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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동현 | 2016.07.03 13:45 | 조회 3892

    1. 말씀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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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7. 3. ()

    주일 낮 예배

    본문말씀 [역대상 15:1-3, 11-15]

     

    성경 말씀을 읽다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창세기를 읽다보면 처음으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아담의 두 아들인 가인과 아벨이 나옵니다. 어느 날 둘이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들고 나가 제단을 쌓았습니다. 둘이 똑같이 나갔는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아담의 큰 아들이었던 가인의 제물을 거절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가인이 속이 상한 겁니다. 안색이 변한 가인에게 하나님이 네가 분해함은 어찜이냐라고 묻습니다. 가인은 마음이 화가 나 그 분을 못 견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겁니다.

     

    여러분이 살면서 아내, 친구, 구역장, 목사님들한테 거절을 당하면 나는 이 정도하면 됐다, 문제 없다, 괜찮다.’ 라는 마음이 드는데 왜 그럴까요? 나름대로 성실하게 주일 예배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해 여러분은 문제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문제를 삼는다면 고마움이 아니라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오를 겁니다. 누가 뷔페 가자고 하면 화납니까? ‘내가 밥 살게라는 소리를 일주일에 다섯 번 들으면 화는 커녕 마음이 활짝 열리죠. 그런데 새벽 예배 나와라, 저녁 예배 나와라, 구역 예배 와.’ 이런 이야기 들으면 마음에서 감사한 마음이 아니라 격한 마음이 만들어 집니다. 왜요? 본인이 주일 낮 예배는 참석할 수 있지만 못하는 걸 하라니까 열 받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나아만 에게 게하시가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문둥병이 낫는다고 이야기 해 줬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갑자기 분을 냅니다.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와서 내 상처에 손을 흔들고 내 병을 고쳐줄 줄 알았는데 그러진 못할망정 나에게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고 하니 더러워서 못 하겠다.’라고 합니다. 나아만은 처음에 문둥병이 낫는다는 말에 계집아이 말을 따라서 발을 디뎠는데, 중간에 왕이 준 편지를 들고 사마리아 왕에게 갑니다.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일어났을 때 하나님의 종 엘리사가 사람을 보내 나아만은 엘리사 앞까지 오게 됩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직접 맞아주는 것이 아니라 종을 내보내자 아람의 군대장관, 큰 용사, 존귀한 자인 나아만은 화가 났습니다. 왜요? 본인의 마음, 생각이 있었단 말입니다. 엘리사가 자기에게 어떻게 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 생각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니까 못 받아들이는 겁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 생각을 가지고 들으면 말씀이 들려지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마음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납니다. 제가 우리 교회 부인 자매들에게 저녁에 잠자기 전에 남편 손을 꼭 잡고, 입을 열어서 당신은 정말 나에게 이런 부분이 너무 귀해, 그 귀한 부분이 있어서 고맙다고 표현을 하라.’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장년 형제들에게 부인들이 그렇게 하더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잘 안합니다. 그래서 형제들에게도 해 보라고 했습니다. 매일 아내가 고마운 이유 세 가지를 날마다 다른 것으로 한 달만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마음에서 내 아내가 커지고, 내 남편이 커지고 나는 작아지고 남편이 아내가 나와 살아주는 것이 고마울 겁니다.

     

    우리 마음이 주님과 하나가 안 되는 이유는 내 기준을 가지고 말씀을 듣고 읽기 때문입니다.

    가정 안에서도 부모의 기준으로 자식을 대하면 늘 속상한 일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그런 아들에게서 귀한 것을 찾아보면 나에게 없는 정말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 아들이 내 곁에 살아 있는 자체가 눈물 나도록 고마운데, 감사할 것은 다 덮여져 있고 불평스러운 것만 보기 때문에 마음에 벽이 생기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는 사람과 도움을 입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다윗이 사울에 쫓기다가 왕위에 오르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역대상 13장에 나와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메어 오는 일을 하게 됩니다.

     

    대상13:1-5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장수로 더불어 의논하고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선히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있는 우리 형제와 또 저희와 함께 들어있는 성읍에 거하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보내어 저희를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옮겨 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뭇 백성이 이 일을 선히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이에 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으고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오 오고자 할 새,

     

    대상13:9-11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다윗이 왜 분해합니까?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열납 하시고 가인의 제물은 열납 하지 않으시자 가인이 분해합니다. 우리가 교회안에서 신앙을 하면서 언제 섭섭한 마음이 올라옵니까? 우리가 잠언 30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마음이 짐승의 위치에 있으면 섭섭함이 없는데, 마음을 높이고 살기 때문에 섭섭한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 왜 웃사를 죽이셨습니까? 다윗이 천부장 백부장들과 언약궤를 메어 올 의논을 했는데, 모든 백성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7절에 보니까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새 수레에 싣고 나오면서 춤추고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기돈의 타작마당에서 소들이 펄쩍 뛰는 바람에 수레에 실려 있던 법궤가 떨어지려 하자 웃사가 손을 펴서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웃사를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서 죽이셨습니다. 그걸 본 다윗이 화가 나 분해하면서 베레스 웃사라고 하면서 법궤를 놔 두고 다윗성으로 가 버렸습니다. 법궤를 오벧에돔 집에 메어갔는데 하나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 집에 복을 쏟아 부었습니다. 웃사는 죽이는데 오벧에돔 집에는 복을 내리는 것을 보고 다윗이 성경에서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84년도에 순천에서 사역을 시작하면서부터 20년이 훨씬 넘는 긴 세월을 목회자로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 풀리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성경이야기를 하면 하루 종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읊을 수 있을 만큼 신령한데 내가 본 내 삶은 성경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것이 너무 갈등되었는데 어느 날 제 아내가 암에 걸렸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제가 제 손에 있는 성경을 집어 던졌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이 나이 먹도록 내 몸 안 돌보고 당신 말씀 앞에 충성한 것밖에 없는데 왜 내 아내가 암에 걸려야 합니까? ? !!!”

    그러면서 욕을 하고 소리치며 성경을 집어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 차고 올라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2911~14절 말씀이었습니다. 평상시 제가 기억했던 것도 아니고 설교했던 것은 더더구나 아니었습니다. “희진아! 네 아내가 암에 걸린 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야.” “재앙이 아니면 뭔데요?” 제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암은 재발하는 것이고 암에 걸리면 7~8년 내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마음속에서는 이제 아내가 죽으면 사역 끝났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는 말씀이 내 마음 안에 기억이 되면서 내 앞에 있는 아내는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고 있는데 형편의 아내와 다른 아내가 말씀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 생각에 나는 더 이상 사역을 못하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야유가 쏟아지는데, 말씀은 평안이고 내 장래에 복을 주려한다고 하셨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말씀과 다르게 형편은 더 나빠졌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말씀이 형편을 이겼습니다. 말씀이 내 마음에 힘을 줬고 어느 날 제 아내도 그 말씀으로 암에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그 병이 재발했지만 다시 하나님이 제 아내를 건강하게 돌려주셔서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때는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나냐?’고 원망했지만 지금은 제 마음 속에 이것이 세상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큰 복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때 이론적인 하나님이 아닌 살아계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하나님이 내 마음에 세워지면서 두 번째 부딪혔던 문제가 최수연의 척수염이었습니다. “수현이 퇴원시켜서 제 곁에 데려다 놓고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수현이 살리실 겁니다. 그리 안하신다면 제가 평생 미움 받고 욕을 먹으며 손가락질 당하고 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이 마음 주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수현이 부모님께서 저를 믿어주셨고 퇴원시켰고 말씀대로 수현이가 박목사님을 만나 척수염이라는 질병에서 벗어났습니다. 그 후 암에도 걸렸지만 살아서 건강하게 주님 앞에 살고 있습니다.

     

    전에는 내 마음속에 말씀도 믿고 나도 믿는 두 마음을 품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정확히 그걸 보여주시면 나를 쳐내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이 법궤를 수레에 싣고 올 때 막으실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과 나를 겸하여 두고 있는 마음을 쳐내시려고 아내에게 암을 주셨고 내게 고통과 어려움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게 말씀만 세울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전에는 믿음으로 안 되면 이렇게 하면 되지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그걸 막으신 겁니다.

     

    그 하나님이 다윗을 막으셨습니다. 다윗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분해서 저처럼 법궤를 집어 던졌습니다. 구원 받고 복음을 위해서 이 한 몸 불태우리라는 마음으로 주님을 열심히 섬겼는데 아내가 암에 걸리니까 욕하고 저주하고 성경책 집어던지는 게 저였습니다. 그동안의 박희진이는 다 가짜였습니다. 껍데기로 아는 성경지식으로 더러운 박희진이를 포장하고 형제자매들 앞에서, 교회 앞에서 말씀을 전하고 살았습니다. 아주 더러운 사기꾼이었습니다.

    역대상 15:1-2

    다윗이 다윗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궐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위하여 장막을 치고 가로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를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히 저를 섬기게 하였음이니라 하고

     

    다윗은, 법궤는 아무나 손대면 안 된다는 것과 하나님이 특별히 레위 사람을 택해서 성막을 섬기고 법궤를 메게 하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역대상 13장에서 법궤를 옮기려고 천부장, 백부장들과 의논하고 법궤를 수레에 싣고 온 것입니다. ‘나는 이 법궤를 수레에 싣고 왔구나. 내가 지은 죄가 너무 크구나. 법궤를 옮기려고 천부장, 백부장들과 의논하고 새 수레와 소를 준비했네. 내가 죽을죄를 지었네. 내가 틀렸구나. 그래서 하나님이 웃사를 죽였구나. 웃사가 내 대신 죽었구나.’ 다윗은 그제야 자신이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을 모독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레위 사람들을 불러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오게 합니다. 11절을 보면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또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와 요엘과 스마야와 엘리엘과 암미나답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전에라는 것은 13장에 나오는,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왔을 때를 말합니다. “내 생각과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인 결과가 언약궤를 수레에 싣게 만들었다. 내가 그랬다. 나는 하나님 말씀을 버렸다. 묻지 않았다. 규례대로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살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웃사를 죽였다.”라고 다윗이 말합니다.

     

    13장에서의 삶과 15장에서의 다윗은 너무나 다릅니다. 똑같이 교회를 다니고 똑같이 하나님을 섬기지만 13장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15장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은 말씀이 근거가 되어야 합니다. 언약궤는 레위 사람이 메고 섬기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대상15:15절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한대로 레위 자손이 채로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16절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하여 그 형제 노래하는 자를 세우고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25절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 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

    26절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 곱과 수양 일곱으로 제사를 드렸더라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면 우리가 부족한 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수레를 준비하고 좋은 소를 끌어와도 하나님이 안 도우시면 죽어야 되고, 하나님이 도우시면 복을 받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면 내가 부족한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나를 돕지 않으면 모든 것을 갖추어도 안 되는 겁니다.

     

    주님은 언약궤를 멘 사람들을 도우셨습니다. 이 언약궤는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하는데 우리 마음의 보좌에 주님을 두시면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수 밖에 없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노예시장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있을 때는 하나님이 애굽을 위해 아무것도 못하셨습니다. 그러다 요셉이 보디발의 종으로 살고 있자 하나님께서 요셉이 손을 대는 곳에 복을 주시는 겁니다. 보디발이 그것을 알게 되자 집안 살림 전부를 맡깁니다.

    요셉이 보디발집의 가정총무가 되자 보디발의 가정 전체가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은 자신과 자신의 아내는 맡길 수가 없었고, 그로 인해 요셉은 다시 감옥으로 버려지게 됩니다. 감옥에서 요셉은 떡 굽는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게 됩니다. 그 꿈대로 되어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고 바로왕을 섬기게 됩니다. 그런데 한 날은 바로왕이 징조가 있는 꿈을 꾸었는데, 술객들이 해석을 해주지 못하자 괴로움에 빠진 겁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고 바로왕에게 요셉을 소개하게 됩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을 치리하게 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말은 바로 너는 왕 자리에서 내려오고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 왕이 되어 애굽을 다스려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바로는 그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신에 감동된 요셉을 애굽의 치리자로 세웠고 바로 자신도 요셉의 다스림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보디발도 바로도 요셉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은 요셉이 다스림 속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하여 바로에게 복을 주시는데, 보디발과 보디발의 아내에게는 요셉의 영역밖에 있기 때문에 복을 줄 수가 없고 결국 그들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땅을 도와주고 싶어도 바로가 왕의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도울 수가 없습니다. 언약궤를 메어야 복을 주시는데, 수레에 싣고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다윗이 처음에는 언약궤를 메고 오자고 했는데, 수레를 미리 준비해 놓고 수레에 싣고 오는 거예요. 우리는 항상 이렇게 살아요. 인간의 방법과 말씀을 섞어 놓고 사는데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진노를 하시는 겁니다. 이 세상 종교는 하나님도 위하고 자신도 위하는 그런 식으로 살면서 교회 안에서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예수님을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수술할 때 곪은 것은 짜내고 섞은 것은 도려내야 하듯이 신앙도 그렇습니다.

     

    요셉이 애굽 땅에 있다고 하나님이 애굽을 도우시는 게 아니라 요셉이 치리자로 세워져야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요셉이 치리자로 세워지니까 기근으로 멸망해야 할 애굽 땅이 다 살아날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요셉의 가족들까지 살아나게 됩니다. 요셉이 양식을 사러 온 형들을 알아보고 정탐으로 몰아 동생 베냐민을 데려오게 하고, 베냐민이 오자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을 넣어 도둑으로 몰아세우는 이유가 뭡니까? 형들이 곡식을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면 죽기 때문에 요셉이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애굽에서 함께 살고 싶어서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을 넣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에게도 그렇게 일하셨습니다. 내 아내에게 암을 주어 인생의 끝을 내게 하시고 그때 하나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된 시작점이었습니다. 애굽이 기근으로 멸망케 되는 어려움이 닥치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요셉을 만나게 되듯이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것입니다. 피하려고 인간방법으로 넘어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울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은 거지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셨고,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셨고, 죽어서 무덤에 갇혀 있는 나사로를 찾아가 살려주셨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에게 찾아가 자유를 주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돕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자기를 믿는 데서 끝이 난 사람, 자신이 끝나 버린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은 단 한번도 거부하거나 외면하신 적이 없습니다.

     

    로마서3: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못할까요? 우리는 우리가 잘났기 때문에 우리를 믿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성경은 알고 이해를 하는데, 돌아서면 나를 믿어버리고 내 생각을 따라 말씀과 다르게 사는데, 하나님은 이 마음을 무너뜨리기 위해 우리에게 많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형제 자매 앞에 우리가 깨닫고 잘한 것, 옳은 것을 이야기하지 내가 틀린 것, 잘못한 것은 이야기 안 합니다. 다윗은 역대상 13장에서 웃사가 죽자 화가 나 법궤를 던져버리고 왕궁으로 돌아갔지만 15장에서는 말씀 앞에서 자신이 말씀이 아닌 자신의 방법을 따라간 것 때문에 자기가 웃사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돌아와서 레위사람들이 법궤를 메게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거짓됩니다. 거짓된 것을 느끼려 하지 말고 깨달으려 하지 말고 그냥 믿으십시오. 우리가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판독 결과가 나오면 내가 느끼든 못 느끼든 의사의 말을 믿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믿으면 됩니다. 의사의 말은 믿으시는데 왜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않습니까? 우리는 다 거짓된데, 참되신 주님을 받아들이면 그 때부터 참된 주님으로 살게 됩니다. 여러분이 그 은혜를 입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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