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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주 | 2015.12.13 13:39 | 조회 4777


    1. 말씀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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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낮 말씀 (열왕기상 14: 25-31)

     

    솔로몬왕 때 성전을 건축하고 성전안의 기명들을 갖추어 모든 백성이 성전에 나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 시절에 부귀와 영화가 극에 달했는데 그때 금방패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왕 때 만들었던 방패는 왕을 호위하는 병사들이 왕이 여호와의 전에 들어갈 때 방패를 들고 왕을 호위한 후에 다시 가져다 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왕이 죽은 후 르호보암이 왕이 되면서 이스라엘이 두 나라로 나뉘게 됩니다. 나라가 나뉘면서 국력이 약해진 르호보암은 전쟁에서 패하면서 솔로몬에게 물려받은 많은 유산과 보물들을 빼앗기는데 그 때 금방패도 빼앗기게 됩니다. 이렇게 금방패를 빼앗기고 나니까 금방패 대신에 놋방패로 왕을 호위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오는 여러분들고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삼하20:1-8

    다윗의 시대에 년부년 삼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 집을 인함이니 저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저희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저희 죽이기를 꾀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물으니라 다윗이 저희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기브온 사람이 대답하되 사울과 그 집과 우리 사이의 일은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나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왕이 가로되 너희의 말하는대로 시행하리라 저희가 왕께 고하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경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자손 일곱을 내어 주소서 여호와의 빼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저희를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왕이 가로되 내가 내어 주리라 하니라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이에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잡고

     

     

    다윗시대 때는 댐이나 저수지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땅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으로 있었을 때 삼년 연속해서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하나님 앞에 나가서 그 이유를 묻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땅에 사울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기브온 사람들에 대해 가르쳐주셨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가나안에 살고 있던 이방 민족인데 여호수아에게 거짓으로 꾸며 항복하면서 생명의 약속을 얻어냈고 성전에서 나무패며 물 긷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왕위에 있으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유일하게 하나님이 택한 백성인데 더러운 이방민족이 이스라엘 백성 중에 섞여 산다면서 이스라엘을 위한다는 이유로 기브온 족속을 멸하게 되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던 기브온 후손들이 사울이 죽고 다윗이 왕이 되자 하나님 앞에 이 일을 놓고 울부짖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게 해 주셨는데, 사울이 그들을 죽게 했으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시대에 기근을 주셔서 다윗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게 하셨고, 하나님 앞에 나온 다윗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주셨던 것입니다. 다윗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브온 족속을 불러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물어보았는데 그들이 요구한 것은 사울의 후손 일곱을 하나님 앞에서 목매어 달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사울의 후손들을 모으는데 그 속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읽은 사무엘하 207절에 기록된 것처럼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죽임 당하는 곳에 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사울의 손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모르드개를 내어주지 않는 것은 요나단과 다윗사이에 하나님을 두고 맹세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 때문에 죽어야 할 므비보셋이 죽음의 족보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약속이 있는 므비보셋은 아끼고 그 대신에 다른 므비보셋을 집어넣습니다. 그럼 둘 다 똑같은 므비보셋인데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이 죽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똑같은 므비보셋이고 똑같은 사울의 자손인데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왜 죽음의 라인에서 빼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냐? 그 이유는 한 사람에게는 언약이 있고 한 사람에게는 언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그가 어떻게 살았든지, 그가 어떤 마음을 가졌든지 그것은 불문에 붙이고 죽음의 족보에서 생명의 족보로 옮겨가서 살아납니다. 반대로 죽음으로 내어준 이 므비보셋은 무엇을 잘못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불공평해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 완벽하게 갖추었다고 할지라도 약속이 없으면 죽음으로 내팽개쳐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었던 본문인 열왕기상 14장에서 르호보암 왕이 금방패를 빼앗겼는데 놋방패를 만들어 금방패 대신 시위병들의 손에 쥐어줬습니다. 그런데 이게 왜 죄가 되고 악이 되는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열왕기상 2:13-25절까지 읽겠습니다.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밧세바가 이르되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뇨 대답하되 화평한 목적이니이다 또 가로되 내가 말씀할 일이 있나이다 밧세바가 가로되 말하라 저가 가로되 당신도 아시는 바여니와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을 삼으려 하였는데 그 왕위가 돌이켜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 이제 내가 한 가지 소원을 당신에게 구하오니 내 얼굴을 괄시하지 마옵소서 밧세바가 가로되 말하라 가로되 청컨대 솔로몬 왕에게 말씀하여 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왕이 당신의 얼굴을 괄시치 아니하리이다

    밧세바가 가로되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께 말하리라 밧세바가 이에 아도니야를 위하여 말하려고 솔로몬 왕에게 이르니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다시 위에 앉고 그 모친을 위하여 자리를 베풀게 하고 그 우편에 앉게 하는지라 밧세바가 이르되 내가 한 가지 작은 일로 왕께 구하오니 내 얼굴을 괄시하지 마소서 왕이 대답하되 내 어머니여 구하시옵소서 내가 어머니의 얼굴을 괄시하지 아니하리이다 가로되 청컨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솔로몬 왕이 그 모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저는 나의 형이오니 저를 위하여 왕위도 구하옵소서 저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도 위하여 구하옵소서 하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나를 세워 내 부친 다윗의 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날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매 저가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더라

     

    이 말씀은 아도니야가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인데, 아도니야는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 왕이 되고 싶어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이스라엘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아도니야는 이 일 앞에서 왕위에서 내려와 왕자의 위치로 돌아가긴 했지만 마음이 돌이켜지지는 않았습니다. 왕이 되고 싶은 그 마음에서 다윗이 죽기 전에 다윗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아비삭은 다윗이 죽기 전에 다윗을 봉양했던 다윗의 후처인데 다윗은 아비삭과 상관하지는 않았다고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기회만되면 다시 왕위에 오르고 싶은 야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윗의 옆에 있으면서 나라의 일과 다윗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아비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를 얻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밑바닥에 숨겨놓고 밧세바에게 찾아가 아비삭을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밧세바는 아도니야에게 속아 넘어가지만 솔로몬은 속지 않습니다. 아도니야가 왜 이 아비삭을 달라고 하는지 한 눈에 읽고 네가 이 말을 하였으니 죽어야한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왕이 되려고 하는 야망에 잡혀서 필요한 사람을 끌어들이려는 그 일은 결국 아도니야가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르호보암왕이 금방패를 빼앗겼으면 찾아와야 합니다. 만약 찾아오지 못한다면 없는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빼앗긴 것을 감추기 위해 금색과 거의 비슷한 놋을 가지고 방패를 만들어서 대신 채워 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삶에 끌어오겠습니다. 왕은 우리의 왕 되신 하나님을 의미하고 시위병은 우리를 뜻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야 하는데, 우리는 믿음이 없어도 믿음 있는 것처럼, 영적인 것처럼 꾸미고 산 다는 것입니다. 아도니야가 밧세바는 속일 수 있었지만 솔로몬은 숨길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믿음 있는 척, 영적인 척 꾸며도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행위는 믿음을 대신할 수 없고, 육은 영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41:25-45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다.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해니 그 꿈은 하나이라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악한 일곱 소는 칠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해 흉년이니 내가 바로에게 고하기를 하나님이 그 하실 일로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온 애굽 땅에 일곱해 큰 풍년이 있겠고 후에 일곱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기근으로 멸망되리니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 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속히 행하시리니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이 택하여 애굽 땅을 치리하게 하시고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국중에 여러 관리를 두어 그 일곱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그 관리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에 적치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국 땅에 임할 읽해 흉년을 예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을 인하여 멸망치 아니하리이다 바로와 그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봐 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급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로 애굽 전국을 총리하게 하였더라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창세기 47:13-19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식물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쇠약하니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몰수히 거두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오니 애국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진한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가로되 돈이 진하였사오니 우리에게 식물을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요셉이 가로되 너희의 짐승을 내라 돈이 진하였은즉 내가 너희의 짐승과 바꾸어 주리라 그들이 그 짐승을 요셉에게 끌어 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떼와 소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식물을 주되 곧 그 모든 짐승과 바꾸어서 그 해동안에 식물로 그들을 기르니라 그 해가 다하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고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짐승 떼가 주께로 돌아 갔사오니 주께 낼것이 아무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전지뿐이라 우리가 어찌 우리의 전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식물로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고 전지도 황폐치 아니하리이다.

     

    창세기47:23-25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날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전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추수의 오분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사분은 너희가 취하여 전지의 종자도 삼고 너희의 약식도 삼고 너희 집 사람과 어린 아이의 양식도 삼으라 그들이 가로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이 이야기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 땅을 멸망시키려고 뜻을 정하셨어요. 이 당시 애굽은 지금의 미국처럼 최고의 권력과 풍요로움을 누리는 대국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애굽을 멸망시키고자 작정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애굽 왕 바로에게 꿈으로 알려주셨지만 도무지 그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애굽의 수많은 술객들도 해몽을 하지 못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술 맡은 관원장이 자신이 왕의 노여움을 받아 감옥에 있을 때에 꿈을 해석해 주었던 요셉을 떠올리고 왕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방금 읽었던 성경은 요셉이 왕의 이야기를 듣고 해몽을 한 내용입니다. 왕이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다는 것이고 첫 번째 꿈은 칠년 풍년, 두 번째 꿈은 칠년 흉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기근으로 멸망시킬 것인데 속히 행할 것입니다. 그럼 애굽은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고 멸망이 옵니다. 이렇게 해몽을 한 후 33절에서 살아나는 방법을 이야기해 줍니다. 명철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택해서 그 사람으로 애굽 땅을 치리하게 하고 국정에 여러 관리를 두어 일곱 해 풍년에 소출의 오분의 일을 거두어서 각 성에 적치하게 하여 칠년 흉년을 대비하게 하라는 겁니다.

    , 그럼 47장에 가 보면 기근이 와서 어떻게 되었나 봅시다. 13절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식물이 없을 때 백성들이 양식을 사러 요셉에게 옵니다. 백성들은 양식이 다 떨어졌는데 요셉이 관리하는 곡간에는 양식이 있습니다. 요셉은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의 돈을 몰수히 거두어 바로 왕께 돌립니다.

    그런데 요셉이 관리하는 곡간에는 아무리 팔아도 양식이 남는데 백성들은 왜 양식이 다 떨어졌을까요? 그 이유는 약속을 믿지 않아서입니다. 41장을 보면 요셉이 한 말을 듣고 모든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좋게 여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믿지 않은 겁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다 좋은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안 듣고 왜 안 받아들이지요?

    반면에 바로 왕은 신하들에게 요셉을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로 우리가 어찌 그와 같은 사람을 얻을 수 있겠냐고 말합니다. 지혜 있고 명철한 사람은 요셉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겁니다. 그리고는 애굽 온 땅에서 요셉이 허락하지 아니하면 수족을 맘대로 쓸 수가 없다며 요셉에게 모든 권한을 내주고 그에게 속해버립니다. 바로 왕은 요셉에게 다스림을 받는 위치로 내려간 겁니다. 그래서 요셉이 애굽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곡간을 만들고 곡식을 거두어 들여서 흉년에 기근으로 인해 죽어가는 백성을 전부 다 살려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던 신하들은 양식을 사기 위해 돈을 들고 요셉을 찾아갑니다. 돈이 떨어지니까 짐승을, 짐승이 떨어지니까 땅을, 나중에는 바로 왕의 종이 됩니다. 모든 것이 다 바로 왕에게 넘어가고 나니가 그들이 하는 말은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어 애굽땅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신하들과 백성들의 마음에는 요셉이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요셉의 말을 들을 때는 좋은 말로 여기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자기만의 곳간을 만들어서 자기 힘으로 기근을 버티려고 합니다. 우리 또한 이런 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행위와 인간의 도덕과 윤리는 하나님의 선을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수단과 방법은 결단코 우리를 살게 하지 못합니다. 영과 육은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은 사람을 바꾸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영이고 그 말씀만이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만이 일을 해야 합니다. 요셉은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히브리 노예요, 이방인이며, 주인의 아내를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강간미수범이에요. 애굽의 백성과 바로의 신하들은 요셉속에 있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요셉의 말을 들을 때 은혜롭고 좋은 말씀으로는 듣지만 요셉에게 속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왜 그들은 요셉에게 속하지 못합니까? 내가 지혜롭고, 명철하기 때문에 자기를 믿고 요셉에게 속하지 못합니다. 금방패가 없는데 놋방패를 대신 만들면 될 것처럼 보입니다. 믿음이 없는데 믿음의 말을 하면 믿음의 사람이 됩니까? 사람들은 속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역사가 없다 그 말입니다.

     

    전선이 끊기면 전기를 통하지 않는데, 전선이 녹슬었든 낡았든 전선이 연결만 되어 있으면 전기는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물은 수도배관만 연결되어 있으면 20, 30층 높이까지도 올라갑니다. 그러나 1층이라도 배관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물은 올라갈 수 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을 때, 요셉이 바로를 믿을 때 무얼 보고 믿습니까? 요셉의 행위, 인격, ...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13:44)

     

    이 이야기는 밭은 육체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 당신을 비유하는 것이고, 그 밭에 감추인 보화는 예수님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유대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젊은 유대청년, 선생, 랍비, 선지자중의 한 사람으로 보았지 하나님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요셉 속에 있는 하나님을 만났던 바로는 요셉을 보면서 이와 같이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하고 하면서 애굽 전국과 자기 자신을 요셉의 손에 넘깁니다. 그리고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로 바꾸어 부르는데 그 뜻은 그를 가진 자는 산다, 신이 말씀하신다라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바로왕은 요셉이 하는 말을 히브리의 한 소년이 하는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본 사람은 예수님을 좇아가지만,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참람하도다 저가 누구기에 감히 죄를 사한단 말이야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대적하고 핍박했습니다. 성경을 알고 율법을 안다고 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대접했던 이유는 그들은 껍데기는 보지만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을 못 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를 전하고 참된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배척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며 이단이라고 낙인이 찍힙니다.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이단에 대해서는 관심 없고 무조건 자기와 맞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면 세상에는 죄가 없는 게 맞는데 어떤 교회가 그렇게 가르칩니까? 모든 교회가 죄인이라고 가르치고, 행악의 종자요 악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울의 후손인 두 므비보셋이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사람에게는 약속이 있었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약속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무얼 잘 못해서 죽고, 잘 해서 산 게 아니고 그들과 상관없이 맺어진 언약 때문에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해 놓으시고 모든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으셨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않아서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의 신하와 백성들이 왜 요셉에게 양식을 사러 가야 됩니까? 속하지 않아서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는 그 자체가 저주입니다. 이들이 요셉에게 속했더라면 곳간을 만들 필요도 없고 양식을 사러 갈 필요도 없습니다. 요셉에게 속해버리면 바닥나지 않는 요셉의 양식으로 요셉이 모든 것을 다 책임져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집은 누가 치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사업은 누가 관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고 있다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두려워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셔서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제 나이 26살 때 세상에게, 가족에게 버림받아 오 갈데가 없어 길바닥에 뒹굴면서 때로는 상여집에서, 때로는 짚동사이에서 추위에 떨고 배고픔에 지친 저를 하나님이 찾아와 주셨고 만나주셨습니다. 성경 속에 계신 하나님이 저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제 인생을 주관해주셨는데 제가 만나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처리해주시고 수 많은 재앙으로부터 저를 지켜주셨습니다. 7년 전에 제 아내는 암으로 수술을 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은 제 아내를 건강하게 하시고 제 곁에 두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을 다스리고 있는 동안에는 어떤 기근도 애굽 땅의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 없는데, 여러분에게는 왜 여러분의 곳간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바로 왕처럼 요셉에게 맡기십시오. 요셉이 애굽을 이끌어 갔던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면 여러분의 인생 속에도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완벽하고 온전하고 거룩하고 의롭게 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에도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온전케 해 놓으신 주님이 우리 삶을 이끌어 주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 애굽 땅에 나타날 때 애굽 땅의 모든 문제가 해결 되듯이 여러분 가정에 예수님이 세워진다면 길이 없고 방법이 없는 여러분의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실 것입니다. 이제 내 곳간이 아닌 요셉의 곳간 속에 있는 풍요로운 양식을 먹으면서 그 분의 복을 누리는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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