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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명진 | 2013.07.17 10:22 | 조회 6816

    201377일 주일오전 말씀

    본문말씀 [4:1~17]

     식물은 어떤 식물이든지간에 지금도 하나님 말씀 앞에 그대로 순종을 해요. 이 땅에 있는 식물, 바다에 있는 해초류, 물고기, 땅에 기어다니는 곤충과 짐승들도 하나님 말씀을 순종을 하는데 유일하게 사람만 그게 안돼요.

     

    진주에서 사역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박옥수목사님을 모시고 집회를 하기 위해서 진주옆 사천에 있는 감농장의 비어 있는 집에서 주인의 허락을 받고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성경 읽고 그런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금식한지 이틀인가 사흘인가 되었는데 성경 보다가  하도 졸려서  성경 접어놓고  그냥 방문을 열어놓고 앞에 펼쳐져 있는 초목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어요.

     풀밭 사이 군데군데에 나무 그루터기가 있는데 그 그루터기에서 새순이 막 올라오는 거예요. 또한 계곡 밑에 있는 논에서도  농부들이  벼를 다 베고  난 그루터기에 파란 순이 올라와 있는 거예요. 한 뼘 정도 자란 거예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루터기의 새순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 바보야! 너 조금 있다가 서리 내리면 죽을텐데 뭐 하려고 올라오냐? 너 서리 오는 거 몰라?’

    너는 사람이니까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너 같으면 순을 안 내겠지. 우리는 달라.’

    , 뭐가 다른데? 내가 볼 때 한 이틀이나 사흘 지나서 서리 내리면 너 폭삭 얼어 죽어.’

    나도 알아.’

    아는데 왜 나왔어?’

    내가 나오고 싶어 나오나? 나오라고 하니까 나오지.’

    누가 나오라고 하던데?’

    , 네가 목사라면서?’

    그 때 제가 깜짝 놀란 게 있었어요. 천지창조 셋째날에 하나님께서  이 땅을 보고 땅은 씨맺는 채소와 열매맺는 과목을 내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비수처럼 꼽히는데 그 말씀 앞에 아무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이 식물은 사람이 풀을 자르고 나무를 잘라서 죽음 직전에 와 있잖아요? 농부가 벼를 다 잘라가고 그루터기만 남았는데 분명하게 며칠 지나면 서리가 내려서 올라온 순이 다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이 놈들은 올라오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거기 있는 들판을 보니까 모두 다 그러고 있는 거예요. 사람이 지나가다가 길가에 난 민들레를 밟아서 문드러졌는데, 다 망가졌는데 며칠 지나면 또 거기서 순이 올라와 있는 거 보셨어요?

    왜 그럴까?

     이 식물은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그대로 순종을 하는 거예요. 그 생명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거기에  연연하지 아니하고 말씀을 따라 조건만 갖추어지면 계속 잎을 내고 줄기를 뻗고, 사람이 꺾어도, 뜯어도, 발로 문대도 그 식물은 계속 조건만 주어지면 그 잎을 내는 걸 중단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을 하는 거예요.

     

    사람만 그게 안 되는 거예요.

     ? 사람은 생각을 해요. 이것이 내게 유익한지 저것이 내게 유익한지 생각한다는 것이죠!

    이 식물은 그걸 생각할 줄 몰라요. 그냥 말씀 한 마디에 지금도 이끌려서 가는 거예요.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사람이 와서 짓밟든지, 소가 먹든지,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하나님이 잎을 내라고 하시면 잎을 낸다는 것이죠!

    그 식물들이 저한테

    너는 말씀을 듣고 보고 깨닫지만, 너는 말씀대로 안 살잖아?”  

    너 말씀 깨달아서 뭐 할래? 또 가르치려고 그러지? 나는 하나님 말씀 앞에 그냥  우리 삶을 살아. 결과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거야.”

    그 식물은 천대를 받고 무시받고 사람에게 소외되는 식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 그대로 가는 거예요.

     

    [2:5~7, 10, 19~20]

    5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저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6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7 저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고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 ~ 10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고하지 아니하니 이는 모르드개가 명하여 고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 19 처녀들을 다시 모을 때에는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더라 20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명한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고하지 아니 하니 저가 모르드개의 명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좇음이더라

     포로로 잡혀 온 이방의 여인이 자기를 포로로 잡았던 대국의 왕후가 되는 위치까지 에스더가 올라가는데, 그건 전적으로 모르드개의 양육을 받고 자라면서 그 위치에  도달합니다. 그가 왕 앞에 나갔을 때에도 모르드개가,

    네 민족과 종족을 고하지 마라.”

    했고, 그 말을 들은 에스더가 그걸 고하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더는 당당하게 왕후의 은혜를 입어서 왕의 아내가 됩니다. 그래서 그 왕과 더불어 한 때는 굉장히 행복한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에스더가 왕을 만나지 못한 지가 30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말입니다. 그러고 있을 때에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 왕의 신임을 받고 촉망을 받고 있던 하만과  하나님을 섬기는 이 유다인 모르드개와의 부딪힘이 있었어요. 모든 사람은 하만 앞에 굴복을 하고, 굽신굽신거리는데, 유일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굴복하지 않는 대궐문의 모르드개가 있는 거예요. 그걸 보는 순간에 하만은,

    도대체 이 포로로 잡혀 온 놈이 얼마나 건방지기에 나한테 저렇게 행동을 해?’

    저 놈의  목을 당장 잘라버려라! 아니야. 저 놈은 그냥 죽이면 아까워. 저 놈의 민족을 다 쓸어버려라!”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그걸 진행하기 위해서 그의 밑에 있는 대신들이  의논을 해서 조서초본을 보내고 유다인을 죽이자고 방을 붙이고 난리가 났단 말입니다. 그래서 전국에 유다인을 죽이라고 하는 왕의 어인이 찍힌 조서초본이 붙여진 겁니다. 그러니까 유다인들이 난리가 난 거예요. 다 죽음이 결정됐잖아요! 그 일로 인하여 모르드개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대궐문으로 몰려들어서 금식을 하고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통곡하면서 울부짖고 있는 거예요. 그 소식이 바람을 타고 에스더의 귀에 들어간 거예요.

     이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아버지가 죽고 난 후에 에스더를 자기 딸처럼 양육했다고 했어요 그러면 이 에스더가 어릴 때부터 왕후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에스더의 모든 것을 모르드개가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양육했다는 말입니다. 이끌어줬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말을 진짜 아버지 말씀처럼 듣고 따랐단 말입니다.

    그런데  왕후라는 자리에 앉은 그 날부터 이 에스더의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2, 3장을 통해 알 수 가 있습니다. 모르드개의 말이라면 아버지의 말처럼 듣고 따랐던 그 여인이 왕후라는 자리에 앉은 그 날부터 마음이 변질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건을 놓고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대화를 하는데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옷을 벗겨서 새 옷을 입히려고 하고, 모르드개는 그걸 안 벗으려고 하고, 그 싸움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왜 금식을 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있는지 아느냐? 그걸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전하는 거예요. 그 중간에 들락날락하는 하닥이라는 심부름꾼이 있는데 그를 보고 모르드개가 그 이야기를 다 전해주는 거예요. 그것도 모자라서 그 손에다가 수산궁에 붙어있는 유다인을 죽인다고 하는 조서본을 떼어서 쥐어주고  갖다주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뵈어 알게 하고 또 저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모르드개가 처음으로 에스더에게  왕 앞에 나가서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고 해요. 그러려면 에스더가 지금까지 숨기고 이야기하지 않았던 속, 자신의 근본을 드러내야 해요. 자기 본성을 드러내야 돼요. 지금까지 아하수에로 왕 앞에 있던 에스더는 아름다운 여자, 고운 여자, 매력적인 여자, 왕의 마음을 다 뺏어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여자. 그러나 이 여자의 출생 신분이 어딘지는 나타나지 않고 꼭꼭 가려져 있는 상태로 아하수에로와 왕후라는 관계를 맺고 있는 거예요. 이제 모르드개가 뭐라고 합니까?

    이제 왕 앞에 나가서 이 민족을 위하여 왕 앞에 구해라.”

    그러니까 에스더가,

     410절에서 12,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고하기를 왕의 신복과 왕의 각 도 백성이 다 알거니와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야 살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지가 이미 삼십일이라 하라 그가 에스더의 말로 모르드개에게 고하매

    이 이야기는

    너 가서 그 이야기를 해라. , 내가 모르드개의 말을 따라가고 싶은데 할 수 없는 게 있다. 그걸 잘 설명해 드려라. 나도 오죽하면 내 남편인데 왜 내가 만나고 싶지 않겠냐 나도 만나고 싶다. 그런데 나도  못 하는 게 있다. 그게 뭔지 잘 설명해 드려라. 이 나라에는 법이 있는데 왕의 부름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자기 임의로 왕을 만나려고 안뜰에 들어가면, 왕이 금홀을 내밀면 사는데 안 내밀면 죽는다. 그래서 내가 못 간다고 해라.”

    그래서 하닥이 와서 이 상황을 정확하고 적나라하게, 설득력있게 쫙 설명을 했어요. 그러니까 모르드개가 듣고,

     13절과 14,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 이 이야기를 모르드개가 다시 하닥에게 담아서 에스더에게 보내는 거예요. 이 정도 되면 미안하다고 물러나야되는데 모르드개는 더 몰아붙이는 거에요.

    네가 아무도 유다인인 줄 모른다. 좋다. 네가 왕후니까 살 것처럼 보이지? 네가 만약 입을 열지 않고 잠잠하고 있으면 우리는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해 주신다. 우리는 산다.”

    들어보면 웃기는 이야기죠? 하만이 죽이려고 온 성에 방을 붙여놓고 사람을 동원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산다고? . 하만은 그 당시에 왕의 완전신임을 받고 있는 능력자잖아요그런데 이 모르드개는? 포로로 잡혀 있는 노예잖아요. 게임이 돼요? 칼이 있나요, 창이 있나요? 뭐가 있나요? 게임이 안돼요. 그런데 모르드개가 뭐라고 해요?

    우리는 산다. 넌 죽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풀어주신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다음 이야기가 더 무서워요.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그 말은,

    너 살고 싶으면 나가고 죽고 싶으면 거기 앉아 있어라.” 

    그 말이잖아요?

    그 말을 들은 에스더가 마음을 바꾸고 규례를 깨뜨리고, 누구든지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밀지 않으면 죽는다는 그 규례를 깨뜨려버리고, 그리고 더 나아가  또 다른 규례인 자기의 틀을 깨고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말에 의해서 움직이는 삶을 살아요. 그래서 이 에스더가 수산궁에서 벗어나서 아하수에로 왕을 만나서 행복한 삶을 사는 이야기가 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에스더가 왜 수산궁에서 한 달 동안 남편을 그렇게 그리워하고 사모하면서도 못 만나고 혼자 그렇게 살았습니까?

    누가 수산궁에다가 가두었나요? 누가

    너 거기 갇혀 있거라.” 라고 한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이 에스더가 왜 수산궁에 갇혔느냐? 성경 에스더 1, 2, 3, 4장 읽어 보면 갇힐 수밖에 없는 에스더의 마음이 나와요.

     

    사도행전 4장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구원받은 성도들이 자기 재산과 재물을  팔아서 사도들 발 앞에 두고 그 재물을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함께 공용하는 삶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그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동일하게 자기의 땅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들고 왔어요. 이게 5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땅을 팔아서 발 앞에 둘 때에 그 땅 판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있겠지요. 그런데 그걸 보고 있었던 베드로가 아나니아를 보고  사도행전 5 3절과 4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표면적으로는 땅을 판 돈에 관한 이야기인데 여기서는 그게 아닙니다. 네 마음에 무엇이 있다고요?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라고 말했습니다.

    네 마음은 사단이 점령을 하고 있고, 네 껍데기는 땅을 팔아서 흉내를 내고 있지 않느냐? 마음은 사단을 따라서 감추고 나를 속이고 있지 않느냐? 이건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해 속인 거다.”

    그 사단이 아나니아로 숨기게, 변명하게 만든 거지, 그 마음에 사단의 마음을 두었다는 겁니다.

    왜 네 마음에 사단을 쳐내지 못하느냐? 생각을 쳐내지 못하느냐?”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습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내 안에 세워질 때 내게 올라오는 사단의 생각을 죽이고 몰아낼 수 있는 것이지, 내 각오나 열심과 의지가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에스더가 왜 모르드개의 말을 듣지 않는 힘이 생겼습니까? 아버지가 죽고 모르드개에게 양육을 받을 때에 그는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그가 달라진 게 뭐가 있었습니까?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대접을 받고 섬김을 받는 왕후의 자리가 그렇게 대단했습니까? 그것이 모르드개의 말을 쳐낼 수 있는 힘이 돼 버렸습니다. 내가 입고 있는 목사의 옷이 말씀을 쳐내는 힘이 된다면 나는 저주를 받아야 할 겁니다. 내가 입고 있는 이 지역장이라는 옷이 말씀을 쳐내는 일이 된다면 나는 저주를 받아야 마땅한 겁니다. 이건 나를 위해서 입혀진 옷이 아니고 미래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왕 앞에 나아가라고  이 여인에게 왕후의 옷을 입혀놓은 것이지 개인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라고 입혀놓은 옷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고 이 교회 안에 둔 이유가 있다면 내 주변에 죽어가는 저 영혼들, 죽어가는 저들을 위하여 일하라고 준 옷이지, 나 한 사람 잘 먹고 잘 살라고 씌워준 옷이 아니란 말입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무엇이 이 여인을 수산궁에 가두어 버렸습니까? 생각 하나를 받아들였습니다 모르드개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그 날부터, 모르드개와 대화가 끝어진 그 날부터 이 여인은 변질되고 썩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우리가 주님과 교류가 끊어진 그 날, 말씀과 내 마음이 끊어지는 그 날 우리는 썩고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왕후가 아니고 대궐문에 앉은 사람이 될지라도 주님과 교류가 되는 그 자리가 가장 행복한 자리입니다. 누구도 이 여인을 수산궁에 가두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갇힌 겁니다. 왜요? 모르드개의 소리를 듣지 않은 그날부터 모르드개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그 날부터. 내 마음에 언제 말씀을 듣지 못하게 만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에스더,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저를 두고 한 이야기입니다. 내 마음의 생각이 내 마음을 지배하거나 형편이 내 마음을 지배하게 되면 내가 가는 곳은 정해져 있습니다. 죽음의 길로 가야 합니다. 에스더는 조서 초본을 읽어보고도, 하만이 유다인을 죽인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에스더의 마음에는 죽음이 오지 않았습니다. 왜요?

    유다인을 다 죽인다고 해도 나는 안 죽어. 나는 아니야.’

    그게 에스더의 마음이었습니다.

    ? 나 구원받았으니까 천국 가.’

    맞습니다. 갑니다. 정확하게 구원받았으면.

    그러나 여러분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심판을 반드시 받으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고 사시는 삶에 대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을 하십니다. 상과 벌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구원받으면 다 됐지.”

     여자가 시집가면 다 되었습니까? 끝이에요? 아닙니다. 그 집의 법도를 배워야 하고 남편과 마음을 섞는 것을 배워야 하고 삶을 배우고 모든 걸 배워서 아내로서 사는 걸 배워야 합니다. 구원은 신앙을 할 수 있는 출발라인이에요 저는 여러분에게 뭘 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나를 위해서 어떻게 이끌어 가실지, 어떻게 주님이 나를 만들고 계신지 그 분에 대한 정확한 세계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일을 통해서 어떻게 이끌어가실까?’

    유다인을 어떻게 살려내실까?’

    분명히 모르드개가 그랬죠?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는다.”

    길이 있다는 겁니다. 에스더가 모르는 모르드개가 아는 길이 있습니다. 하만이 죽이려고 득세를 하고 힘내어 부딪쳐 오지만 우리는 절대로 안 죽어. 절대로 망하지 않아. 정확한 믿음을 갖고 있는 길을 알고 있는 모르드개가 있다는 겁니다.

    네가 앉아 있는 그 곳, 네 생각, 너는 홀로 면할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면할 수 없는 곳이야. 살 수가 없는 곳이야. 죽음의 자리야. 저주의 자리야.”

    에스더가 볼 때는 최고 안전한 자리입니다. 완벽한 자리죠. 모르드개가 볼 때는 그 자리는 죽음의 자리이고 멸망의 자리인 거예요.

     

    여러분, 성경 사무엘하 9장에 보면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에 사울에게 남은 사람을 찾을 때 므비보셋이라는 친구가 다윗을 피하여 꼭꼭 숨었던 장소가 있는데 거기가 로드발 암미엘의 집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로드발 암미엘이라는 말의 뜻은 꼴이 없는 목장이라는 뜻입니다. 꼴이 없는 목장에 있는 짐승은 죽어야지요므비보셋이 볼 때는 로드발 암미엘의 집이 가장 좋은 장소인데. 말씀 앞에 비춰진 그 장소는 죽음의 장소에요. 사는 자리가 아니에요. 그래서 다윗이 그를 끄집어내서 왕궁으로 데려오는데 그 왕궁의 자리는 므비보셋이 볼 때는 죽음의 자리고 심판의 자리입니다. 두려워 떨 수밖에 없는 자리에요. 그래서 다윗이 그를 보고,

    므비보셋이여, 두려워 말라.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반드니 네게 은총을 베풀겠다.”

    므비보셋이 볼 때는 죽음의 장소, 심판의 장소였지만 다윗이 볼 때는 그 자리는 은총을 베푸는 자리입니다. 사는 자리에요.

     

    여러분이 머물러 있는 그 자리, 수산궁도 아닐 거고 로드발 암미엘의 집도 아니겠지만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마음의 뿌리를 내리고 계십니까? 그 자리가 정말 안전한 자리입니까? 그 자리가 정말 하나님이 보장해 주는 자리입니까? 말씀이 있고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는 자리입니까? 시편 91편을 잠깐 펴 보십시오.

    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2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5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6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7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8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여기 보면, 어디에 있는 자?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자,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자. 조건이 없습니다. 그가 원수의 자식이든 그가 사기꾼이든 그가 약속의 안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그 약속하신 하나님이 그를 지키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모르드개가 머물러 있는 자리는 대궐문 앞이고 하만의 마음을 박박 긁는 그 자리이고 사람에게 눈총을 받고 무시를 받고 멸시를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는 그 자리지만 그 자리는 가장 안전한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리입니다. 에스더가 머물러 있는 수산궁, 가장 안전하고 가장 보호받을 수 있고 가장 완벽한 자리처럼 보이지만 그 자리는 저주와 죽음과 멸망의 자리였습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에스더가 살 수 있는 길은 수산궁이 아니고 아하수에로가 있는 안뜰입니다. 거기 가야 삽니다. 거기 가야만 행복이 있고 거기 가야만 소망이 있고 거기 가야만 희락이 있고 거기 가야만 모든 것이 끝나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수산궁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수산궁에 두지 않습니다. 이끌어냅니다. 우리 주님은 나를 내 생각의 성에 두지 않고 형편의 성 안에 두지 아니하고 말씀의 세계로 오늘도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그런데 우리는 이게 싫은 거예요. 그냥 육체가 좋은 대로 살고 싶은 거예요. 내 마음이 좋은 대로 살고 싶은 거예요. 주님은 이 에스더를 아하수에로 왕 앞에 세웁니다. 그 자리는 한 시도 주를 바라보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가 가장 행복한 자리에요. 육신이  힘들는지 모르겠지만 내 영혼을 위해 가장 평안하고 안전한 자리가 그 자리인 거예요. 우리는 이 자리가 싫어요. 그래서 모르드개가 우리를 이끌어 냅니다.

    무엇으로

     당신의 마음에 왔던 하나님의 마음을 하닥을 통해서 에스더의 마음에 넣어줍니다, 하나님의 그 마음이 에스더의 마음에 들어가니까 자기 생각을 깨뜨리고 그 나라의 법을 깨드리고 규례를 어기고 왕 앞에 뛰어드는 그 삶을 에스더가 삽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우리 마음에 당신의 이 마음을 우리 마음에 담고 싶어하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내 마음을 품고 살려고 하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의 마음을 품은 사람은 여기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 마음을 품은 사람은 주님과 그 마음이 연결된 사람은 내 세계 속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일어나 나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중에 나는 새에게는 날개를 줬습니다. 그 날개를 가지고 언제든지 땅을 떠나고 싶을 때 날개만 흔들면 땅을 벗어납니다. 땅이 강하게 끌어당기는 중력의 힘이 그 새를 붙잡지만 날개를 흔들면 그 힘은 더 이상 그 새를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날개를 주셨습니다.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어서 이 말씀이 우리를 이끌어 냅니다. 시편 107편에 보면,

    내가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고 위경에서 건져내겠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마음 속에 모르드개와 같은 믿음의 종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을  심고 싶어합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이 세계에 갇혀 있어야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수산궁에 갇혀 있는 거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을 판 값을 감춘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마음에 사단을 두었던 것이라고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어찌하여 이걸 네 마음에 두었느냐?”

     

    말씀을 마음에 두었더라면 아나니아가 그렇게 살지 않았겠죠 여러분,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에스더 곁에 모르드개가 있을 때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이끌어주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주님을,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우리 마음을 잡아줄 때 나를 사단에게  끌려가도록 놔두지 아니하고 형편에 끌려가도록 놔두지 아니하고 그 말씀은 나를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그 자리로 이끌어 가실 겁니다. 이제 더 이상 내 눈에 보이는 형편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내 마음에  말씀을 두고, 말씀을 품고  길을 걷는다면 주님이 여러분의 걸음걸음마다 도우시고 일을 하실 것입니다.

    형편이 어렵습니까? 어려운 형편 앞에 힘이 듭니까?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 안에는 길이 있습니다. 내가 나를 지키려고 하니까, 아나니아처럼 얼마를 감추는 바보 같은 짓을 해야 합니다.

    네가 네 자식을 지킬 수 있고 네 장래를 붙들 수 있느냐? 정말 내가 너를 안 도와줘도 잘 할 수 있겠냐?”

    주님이 내 가정을 안 지켜주고 내 자식을 붙잡아주지 않아도 내가 잘할 수 있는지. 그러면 그리 하십시오. 그리 사십시오.

    그리 안되겠거든 오늘부로 여러분 손을 놓으시고 그 모든 걸 주님에게 위임을 하시고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발을 내딛는 것처럼 여러분도 지금까진 갇혀 있었다고 할지라도 말씀을 의지해서 한 번 규례를 어기고, 여러분을 깨뜨리고 말씀 앞에  나아가 보십시오. 주님이 어찌 하시는지 한 번 보십시오. 그리고 그 분과 함께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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