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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동현 | 2014.06.25 19:44 | 조회 6955

    본문말씀 (시편 91:1-16)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누구보다 내가 나를 잘 알아.’ 라고 생각하면서 살 겁니다. 자식 된 자들은 부모님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 할 겁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이 부모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요? 제가 성경을 대할 때마다 처음에는 하나님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말씀을 대할 때마다 입이 다물어집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갖고 나를 대하셨구나!이런 마음으로 나를 기다려주셨구나! 그런 부분들이 요즘에 조금씩 보입니다. 그러면 나는 이런 주님을 어떻게 대하고 살았는지를 돌아보니까, 하나님의 마음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소리를 듣고, 엉뚱한 말을 하고, 엉뚱한 삶을 살고 있는 저를 보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주님 앞에 너무 감사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나를 한없이 기다리고 있는 그 하나님의 마음이 보여져서 오늘 아침에는 그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읽은 시편 91편에 보면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라고 표현이 돼 있습니다. 저는 아직 이 세계가 얼마나 깊은 세계인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근간에 새벽마다 성막을 형제 자매들과 같이 공부 하면서 이제 겨우 물두멍에 왔는데, 너무 신비로운 거예요. 이 물두멍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이야기는 성경 출애굽기 308절에 있습니다. 이 물두멍에 물을 항상 담아 놔요. 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이나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일을 하는 제사장들이 이 물두멍에서 손발을 씻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씻는 것이 아니고 씻어서 죽음을 면하라고 돼있어요. 다시 말하면 씻지 않으면 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의 은밀한 곳이라 하면 성막에서 지성소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지성소 안에는 법궤만 덜렁 혼자 있습니다. 그 법궤 안에는 십계명 돌 판이 들어있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도 있고, 만나 항아리도 넣은 다음 뚜껑을 덮고 그 위에 하나님이 앉으셔서 우리 인간을 만나시겠다고 약속을 해준 장소입니다.

    성막 안에는 휘장을 통해 성소와 지성소가 구분되어 있는데, 휘장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으로 딱 보이는 것이 향단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에 떡상이 있고 왼쪽에 등대가 있습니다. 성소 위에는 지붕을 덮는데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짠 앙장 그룹을 제일 안에 덮어요. 그리고 제일 마지막 밖에는 해달의 가죽으로 뚜껑을 덮어요. 그 안에 염소 털, 붉은 물들인 염소 털, 이렇게 네 겹으로 성소 위가 덮입니다. 그러면 그 안에는 빛이 못 들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등대가 필요한 거예요. 성소에서 다시 휘장을 열고 들어가면 지성소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법궤만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지성소로 들어가야 하는데, 거기가 시편 91편에서 이야기해주고 있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이 계시는 그곳입니다. 거기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존자의 그늘 아래 들어온 사람을 향해서 하나님이 방패가 되시고, 울타리가 되시고, 담이 되시고, 그를 위해 싸우시고 대적을 무너트리고 막아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에서는 인간이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에요. 거기서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시고 말씀을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25:17-22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찌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말씀에 거기서라고 있습니다. 거기속죄소 궤 위’, 다시 말하면 법궤 시은자 위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지성소에 가야 하는데, 성막의 문을 지난 후에 번제단을 통과해야 하며,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은 다음에야 성소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 성소를 통과한 후에 비로소 그 다음에 지성소에 들어가는데 지성소에 들어 갈 때는 반드시 그릇에 희생 제물의 피를 들고 들어 가야합니다. 휘장 문을 열고 그 피를 일곱 번 뿌릴 때에, 하나님이 그 사람을 받으면 일곱 번을 다 뿌리는데, 반대로그 사람을 안 받거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받지 않을 때는 그 피를 뿌리는 제사장이 거기서 죽어버립니다. 제사장이 입은 에봇의 소매 끝에는 방울이 달려 있는데, 이 소리가 여섯 번 들리다가 일곱 번째 안 들리면 그 제사장은 죽은 겁니다. 그건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시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실 모든 이야기를 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우리가 가야할 곳은 하나님의 은밀한 곳입니다. 나는 거기 못 들어가요. 그래서 하나님이 내가 그 곳에 갈 수 있도록 당신이 모든 걸 준비해서 나를 친히 붙잡고 거기까지 나를 이끌어 가시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여기 들어가서 이 하나님을 만나느냐? 구원 받았다고 이 하나님을 다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대하시면서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제가 말씀을 보면서 만나는 하나님은 다릅니다. 왜 다른지 아십니까? 저는 여러분보다 무식하고, 교양도 없고, 인격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못 보는 걸 저는 봅니다. 그것은 세상의 학문으로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하고 여러분의 관계가 만들어질 때만 이루어지는 세계입니다.


    요한복음 153절을 보면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라고 돼있어요. 이 말은 여러분이 믿든지 안 믿든지 모든 인간의 죄는 이미 해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1945년도 해방과 동시에 통행금지법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통행금지 해지법이 세워진 것은 제5공화국이 출범하던 1982년도입니다. 우리는1945년도부터 1982년도까지 통행금지법 때문에 4시간을 빼앗기고 살았습니다. 그 법에 묶여서 타의든 본의든 12시 전에 집에 가야하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새벽 4시 먼동이 틀 때까지 기다렸다가 통행금지 해지 사이렌이 울리면 바깥출입을 했단 말입니다. 통행금지 해지법이 세워진 이 시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통행금지 해지법 아래서 통행금지라는 것에서 자유하고 있습니다. 내가 믿어도 자유고, 안 믿어도 자유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과 우리를 위해 뭘 해주셨느냐?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서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 있는 우리를 해방하실 계획을 세웠고, 그 일을 예수님은 완벽하게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참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과 너무 다른 생각과 사상과 교리에 잡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들 마음에는 그들이 범하는 죄 때문에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 지금도 죄를 안 지으려고 애를 쓰고 노력하며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오늘 읽었던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이 사람은 뭘 할 것이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깃으로 나를 보호해 주고 하나님께서 나의 방패가 되어 나를 지켜주기 때문에 절대로 재앙이 내게 미치지 않습니다. 이곳은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겁니다. 여기는 어떤 누구도 나를 해 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 하나님 당신이 나를 지켜주시며 나를 그렇게 이끌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게 어디입니까?


    요한복음 15: 3-4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한복음 15:7 저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이야기가 로마서에서는 돌감람나무 가지를 꺾어서 참감람나무에 접을 붙이는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돌감람나무 가지가 꺾여져 참감람나무에 접이 붙여지는 순간부터 참감람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을 공급받으면서 살게 됩니다. 그 이야기를 다른 말로 바꾸면 포도나무는 예수님, 이 포도나무를 관리하는 농부는 하나님, 그리고 가지는 우리들을 가리킵니다. 그럼 우리를 꺾어서 이 포도나무에 접을 붙이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꺾는 게 아니고 누군가가 꺾어줘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잎을 싱싱하게 내는 게 아니고 뿌리에서 밀어줘야 잎을 싱싱하게 냅니다. 뿌리로부터 영양분이 공급되어야 꽃을 피우고 자라며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주님의 은밀한 곳에 거하면 하나님이 이들을 위해서 방패가 되고 깃이 되고 울타리가 되고 담이 되어서 그 사람에게 찾아오는 모든 것을 당신이 막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에 수시로 올라오는 마귀가 넣어 주는 생각에 끌려가지 않을 겁니다. 나는 생각에 끌려가고 어둠에 끌려가고 불신에 끌려가는데 나를 잡고 있는 하나님이 끌려가도록 놔두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잠언 7:1-4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내 명령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우리에게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밀한 곳에 찾아온 이 자를 위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놓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걸 다른 성경에서는도피성이라는 그림으로 그려놓았습니다. 요단강 이편에 3, 저편에 3개로 총 6개의 도피성이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문 장소에서 하루 만에 달려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성읍들을 도피성으로 정해 놓았습니다. 그 이유는 부지중에 죄를 범한 자가 피의 보수자로부터 도망을 가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거기에 들어온 자는 절대로 내어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도 당신이 그 깃으로 덮어서 재앙이 미치지 못하도록 막아주십니다. 언제? 그 가지가 꺾여져 접이 붙여졌을 때부터 뿌리에서 오는 진액을 공급 받아 비록 돌감람나무 가지지만 참감람나무처럼 살 수 있는 은혜를 입는 겁니다. 여러분과 내가 사단이란 굴레 속에서 꺾여지고 버려져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하게 될 때, 그때부터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하나님이 완벽하게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겁니다. 이 주님 안에 들어오면 다 쉬는데 안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루어져있는데 안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의 이야기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사울 왕이 기름부음을 받아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당신의 종 사무엘을 통해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사울에게 이야기 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왕에게 왕은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는 당신이 어떻게 살아 왔든지 간에 지금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 어떤 것도 남겨두지 말고 진멸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사울은 전쟁에 나가 승리를 거두고 기념비까지 세웠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은 사울을 왕 삼은 걸 후회하고 계셨습니다. 사울과 하나님과 지금 뭐가 안 맞습니다. 마치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 나가 제사를 드리는데, 하나님께서 가인과 가인의 재물을 안 받으니까 가인이 분해하고 안색이 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이 아닌 자기 지혜와 명철을 따라가니까 말씀이 변질되었습니다. 사울은 아말렉과 전쟁을 하러 가서 기름지고 살진 송아지와 양을 사로잡아 오고 아각 왕을 살려 두었습니다. 살진 송아지와 양은 백성들에게서 나온 것이고, 아각은 사울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 말씀에다가 백성의 뜻도 섞었고 자기 뜻도 섞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섞는 것을 절대 원치 않으십니다. 인간이 뭘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단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뭘 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는 말씀에 내 생각을 보태서 일을 하는 겁니다. 이것은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에다 생각이 더해지고, 백성의 소리가 더해지고 세상의 이치가 더해진 것을 말씀으로 씻으라고 하십니다.

     

    에스더가 수산 궁에 있을 때 하만이 유다인을 죽인다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이를 본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이 대궐 문 앞에서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쓴 채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에스더가 이 사실을 알고 모르드개의 굵은 베옷을 벗기고 새 옷을 갈아입히려는데 모르드개는 거절합니다. 그리고 하만의 조서를 하닥에게 주면서 에스더에게 보여주라고 합니다.

    봐라. 온 유다인이 죽게 되었다. 너는 가만히 있지 말고 왕 앞에 나가라. 네가 왕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인지 누가 아느냐?”

    라고 말합니다. 그때 에스더는 왕 앞에 못 나간다고 딱 잘라 거절합니다. 누구든지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 왕 앞에 나아가는 자는, 왕이 금홀을 내밀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는 나라의 법을 내세워 거절합니다.

    그러는 에스더를 보고 모르드개는

    네가 만약 잠잠하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겠지만 너와 네 아 비 집은 다 죽어. 반드시 죽어.”

    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네가 거기에 있으면 죽어. 왕 앞에 나가야 살아.’ 이 뜻이잖아요. 에스더가 이 말을 받아들입니다.

    에스더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나가라고 강하게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2, 3장을 읽어보면 에스더에겐 부모가 없어서 모르드개가 딸처럼 키웠다고 했습니다. 에스더는 그의 말을 아버지 말처럼 그대로 믿고 따랐습니다. 그런데 왕후가 되어 수산 궁에 들어가서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마음에 모르드개의 말을 거부하는 힘이 생겼습니다. 이 마음을 따라 살면 에스더는 죽습니다. 모르드개가 그것을 일깨워 준 것입니다.

     

    사울 왕이 무슨 잘못을 해서 버림을 받았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것을 섞었습니다. 에스더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르드개는 그것을 알기에 에스더와 싸워서 그녀 마음의 생각을 확 뽑아버린 겁니다. 그리고 옛날 모르드개의 말을 그대로 따랐던 마음으로 말씀 앞에 그대로 반응하도록 에스더의 마음을 정결케 만들어 갑니다. 에스더가 자기의 마음을 버리고 모르드개의 마음을 받아서 부담스럽고 싫지만 왕 앞에 나가 은혜를 입는 이야기가 5장에 나옵니다.


    에스겔서 22 : 17-2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내게 찌끼가 되었나니 곧 풀무 가운데 있는 놋이나 상납이나 철이나 납이며 은의 찌끼로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다 찌끼가 되었은즉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로 모으고 사람이 은이나 놋이나 철이나 납이나 상납이나 모아서 풀무 속에 넣고 불을 불어 녹이는 것같이 내가 노와 분으로 너희를 모아 거기 두고 녹일찌라 내가 너희를 모으고 내 분노의 불을 너희에게 분즉 너희가 그 가운데서 녹되 은이 풀무 가운데서 녹는 것같이 너희가 그 가운데서 녹으리니 나 여호와가 분노를 너희 위에 쏟은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기를 보면,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께 찌끼가 되어 하나님께서 그 찌끼를 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1: 9-13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 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허무한 것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이 성경이 말하는 땅 끝은 내 인생의 시작점입니다. 저란 인생은 처음부터 이 육체가 무너지는 순간까지 하나님이 나를 잡아주지 아니하면 곁길로 갈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그것을 성경 이사야 536절에서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는 반듯하게 간다고 가지만, 실은 어그러진 길로 가면서 반듯하게 간다고 하는 겁니다. 사울은 잘 한다고 했는데, 결국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울은 자기가 잘한다고 했는데, 백성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자기 의견을 따라 전쟁을 함으로써 사울을 왕 삼은 것을 하나님이 후회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네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를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한다.’

    사울은 잘한다고 했습니다. 사울은 마음을 쏟아서 전쟁을 했습니다. 사울은 자기를 꺾었습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따랐단 말입니다. 그런데 왜 버림을 받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섞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제 인생을 이끌어 가시기 위해서는 저를 꼭 잡으셔야 됩니다. 손에서 떨어지는 순간 저는 곁길로 갑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안 잡아주시면 저도 교회를 대적하고, 교회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살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제 마음을 안 잡아주시면 저는 절대로 제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 놓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내 옳음을 주장하고, 내 의를 이야기하고, 나의 반듯한 것을 주장하고, 입에 거품을 물고 대들면서 살 인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절 잡고 계시는 겁니다.

     

    맞은편에 매어 있는 나귀새끼를 풀어 끌고 와서, 주님은 그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가셨습니다. 왜요? 부정한 나귀 새끼는 절대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양이나 염소 같은 정한 짐승도 살아서는 성전 안에 못 들어가는 판국에 부정한 나귀새끼가 어떻게 들어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나귀의 등에 예수님이 타시니까 예루살렘성에 들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옷을 벗어서 깔아놓고, 그 앞에 절을 하고, 나뭇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면서 경배까지 하는 것입니다. 나귀 새끼는 예수님만 등에 업고 있습니다. 다른 짐이 없고 예수님 밖에 없었습니다. 똑같은 나귀새끼라도 소금 가마니를 짊어진 나귀 새끼는 주인에게 두들겨 맞으면서 고달픈 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등에 업은 나귀새끼는 너무너무 행복한 겁니다. 우리는 이 나귀새끼와 같은 인생이기에 당신이 나를 잡아주셔야 합니다. 놓아버리면 넘어지고 풀의 꽃처럼 썩어질 수 밖 에 없는 인생이기 때문에......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찾아온 이 자를 위해서 하나님은 피난처가 되시고, 방패가 되어 그를 지키시고, 저와 싸우는 자들을 무너뜨리고 저를 치는 자들을 찾아도 만나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을 허무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내가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주님의 손에 꼭 잡혀서 주님이 가자하면 가자하는 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그게 신앙입니다. 말씀이 끄는 대로 끌려가는 게 신앙인데, 우리는 내가 말씀을 이루려고 하는 어리석음에 속아 삽니다. 우리가 거할 곳은 이 주님 안입니다. 여기 와 보면 할 일이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내가 나를 지킬 필요가 없으며, 수고할 필요도,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염려할 필요 없이 이 안에서는 그냥 되어 집니다. 어떻게 하는 건지 배우려 하지 말고 그냥 들어오면 됩니다. 이 안에서는 다 그렇게 되어 집니다.

     

    꺾인 가지가 접이 붙여지면 저절로 열매를 맺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이 배웠던 학문을 보태지 말고 주워들은 세상의 이야기도 보태지 말고, 여러분의 생각도 보태지 말고 그냥 말씀만 받아들이면 그 안에서 참 된 쉼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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