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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동현 | 2014.10.07 12:32 | 조회 6374

    본문말씀 (사무엘상25:14-26)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장에서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면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들이 오순절 날 예루살렘 성에 있는데 하늘에서 이들에게 홀연히 성령이 임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20명의 사도들이 그날 성령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에 따라 말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는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에는 예루살렘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 브루기아, 아라비아, 로마와 같이 각계 각처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자기 지방의 언어로 사도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겁니다. 들려지는 이야기인즉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가 구원자다. 메시야다. 그 예수님이 부활 하셨고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너희의 언어로 너희 앞에서 이야기를 한다.’고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그들이 그 말을 듣고 다들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고 되어 있는데 찔림을 받은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한 부류는 사도들을 향해 저 놈들 술 취했다, ’하고 비웃고 비방하고, 다른 한 부류는 그들이 전하는 말씀에 마음에 찔림을 받고 사도들과 베드로를 찾아와 우리가 예수를 못 박아 주였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게 됩니다. 그때 사도들과 베드로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다 회개하고, 그 날에 세례를 받아 구원을 받은 사람이 3,00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더라고 하며 사도행전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오순절 절기를 지키는 것에 대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사도들이 전하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에 많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 예수가 가짜라고 생각해서 십자가게 못 박아 죽였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게 진짜라면 내가 하나님을 죽였단 소린데 어떻게 해야 하나? 에이, 저거 거짓말이야. 술 먹은 놈들이야. 말도 안 돼.’하고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사도들을 비웃고 무시하는 무리가 일어났습니다. 반대로 한쪽에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버렸어, 죽였어. 그럼 어찌해야 된단 말인가하면서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에게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인 걸 믿는다면 네가 지금까지 믿었던 유대교와 율법의 가르침이 틀린 걸 인정하고 거기서 돌이키라는 겁니다. 이들은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에서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내가 옳다고 믿고 걸어왔던 그 길과 삶이 틀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유대교에서 배웠던 율법의 가르침과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가르침을 옳은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전해 준 말씀 편에서 보니까 내가 지금까지 믿어 온 게 가짜고, 내가 가짜라고 믿었던 예수가 진짜이며, 예수를 못 박아 죽인 것은 곧 하나님을 죽인 것임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회개는 무엇을 말합니까? 삶을 바꾸라는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옳다고 믿고 살았던 것이 사단에게 속아 하나님을 대적한 것임을 발견하고 거기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시작은 내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정확하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따라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라고 했습니다. 성경과 다른 것은 절대로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성경의 말씀만이 진리지 말씀이 아닌 그 어떤 것도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입니다. 사단은 이 세상에 수 많은 종교와 교단을 만들어놓고 이 말씀을 못 믿게 만듭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러분의 마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를 정확하게 발견하시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이 아담을 찾아가서 아담을 부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네 마음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느냐, 내 말을 믿는 위치에 있느냐, 내 말을 버리고 사단에게 끌려가고 있느냐?’ 고 묻는 것입니다. 그 물음에 아담은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벗었으므로 두려워하고 숨었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 자기들의 벗은 것을 발견하고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벗었다는 걸 깨닫고 도망을 갑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너에게 고하였느냐?’ 라고 했습니다.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하던 나무 실과를 먹었느냐?’고 하니 그들이 , 먹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게 아니고 당신이 내게 준 여자가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아담이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해서 네 마음이 나를 믿는 믿음 속에 있느냐? 너를 믿는 네 옮음에 잡혀 있냐?’ 고 묻고 계십니다.

     

    오늘 읽었던 사무엘상 25장에 보면 나발이 양털 깎는다는 것을 알고 다윗이 사환을 보내어 먹을 걸 좀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발이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고 하면서 무시하고 모욕을 해서 돌려보냈습니다. 사환이 돌아와 다윗에게 그 이야기를 고하자 다윗이 화가 나서 군사 400명을 거느리고 나발의 집에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려고 출발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다윗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블레셋이 골리앗을 앞세우고 이스라엘에 쳐들어와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누구도 골리앗을 대적하고 넘어뜨릴 수 없었는데, 소년 다윗이 나서서 저 할례 없는 블레셋 군대가 누군데 감히 사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독해! 내가 당장에 가서 목을 확 잘라버리겠다.” 고 큰 소리치고 결국 믿음대로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 다윗이란 말입니다. 더군다나 전쟁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 수많은 백성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 천이요 다윗은 만 만이로다하면서 다윗을 찬양하지 않았습니까? 그 다윗으로 인해 전쟁에서 이기고 나라가 평안을 찾았는데 왜 나발이 다윗을 모르겠습니까? 무시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그 나발을 죽이겠다고 칼을 차고 가는데, 나발의 사환 중에 한사람이 그걸 알고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찾아가서 그 일을 알립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비가일이 어떻게 하는지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삼상 25: 18절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부대와 잡아 준비한 양 다섯과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뭉치 이백을 취하여 나귀들에게 싣고

    23절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의 앞에 엎드려 그 얼굴을 땅에 대니라

    아비가일이 종을 통해서 이야기를 듣고 죽음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비가일은 준비해 놓은 음식을 챙겨가지고 다윗에게 달려갑니다. 아비가일이라는 여자는 나발의 아내입니다. 이 아비가일이 나발에게 인물이 좋아서 시집을 왔는지 모르겠지만 살아보니까 진짜 고집 세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인거에요. 나발은 완고하고 더불어 말할 수 없는 사람이어서 이 아비가일은 단념하고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살만하니까 같이 살지 진짜 못 살 것 같으면 헤어졌을 겁니다. 나쁘다, 나쁘다 하면서도 그 나쁜 나발 속에서도 아비가일이 누릴만한 것을 가끔 제공해 주니까 그 맛에 사는 거지요. 그런데 어느 날 이 여인이 종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윗이 칼을 차고 나발의 집에 있는 사람을 죽이려고 쳐들어온다는 거예요. 이들은 다윗의 400명의 군사와 맞서 싸울만한 힘이 없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자기를 돌아본 거예요. “, 이제 죽었구나. 이제 큰일 났구나 어떻게 하지?” 아비가일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다윗의 심판의 칼날 앞에 세워 봤을 때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비가일이 죽는 이유는 나발의 아내라는 조건 때문입니다. 이 아비가일은 옳아도 죽고, 성실해도 죽고, 이 여자가 설령 진리라 해도 죽습니다. 지금까지 아비가일은 자기 옳음에 모든 것을 비추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미련한 사람 자기는 옳은 사람, 남편은 틀리고 나는 맞고, 남편은 못됐고 나는 성실한 사람인 거죠. 그 속에서 보면 남편은 죽일 놈이고 자신은 늘 옳은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에게 문제가 있지 나에게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여자가 앉아 있는 그 자리는 죽음의 자리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칼날 앞에 서 보니까 미련한 나발도 죽고 옳은 아비가일도 죽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이 여자가 알았습니다. ‘, 내가 나발보다 더 미련한 여자구나.’ 남편 미련하다 고 원망하면서 죽음의 자리였던 거기 살고 있었던 자신이 더 미련한 여자인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심판의 칼날 앞에 자기를 세웠을 때 죽음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옳음도 내려놓고 성실함도 내려놓고 살길을 찾아서 다윗을 향하여 달려 나갑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한번 세워보십시오. 다른 사람을 탓하며 내가 옳고 교회가 틀렸다고 말하기 전에 여러분 자신을 말씀 앞에 한번 비춰보십시오. 현재 여러분이 갖고 있는 그 마음으로 산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여러분의 마음에 갖고 있는 그 생각과 그 옳음을 따라가는 삶의 결과가 죽음인지 저주인지 축복인지 멸망인지를 말씀 앞에 한번 비춰보길 바랍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마다 나의 종말을 내게 알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이 마음을 갖고 가면 어떤 결과가 올까요? 하나님 이 생각을 따라 살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내 생각의 결과를 모릅니다. 하나님 내가 이런 마음으로 나를 다스리고 이 마음으로 나를 다스렸을 때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늘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내 종말을 나에게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연약함을 내게 알게 해주십시오. 내가 뭐가 부족한지 나는 모릅니다. 나의 부족함을 가르쳐주십시오.’ 라고 하나님을 구하면서 살았습니다.

     

    아비가일은 부족한 여자가 아니었고 옳은 여자였고 똑똑한 여자였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볼 때 남편을 위하고 가정을 위하는 여자였지만, 하나님이 볼 때 다윗의 칼날에 죽어야 할 여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나를 볼 때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옳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 죽어야 돼요.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주님 앞에 나가서 은혜를 구하는 길 말고는 없습니다.

     

    열왕기하 1장에 보면, 아하시야가 다락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들었는데, 병세가 짙어지니까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사환을 보냅니다. 하나님이 그걸 아시고 엘리야를 보내어 길을 막습니다. 그리고 사환들에게 왕이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반드시 죽는다고 이야기해라.” 라고 말합니다. 사환들이 돌아가서 왕에게 전했는데 왕이 뭐라고 합니까?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더냐?” “털이 많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그래 엘리야네.” 그러고는 왕이 두 말도 하지 않고 오십 부장을 불러서 갈멜산에 있는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데려오라고 합니다. 오십 부장과 오십 인이 갈멜산에 올라갑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이 속히 내려오라 합니다.” 그랬더니 엘리야가 뭐라고 합니까? “알았다. 기다려라.” 그러지 않고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너와 네 오십 인을 불사를 지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말 엘리야의 말처럼 되었습니다. 왕이 또 다른 오십 부장을 보냈지만 그들도 역시 불 타 죽었습니다.

     

    이들이 왜 불타 죽었죠? 목사님이 사모님들과 교제할 때 소가 왜 남의 곡식을 뜯어먹었냐고 물어보셨다고 합니다. 집사람이 와서 저한테 묻더라고요. 그거 왜 뜯어먹었지요? 소가 곡식을 뜯어 먹는 것은 당연한 건데, 묻는 의도를 모르겠더라고요. 집사람이 저한테 소를 안 묶어놔서, 단속을 안 해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소는 뜯어먹는 버릇이 있어서 주인이 단속을 해야만, 즉 주인에게 고삐가 잡혀 있어야만 안 뜯어 먹습니다. 그 이야기는 주인이 없는 내 이야기입니다. 나는 육신의 본성이 있단 말입니다. 그렇죠? 나는 이 본성을 거스를 수가 없어서 끄는 대로 끌려가야 합니다. 이런 나를 단속해주는 목자, 그게 베드로전서 225절에 목자와 감독자에게로 돌아왔다라는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영혼의 목자에게로 돌아오면 그가 나를 다스려줍니다. 나는 곡식을 뜯어 먹을 수밖에 없고 곁길로 갈 수밖에 없지만 주인에 의해 다스려진다면 절대로 그럴 수가 없고 거기서 내가 지켜지는 겁니다.

     

    여기 성경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오십 부장은 죽었는데 왜 세 번째 오십 부장은 살았습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안 믿어서 죽었습니다. 말씀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열왕기하14절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6

    저희가 고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저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아하시야 왕이 지금 올라가 누워있는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반드시 죽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아하시야 왕의 사환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줬고 사환들은 왕에게 그것을 그대로 이야기해줬습니다. 이 이야기는 왕도 들었고 모든 사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내 눈앞에 있는 왕이 시퍼런 눈을 뜨고 침대에 누워있지만 거기에서 못 내려온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신하들은 말씀을 믿지 않으니까 왕의 말을 듣는 겁니다.

     

    사울이 골리앗을 볼 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다윗은 골리앗을 개 취급했습니다. “할례 없는 블레셋군, 감히 네가 누군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독해? 내가 당장 가서 너의 목을 잘라 버릴 거야.” 다윗의 눈에는 그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 나발은 이미 죽었습니다. 아비가일도 죽었습니다. 내 눈으로 볼 때는 펄펄 살아있지만 다윗의 칼날 앞에 서 있는 나발은 죽었고 아비가일도 죽었습니다. 왜요? 말씀에서는 이미 끝난 인생인 것입니다. 그렇듯이 아하시야 역시 말씀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침상에서 내려옵니까? 못 내려옵니까? 절대 못 내려옵니다.

    그런데 이 미련한 오십 부장 둘은 죽은 왕의 소리를 듣고 있는 겁니다. 이 시대의 어리석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은 세상의 소리를 듣고 육신의 소리를 들으니까 믿음의 세계로 못 간단 말입니다. 말씀은 죽었다고 말하는데 침상에 누워 있는 아하시야가 살 거라고 믿으니까 그 왕의 소리를 거스르지를 못하는 겁니다. 왕의 말을 거스르면 내가 죽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왕은 이미 죽었습니다. 숨이 그쳐야 죽는 게 아니고 이미 하나님 안에서 죽은 겁니다. 그 왕의 말을 들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 소리 듣고 가면 죽습니다. 더 이상의 육의 소리 듣지 말라는 겁니다. 세 번째 오십 부장은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아하시야를 믿은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겁니다. 그러니까 왕이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을 무시해 버리고 엘리야의 말을 따라 엘리야 편으로 가는 겁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이 세 번째 오십 부장은 아하 내가 섬기는 왕이 죽었구나.’ 그렇지요? 이제 더 이상 이놈의 소리 들으면 안 돼. 그때부터 나를 치고 나를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그 때부터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의 소리를 거절하고 자기를 짓밟는 삶을 삽니다. 그게 에스겔 3624절에서 31절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에스겔 3624-31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게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서 구원하고 곡식으로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또 나무의 실과와 밭의 소산을 풍성케 하여 너희로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열국에게 받지 않게 하리니

    그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불선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을 인하여 스스로 밉게 보리라

     

    그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 즉 하나님 말씀을 거스르고 자기 생각을 따라 가는 삶, 나를 믿고 나를 섬기고, 나에 반응하며 살았던 모든 삶을 인하여 내가 내 자신을 밉게 보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틀렸구나, 내가 속았구나, 내가 거짓이었구나! ’그걸 알게 될 때 내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하게 됩니다. 진정한 회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아비가일이 그 동안 섬기고 살았던 남편을 어떻게 배신하고 돌아설 수 있었습니까?

    세 번째 오십부장이 아하시야 밑에서 왕의 녹을 먹고 지금까지 살았지만 엘리야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내가 섬겼던 아하시야는 죽은 놈이구나. 지금까지 그걸 모르고 아하시야 밑에서 꼼짝 못 하고 살았구나.’ 이걸 발견한 순간부터 왕에게서 벗어나서 엘리야에게 무릎을 꿇고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아빌가일 또한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다윗에게로 가 버립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칼날 앞에 나발의 가족 모두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왜 나발의 집을 떠나지 못하고 거기 머물러 있었습니까? 아비가일이 볼 때 나발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발이 죽은 사실을 확인하고 난 후에 떠납니다. 여러분이 끝났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 속에서는 절대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보십시오, 이미 라는 존재는 아하시야 왕처럼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게 되어 있습니다. ‘라는 존재는 내 생각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어야합니다. 이 세 번째 오십부장은 그걸 알고 아하시야왕의 세계를 벗어나 엘리야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섬기는 아하시야왕은 건재합니까?

    성경에서 뭐라고 하는지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결국을 발견하는 사람은 자신에게서 벗어나게 됩니다. 벗어나는 그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사단은 그걸 못 보게 만들어서 첫 번째 오십 부장이 죽었듯이 우리도 죽게 만듭니다.

     

    사무엘하 2 : 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족속의 왕을 삼았더라,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들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가로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찌어다.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찌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저희의 왕을 삼았음이니라.

     

    이 이야기는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누군가가 사울을 장사 지낸 사람들을 고발했습니다. 다윗이 그들에게 사울은 네가 섬겼던 주인인데 네가 섬긴 주인이 죽었으니 장사 치른 것은 잘 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 사울은 죽었고 유다족속이 나를 왕으로 삼았으니 너희는 나를 섬겨라.’ 이 뜻입니다. 오십 부장의 눈으로 볼 때는 왕이 침대에 병 들어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보면 왕은 죽었습니다. 왕이 죽은 것처럼 우리가 섬기던 사단은 죽었습니다. 이제 내가 섬겨야 할 대상이 육신이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여러분과 내가 섬겨야 할 대상은 내가 아니고 예수그리스도라는 겁니다. 이미 나는 죽었고 끝났습니다. 내가 끝난 인생임을 발견하신다면 절대로 여러분에게 매여 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을 갈라디아서 220절을 통해 발견하신다면 여러분 자신을 버리고 말씀 편으로 귀속이 되어 그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삶입니다.

    세 번째 오십 부장이 아하시야 왕에게 등을 돌리고 돌아서서 하나님의 종과 오십부장 사이에 생명의 관계가 형성된 것처럼 여러분 생애에도 여러분 자신에 대하여 등을 돌리고 돌아서는 그 날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도 생명의 관계가 형성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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