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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동현 | 2014.06.10 14:43 | 조회 5925

    본문 말씀 <열왕기하 3:1 ~ 20>

     

     말씀을 듣는 것이 어떻게 보면 참 쉬운 일인데, 그게 잘 안됩니다. 안 되는 이유가 사람에게는 있어요. 여러분이 그 정체를 발견하신다면 아마 실망을 엄청 많이 하실 것 같고요, 그래서 하나님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마음 깊숙이 파고 들어가 보면, 예수님도 믿고 나도 믿는 경우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하나님이 일을 하고 싶을 때 일을 하지 못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사울을 통해 일을 하고 싶으셔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울은 하나님을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였지만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 당신이 사울을 통해 하고 싶은 뜻을 이룰 수 없어서 그를 버려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왕으로 삼고 그를 통해 일을 하셨는데, 조건이 뭐였나 보면, ‘하나님과 마음을 합했느냐, 합하지 않았느냐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니 이새의 아들 다윗을 보니 이는 내 마음이 합한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람을 만났을 때, 이 사람은 나하고 마음이 똑같다. 이 사람하고 내가 살면 내가 행복하겠다. 이 사람하고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 이 사람하고 같이 일을 하면 내가 도움이 되겠다, 이렇게 우리가 보는 시각이 있겠죠. 그래서 여러분은 그들과 동업도 해 보셨을 것이고, 친구도 삼아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실망을 하고 이 친구는 여기까지만 사귀는 친구가 되어야지, 더 이상의 세계를 주고받을 수 없는 친구다.’ 라고 생각해 본 경험을 많으실 것입니다.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친구로 지내다가 세월이 지나가면서 어느덧 친구가 아닌,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흘러간 경우가 저에게는 참 많이 있습니다.

     

    제가 구원을 받고 믿음 안에서 살다보니까 옛날에 그렇게 많이 있던 친구들이 다 제 곁을 떠나갔습니다. 가끔 전화가 옵니다, 동창들한테서. 제가 수원에 있을 때, 인천에서 경찰 생활하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대구에 있을 때부터 연락이 되어서 몇 번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한 번도 못 만났습니다. 부산에서 큰 건축업을 하는 친구와도 만나자고 전화로만 대화를 했습니다. 또 어떤 친구는 창원에 사는데 제가 창원 집회까지 갔었습니다. 그 친구 회사가 집회장소와 가까워서 주소까지 줬는데도 안타깝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가 낮에 찾아갈 시간이 없어서 그냥 그렇게 끝났습니다.

    이렇게 친구들하고 전화로만 대화하고 딱 둘이 만났습니다. 하나는 대구에 있는 친구인데, 몸이 많이 안 좋아서 막 수소문을 해서 저를 찾았더라구요. 한 번 집에 찾아가서 잠깐 이야기도 하고 기도도 해 주었습니다. 또 어떤 여자 동창은 대덕 수양관까지 찾아와서 말씀도 듣고 복음도 듣고 좋아했는데 돌아가서는 신앙생활을 못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친구들을 만나면서 내 마음에서 친구가 그리워지고 만나고 싶고 이런 사람들이 없는 거예요. 옛날에는 친구가 좋아서 40, 50리까지 걸어갔던 사람이거든요. 제가요.

    그런데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친구들이 좋지 주님 밖에 있는 친구들은 다 잊어버리고 삽니다. 한 번씩 연락이 옵니다. 꼭 동창회 오라고. 알았다고만 하고 제가 안 가죠. 시간도 안 맞고, 교회 안에 들어와서 주님 안에 들어와서 살다가 보니까 옛날에는 마음이 참 잘 맞았던 친구들도 보고 싶어서 만나보면 할 말이 없어요. 내가 전하는 말씀을 들어주면 참 좋은데,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고 난 하고 싶고, 그러니까 대화가 잘 안 되잖아요. 형식적인 대화만 되지요. 그래서 친구들하고 다시 만날 시간들이 잘 안 만들어지는 겁니다.

     

    주님 안에 있는 친구는 10년을 만나도 20년을 만나도 늘 재미있게 지냅니다. 제가 처음에 시골에서 구원을 받았을 때에 복음 안에서 만난 친구들이 여럿이 있습니다. 부산에 가면 많이 있는데 가끔 전화도 하고 부산 가서 만나면 무척 반갑고,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는 것 같은데 앉아 보면 할 말이 많습니다. 교회 안에 살면서 일어났던 이야기, 가정 이야기, 자식 키우는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 구원을 받고 주님 안에서 벽이 없이 같은 마음을 갖고 살아가니까 마음을 다 내어놓고 대화가 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그 이야기를 듣고 내 마음에 감각되는 게 있고, 서로 마음에 공유되는 게 있으니까 마음에서 막 힘이 솟아오릅니다. 그런데 구원 안 받은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만나면 처음엔 너무 너무 좋은데 30분을 같이 있는 게 막 힘들어져요. 시골에 가면 반갑습니다.” “잘 지냈습니까?” “잘 있었나?” “. 그렇습니다.” 그러고 나면 그 다음에 할 말이 없어요. 그러면 인사하고 빨리 와야 돼요. 거기 앉아서 성경 이야기, 예수 이야기 하면 슬슬 다 빠져 나가요. 나중에 보면 아무도 없어요. 분명히 혈육이고 친구였는데 마음이 안 맞으니까 안 되는 겁니다.

     

    오늘 아침에 읽었던 성경에 보면, 여호사밧왕과 여호람왕이 너무 사이가 좋은 거예요. 두 사람이 마음이 너무 너무 잘 맞고 사이가 좋아서 어떤 일을 할 때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어 갑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 두 왕과 에돔 왕이 합세를 해서 모압을 치기 위해 군사와 병거와 백성을 모으고 전쟁을 하러 가는 겁니다. 말이 전쟁이지 전쟁을 할 때 되면 애들 장난처럼 하는 거 아니잖아요. 전술도 세워야 하고 군량미도 준비해야 되고 군인들도 점검해야 되고 무기들도 챙겨야하고 많은 일들이 있잖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지, 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적과 싸울 때 단기전에서는 이렇게 했는데 장기전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나라를 떠나서 상대 나라로 넘어갈 때는 많은 걸 계산하고 준비해 가야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잘 가다가 중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에돔 광야 길로 올라가다가 에돔 광야에 들어온 지 7일째 되는 날에, 준비해 간 물이 바닥이 났습니다. 물이 바닥났어도 광야 물이 있거나 강이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요. 그런데 물이 없으니까 문제가 생겼어요. 그 다음에 문제가 뭐냐면, 전쟁을 치르려고 올라가려고 해도 물이 없어서 죽고, 거기 있어도 죽고, 돌아오려고 해도 7일 동안 물 안 먹고 돌아오면 죽습니다. 앞으로 진행하려고 해도 죽음이고, 있어도 죽음이고, 돌아가도 죽음인 겁니다.

     

    성경에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열왕기하 7장에 보면, 사마리아 성에 아람군대가 올라와서 에워싸므로 성 안 사람들은 성문을 굳게 닫아놓고 대치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성 밖에 버려져 있었던 문둥이들이 있었단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성 안에 있던 가족, 친구들이 공급해 주는 그 양식을 의지하면서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성 안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나 친척들이 가끔 한 번씩 성 밖으로 음식을 내려주는 것만 쳐다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성 안에서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밖에 못 나가니까 양식이 닳아 바닥나고 사람들이 비둘기 똥과 나귀 머리를 사다가 그걸 먹는 겁니다. 심지어는 자기 아이를 잡아서 삶아먹기까지 합니다. 이게 사마리아 성의 실제 상황입니다. 그 정도 되면 아무리 가족이고 친척, 친구라지만 내 배가 고픈데 성 밖의 문둥이들에게 양식을 주겠어요? 이제 문둥이들 촌에 양식이 끊어진 거예요. 자기들이 의지하고 바라보고 있던 통로에서 양식이 차단되니까 죽음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이들이 뭐라고 하는지 성경 한 번 찾아볼까요? 열왕기하 73절을 보십시오.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성문 어귀, 성 밖이죠. 문둥이들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보니까, “! 어제 우리 참 잘 먹었다. 우리 어제 특별 음식을 먹었다야.” 그런 게 아니고,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였습니다. 자신들이 앉아 있는 이곳은 죽음의 장소라는 사실을 발견한 거죠. 그러면 처음부터 이 문둥이들이 이 장소가 죽음의 장소라는 걸 알고 앉아 있었습니까? 그런 건 아니겠죠? 이들은 여기 있어도 음식이 공급되고 살만 하니까 머물러 있다가, 아람진이 쳐들어 와서 사마리아 성이 에워싸이고 양식이 끊어지니까 굶주림이 찾아 온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여기 앉아 있으면 살 수 없다는 걸 발견한 거죠. 그러면서 4절에,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찌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찌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하고

    사마리아 성 안에 굶주림이 왔습니다. 비둘기 똥과 나귀 먹이를 사 먹고 자기 아이를 먹을 만큼 완전 기갈이 찾아 왔습니다.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종도 있었지만, 기근이 왔을 때 하나님을 찾지 않고 비둘기 똥과 나귀 머리를 사다 먹고 심지어는 자기 아이까지 잡아먹으면서 버티며 살려고 발악을 했습니다.

    성 밖 문둥이들에게도 똑같이 기갈이 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 안 사람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금 있는 자리가 죽음의 장소인 것을 정확하게 발견한 것입니다. 성이 주렸으니까, 성에 양식이 바닥났으니까 거기 가도 죽고 여기서도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 안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있는 장소가 죽음인 것을 발견한 문둥이들은 떠납니다. 아람 진을 향하여서요. 아람 군인들이 자기들을 죽일 걸 뻔히 알면서도 거기를 택해 갑니다. 그것 말고는 길이 없어서요.

    언제 이들이 떠납니까? 내가 있는 자리가 죽음이고 내 생각을 따라가는 삶의 결과가 망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발견하면 자기를 버리고 주님 품으로 돌아갑니다.

    회개는 내 생각을 따라가는 삶의 결과가 망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자기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가라고 해도 안 갑니다. 자기에게서 돌아서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사마리아 성 안에 있는 사람처럼 굶주리고 고통과 괴로움이 찾아와도 방법을 찾지, 하나님이 엘리사를 통해 전해준 그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내일 아침 이맘때에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 하리라.”는 그 약속의 말씀을 왜 찾아가지 않습니까? 왜 사마리아 성 안에 있는 하나님의 종을 찾지 않습니까? 왜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가지 않습니까? 형편은 망했지만 마음은 아직 안 망한 것입니다. “이 성이 지금 굶주리고 있지만 나귀 머리 사다 먹으면 돼, 비둘기 똥 먹으면 돼.”하고는 찾아가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귀 머리를 얻으려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뛰어 다니는 것처럼, 또 비둘기 똥을 주우려고 이 산 저 산을 누비고 다니는 것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비록 내가 지금까지는 망했지만 앞으로 이렇게 살면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여전히 자기 속에서 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 성 안에 길이 없고 방법이 없듯이 내 안에는 길이 없고 방법도 없습니다. 이 사실을 발견할 때 자기에게서 떠납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열왕기하 3장에 이들에게도 에돔 광야에서 물이 떨어져서 기갈이 찾아왔습니다. 그 형편 앞에 이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세 왕이 갔는데 물이 떨어지니까 여호람왕이 뭐라고 합니까? , 성경을 다시 봅시다.

    여호람이 가로되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이까 저가 대답하되 에돔 광야 길로니이다. 이스라엘 왕이 유다 왕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행하더니 길을 둘러 행한지 칠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생축을 먹일 물이 없는지라

    물이 떨어진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는도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이스라엘 왕의 신복 중에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12절은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다 이에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세 왕이 마음을 합해서 출발했는데 물이 없는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니까 두 왕의 이야기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맞죠? 에돔 왕은 지금 어디 가서 뭐해요? 인생을 살다가 보면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 빼고 하나님 빼고 내 생각이라는 왕과 형편이라는 왕을 불러들여서 일을 결정하고 진행해 갈 때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제가 이렇게 꾸며 보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여기서 나는 여호람왕이라고 칩시다. 그러면 생각이라는 왕도 끌어들이고 형편이라는 왕도 끌어 들이죠? 그래서 여러분과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여러분 누구하고 의논합니까? 여러분 자신 생각한테 의논하잖아요. 그렇지요? 그리고 누구의 소리를 크게 들어요? 형편의 소리를 크게 듣잖아요. 맞죠? 결정은 내가 내린단 말입니다. 그럼 여호사밧 왕과 여호람왕과 에돔 왕이 모여서 전쟁하러 가는 문제를 놓고 의논하는데, 이것을 우리 개인의 인생 이야기라고 생각해 보십니다. 인생을 살면서 저 정말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내 생각을 믿었고 그리고 형편이라는 왕 앞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면서 살아왔단 말입니다.

     

    여러분은 행복한 가정에서 사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종교를 인하여 가정이 파탄 났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육성회비는 제가 챙겨놔야 했습니다. 도화지 살 돈도 내가 모아놔야 했고 그러다보니 소풍을 간 기억이 별로 없어요. 한번은 소풍을 안가면 결석 처리 한다고 해서 소풍을 간 적이 있습니다. 도시락을 가져갈 수 없어서 그냥 갔다가 점심시간에 아무도 안 보는 계곡에 가서 혼자 앉아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이 그 사실을 알고 친구들하고 같이 먹게 하셨습니다. 그게 그 당시에는 정말 수치스럽고, 부끄러웠어요. ? 남보다 못나고 부족한 것, 없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저는 뭐든지 잘해야 했고 2등하면 자살할 마음 갖고 살았어요.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살아남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출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운동이다.’라고 생각하고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인생이 참 보기 좋게 구겨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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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내가 자랄 때 인생의 문제를 놓고 의논할 대상이 없었습니다. 내가 책을 펴서 책 속에 있는 수많은 길들을 찾아서 내 인생을 만들기 시작했고, 주어진 형편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내 스스로 찾아야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무너지면 내 인생은 끝난다. 내 자신이 최후의 방어선이다.’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방어선 진지를 지키려고 그렇게 막 살았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사람이 좀 강해요, 제가요. 바늘로 찔러도 피가 안 날 정도로 강한 사람이에요. 지금도 저는 바위에 던져 놔도 살 자신이 있어요. 산에 갔다 놔도 살아갈 방법을 알아요. 하도 그런 삶을 많이 살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이 깊은 산 속에 들어가더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요. 잠자는 것도 알고, 먹는 것도 알고, 짐승을 어떻게 잡는지 알고. 여러분은 몰라도 저는 다 알아요. 특히 뱀 잡는 데 도사입니다. 뱀이 어디 사는지도 다 알아요.

    그때 진짜 그렇게 살았거든요. 그런데 그 삶이 더 이상 내 인생을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운동하다가 몸을 다치고 폐결핵이 걸려서 버려졌을 때에야 알았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을 받고 지금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삶을 살아요.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 그거였어요. 그때는 내가 하면 된다는 이 생각에 잡혀 살아왔고, 이제는 하면 안 된다는 이 말씀에 잡혀 살아가고 있어요. 삶의 방향이 달라졌죠.

     

    , 이들에게 물이 떨어진 문제가 생기자 여호람은 원망을 하더라구요. 맞죠?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는도다.’ 그런데 똑같은 문제 앞에 여호사밧왕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서 하나님의 종을 찾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하나님도 필요 없고 종도 필요 없고 본인 마음대로 살다가 문제가 발생하니까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종을 찾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에돔 왕은 감각이 없습니다. 아무 감각이 없이 그냥 사는 분이에요. 여기까지가 이 사람들이 한 일의 결과예요. 맞아요? 이들이 한 결과는 자기를 믿었던 모든 신하와 백성을 끌어다가 에돔 광야, 물이 없는 그곳에 데려다 놓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거예요. 내가 하는 신앙, 내가 나를 위해서 사는 삶의 결과가 이런 삶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살다보면 형편이 어렵고 문제가 생길 때 감사합니까, 원망이 생깁니까? 그렇죠? 성경에 있는 말씀은 우리하고 잘 안 맞아요. 항상 괴로워해라, 이게 맞지. 항상 기뻐하라. 안 맞잖아요. 범사에 원망해라 말이 잘 맞는데 범사에 감사해라 하니까 잘 안 맞는 겁니다. 쉬지 말고 불평해라 하면 참 맞는데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건 정말 안 맞는 거예요. 우리 바꿀까요? 쉬지 말고 불편하고, 범사에 불평하고, 항상 괴로워하고... 그러면 잘 맞잖아요. 성경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순천에서 사역을 할 때에 아내랑 참 많이 싸웠습니다. 저는 구원 받고 3년 시골에 있다가 선교학교에 들어왔는데, 교회가 처음이었고 배운 것, 본 것, 들은 것이 모두 처음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에 에스겔 하면 에스겔이 구약인지 신약인지 구별도 못하고, 가까스로 찾고 보면 목사님은 이미 본문을 다 읽어 버렸습니다. 그런 제가 뭘 알겠습니까?

    여수에서 순천으로 나오면 첫 동네가 있는데 거기서부터 집집마다 찾아가서 대문을 두드리고 이야기하고 말씀 전하고 교제하고 그렇게 몇 개월 하다 보니까 우리 교회 앞까지 오더라구요. 처음엔 이렇게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다 온다고 하셨으면서 다 안 오시는 겁니다. 그것도 수개월 동안. 그러니까 마음이 막 어려워지는 겁니다.

    저는 1981년도에 구원받았는데, 제 아내는 70년도에 구원을 받아 교회 안에서 본 게 있고 한 게 있고, 들은 게 있으니까 전도 갔다 오면 늘 싸웠습니다. 아내가 기도해야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지 그런다고 되냐?” 라고 하면, 저는 나는 이래 배웠어! 가만히 있으면 은혜냐? 뛰어 다녀야지! 점심 먹고 무조건 전도하러 가는 거야!”라면서 싸웠습니다. 그게 삶이었으니까. 그것밖에 본 것이 없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한계가 오니까 가방 들고 나가는 게 싫어져서, 전도를 나가지 않고 성경을 봤습니다. 마가복음 7장 말씀을 보면, 귀가 먹고 어눌한 사람을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와서 고쳐달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님이 그 사람 귀와 혀에 대고 에바다라고 하니까 신기하게도 이 친구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는 겁니다. 늘 읽었던 말씀인데 그날 내 마음에 새롭게 들리면서 , 내가 귀먹고 어눌한 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 보는 이 귀와 이 눈 말고 제 마음의 귀와 눈을 말합니다.

    나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주님은 저에게 귀먹고 어눌한 자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귀 먹고 어눌한 자가 뭐 해야 돼요? 예수님 앞에 나가서 고침을 받아야 됩니다. 선교학교에 있을 때보다 순천에 사역 나와서 성경에 대해 더 많이 알았고 복음의 지식도 더 체계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빠진 게 하나 있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이해를 하고 깨닫기는 한데 그 성경을 통해서 전해준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감각되지 않으니까 내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 거였습니다.

     

    이 세 왕이 모압을 치러 올라가는 일 앞에 이들 마음이 너무 잘 맞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 빠진 것이 있어요. 세 왕들이 이곳에 전쟁 준비가 모두 다 갖추어져 있었지만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가는 길은 망하는 거예요. 열왕기하 7장에 성 밖의 문둥이들은 음식도 있고 가족, 친적, 친구들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안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들이 있는 자리가 죽음의 자리인 것을 발견하고 아람진으로 떠날 때 그들 옆에 아무도 없었지만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내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내 귀와 내 눈으로 말씀을 듣고 보지만 마음으로 못 듣고 못 보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성경 이야기를 따박따박 설명은 해 주지만 그 사람 마음은 못 이끌어 내는 겁니다. 내가 못 들으니까 귀가 먼 사람이고, 말은 열심히 전하는데 듣는 사람이 못 알아들으니까 내가 어눌한 사람인 거예요. 어눌한 자가 어떤 건지 압니까? “너네 예배 때 졸면 큰일 난다.” 이렇게 말하면 알아듣습니까? 못 알아들었죠? 그게 어눌한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제가 귀 먹고 어눌한 자인 것과 주님 앞에서 지금 고침을 받아야 하는 자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제 틀을 내려놓고 점심 먹고 무조건 가방 들고 나가는 일을 그만 뒀습니다. 그리고 에라 모르겠다.’하고는 전도도 안 나가고 성경 보다가 기도하다가 울다가 웃다가 그런 삶을 살았어요. ? 안되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나님이 제 마음을 그렇게 바꿔 주신 후,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살다 보니까 누군가가 예배당 문을 열고 찾아오는 겁니다. 그리고 교회를 한 번도 안 나와 본 사람이 자기 동생을 교회에 맡기고 가고 그 동생과 함께 그 어머니가 교회를 나오는 겁니다. 또 얼마 안 있으니까 어떤 교회에서 누구라고 하면서 데리고 오고, 어디에 누구 있으니까 찾아가라고 하는 겁니다. 그 날 이후부터 내가 찾아다닐 때보다 더 바쁘게 움직이게 하더라구요. 그리고 몇 달이 지났는데 예배당 안에 26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것도 어른들만. 내가 해서 데리고 온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에 하나님이 그렇게 일을 시작하신 겁니다. 내가 보기에 전혀 구원을 받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인데 복음을 전하면 구원을 받고 제 발로 교회를 나와요. 어떤 이는 구원도 안 받고 교회부터 나오고 그러니까 그냥 되는 거예요. 내가 해 보려고 할 때는 안 되고 만날 싸움만 했는데 내가 하는 것을 끝내고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시니까 그냥 술술 실타래 풀리듯이 풀려나갔습니다.

     

    여기도 보세요. 이들이 한 결과는 광야에서의 죽음인데, 여호사밧왕이 그 문제를 들고 하나님의 종을 찾고 거기서 나오는 말씀을 따라 가니까 일이 저절로 풀리는 겁니다. 그들이 볼 때는 물이 없는 것이 죽음이고 끝이었지만 엘리사 앞에 내려놓고 말씀대로 개천을 파니까 물이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모압 사람들은 물에 비친 햇빛을 피로 보고 이 세 왕이 자기들끼리 싸우다 죽었다고 여기고 노략물을 가지러 갔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 사람들한테 다 죽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겼죠? 그 사람들 다 살았죠? 노략물 얻었죠?

    , 누가 일할 때? 하나님이 일하실 때. 하나님이 개입되니까 이 문제 그냥 쫙~ 풀어져 나가는 겁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이 할 때는 어렵고 망하더라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내가 뭘 하는 게 아니고 나를 어쨌든 빼 내는 일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항상 나를 빼요. “너 좀 참아라. 아서라. 설치지 마라. 희진아, 네가 설치면 버린다. 빠져라.” 그러시죠. 그런데 우리는 내가 해야 될 것 같죠?

     

    읽었던 말씀을 보면, 사람이 의견을 모아서 한 일은 에돔 광야에서 죽이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이 하신 일은 이 문제를 풀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을 살려내신 겁니다. 신앙은 내가 뭘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개입되고 있는 것 자체는 망한다고 성경은 이야기 해 놨습니다. 문둥이들이 사마리아 성을 떠나 아람 진으로 갈 때 분명히 죽어야 하는데 살잖아요. 맞죠? 또 사마리아 성에서 끝까지 성문을 사수하던 장관은 죽음을 당하지만 문둥이들과 장탐꿈의 말을 듣고 성문을 열고 뛰쳐나온 사람들은 살잖아요. 죽어요? 살아요.

     

    우리는 그 성안에 있는 사람처럼 고집부리며 내 생각을 사수하면서 삽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문둥이 말이 맞더라.” 하는 말을 듣고 뛰쳐나온 것처럼, 여러분이 내 생각이 틀렸고 말씀이 맞다는 것을 발견하면 터치고 말씀 편으로 가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복되게 이끌어 주실 겁니다. 우리는 내 고집을 따라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이 맞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사마리아 성에 당신의 종을 두셨고, 이들이 인간의 방법으로 가다가 에돔 광야에서 죽음 앞에 가야 하니까 그 광야 어딘가에 당신의 종 엘리사를 두었단 말입니다. 뭐하려고? 그들이 어렵고 힘들 때, 당신이 찾을 때 일해 주시려고.

     

    여러분이 평상시에 내 인생은 내 거라고 교회도 종도 하나님도 다 버리고 맘대로 살아도 하나님이 저 놈이 저러다가 또 엎어지면 어쩌나?’ 하고 누구를 붙여놔요? 당신의 종들을 붙여 놔요. 10년에 한 번 찾아도 거기 놔둬요. 하나님은 여호사밧이 찾을 것을 알고 엘리사라는 종을 뒀던 것처럼, 이 시대에도 우리 가운데 교회를 두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종을 두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서 길을 열어주신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그 길을 열어 주고 싶어하십니다. 여러분이 어렵습니까? 성경을 펼쳐 놓고 주께 나가서 물어 보십시오. 원망하지 마시고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을 찾아갔던 것처럼 주님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그 주님은 여러분 인생의 길을 열어 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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