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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선 | 2016.09.18 12:23 | 조회 3877


    1. 말씀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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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9. 18. ()

    주일 낮 예배

    본문말씀 [열왕기하 3:4~20]

     

    성경을 읽어보면 참 신비로운 게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읽고,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도대체 이해가 안가고, 뜻도 모르는 말씀이 있을 겁니다.

    40년 전에는 남해가 섬이었습니다. 다리 공사 전이라 배로 들어갔는데, 당시에 남해에 우리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남흥 여객 사장으로 계셨던 어른이 외국에서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딸을 통해 교회와 연결이 되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어르신은 성경을 참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다가 너무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 있어서 박옥수 목사님이 남해를 방문했을 때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습니다. 얼굴이 너무 뜨뜻해서 못 읽겠다면서 내놓은 질문이 창세기 38장 이야기였습니다. 거기에는 유다 집으로 시집 온 다말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말이 결혼하자마자 하나님은 유다의 아들 엘을 죽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말이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과 동침해 형님을 위해 대를 잇게 하는 것이 유다의 법인데, 오난이 아이를 낳아도 형님 아들이 되니까 씨를 주지 않으려고 땅에 설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난도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셨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다말을 친정으로 보내 막내 아들이 자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말이 친정으로 가서 과부의 옷을 입고 수절하면서 아버지가 불러주길 기다리는데 유다가 부르지를 않는 것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막내가 자라 장성했는데도 부르지 않는 걸 보고 다말은 자기를 쫓아내려고 그런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 유다의 아내가 죽고, 유다가 친구를 따라 양털을 깎으러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말은 창녀의 옷을 입고 시아버지를 유혹해 시아버지 씨를 받아 자식을 낳습니다.

     

    그 어르신이 이 이야기에 대해 질문하자 목사님이 뭐라고 답해 주신지 아십니까? “어려울 것 없어요. 너무 쉬워요. 이 이야기는 성경에만 있습니다.” 성경이 다른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이런 이야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주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본 마음을 모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네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하면서 싸우지만 본인은 자기 마음을 하나도 모릅니다. 본인이 아는 마음은 마귀가 속여서 넣은 잘못된 것이지 인간의 원래 마음은 모릅니다. 창세기 38장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깨우치고 알게 해 주시기 위해 기록해 주신 성경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도 세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우리의 마음상태를 그려 놓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말씀을 듣다가 보면 바로 저 사람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같구나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복이 될 것입니다.

     

    모압이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어 해마다 새끼 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을 이스라엘왕에게 공물로 바치다가 이스라엘의 아합왕이 죽자 모압이 이스라엘을 섬기지 않고 배반합니다. 그래서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모압을 징벌하는 전쟁을 준비하면서 유다왕 여호사밧과 합세를 하고, 에돔 광야길로 가기 위해 에돔 왕도 끌어들여, 결국 세 왕이 모압을 치러 가게 됩니다.

    모압을 치기 위해 세 왕이 마음을 모으고, 전술을 짜고, 무기를 정비하고, 군량미를 모아서 길을 떠났는데, 에돔 광야길에 들어간 지 7일째 되는 날에 준비해 왔던 물이 바닥이 난 겁니다. 모압을 치기 위해 출발을 하긴 했는데, 모압에는 가 보지도 못하고 다 죽게 된 것이지요.

     

    이런 극한 상황에서 에돔 왕은 전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스라엘의 여호람왕은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도다라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저 또한 인생을 이렇게 살았습니다. 툭하면 원망하고, 다른 사람 탓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어떤 분의 인도로 주님을 만난 후에 하나님이 왜 내 인생 속에 온갖 어려움을 허락하셨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운동하다 허리를 다쳐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운동을 못하게 되고, 그 일로 상심이 커서 술로 인생을 허비하다가 폐결핵까지 걸려서 가족에게 조차 버림을 받아 길바닥에서 거지처럼 살면서 발견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잘 났고,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내 자신이 절대 안 되는 인생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6년 동안을 무엇이든지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나로서는 안 된다, 내가 개입하면 망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때 교회라는 곳에 와서 처음으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 앞에 갈등을 내려놓고 싸우다 발견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지구라는 땅덩어리에 사는 수많은 생물들, 이것들이 저절로 생긴 게 아니라 누군가 만들었을 거다. 그리고 그 자는 절대적인 신일 것이다. 뭐든 맘대로 할 수 있는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자다.’ 그런데 말씀을 듣다 보니까 그 절대자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만물을 지었고 창조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라고 반박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배운 지식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그 말씀을 반박할 만한 근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받아놓고 깊이 생각해보니까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실상이었습니다. 그 말씀 앞에 마음이 굴복되니까 말씀이 믿어졌습니다. 이 세계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절대적입니다. 절대적인 그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 9이스라엘 왕이 유다 왕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행하더니 길을 둘러 행한지 칠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생축을 먹일 물이 없는지라

    10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시려하시는도다

    여호람 왕의 이 말은 전부 다 자기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도와주려고 엘리사를 이들 중에 함께 하게 하셨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여호람왕은 자기 생각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11우리가 여호와께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똑같은 상황인데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문제를 들고 자기 생각이나 감정, 느낌을 표출하지 않고 왜 이 문제가 일어났는지 하나님께 묻기 위해 하나님의 종을 찾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비록 여호람과 마음을 합하여 전쟁을 하러 왔고, 지금까지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아왔을지라도 그 마음 중심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하나님의 종을 찾습니다. “여호와께 물을 만한 선지자가 여기에 없느냐?” 그러니까 이스라엘 왕의 신복 중 한 사람이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그 말을 듣자마자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11여호와께 물을 만한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입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열왕기상 22장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절부터 보겠습니다.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이 삼년을 지내었더라 제 삼년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내려가매 이스라엘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 왕의 손에서 취하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하고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우시겠느뇨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일반이니이다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청컨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이스라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인쯤 모으고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저희가 가로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가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오히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아합과 여호사밧이 동맹을 맺어 아람과 전쟁을 하려고 하는데, 전쟁에 나가기 전에 여호사밧왕이 먼저 하나님의 뜻이 어떠하신지 물어보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400인의 선지자를 불러 모아 놓고 길르앗라못에 가서 싸워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를 물어보는데, 400명의 선지자가 다 같이 전쟁을 하면 승리할 것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왕은 이 400인 말고 다른 사람을 찾습니다. 그 말은 이 400인은 하나님에게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니야, 라는 뜻입니다. 즉 이 400명은 거짓 선지자들이며, 신약성경에 의하면 양을 탈을 쓰고 노략질하는 이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 당신의 종을 부르실 때, 기름을 부어서 선지자로 세웁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입으려면 반드시 성경적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현시대는 조직화가 된 종교단체에서 수 십만명의 사람들을 목회자로 배출하고 있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복음을 전해주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모든 죄값을 지불하고 우리 모두를 영원히 거룩하고 온전케 해놓으셨는데, 그걸 가르쳐주질 못한단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의롭다고 이야기 하는데, 목사라고 하는 분들이 그 사실을 가르쳐 주지 못하는 실정이라는 것입니다.

     

    400인 외에 다른 하나님의 종을 찾는 여호사밧에게 이스라엘 왕이 이야기 합니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는데,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이 하게 하시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고, 사람이 듣기 좋은 소리를 하면 그 사람은 사람의 종입니다. 미가야는 하나님의 종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이 미워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하고 있는 신앙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성경에 비추어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사람의 견해를 기록한 책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기록한 책으로 우리에게 믿으라고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선지자가 하는 이야기를 이스라엘왕은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왕은 좋은 이야기를 들어야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듣고 받아들여야 살 수 있습니다.

    병에 걸린 환자가 병원에 가면 좋은 이야기를 들어야 되는 것이 아니고, 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치료해서 생명을 살릴 수 있단 말입니다. 암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에게 괜찮습니다, 오래 사실 겁니다.’ 라고 이야기 한다면 그게 좋은 이야기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그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양심적인 의사라면 고칠 수 있는 병원을 가르쳐주든지, 치료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입니다. 환자가 병원에 가는 이유는 병을 고치기 위해서지 좋은 이야기를 듣기 위함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내 귀에 좋은 말을 듣는 곳이 아니라 내 영혼을 치료해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죄인은 영벌에, 의인은 영생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누구를 막론하고 죄사함 받은 의인이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현재 목회를 하고 계신 목회자들이 참된 하나님의 종이라면 성경적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전쟁을 하러 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왕은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자기의 뜻과 반대가 되었으니까 하나님의 뜻을 듣기 싫어합니다. 자기의 뜻을 따라가면 이 왕은 죽게 되는데, 그걸 안다면 이 왕이 하나님의 뜻을 거절할까요? 절대 아닐 겁니다.

     

    우리는 행악의 종자이고, 마귀의 자식입니다. 그런 우리가 왜 좋은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우리는 치료를 받고 고침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죄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읽었던 성경에서 여호사밧왕은 엘리사를 통해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들여 개천을 팝니다. 바람도, 비도 보지 못하지만 이 곳에 물을 채워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개천을 팝니다. 개천을 팠을 때 물이 채워지게 되고, 그 물이 채워지면서 물이 없어 죽어가던 군사들이 살아나게 되고, 그 일로 인하여 모압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는 기적을 맛보게 됩니다. 이 왕은 지금까지 자기 생각과 뜻을 따라 살면서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죽게 하는 일 밖에 한 것이 없습니다. 자기를 믿는 수많은 백성들을 에돔 광야에 몰아넣고 전부 목말라 죽게 한 것이 이 왕이 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도 종교라는 탈을 뒤집어쓰고 많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왕이 그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때 이 왕은 자기 뜻이나 의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이 왕이 자기가 틀린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종이 말씀하시는 대로 따라가니까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됩니다. 말씀대로 하면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말씀대로 하면 반드시 살아나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여러분 손에 들려 있는 성경은 교회 갈 때 들고 가는 책이 아니고, 믿어야 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명철과 지혜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믿으신다면 이 말씀은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는 자에게 그 믿음대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열왕기상 17장에서 사르밧과부가 엘리야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작은 떡을 만들어 엘리야에게 가져왔을 때 하나님께서 그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을 채워주셨습니다. 사르밧과부 스스로 가뭄과 기근에 대처할 때는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바닥 나 죽음의 결과밖에 얻을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전해주는 말씀을 따라갔을 때는 통의 가루가 채워져 죽음에서 생명을 얻는 기적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까?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대상은 오직 말씀입니다. 내가 이런 마음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이 뜻인지, 아닌지 말씀 앞에 물어 보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라면 과감하게 뛰어드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뛰어드는 모든 자들에게 단 한 번도 외면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우시는 그 은혜를 입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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