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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동현 | 2015.05.03 14:16 | 조회 5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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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낮 예배

    본문말씀 [사무엘상 30:1-15]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일들을 자기를 기준으로 분류해보면 좋은 일불행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복권을 샀는데 150억 원이 당첨되는 일이나 하는 일마다 잘 풀린다면 다들 기뻐하겠죠. 반대로 어려운 일이 생겨 망했다면 하나님께 감사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다시는 교회 나가는지 봐라.’하는 마음이 형성될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 좋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부분과 나쁜 것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우리 삶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문제나 슬퍼할 일이 일어났을 때 원망이나 괴로움에 끌려가지 않고 즐거움과 축복으로 바꾸는 비법을 압니다.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정말 좋겠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계시면서 많은 일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럼 그 많은 일들 속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어려움을 어려워하고, 슬픔을 슬퍼하고, 괴로움을 괴로워하고, 원망을 원망하셨냐?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즐거운 일이 일어났든, 슬픈 일이 일어났든 그건 그대로 놔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만 하셨습니다. 창세기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4-6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땅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 보니까 그런 문제들과 싸우지 않고 그냥 당신이 하시고 싶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한 후에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후에 그 사람을 에덴동산에 이끄셔서 모든 걸 다스리고 지키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것도 문제 삼지 않고 당신이 계획하신 대로 일을 진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창세기 210절에 에덴에서 강이 발원하였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강이 발원하여 네 근원이 되어라고 되어있는데, 에덴동산에서 발원한 물은 네 강의 근원이 됩니다. 동서남북으로 흘러가는 이 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4복음서라고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4가지 성품이라고도 하고 십자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에게서 시작된 말씀이 인간에게 흘러들어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듯, 물이 흘러들어간 땅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안개 밖에 없던 땅, 식물이 자라지 못하던 땅이 낙원으로 바뀌어 식물이 자라고, 고기가 자라고, 공중의 새가 와서 깃드는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그 후에 에덴동산을 쳐다보면 혼돈도, 공허도, 흑암도 찾아볼 수 없고 수많은 초목, 유실수로 가득차서 아름다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낙원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그려 놓은 이야기입니다. 나는 내 마음의 문제를 내가 해결하려고 애를 쓰고 싸웁니다. 마음을 바꾸고 고치려고 하며 악한 마음을 안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이 일을 하기 전까지는 마음이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일을 하실 수 있도록 나를 들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없다. 하나님이 하셔야지.’ 라고 말은 하면서 하나님이 하실 수 있도록 내 자신을 드리지는 않습니다. 왜요? 변화 받기 싫고 바뀌기 싫어서입니다.

     

    오늘 읽었던 성경에서 다윗과 그와 함께한 군사들 앞에 펼쳐진 장면은 그 동안 그들이 마음을 쏟고 정성을 드리고 모든 것을 두고 살았던 시글락이 불타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3절에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라고 되어 있는데 그 말은 잿더미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일구어 놓았던 성, 그 동안 마음을 쏟았던 삶의 터전이 다 끝나버린 것입니다. 그걸 바라보는 즉시 다윗과 함께한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슬픔이 지배를 했고 그래서 울 기력이 없도록 울었습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이들 입장에서 합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울고 있던 백성들이 다윗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합니다. 그때 다윗이 군급해서 하나님을 찾아 갑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글락이 불타는 형편 앞에서 다윗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슬픔과 원망이었습니다. 반대로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 백성들이 슬퍼할 때 다윗은 슬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이 섬기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런데 정작 이들 마음에 하나님은 죽어있습니다. 이들 마음의 하나님은 시글락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는 무능한 하나님이었습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고 있지만 우리는 문제 앞에서 어려워하고 힘들어하고 슬퍼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 말씀처럼 당신이 길이고 생명이라면 시글락이 불탄 것을 바꾸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포로로 잡혀간 내 아내와 자식들을 다시 돌려줄 주님에게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만 마음에 그런 주님이 없으니까 슬퍼하는 거예요. 다윗과 함께한 이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이 형편 앞에 어려워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내게 일어나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 나는 어렵고 길이 없지만 그 문제를 풀어나가실 분은 주님이라는 것을 알 거예요. 주님을 찾아 나갈 때 주님은 그 문제를 풀어주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형편 속에 끌려가야 되는 거예요. 수학은 정확한 공식을 통해서만 답이 풀어지는 것처럼 신앙도 정확한 믿음의 법칙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세계입니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로 이 예배당 천장의 형광등에 불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스위치를 켜도 불이 안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건물에 들어오는 변압기에서부터 들어오는 선이 끊어진 상태에서는 스위치를 켜도 불이 안 들어옵니다. 그래서 좋은 등을 달기 이전에 변압기에서 이 건물에 들어오는 전선을 연결 시켜 놓아야 합니다. 전선이 낡았든, 헐었든 전선만 연결되어있으면 전기는 전선을 통해서 흘러 들어와 불이 켜집니다. 이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수돗물이 15층이든 25층이든 올라가는 이유는 배관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층이라도 수도배관이 끊어진 상태는 절대로 물이 안 나온단 말입니다. 그 집의 수도꼭지가 금꼭지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배관이 연결되면 물이 나오고 전기는 전선을 통해 흐릅니다.

    이처럼 믿음이라는 것도 하나님과 내 마음이 연결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능력 있기 때문에 나사로가 썩어 냄새가 난 다 할지라도 나사로 속에 말씀이 들어가니까 나사로가 무덤 밖으로 나왔단 말입니다. 그 말씀이 38년 된 병자 속에 들어갔을 때 그 친구가 일어나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소경에게 임하면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에게 들어가면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고, 앉은뱅이에게 들어가면 앉은뱅이가 걷게 된단 말입니다. 이 말씀은 살아있기 때문에 이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에 전달될 때마다 그 사람이 죽었든 썩었든 냄새가 나든 결박이 되었든 소경이든 귀신들렸든 앉은뱅이든 상관없이 다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우리에게는 왜 능력이 되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다른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보고 성경은 죄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100% 믿지 않는단 말입니다. 말씀 그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말씀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 핸드폰에는 전화 버튼을 눌렀을 때 기지국과 전파를 송수신하면서 통화를 하게 하는 USIM칩이 있습니다. 제가 만약 이 안에 있는 유심칩을 빼 버리면 전화기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또 중국에서 사용하는 칩을 꽂아도 쓸 수가 없습니다. 기계를 중국으로 가지고 가면 그 때는 중국에서 쓸 수 있습니다.

    핸드폰은 여러분 몸이고, 칩을 꽂는 공간은 여러분 마음입니다. 그리고 칩은 영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도 두 가지 칩이 들어갈 수 있는데 하나는 마귀라는 칩이고 또 하나는 말씀이라는 칩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마음에는 마귀 칩이 들어 있어서 여러분이 모든 걸 생각하고 결정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86절 이하에서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이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고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할 수도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중국에서 사용하는 칩을 꽂으면 한국에서 통화를 할 수 없고 그것을 사용하려면 제대로 된 칩으로 바꿔 끼워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신앙을 하려면 내 마음, 내 생각이라는 칩을 뽑아내고 말씀이라는 칩을 꽂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교류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원래대로 말씀을 넣어 그 말씀을 따라가는 믿음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고 싶으셔서 우리 죄 문제를 해결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3624절부터 31절에서 우리 마음에 새 영과 새 마음을 넣어서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좇아 행하게 하시겠다고 기록해 두셨습니다.

     

    , 그러면 사무엘상 30장을 보면, 시글락이 불탔을 때 다윗이 절망하다가 하나님을 찾아갑니다. 그 때 하나님이 다윗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아말렉이 시글락에 쳐들어와서 불 지르고 떠나간 지 사흘이 지났습니다. 그러면 쫓아가서 따라잡는다는 것은 계산상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정녕 도로 찾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그들이 제아무리 빨리 가도 하나님이 붙들어놓는다는 말이잖아요. 다윗이 지금까지 눈에 보이는 형편을 쳐다봤을 때에는 슬픔과 고통, 괴로움이 그를 지배해서 그는 울고 원망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는 즉시 다윗의 마음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십시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제 삼일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로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이후에 다윗과 그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서 뭘 봤습니까? 성은 불탔고 사람들은 끌려가서 아무것도 없는 형편을 봤습니다. 그들 눈에는 하나님이 왜 성을 불타게 했을까? 하나님이 왜 내 아내를 끌고 가게 했을까? 왜 사람을 하나도 안 죽이고 다 사로잡아 갔을까?’ 이렇게 하신 하나님은 안 보이고, 형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으니까 절망, 고통, 슬픔이 그대로 찾아오는 겁니다. 그런데 8절을 보니까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라고 하십니다. 도로 다 찾으신다는 겁니다. 그 말씀을 듣고 다윗이 어떻게 했지요?

     

    이에 다윗이 그와 함께 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는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렀으되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인을 머물렀고 다윗은 사백 인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다윗이 쫓아갔지요? 뭘 믿고 쫓아갑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이 말씀이 다윗을 가게 하는 겁니다. 형편을 볼 때는 슬픔과 고통,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지만, 말씀을 듣고 말씀과 마음이 연결될 때에는 그 모든 슬픔과 절망을 이기고 거기서 벗어납니다. 여러분과 나도 다윗처럼 절망스럽고 고통스런 형편 앞에서 오늘을 슬프게 살 수도 있고요 그것을 이기고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살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형편에 두느냐 말씀에 두느냐에 따라서 내 삶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제 아내 이야기를 자주 하지요? 7년 전 아내가 암에 걸렸을 때 저는 제 손에 들고 있던 성경책을 집어 던졌습니다. ‘제가 30년 가까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 왔는데 내가 뭘 잘못 했기에 아내에게 암을 주시는 겁니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겁니다. 마치 자동차를 타고 가는데 긴 터널 안에서 배터리가 방전이 되어 불이 꺼진 상태에 갇힌 것 같았습니다. 앞도 뒤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빠져버렸습니다.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면서 말씀을 기억하려고 하는데 말씀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구원받았던 말씀조차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레미야 2911~14절 말씀이 제 마음에 전광석화처럼 팍 찾아왔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재앙이 아니라고?” “이게 재앙이 아니면 뭐가 재앙인데요?” 저는 하나님한테 막 대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그냥 계속 제 마음에 머물면서 결국엔 제 마음에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제 마음을 강하게 휘어잡고 제 마음을 붙잡고 있던 수많은 절망과 고통, 원망을 죽이고 성경을 집어 던지고 하나님을 욕했던 제 마음을 부끄럽게 했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는 지금 건강한 몸으로 제 곁에 있습니다. 왜요? 이 말씀이 제 마음에 들어와서 원망과 불신의 모든 생각을 잡아먹고 일을 한 겁니다.

     

    시글락이 불타는 것이 다윗에게는 싫은 일이지만 받아야 됩니다. 다윗의 눈에는 시글락이 불타서 모든 게 끝이 난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마음에는 아무것도 끝난 것이 없었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암이 걸리면 죽음이야 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 마음은 의사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형성된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살려 놓으시고 바꾸시더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이 음성을 듣지 못할 때는 고통과 슬픔과 원망 속에서 울어야 했습니다. 저 또한 아내의 암이라는 진단 앞에서 그랬습니다. 그런 저에게 예레미야 2911절과 14절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면서 절망의 늪에서 저를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제 입으로 이 이야기를 외칠 수 있고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최수현이 척수염으로 죽어 갈 때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이 말씀으로 교제했고, 변화를 입었습니다. 이 말씀은 내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믿는 자속에 살아서 역사를 합니다. 다윗이 형편을 바라보는 그 눈으로는 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말씀을 받아들일 때 절망에서 벗어나 형편을 버려두고 말씀이 이끄는 대로 좇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는다고 했기 때문에 말씀을 의지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의 마음이 말씀과 연결될 때 시글락이라는 형편을 떠날 수 있고 절망이라는 생각을 떠나 소망과 기쁨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안의 나사로를 살리고 싶으셔서 나사로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는 무덤 속에 누워있는 나를 그대로 둘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다 마음을 두고 누구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언제까지 눈에 보이는 형편을 믿겠습니까? 여러분 손에 들려있는 성경을 펴서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귀 기울여 보십시오.

     

    좀 전에 읽었던 예레미야 2911-14절 말씀에 의하면, 재앙처럼 보이는 형편이 재앙이 아니고 축복이라는 말입니다. 그럼 제 아내가 암에 걸린 것도 재앙이 아니고 축복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저 자신도 믿고 하나님도 믿으면서 사역을 했는데 그런 제 마음을 드러내어 오직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의 기점이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까지 저는 오랜 세월동안 사무엘상 15장의 사울 왕처럼 하나님의 뜻도 따르고 백성의 뜻도 따르고 자기의 생각도 받아주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의지하여 귀신도 쫓아냈지만 한편 마음엔 육신의 생각에 마음을 내어주는 더럽고 가증한 삶을 살았단 말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 넣어 놓고 돌로 입구를 막아 놓았던 것처럼 더럽고 가증한 제 생각을 내 마음에 묻어 놓고 기도하고 응답받은 걸로, 복음 전해 구원받은 걸로 덮어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런 제가 너무 싫으셔서 주님이 제 아내에게 고통을 주어서 제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리셨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비로소 내가 하나님과 저를 같이 섬기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7장에 보면 기럇여아림에 법궤가 들어온 지 20년이 되었는데 아무런 일도 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모했는데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이방의 신을 섬기고 살았습니다. 저 또한 저를 섬기고 살았습니다. 내가 깨달은 것, 복음을 전한 것, 말씀을 알고 있는 것 등으로 제 자신을 높이고 살았지 하나님만 섬기지는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73절 말씀처럼 이스라엘백성들이 바알과 아스다롯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겼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블레셋군의 손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을 건져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믿고 세상도 믿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 속에 일을 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서 일하시면 죽은 것도, 썩은 것도, 병든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아내가 암에 걸린 그 일을 통하여 아내가 암에서 낫는 은혜도 입었지만 제 마음의 암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만 믿는 믿음의 시작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때 당시 주님이 제 마음속에 가르쳐주신 마음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 418절부터 13절까지 보겠습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이 말씀 역시 하나님이 제제 주신 약속의 말씀인데 이 약속대로 제 아내 몸속에 있는 암을 지금은 찾아도 찾아 볼 수가 없도록 하나님께서 제해 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제 속에 올라오는 수많은 생각에 끌려가는 제 마음과 주님이 싸워주시고 그 생각들을 제해버리시고 오직 말씀으로만 제 마음을 잡아주셨습니다.

    시글락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울던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졌을 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윗과 함께 아말렉을 쫓아가서 잃어버렸던 자식과 아내도 찾고 모든 재물도 다시 찾아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슬퍼하고 고통 하는 그들을 무엇이 일어나 달려가게 만들었습니까?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신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고, 38년 된 병자를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다 변하고 살아납니다. 우리는 그 능력의 말씀을 내 손에 들고 읽고 있는데 왜 변하지 않을까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을 믿으신다면 이 사무엘상 30장에 일어났던 기적이, 요한복음 11장에 일어났던 기적이 여러분 가정에도, 여러분 자신에게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 은혜를 여러분 가정으로 끌어들이고. 그 역사를 여러분의 삶으로 끌어들여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가정을 도우시고 하나님이 여러분의 사업을 도우시고,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도우시는 그 은혜를 입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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