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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주 | 2015.08.16 14:42 | 조회 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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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낮 예배 (2015.8.16.)

    본문말씀 [마태복음 7:15~24]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게 모든 사람의 마음인데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사는지 몰라 그냥 열심히 하면서 삽니다. 그럼 정말 행복한 삶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행복의 첫째 조건이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끌어 모으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건강입니다. 그래서 몸에 좋은 보약은 다 챙겨 먹어가면서 우환 없이 지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길어야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인생 속에서 사람들은 돈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더군다나 우환이 없기를 바라는 집안은 늘 시끄럽습니다. 그럼 행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려고 합니다.

     

    세상 속에나 내 안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그러니 거기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진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저는 오늘 성경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사무엘하에 보면 다윗과 함께 했던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있습니다. 요나단과 다윗이 약속을 하면서 요나단이 자기 아들을 다윗에게 부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요나단이 죽고 다윗이 왕권을 얻었을 때 다윗은 사울의 집에 남아 있는 후손들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때 사울의 종으로 있었던 시바라는 사람이 등장하고, 다윗이 시바를 통해 알게 된 므비보셋이라는 사람이 등장하게 됩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의 영역을 떠나 다윗의 눈을 피해 철두철미하고 완벽하게 도망을 가서 숨어 있었는데 그곳이 로드발 암미엘 마길의 집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므비보셋을 왕궁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다윗은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너희에게 은총을 베풀기 위해서므비보셋을 데리고 옵니다. 므비보셋이 숨어 있던 곳에서 잡혀 끌려 올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정말 내가 가는 이 길이 행복한 길일까? 다윗이 명한 이 길을 따라 가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일까?’ 므비보셋의 마음에는 그런 마음이 조금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 첫 마디로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는 약속부터 합니다. 왜 그랬냐? 모르긴 몰라도 므비보셋이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상황이 어떻습니까? 할아버지, 사울이 권세를 잡고 있을 때 40년 동안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그렇게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결국 사울은 죽고 다윗이 왕이 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사울 같은 문제를 처리를 해야 속이 시원합니다. 우리는 싸우고 처리해 놓고 일을 해야 하는데 다윗은 사울의 문제를 그냥 놔두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갑니다. 사울이 끝없이 다윗의 삶을 방해하지만 한 번도 사울과 맞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생각과 형편과 문제와 사람과 싸워야 하고 부딪혀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문제들을 두고 말씀을 따라가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심지어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병사가 죽이려고 하니까 못 죽이게 합니다. 그걸 알게 된 사울이 네가 나보다 옳다고 하면서도 며칠이 지나면 마음이 바뀌어서 또 다윗을 죽이려 따라갑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우리의 마음은 문제를 그냥 두면 안 되고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속이 시원합니다. 사울이 볼 때는 다윗은 없어져야 할 대상입니다. 그런데 진짜 없어져야 할 대상은 다윗이 아니고 사울 자신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다윗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계속 그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싸우다가 결국 본인이 죽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내가 싸울 일이 뭐가 있습니까? 우리 앞에 닥치는 모든 문제는 하나님이 해결해 줄 문제이고, 처리해 줄 문제입니다.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라는 말씀은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 자기가 모든 것을 하려고 하니까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겁니다. 우리는 딱 한 가지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만 믿으면 됩니다. 우리 마음을 말씀에 맞춰놓고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올라오는 생각이나 형편을 무시할 수 있는 힘만 있다면 우리는 굉장히 달라지는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는 두 종류의 나무가 있습니다. 좋은 나무와 못된 나무인데,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으며,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합니다. 못된 나무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19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불에 던져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데, 못된 나무는 길이 없고 방법이 없습니다.

     

    성경 구약에 보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부정하다고 정해진 짐승이 있습니다.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짐승, 굽이 갈라지지 않은 짐승은 부정하다고 합니다. 둘 다 안 되는 것과 둘 중 하나가 안 되는 것도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되새김질을 하고 굽도 갈라져야 정한 짐승이라고 하나님이 구분해 놨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특별하게 하나님이 정해놓은 짐승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나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귀의 첫 새끼는 반드시 목을 꺾어 죽이라고 하시면서 그래도 그 나귀새끼를 살려두고 싶으면 어린양으로 대속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귀새끼를 살리는 대신에 어린양 한 마리를 희생 제물로 죽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이 나귀는 누군가가 대신 죽어주지 아니하면 살 수 없습니다. 나귀 자신하고는 상관없이 온전히 이 나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은혜에 의해서만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 나귀에 대해서 정해놓은 판결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못된 나무입니다. 짐승으로 말하면 부정하다 못해서 목이 꺾여 죽어야 하는 나귀새끼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고 하나님이 박희진이가 태어나거든 반드시 목을 꺾여 죽이되 박희진이를 살리고 싶으면 어린 양되신 예수님을 죽여야만 된다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살 수 있는 조건은 나한테는 1%도 없습니다. 100% 하나님의 권한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이 박희진이를 필요로 해서 박희진이를 대신해 어린 양되신 예수님을 죽이고 박희진이를 살려주면 사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멸망으로 가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찍혀 불에 던져질 못된 나무가 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이 나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손을 대 주어야만 사는 거예요.

     

    성경 로마서 1116절부터 24절까지 보면 돌감람나무 가지를 꺾어서 참 감람나무에 접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면 나도 이 가지처럼 접붙여져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꺾었다는 이야기는 잘렸다는 것을 말하는데 성경에는 죽었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로마서 6장에 보면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오.” 라고 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21절에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었는데, 하나님에게 죽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꺾어졌다, 잘려졌다, 떠났다, 분리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내 영이 분리되어있는 이 상태가 죽음인데, 이 상태에서는 다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거나 반응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 사용하는 대다수의 핸드폰 안에는 칩이 2개 들어있습니다. 검정색으로 된 작은 것과 큰 것이 있는데, 작은 것은 핸드폰 안에 있는 인터넷, 기계장치를 작동하는 칩이고, 좀 큰 칩은 기지국과 연결되어있는 통신칩입니다. 만약에 내 핸드폰과 한성용 형제 핸드폰의 통신칩을 바꿔 끼운 상태에서 여러분이 제게 전화를 하면 한성용 형제 핸드폰이 울립니다. 내게 오는 모든 전화는 내가 받는 것이 아니라 한성용 형제가 받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육체를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어서 하나님 뜻대로 살게 하셨는데, 그 속에 사단의 영이 들어와서 그때부터 우리 인간은 말씀에 대해 모든 것이 단절되고 사단에 의한 반응만 일어나게 됩니다. 사단이 마음의 생각을 지배하니까 생각을 따라 육체가 말을 하고 행동을 합니다. 육체는 전부 다 마음에서 끌어가는 생각의 노예가 되어 기계처럼 움직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 마음을 바꾸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사단의 영을 빼내고 성령을 넣어서 다시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아닌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넣어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새 삶을 살게 해주셨습니다. 말씀을 믿는 게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절대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사단은 여러분이 본 것, 들은 것을 믿게 하고 생각을 믿게 해서 철두철미하게 여러분 자신을 신뢰하게 만듭니다.

     

    롯이 요단들을 쳐다보았을 때, 그의 눈에는 요단들이 에덴동산 같고 그곳에 가면 행복할 것 같았을 겁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과 함께 사는 삶이 싫어지고 구속받고 억압당하는 것 같아 원망, 불평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내 눈에 아무리 좋아 보여도 성경에서 좋다고 해야 좋은 것이지, 성경에서 아니라 하면 아닌 것입니다. 못된 나무는 무슨 일을 해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찍혀서 불에 던져지는 게 이 나무의 운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나무를 살리기 위해 가지를 꺾어서 참감람나무에 접을 붙이셨습니다. 그래서 이 나무가 사는 겁니다.

     

    17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23저희도 믿지 아니하는 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17절 말씀처럼 돌감람나무가지가 꺾여 참감람나무에 접이 붙여지면 이 가지는 참감람나무에서 올라오는 진액을 받고 자랍니다. 누가 봐도 돌감람나무가지인데 진액은 참감람나무가지와 똑같이 받는 것입니다. 접을 붙이기 전까지는 꺾여 불에 던져져 죽어야 할 가지였는데, 접을 붙인 그 날부터 이 가지는 참감람나무에서 올라오는 진액을 받고 있기 때문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참감람나무의 진액을 조금 주면 조금 받고 많이 주면 많이 받습니다. 이 가지가 자라고 안 자라고 열매를 맺고 안 맺고는 가지의 원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100% 참감람나무에서 올라오는 진액에 의해서만 결정된단 말입니다. 그래서 자긍하지 마라 네가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너를 보존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주님 안에 들어와 사는 것 역시 우리의 의지나 각오, 노력이 아니라 100%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말씀에 의해서만 이루어집니다. 말씀에 의해서만 내가 변하고 자라며 영적으로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꺾어서 참감람나무에 접을 붙여놓았습니까? 이 가지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돌감람나무는 찍혀 불에 던져질 나무라서 그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를 살리기 위해 꺾어서 참감람나무에 접을 붙인 겁니다. 성경 한 구절 찾겠습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성경을 앞으로 이렇게 읽지 마세요. 제가 읽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세상이라는 단어는 너무 광범위합니다. 읽을 때마다 이것을 빼고 여러분의 이름을 넣으십시오. 하나님이 박희진이를 이처럼 사랑하사 예수님을 주셨으니 이는 예수를 믿는 박희진이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박희진이를 사랑해서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박희진이가 믿기를 원했고 믿을 때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박희진에게 주고 싶은 것이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멸망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꺾였습니다. 그리고 옮겨졌습니다. 골로새서 113절을 펴보십시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예수님이 박희진이를 흑암의 권세, 사단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 예수님의 나라로 옮겨놨다는 말입니다.

    돌감람나무는 흑암의 권세, 사단의 세계에 붙어있기 때문에 죽어야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친구를 건져내어서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놓았습니다.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놓으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이 가지는 참감람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삽니다. 거기서 떨어져 나가면 죽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겼는데 그렇게 한 목적은 요한복음 316절에서 알 수 있듯이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사시는, 살리는 영이십니다.

     

    예수님과 내가 연결이 되면 예수님에게서 올라오는 진액으로 인하여 살게 되어 있습니다. 참감람나무에 붙어 있는 돌감람나무가지는 참감람나무가 죽지 않는 이상 죽을 수가 없습니다. 못된 나무에 붙어 있으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기에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기에 그곳에서 꺾어내어 참감람나무 되신 예수님에게 접을 붙여 놓으니까 이 가지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흑암과 사단의 세계에서 건져내어 옮겨 놓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한다는 것은 돌감람나무 가지가 꺾어져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진 것을 의미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한다는 것은 참감람나무의 진액을 공급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감람나무의 진액이 공급되는 것만큼 이 가지에게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귤의 씨를 심으면 그 씨에서는 탱자가 올라옵니다. 서귀포에 있는 귤박물관에 가시면 입구에 커다란 귤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뿌리에서 올라오는 새 순은 탱자나무의 순입니다. 예수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에게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속에 말씀이 들어와서 이 말씀이 나를 바꾸어가고 이 말씀이 믿음의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거룩하다, 의롭다고 하시는 것이지 우리의 행실을 보고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는 우리를 끄집어내어 예수님에게로 옮기신 이유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감동도 받지만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불행하게도 자신의 행위에 끌려가야 합니다.

     

    에스겔 36:24-31

    24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것이며

    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28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29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데서 구원하고 곡식으로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게 할것이며

    30 또 나무의 실과와 밭의 소산을 풍성케 하여 너희로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열국에게 받지 않게 하리니

    31 그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불선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을 인하여 스스로 밉게 보리라

    돌감람나무가지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참감람나무의 잎을 못 만들지만 접이 붙은 그 날부터 자연스럽게 돌감람나무가지가 분명한데 참감람나무의 잎을 만들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가는 겁니다.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면, 말씀이 내 안에 거하면 그 말씀은 내 육신을 거스르고 믿음으로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말로 찍힘을 받았다면 본성을 거스르지 말라고 해도 본성을 거스르게 되어 있습니다.

    돌감람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돌감람나무에서 올라오는 진액을 거절하고 싶어도 거절하지 못하며 아무리 믿음으로 살려고 발버둥 쳐도 믿음으로 못살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을 꺾고 싶은데 안 되는 사람, 교회와 함께 하고 싶은데 안 되는 사람. 왜 안 됩니까? 꺾이지 않은 가지는 절대로 본성을 거스를 수 없고, 꺾이면 거스르지 말라고 해도 거스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 이 가지를 누가 꺾습니까? 하나님이 꺾습니다. 하나님이 꺾어서 접을 붙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죽은 자에게만 예수의 영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영이 들어온 사람만이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사단에서 끝이 나고 그리스도안에 들어와서 말씀을 공급받을 때 말씀이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말씀은 우리를 교만하게 하지 않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선생으로 세우지 않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짓밟고 무시하고 낮추며 오직 하나님만 세워 갈 것입니다. 4복음서에 보면 삭개오가 예수님이 보고 싶어서 뽕나무위에 올라갔습니다. 삭개오의 위치는 예수님을 내려다보고 판단하고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리에요. 그러나 예수님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위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는 자리에 앉아 있고, 판단하는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길바닥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자기를 비워 사람의 모양을 입고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가 인간과 같이 되어 죽기까지 인간을 섬기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만나려면 섬기는 자리로 가야합니다.예수님을 보고 알고는 있지만 마음으로 만난 적이 없기에 우리의 삶속에 그리스도가 하신 역사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달라집니다. 삭개오의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이 들어가니까 내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겠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돈 밖에 모르던 세리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달라진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할 줄 모르지만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구원받는 역사를 허락해주시고 열매를 주십니다. 그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이지 우리의 역사가 아닙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입을 열어서 복음을 전하면 구원받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가지가 접이 붙여지는 그 순간부터 이 가지는 잎을 내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단에게 속아서 망설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병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면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면 여러분의 나이가 많든 적든, 성경을 많이 알든 모르든 말씀을 믿고 발을 디디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사단은 우리를 속여 그것을 못하게 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안의 굳은 마음들을 제하고, 내 마음을 없애버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넣어 다시는 돌감람나무의 진액이 아닌 참감람나무의 진액만 받고 살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냥 지내지 마시고 자신이 분명하게 구원을 받았는지 말씀 앞에 비추어 보십시오. 말씀 앞에 비추어 분명하게 구원을 받았다면 여러분 안에는 주님이 주신 권능이 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입을 열어서 복음을 전하십시오. 여러분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과 여러분이 연결만 되어 있으면 믿음의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셨던 것처럼 우리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사단에게 속아서 육신대로 살지 마십시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생각을 따라 살 수도 있고, 말씀을 따라 살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정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공급받아 새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믿음으로 여러분이 부딪혀 나간다면 하나님은 절대로 여러분을 힘들고 고달프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이 행복입니까?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들어와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때 장 행복한 삶을 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해 놓으셨습니다. 믿음으로 육신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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