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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동현 | 2014.06.10 14:45 | 조회 6633


    본문말씀 (룻기 3:1~18)


     창세기1장 말씀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의 깊음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창조한 땅이 왜 이럴까? 하나님께서 땅을 창조했으면 좀 멋지게, 문제없이 해야지 하나님이 만든 작품이 영 형편이 없어요.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거예요.

    2장에 들어가니까 이 땅에는 경작할 사람이 없고 아직 초목도 없는데, 안개만 올라와서 지면을 적시는 그 상황이 갈수록 태산인거예요. 땅은 너무 형편이 없는데, 하나님은 안개가 올라오든가 말든가, 땅이 혼돈 하든가 말든가, 그냥 놔두고 빛을 창조하시고, 물을 끌어 모으고, 땅을 드러내고, 드러난 땅에 식물이 나게 하시고, 공중에는 새가 날게 하시고, 그런 일만 계속하시더라고요. 분명히 2장의 땅은 안개가 올라와서 지면을 적시고, 경작 할 사람도 다스릴 사람도 없는데, 그 땅이 나중에는 다 바뀌어져 있는 거예요. 안개가 언제 사라졌는지 없어졌어요. 그 땅이 낙원으로 바뀌어져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혼돈하고 싸운 적도 없고, 공허하고 싸운 적도 없고, 흑암하고 싸운 적도 없어요. 다만 당신의 일을 하셨습니다.

    오늘 읽었던 성경 룻기318절에 보면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위 말씀속의 이 사건이란 밤에 룻이 보아스의 품에 들어가서 보아스의 발취이불을 들고 이불 속에 누웠다가 보아스를 만나서 거기서 이루어진 대화의 내용을 말합니다. “기업을 무를 자가 보아스 당신입니다.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으소서.” 라고 룻이 이야기하자 기업 무를 자중에 나보다 유력한 자가 있는데, 그 자가 네 기업을 무르면 좋으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고 보아스가 대답했습니다. 룻이 그 약속을 받고 보아스의 품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고, 그 이야기를 들은 시모 나오미가 룻에게 한 이야기가 바로 18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이제 너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는 것이죠. 여행자가 여행을 하다 자동차를 타면 그 순간부터 앉아서 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 다음에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누구를 말합니까? 그 사람은 너를 만났던, 너에게 약속을 줬던 보아스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네가 설칠 필요도 없고, 뛰어다닐 필요도 없고, 네가 할 일은 다 끝났어. 그가 네 일을 할 거야. 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교회에 와서 성경 이야기를 듣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약속을 주셨습니까? 이 날 밤에 룻이란 여자는 보아스 품에 들어가 보아스로부터 약속을 받아 왔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는데,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한테 무슨 약속을 해주셨습니까?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주신 약속이 있어요. 그 약속이 무엇인지 찾아보겠습니다.

     

    예레미야 31: 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라는 종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새 언약을 세워 주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시고 율법,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성경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그때가 B C 1491년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때 인간세계에 법이 왔습니다. 그 율법에는 무엇 무엇을 하라,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 마라행하라두 가지로 되어있어요. 이건 누가 해야 되는 겁니까?

    율법을 받은 인간인 우리가 이것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이 율법은 천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베풀어 준 법이고 돌판에 기록되었습니다. 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율법에는 용서와 긍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아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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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오늘 읽었던 예레미야 3131절에서 하나님이 새 언약을 주겠다 고 약속하시면서 32절에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여기서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은 조금 전에 말했던 율법을 말합니다. 율법이란 언약을 줬는데 못 지키기 때문에 새 언약이란 약속을 준 것입니다. 같은 법을 주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못 지키는데, 그래서 같지 않다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에서 남편을 난하주에서 찾아보면 주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주가 되어 있어도,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내 언약을 지킬 수 없는 자다. 내가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고 깨뜨렸다는 것입니다. 지키지 못했는데, 못 지키는 법을 또 주면 뭐하냐? 그래서

    문제가 안 되는 새 언약을 주겠다는 겁니다. 이 새 언약에 대한 정의가 33절에 나옵니다.

    33절에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이 새 언약을 누가 어떻게 주겠다는 겁니까?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 즉 마음이겠죠!

    그럼 사람들의 마음에 누가 기록을 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새 언약을 내 마음에 기록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었던 룻기 3장에서 보아스가 룻에게 준 약속은 룻의 마음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그 날 밤에 육체의 몸을 가진 룻이란 여자가 인간의 어떤 도덕이나 양심의 선을 넘어서 남자가 잠을 자고 있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 속에 들어가서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거기서 얻었던 약속이 뭡니까? 내가 네 기업을 무르리라. 는 약속을 보아스에게서 받습니다.

    그걸 들고 집에 돌아 와서 마음을 내놓았을 때, 시어미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하는 말이 너는 가만히 앉아서 쉬어라. 그 사람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즉 약속을 반드시 이루어 줄 것이다 고 이야기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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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예레미야라는 당신의 종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방적인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하나님은 왜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너는 못하니까 새로운 언약이 필요해 라고 정하셨을까?

    자 그 이유를 찾아볼게요.

    로마서 3:9-23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일방적으로 하신 말씀은 의인이 없다, 나 찾는 자도 없다, 깨닫는 자도 없다, 선을 행하는 자도 없다. 라는 것입니다. 나는 모태신앙인데, 우리 집안이 3대 기독교 집안으로 하나님 찾았는데, 왜 안 찾았다고 말을 합니까? 라고 우리는 핏대를 올리면서 이야기 할 수 있겠죠. 나는 이상 없고 나는 잘하고 있는데 나는 정말 문제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너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날 보고 문제 있다면 내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인간의 행위로써, 인간의 수고로써 내가 무엇 무엇을 했어, 내가 무엇 무엇은 하지 않았어...... 그런 식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법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라는 것입니다.

    시편 14: 1-5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시편이 기록된 것은 B C 1050년경에서 500년경이고, 시편은 총 3권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럼 율법이 B C 1491년도에 모세를 통해서 시내산에서 내려왔다고 가정할 때, 하나님은 율법을 주신 이후부터 시편에서 이 말씀으로 사람들에 대해 단정을 내리실 때 까지 인생을 굽어 살펴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31장에서도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인간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시편의 말씀과 예레미야의 말씀을 정리해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하여 인생을 굽어 살폈는데, 사람들이 다 함께 치우쳐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고 결론을 내리시면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새 언약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 의인이 없다 결론을 내리셨는데, 그게 오늘 읽었던 로마서 39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B C 627년경에서 585년경에 기록된 책이 예레미야서라고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그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율법이 내려 온 시점은 B C 1491년도 였고, 예레미야서가 기록된 연도는 B C 627년경에서 585년경이고, 시편은 B C 1050년경에서 500년경입니다.

    예레미야서가 기록된 연도와 시편이 기록된 연도를 같이 살펴보면 두 시대 중에 공통된 기간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이 오는 시점 B C1491 년을 대략 B C 1500년으로 잡으면 율법은 B C1500년에 왔고, 예레미야서가 기록된 B C 627 년까지와 시편이 기록된 B C 500 년경 까지 즉 1000년 동안을 하나님께서 인생을 굽어 살피셨다는 이야기이죠! 눈동자를 돌리지 아니하고 1000년 동안 과연 내 법을 지키는 인간이 있을까? 지각이 있는 자가 있는가? 지켜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내려진 결론이 인간은 안 되기 때문에 이 법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새 언약을 주겠다고 결정을 내리시고 그 약속을 예레미야를 통해서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율법을 따라 제사하는 제사법을 말합니다. 죄를 범한 사람들이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번제를 드려 죄를 씻는 규례를 말합니다. 그 법을 좇아 1년 한번 대속죄일에 속죄 제사를 지내지만 그 제사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없애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속죄 제사가 죄를 없애주었더라면 이 제사가 반복될 필요가 없는데, 이 제사로는 온전케 할 수 없어서 해마다 반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10: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 제사로 온전케 되는 일이 가능했다면 이제 더 이상 죄로 인해서는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제사가 끝이 나지 않겠느냐? 끝이 나지 않고 반복되는 이유는

    10: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이 제사가 1년 동안 백성들이 범한 죄는 씻어주었지만 그 죄를 온전히 없애주지 못했다 그말입니다.

    10: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율법을 따라 드리는 그 제사 방법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한 몸을 예비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10: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옛날에는 둘둘 말아진 두루마리나 양피에 말씀을 기록했기에 성경을 두루마리 책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한 몸을 예비하셨고 그 분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이 땅에 오셨고, 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가 예레미야서 3131절에서 34절에 기록되어 있고, 그 때가 이르면 새 언약을 주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10:8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율법을 좇아드리는 어떤 예배든, 어떤 제사든 하나님은 안 받아요. ? 당신의 약속이 온 그날부터 하나님은 이런 제사는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10: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 둘째 것이 예레미야 3131-34 절에서 말씀하시는 새 언약입니다.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나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한다 고 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죽는 죽음은 첫 것을 폐하고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놓은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36년 동안 식민지생활을 했던 과거가 있습니다. 부끄러운 역사라고 인정을 안 해도 사실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다른 나라와 단절된 채 사는 동안 일본은 문호를 개방하고 서방국가들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니까 우리가 활 쏠 때 그들은 총 만들고 우리가 말 탈 때 그들은 자동차 타고, 비행기도 타고 다녔단 말입니다. 그래 가지고 갑자기 한국에 밀고 쳐 들어오니까, 그때는 이 순신 장군도 안 된단 말입니다. 구식무기로는 그 신 무기 앞에 속수무책 일방적으로 짓밟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문호를 개방해서 서구의 앞선 문물을 받아 들였다면, 우리가 일본을 확 휘어잡아 끌고 다닐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전 세계를 향하여 문을 활짝 열고 그들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조그마한 나라가 전 세계를 쥐고 흔들 만큼 힘 있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수출 무역 분야에서는 세계 7, 경제 분야를 통 털어서는 10위의 경제 대국을 이룩했습니다. 문호를 개방하니까 이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삽니다. 믿음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석유가 안 나옵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산유국입니다. 석유가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산유국이 되느냐? 아프리카에서 나오는 원유를 사들여 우리나라에서 정제해 다시 다른 나라에 팔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없어도 수입해 오니까 산유국이 되는 것처럼 내게는 의가 없고, 거룩이 없고, 진실이 없어도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의와 거룩이 없다는 걸 발견한 사람은 자신에게서 그런 걸 찾으려고 발버둥치지 않고 사오면 되는 것입니다. 얼마인지 물어보고 사오면 되는데, 성경에서는 그 값이 공짜라고 합니다. 그것을 거저 받아들여 내 것을 만드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내게 없는 하나님의 의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예레미야 31:33-3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새 언약은 바로 이 약속을 말합니다. 그것을 내가 받아들여 내 안에 넣어놓으면 내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의를 나에게 주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준 약속이 무엇입니까? 과연 내가 네 기업을 무를 자이나 나보다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 자가 네 기업을 무르면 무르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무르겠다 고 약속을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유력한 자는 율법을 말합니다. 그 유력한 자가 포기를 하자 보아스가 기업을 무릅니다. 율법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셨다 고 로마서8장에서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교회를 다니는 자가 정죄함이 없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읽어야 정죄함이 없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라야 정죄함이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 예수님 안에 들어 오는자, 약속 안에 머무는 자, 새 언약의 약속 안에 들어와 있는 자를 말하는 겁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는 통행금지법이 있었습니다. 그 법이 우리를 지배하는 동안 밤 열두시 넘어 돌아다니면 야간통행금지 위반이 되어 벌금을 물든지 구류를 살든지 그런 형벌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통행금지법이 해지되었습니다. 통행금지해지법이 새로 제정된 것입니다. 통행금지 해지법이 세워진 그 날부터 우리는 통행금지법에 끌려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 그리스도 안이라는 것은 그 말씀을 믿는 자를 말합니다. 약속 안에 머물러 있는 자, 약속을 믿는 자를 말합니다. 성경을 알아도 안 믿는 자가 있고 몰라도 믿는 자가 있습니다. 알아야만 믿는 건 아닙니다. 성경을 다 몰라도 하나님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이해가 되든 안 되든 받아들이면 됩니다. 환자가 의사가 자신을 어떻게 치료하는지 알고 치료를 받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이 길을 몰라도 네비게이션이 가자는 대로 따라가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로마서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율법에는 무엇 무엇을 해라, 하지마라 고 되어 있는데, 이 율법은 옳은데 율법의 요구를 들어줄 인간이 연약해서 율법을 못 지키는 거예요. 그래서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율법은 B C 1491년에 이 땅에 와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 까지 인간을 통해서 율법의 의를 이루려고 했지만 율법은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육신의 모양 즉 인간의 몸을 입은 예수를 이 땅을 보내서 그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한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의 마침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고 마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930절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해야 할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친히 이루시고 끝을 내셨기에 우리 인간은 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끝내 버리시고 새 언약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렇게 나를 온전하게 해 놓으신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새 언약이란 약속을 이루어 놓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나와 똑같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내 이름으로 율법의 모든 요구를 끝을 내시고 마쳐 버리셨단 말입니다. 그러면 더 이상 내가 율법의 요구를 들어 줄게 없다는 말입니다. 내 대신 예수님이 다 해 놓았기에 하나님은 너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룻은 보아스의 발치 이불을 들고 들어간 자리에서 약속을 받았고, 그 일을 성취하기 전에 는 보아스가 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약속하신 보아스가 일을 성취하기 전에 쉬지 않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당신이 친히 이 일을 이루셨기에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없다 는 것입니다.

    룻기 3:18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여러분과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주님이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이 일을 마치는 그날 까지 결코 쉬지 아니하신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무얼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은 무얼 하는 것이 아니고 주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손에 들려 있는 성경을 펴서 성경을 대하십시오. 네비게이션을 따라 가면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가게 되어 있는 것처럼, 성경은 우리에게 신앙의 길을 제시해 줍니다. 성경은 길과 진리입니다. 말씀에다 마음을 하나하나 비추시고 체크하다 보면 더디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십자가의 의가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이 룻이 나오미의 말을 좇아 보아스 품에 들어갔을 때 약속을 받아 왔습니다. 그 약속이 룻을 쉬게 하고 기업을 잇게 하고, 보아스의 연인이 되어 그리스도의 계보에 올라가는 복된 삶을 살게 했습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에게 이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은 여러분 손에 들려있는 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말씀을 펴고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그 말씀의 약속은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그 약속은 여러분을 쉬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시는 행위에 허우적거리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아니하고, 쉬고 자유한 삶의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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