은 괴롭고, 고통스럽고, 어렵고, 힘들고, 원망스럽고, 짜증나고...... 모르긴 몰라도 아마 온갖 부정적인 마음들이 다 올라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런 마음을 누구한테도 내놓지 못하고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19절에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요셉은 아주 얌전하고, 점잖고, 의로운 사람이라 자기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있는 것이지요. 요셉이 자기의 어려움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기의 방법으로 처리하려고 하고 있는데, 그걸 하나님이 아셨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와의 관계를 조용히 끊으려 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아시고 요셉을 찾아가 교제를 해 주십니다.

    마태목음 120절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가라사대

     

    이사야 7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수님이 처녀의 몸을 통하여 오실 것을 예언해 놓으셨습니다. 이 이사야 성경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 739~680년 사이에 기록된 책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기 대략 700년 전에 이미 처녀의 몸을 통하여 오실 것이 예언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셔야만 하는지는 그 이유는 예레미야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 31:31~3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예레미야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새 언약을 세워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계시는데, 왜새로운 언약을 세워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계시는 걸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과 세운 옛 언약이 있는데, 그 언약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세우셨던 약속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돌판에 기록한 율법을 주셨는데, 이스라엘백성들이 이 율법을 지키지를 못했습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남편이 되고, 주가 되었어도 지키지를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언약을 세우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예레미야서는 예수님 오시기 전 627~585년경 사이에 기록된 성경입니다. 이사야 성경이 끝나고 얼마 안 되어서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7장에 하나님께서 처녀의 몸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내겠다 고 약속을 하셨고, 그 예수가 와서 무슨 일을 해야 되는지를 예레미야서를 통해 분명하게 밝히고 계시는 겁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새 언약이 세워지게 됩니다.

    히브리서 10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이 땅에 오셨는데, 하나님의 뜻은 첫 것을 폐하고 둘째 것을 세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첫 것은 율법을 의미하고 둘째 것은 새 언약을 의미하는데, 예수님이 새 언약을 세우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럼 마태복음 1장에 예수님이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탄생하시게 되는 것은 이사야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것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714절 말씀과 예레미야 3131-34절 말씀을 이루기 위해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마리아가 쓰임을 받는데, 여러분이 요셉이라면 그 마음이 어땠을까요? 왜 하필이면 나야? 왜 내가 어려움을 당해야 해? 제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은 제 마음 속에 계속 맴도는데 저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속에서 그 말을 들으면 막 화가 났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저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그 말씀이 맞았습니다. 저는 그 일을 통해서 처음으로 제 근본을 보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속고 살았습니다. 목사로 말씀을 전하면서도 제 마음 속에 항상 두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도 믿고 내 생각과 사람의 소리, 형편도 받아들이면서 살았습니다. 그날 이후 하나님이 제 눈을 밝혀주셨는데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말씀대로 재앙이 아니라 소망이고 평안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제 마음에 자리 잡으면서 하나님만을 믿을 수 있는 마음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뒤로는 누가 무슨 말을 하거나 어떤 일을 해도 제가 전혀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늘 오늘 사역이 끝난다는 마음으로 삽니다. 그럼 제가 오늘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살고 어떤 마음으로 성도나 새로운 사람을 대하겠습니까? 말씀이 아닌 것에는 하나님 편에 서서 싸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 박혀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하나님 뜻을 이루는 데에만 마음을 두셨어요. 당신의 육체가 짓밟히고 무시를 당해도 전혀 요동하지 않으시고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 하시고 영혼이 떠나가셨습니다.

    성경에는 이 모든 일이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는 요셉과 정혼한 처녀가 키가 크든, 멍청하든 관계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어야 합니다.

     

    요셉이 주의 사자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마리아는 절대 안 돼, 용납할 수 없어.’ 라는 마음이었는데, 하루밤 사이에 그 마음이 바뀌어 마리아를 데려오게 됩니다. 마리아를 데려 올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마음이 감사가 넘치고, 기쁨으로 마리아를 데려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럼 정작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요셉의 판단이었습니다. 요셉은 그 일을 통해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마리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주의 사자를 통해서 듣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발견하고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마리아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틀린 자신을 발견하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예수님을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구원자로 보내셨을까요? 아브라함이나 다른 사람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요? 로마서 623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사망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백두산만큼 죄가 크든, 그 죄가 파리 뒷다리만큼 작든 어쨌든 죄가 있으면 사망을 지불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죽을 운명인 내가 그 사망에서 건짐을 입으려면 누군가가 나를 위해 대신 사망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줘야 하는데, 나와 똑같이 사망의 선고를 받은 죄인은 나를 대신해서 사망의 대가를 지불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대신해 나의 죄 값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은 죄가 없는 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생은 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죄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가 없는 예수님을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혀서 보내셔야 했습니다.

     

    로마서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를 죄에서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를 담당시킬 육신이 필요했고, 그래서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인데도 죄를 담당하기 위해서 죄 있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당신이 약속한 대로 예수님의 몸에 우리 무리의 모든 죄를 담당시키셨습니다. 그 과정이 마태복음 3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313-17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와 같이는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 예수님이 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셔야 합니까? 세례요한이 어떤 자격이 있는데,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푸심으로 모든 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성경을 통해 세례요한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5-16절 유대왕 헤롯왕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쌔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저가 주 앞에서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이 말씀은 세례요한이 태어나게 된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는 말씀인데,

    세례요한은 사가랴라는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나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석청과 메뚜기를 먹으며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마태복음 1110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이 말씀은 말라기 3장에 예언된 말씀을 인용한 구절인데, 말라기가 기록되고 400년이라는 암흑시대가 지난 후에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러 세례 요한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례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두 개의 말씀을 요약해보면 세례요한은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난 제사장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자로서 이 세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례요한이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로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풂으로 모든 의를 이루는 일에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통해 모든 죄를 넘겨받아 그 육신에 죄를 정하시고 담당하신 것입니다.

    대속죄일에 이스라엘백성들의 1년의 죄를 넘길 때도 일일이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대제사장이 죄를 넘기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듯이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넘길 때도 인류를 대표할 만한 대표자 세례요한이 마지막 제사장으로서 예수님에게 죄를 넘기는 그 일을 행한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목적이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함이었는데, 예수님은 모든 죄를 당신의 육신에 넘겨받으시고, 그때부터 그 죄를 짊어지고 죽음의 장소인 골고다 언덕으로 가셨습니다.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시면 큰 일이 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 죄가 끝이 나는데, 계속 돌아다니시면 죄가 끝이 안 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신포도주를 받으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하시면서 고개를 숙이고 돌아가셨는데, ‘다 이루셨다는 것은 모든 의를 다 이루시고, 거룩함을 이루시고, 온전함을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고 기록되었는데, 그 몸은 예수님이 입고 오셔서 죄를 담당하신 육신의 몸을 의미합니다. 여러분과 내 육신이 아닌 예수님의 육신에 세례 요한을 통해 죄를 정하사 예수님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입니다. 염소와 양이 죄를 넘겨받은 날부터 죽을 운명인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죄를 예수님에게 담당시킨 그 날부터 예수님은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몸으로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도록 다 이루어 놓으셨는데,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고린도 전서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우리 중에 9절과 10절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910절에 해당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11절에 그런 우리가 깨끗하게 되는 길이 있는데, 예수님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씻음을 받고, 거룩하고 의롭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말미암아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 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계는 우리가 뭘 해야 되는 세계가 아니고 이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세계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못하는 이유는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예수님에게 세례를 행하면 되듯이 우리 또한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우리 눈에 보기에 어떠하든지 말씀이 우리에게 의인이라고 하면 의인이고, 거룩하다고 하면 거룩하며, 온전하다고 하면 온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볼 때 우리가 날마다 죄를 짓고 있으니까 의인이라고 하기보다 죄를 날마다 회개해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말씀을 버리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길이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고 믿음입니다.

    베드로전서 224절 말씀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판결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판결문 앞에서 우리는 무얼 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판결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믿을 때 거기에서 나의 의가 이루어지고, 거룩함이 이루어지고 온전함이 이루어져서 주님 안에서 우리가 그 모든 것을 누리고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에 말씀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데, 여러분 모두가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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