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 송동현 | 2013.11.18 14:33 | 조회 7276

    본문말씀 (마가복음 11:1-10)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프라이드를 부각시키기 위해 이력서나 명함에 많은 것들을 나열합니다. 교수이시며, 지역장이시며, 목사이시며…. 일을 하다가 명함을 받게 되면 기관장, 의원... 이런 저런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명함에 직함이 5-7개 정도 적혀 있는 분들도 계시고, 여러 가지 일을 하시지만 그 중 딱 한 가지만 소개되어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것 하나만 보더라도 이 분이 어떤 마음을 갖고 일을 하시는지 쉽게 느낄 수 있잖아요? 한국 사람은 옷 입기를 좋아합니다. 실제 가진 것이 없어도 좋은 옷에 좋은 신발에.. 그러다보니 한국 사람들은 겉치레를 아주 중요시 여깁니다. 셋방살이 하면서도 좋은 차를 타고 그럽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람이라면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세상에서 인정해 주는 학벌, 가문,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실력, 기술로 자기의 가치성을 드러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의 외모를 보고 사람들이 존경했다는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태복음이나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읽어 봐도 예수님의 외형적인 부분이 기록되어 있는 부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 일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육체의 몸에 대한 기록은 없어요. 예수님은 당신이 입고 있던 육체의 몸이 사람들에게 비추어져서 당신 속에 있는 하나님이 가리워지는 걸 굉장히 싫어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하셨던 말씀 가운데 ‘나는 내 뜻을 행하러 온 것이 아니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러 왔다.’ 예수님을 소개시켜줬던 세례요한도 성경속에서 찾아보면 세례요한의 흔적보다는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성경속에 대적자로 쓰임 받았던 인물중에 다윗의 아들이었던 압살롬은 그 외모가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압살롬이 그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4년 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다윗을 향하여 가는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했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백성들 마음 안에 왕의 마음이 형성되어지고 왕이 세워져야 하는데, 그 자리에 압살롬은 자기가 앉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과 시간을 지내는 동안에 다윗은 온데 간 데 없고 백성들의 마음에는 압살롬이 남아있는 거예요. 백성들의 마음을 전부다 자기에게로 다 돌이키게 한 거예요. 이런 인물이 성경에는 종종 나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들의 마음이 가야 하는데 그 마음을 가로 막고, 그 마음을 나누고, 그 마음을 죽이는 일을 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든 어떤 말씀을 전하든 그것은 대적자라는 거죠. 합창을 하시는 형제자매님들이 소리를 모아 멜로디와 가사를 통하여 곡을 쓴 이의 마음을 전달합니다. 자기 소리를 내면 이걸 전부 무너뜨리는 거예요. 잘 훈련된 합창단은 이걸 만드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잘 훈련되어 있는 종들은 그 주인을 나타내는 거죠. 그런데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이 틀림없었지만 자기 욕망을 세우기 위해서 자기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반란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백성을 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걸 통해서 그 사람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압살롬이 왕이다 라고 외칠 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고 섬기며 다윗보다 자신을 숭배하게 해서 반란에 가담시키는 것입니다. 그게 갑자기 그렇게 된 게 아니고 그 사람들을 자기 속으로 끌어들여서 그 백성들 마음 마음에 심어두어야 할 다윗을 심는 게 아니고 자기를 심었다는 겁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에 끊임없이 육을 심는 일을 해요. 그래서 사람을 심고 육을 심어서 하나님, 말씀이 세워질 그 자리에 하나님과 말씀을 다 무너뜨리고 하나님과 말씀을 거스르는 육을 세워 그쪽으로 흘러가게 만듭니다. 그것은 다듬어지지 않은, 훈련되지 않은, 잡혀져 있지 않는 존재란 말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사람의 손에 의해 가공 되어질 때 아름다운 보석이 되는 겁니다. 자연석 그대로 가지고 다니지 않아요. 사람의 손에 의해 각도가 깎여지고, 모양이 만들어 졌을 때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결정이 됩니다. 다이아몬드는 가공되는 자의 손에 잡혀서 깎여지고 그 각도가 만들어 질 때 그 다이아몬드의 값이 배로 비쌀 수도 있고 쌀 수도 있고 가치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자질이 있는 선수들이나 음악가들이 어떤 스승 밑에서 훈련을 받고 다듬어지느냐에 따라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무명의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재, 좋은 제품이 있어도 그 자재가 누구 손에 잡혀서 다듬어지느냐에 따라 그 가치성은 굉장히 달라지겠죠?

     

     다이아몬드의 투명도도 다이아몬드의 가치에 큰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투명도는 밝기를 말하는데 다이아몬드는 어떻게 깎이느냐에 따라 그 투명도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투명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모양을 갖고 있어도 가치가 없겠죠? 그것처럼 사람에게도 투명도가 있습니다. 인생을 밝고 분명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누가 봐도 질이 안 좋고 불투명하며 선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투명도에 의해 그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그 투명도를 잘 만들어 보려고 하겠죠? 그럼 진짜 투명한 사람이 누구냐? 그건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당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당신을 보내신 이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예수님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비웃고 죽이려고 밀고 가도 그걸 다 받으시면서 묵묵히 당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진다면 나, 예수가 짓밟히고 거절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고 욕을 먹고 사람들에게 따귀를 맞는 것에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오직 이 땅에 사시면서 십자가에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당신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고, 그 뜻을 이루는 데 온 마음이 이끌려 가는 삶을 살았어요.

     

     그 다음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결정하는 게 돌의 무게라고 합니다. 다이아몬드는 가벼울수록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크면서 가벼울수록. 성경에 보면 성막을 만들 때 하나님이 쓰셨던 나무가 있는데, 싯딤 우드라고 하는 아카시아 나무인데, 아카시아 나무의 특색이 있습니다. 여러 특색이 있는데, 그 중 이 나무는 껍질이 붙어있는 상태에서 건조가 되면 굉장히 물러서 꺾으면 뚝뚝 부러져요. 반대로 껍질이 벗겨진 상태에서 건조가 되면 어떤 나무보다도 단단한데, 못이 안 들어갈 정도로 야물어요. 그래서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연장을 만들 때 주로 아카시아 나무를 썼습니다. 껍질이 벗겨진 상태에서 건조가 된 이 나무는 물속에 들어가도 불지 않을 만큼 굉장히 단단하고 가볍습니다. 하나님의 성막에는 이 나무를 썼어요. 이 아카시아 나무는 가장 천한 나무이면서도, 나무가 죽고 껍질이 벗겨지면 어떤 나무보다도 여물고 단단하고 가볍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라는 말씀처럼 당신을 비우고 오셨습니다. 이건 자신의 껍질을 벗은 사람입니다. 본체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굉장히 가벼웠습니다. 어떤 말씀이 떨어져도 ‘예’하고 움직였던 분이 예수님이에요.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주는 삶 앞에서까지도 ‘예’ 하고 죽음으로 가는 분이었습니다. 말씀 앞에, 언제든지, 어떤 곳이든지, 어떤 상황이든지간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예’가 된 삶을 사셨어요. 이걸 보고 가볍다 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아카시아 나무가 굉장히 여물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떤 것이 와도 절대 타협하지 않으셨으며 견고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 한결 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시니라 라고 표현을 합니다. 우리는 시험을 받으면 다 넘어지고 자빠집니다. 베드로도 자기는 절대 예수님 부인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는데, 금방 뒤집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 앞에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견고하면서 말씀 앞에는 가볍게 사셨어요. 이런 걸 보고 가치가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다이아몬드는 신비로운 색이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빛을 만났을 때 신비로운 빛을 내는 그것이 가치를 더해준다고 해요. 우리 색깔은 어떤 색깔이냐? 사람들은 저마다 사상이 있어요. 이 사상들이 다 달라요. 예수님의 사상은 어떤 사상이냐?

    사도행전 2장 37, 38절에 그들이 사도들의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서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질문을 하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때 회개하고, 두 번째가 세례를 받고, 세 번째가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라고 대답했습니다. 회개해라, 회개가 뭡니까? 말 그대로 돌이키는 거예요. 내가 가는 방향을 턴해서 돌아가는 게 회개입니다. 이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해 드리자면 큰 못이 있고, 그 못 가에 사람들이 둘러 있었습니다. 이 당시 사람들은 모든 의식 구조가 교회 중심으로 직장이 형성되어 있고, 교회 중심으로 모든 삶이 형성되어 있었어요. 내가 다니는 유대교회를 떠나서 예수를 믿는 예수쟁이들에게 간다는 것은 그동안 다녔던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돼요. 삶을 포기하고 가정을 포기하고 직장을 포기하고 모든 의지했던 것에 등을 돌리고 나와 해요. 그래서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소경이 눈을 떴을 때에 유대인들이 믿지 아니하고 그 어머니가 물어보니 그가 장성했으니 그에게 물어 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출교를 당할까봐 무서워서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 쫓겨나면 직장도 끝나고 가정도 끝나고 마을도 떠나가야 해요. 이 당시에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교회를 분리한다는 것은 다 버리고 나오는 거예요. 여기서 바로 회개를 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으라 는 말은 못 뒤 쪽에서 물속으로 건너오란 이야기인데, 이건 단순히 그 뜻이 아니고 ‘세례’ 라는 뜻이 원어성경에 보면 ‘염색하다’ ‘전향하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상을 바꾼다는 얘깁니다. 네 마음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꾸어라, 네 색깔을 버리고 예수님의 색깔을 가져라 이 말입니다. 우리는 복음은 듣지만 내 색깔, 내 사상은 안 버려요. 이 사상이 버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님을 따라간다면 어떤 결과가 오겠느냐? 예를 들어 나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주로 쓰는 색깔이 붉은 색인데, 나보다 훨씬 훌륭한 스승을 만나 그 분과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면, 내가 쓰는 붉은 색깔을 버리고 그 분이 쓰는 푸른색을 내가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상이 안 바뀐다면 교회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상,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땅에 사셨느냐? 예수님은 당신의 마음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당신 마음에 품고 그 마음으로 생을 사셨고 우릴 향해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나도 그 마음을 품으면 예수님이 가지셨던 똑같은 사상과 똑같은 마음으로 살게 된다 는 말입니다. 그 마음을 가진 종들이 복음 앞에 살았고, 그 마음을 가진 종들이 지금도 믿음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결정하는 게 모양이라고 합니다. 모양. 우리는 저마다의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공자의 손에 잡히면 모양이 같아져요. 그가 원하는 모양으로 깎입니다. 성막에 쓰인 재료들 중 60개의 기둥이 있는데, 이 기둥은 다 똑같은 모양이며, 다 놋으로 쌋습니다. 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 성막의 기둥을 만드는 사람인 오홀리압과 브살렐이 사상이 안 바뀐 상태로, 하나님과 다른 마음인 자기 마음을 갖고 성막을 만들었다면 하나님은 기둥을 놋으로 싸라고 했는데 오홀리압은 나는 놋보다 은이 좋아 라면서 은으로 쌀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은으로 싸면 좋기는 좋을는지 모르지만은 하나님의 성막의 기둥으로 쓸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셨을 때, 진멸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원하는 모양대로가 아닌 사울이 원하는 대로 진멸하니까 하나님은 그 사울을 왕 삼은 걸 후회하시고 버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쓸 수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과 사상이 안 맞고 마음이 안 맞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살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울을 폐하고 다윗을 세우는 것입니다.

     

     성막에 사용되는 아카시아 나무가 아무리 좋은 모양을 갖추고 있다하더라도 하나님이 지신하신 규격에 맞도록 잘라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쓰려고 하면 자를 건 잘라야 하는 거예요. 성막에 쓰이는 아카시아 나무가 제도에 따라 잘려지고 새겨지고 입혀져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으로부터 치리자가 되는 꿈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그냥 쓰시지 않았습니다. 요셉을 하나님이 다듬고 깎고 하시는데, 요셉의 마음을 다 잘라 내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색깔이 나오고, 모양이 나오고, 투명도가 나오고, 무게가 만들어지고 그랬을 때 요셉을 치리자의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그 과정이 구덩이에 던져지고 이스마엘 상인에게 팔려가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강간미수범으로 감옥에 가고... 그 많은 여정을 통해 그가 만들어져서 총리 자리에 올라가는 거예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어요. 어려움이나 문제를 통해 우리 마음을 하나님이 깎으시고 자르시고 벗기시면서 만들어 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당신이 쓰고 싶은 곳에 쓰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것들이 오홀리압과 브살렐 손에 전달되었을 때, 만들어진 것이 성막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구원이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고, 그것이 우리 마음에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구원받았다’ 라고 합니다. 이것은 2000년 전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 죄를 씻기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삶입니다. 에수님의 삶을 기록해놓으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내 마음안에 하나님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때부터 말씀이 들어와서 나를 만들어가는 거예요. 아무짝에 쓸모없는 막대기에 불과했던 아카시아 나무가 오홀리압 손에 잡혀지니까 성막의 한 부분인 기둥으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만들어진 그 기구들을 통해서 인간과 하나님이 만나는 장소가 만들어지고, 죄가 씻어지는 곳이 만들어진단 말입니다. 언제? 아카시아가 그대로 있을 때는 안 되고 이것이 다듬어 지고 잘려지고 만들어졌을 때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면 나와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 교회의 손에 잡히고, 하나님의 종의 손에 잡혀져서 만들어지고 다듬어 졌을 때 하나님이 원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 거예요. 다이아몬드를 가공한 사람이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처럼 여러분과 내가 어떤 교회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느냐에 따라 신앙관이 달라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나귀 새끼를 쓰고 싶어서 ‘풀어 끌고 오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나귀가 매여 있는 부분이 의도적으로 기록에 빠져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인데, 나귀 같은 우리 인생을 그려 놓은 겁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상대방의 마음이 매여 있고 잡혀있는 데서 그걸 풀어줘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욕망에, 돈에, 권력에, 음란에... 이런 저런 나름대로 매인 부분이 있어요.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하다 잡힌 여자는 음란에 매여 있었고, 간음이라는 죄에 끌려 다녔다는 말입니다. 누구도 이 여자를 풀어줄 수가 없었어요. 마가복음 4장의 군대 귀신 들린 자는 쇠사슬로도, 고랑으로도 제어할 수가 없었어요. 잡아주지 못했단 말입니다. 그 귀신이 끄는 대로 끌려 다니면서 발악을 하고, 무덤에 살면서 자기 몸을 상하고 있었잖아요. 아무도 귀신에 끌려 다니는 이 친구를 못 풀어 주는 거예요. 본인도 가족과 함께 집에서 살고 싶은데 그렇게 안 되는 거죠? 이제 사람들이 그를 버렸고 그는 방치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찾아 가셨습니다. 뭐하러? 그를 풀어서 자유롭게 살게 해 주려고. 매여 있는 것에서 풀어주시려고. 어디에 매여 있었느냐? 귀신에 매여 있었죠? 누구도 이 친구에게 자유를 주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가셔서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누구도 잡아주지 못하고 제지하지 못했던 이 친구가 귀신에게서 놓여 자유케 되어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풀어주시는 거예요. 어디에서? 생각에 잡혀있고 욕망에 잡혀있고 사단에게 잡힌 우리를 풀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목적대로 살 수 있는 삶을 살게 해 주려고 매여 있고 잡혀 있는 나를 찾아오시는 거예요. 나귀를 풀어 끌고 온 다음부터 예수님은 이 나귀와 함께 하시는 거예요. 이 나귀가 천 가지 만 가지 부족하고 문제가 있어 버림받고 죽어야할 나귀일찌라도 예수님이 이 나귀를 쓰시는 동안에는 절대로 버려지지 않고, 죽지 않고, 병들지 않고, 망할 수가 없습니다. 왜? 주님이 쓰셔야 하니까 쓰고 있는 동안에는 그 모든 것을 당신이 고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 23-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로마서 14:7, 8-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자신이 주의 것이 되어 있는 사람이 있고, 아직 나는 내 것이라는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내가 주의 것이라면 주님이 나를 어떤 부분에 들어 쓰시든지 간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어떤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건축업자들은 건물을 짓기 위해 거기 필요한 자재들을 전부 돈을 주고 사다가 물건을 현장에 재어 놓고 그 물건을 가지고 건축을 합니다. 다 사다가 갖다 놓고 도면을 따라 잘라서 못을 박기도 하고, 붙이고 그렇게 만들잖아요. 그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값을 주고 샀기 때문에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14장에는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 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요. 그럼 예수님께서 왜 나를 샀느냐?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예수님은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값을 지불하고 우리을 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시려고 당신의 몸을 다 버리셨어요. 마태복음 13장 44절에 보면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자가 그걸 묻어두고 집에 가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즉 자기 몸까지도 팔아 그걸 샀다고 했어요. 하나님은 나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릇으로 쓰시려고 당신을 다 주고 나하고 바꿔치기 한 거예요. 내가 나를 볼 때는 아무 가치 없는 벌레 같은 더러운 인생인데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고 나를 살 만큼 가치 있는 존재란 말입니다. 나는 너를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려고 해! 너 다른 거 하지마. 내가 넣어 준 말을 전해. 내가 가길 원하는 곳에 가. 입을 열어. 말씀을 전해! 그럼 내가 일할게! 이런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22:10-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사울은 다메섹도상에서 구원을 받고, 지금까지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살았는데, 그것이 결국 예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모든 걸 내려놓습니다. 주여 내가 어찌해야합니까? 무얼 해야 됩니까? 일어나라 다메섹에 들어가라. 네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줄 자가 있다. 가서 들어라. 그래서 사울이 이끌려서 다메섹에 들어가 아나니아를 만납니다.

     

    사도행전 22장 13-15절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은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전해준 말씀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한 이유는, 너를 구원한 이유는, 너를 값을 주고 산 이유는, 그 말입니다. 물건 하나도 사람이 구입할 때 그 사람의 필요에 의해 사는 것처럼 하나님도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사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라는 인생의 가치는 하루살이에 눌려 죽을 인생, 구더기 같은 인생이라고 하셔 놓고 독생자 아들 예수를 내 값으로 내어 놓고 날 사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 당신을 버려서 사야 할 만큼 가치가 있나요? 우리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치 없는 우리안에 하나님이 들어오시면 그 가치는 무궁무진 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바울을 택하시듯이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셨고, 그 의인을 보게 하셨고, 그 입에 있는 음성을 듣게 하셨고,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이방인의 증인으로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신 이유가 있다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있다면 지금까지 육체에 연연하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 그 삶을 그만 살고, 내가 이룬 이 복음 너를 통해 전하고 싶은데, ‘내가 너를 구원하려고 내 몸을 십자가에 못 박다 보니까 발도 없고, 손도 없고, 입도 없으니 네가 내 대신 이야기 좀 해 줄래? 네가 내 대신 저 사람 좀 찾아가 줄래?’ 라고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복음의 도구로 쓰고 싶어서 사셨다고 얘기하십니다. 여러분과 내가 구원받은 이유가 있다면 그것 말고는 그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욕만하고 거짓말만 하고 사기만 치고 나쁜 짓만 한 이 입술을 통해 말씀을 전하고 싶은 거예요.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 입술을 통해 하시려고 그 어마어마한 값을 지불하고 나를 사신 거예요. 그리고 당신 속에 나를 불러들이셨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구원을 받은 건 하나님이 쓰고 싶어서입니다. 이 나귀가 예수님을 등에 업는 순간 둘은 하나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나귀가 예루살렘에 가는 동안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예수님이 나귀의 모든 문제를 다 처리해 주시는 겁니다.

     

    제 나이 26살, 81년도에 저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 받기 전 저는 너무 험난한 인생 길을 걸어왔는데, 그런 저를 주님이 구원해 주시고, 저 같은 인생을 사 주셔서 나와 주님이 하나 된 그 날부터 지금도 여전히 형편없는 인간이지만 그 어떤 어려움과 문제도 저를 삼키거나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항상 주님이 제 곁에서 저를 지켜주셨고, 제게 약속을 주시며 힘이 되어주셨고, 승리하는 삶으로 이끌어 주셔서 지금도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구원받기 전에 허리를 다친 데다 페결핵까지 걸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기어다닐 정도로 힘들었던 상태이었는데, 지금은 뜀박질도 잘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육체도 하나님이 잘 이끌어주셨고, 제 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게 없었던 마음들을 하나님이 넣어 주시고 하나님의 귀한 마음들을 담아 주셔서 그 마음으로 살게 하시고, 남은 삶을 복음 앞에 살도록 이끌어 주시고 계십니다.

     

     이 나귀, 예수님과 떨어지면 목이 꺾여 죽어야 할 신세입니다. 그런데 나귀가 예수님과 함께 가니까 아무도 손을 못 대는 겁니다. 여러분과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지만, 아무도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다윗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다윗을 잡은 분이 하나님이셨기에 어느 누구도 다윗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은 나를 값으로 사셨습니다. 이 나귀와 예수가 하나 된 그 날부터 예수님이 나귀를 이끌어 가는 것처럼 주님과 우리는 하나가 되어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키시고 여러분이 어디서 무얼 하든지 승리케 하실 겁니다. 그 분이 우리를 사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몸 좀 쓰고 싶으셔서 그 어마어마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이 우리를 구원 하신 목적을 따라 복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수정 답변 삭제 목록
    274개(14/14페이지)
    말씀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4 주일 낮 설교(2013. 12. 1) 송동현 2013.12.03 7850
    >> 주일 낮 설교(2013,11,10) 송동현 2013.11.18 7277
    12 주일 낮 설교 (2013,10,13) 송동현 2013.10.24 7917
    11 주일 낮 설교 (2013. 10. 6) 송동현 2013.10.16 8046
    10 주일 낮 설교(2013.07.14) 신명진 2013.07.17 7294
    9 주일 낮 설교(2013.07.07) 신명진 2013.07.17 6815
    8 주일 낮 설교(2013.06.30) 신명진 2013.07.02 7379
    7 주일 낮 설교 ( 2013,6.23 ) 신명진 2013.06.28 7407
    6 주일 낮 설교(2013.06.16) 신명진 2013.06.16 7199
    5 주일 낮 설교(2013.06.09) 신명진 2013.06.09 7782
    4 kimsq 설명비밀글 관리자 2011.09.29 23
    3 test 관리자 2011.09.03 8909
    이전 글쓰기새로고침
    처음페이지이전 10 페이지11121314다음 10 페이지마지막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