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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선 | 2016.09.25 12:42 | 조회 6138


    1. 말씀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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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누가복음 15:11~32]

     

    여러분, 뱀에 물리면 위험하고 심지어 생명까지 잃는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뱀 중에는 맹독성이 있는 뱀들이 많습니다. 한국에는 그런 뱀이 별로 없지만, 다른 나라에는 맹독을 가진 뱀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독이 있는 뱀을 잡아 이빨을 뽑고 독을 추출해서, 사람의 혈액을 담아놓은 병에 독을 한 방울 떨어뜨리면 1초도 안 돼서 피고 응고가 됩니다. 묵처럼 굳어버립니다. 우리가 뱀에 물렸을 때 독이 혈관을 타고 들어오면 심장이 굳어 죽게 됩니다. 그래서 무서운 것입니다. 뱀에게 있는 독성이 사람에게 들어오면 사람의 생명을 잃습니다.

     

    그것처럼 우리 마음을 회복시켜 주고, 살려주고, 건강하게 해주는 말이 있고, 우리 마음을 죽이고, 경직시키고 고립되게 만드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이라고 분류합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5절을 보면,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사람에게 들어가면 마음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그 사람이 죽었든, 병들었든, 귀신이 들렸든, 생각에 빠졌든, 의심이 있든, 불신이 있든, 어떤 문제 속에 빠져있을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만 들어가면 그 사람은 문제에서 벗어납니다. 반대로 사람에게서는 좋은 소리, 선한 소리, 바른 소리, 옳은 소리, 분명한 소리, 확실한 소리들이 나오지만 이것은 옳음을 주장하는 도구로 쓰이는 말들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모두 사람의 마음을 죽이는 일을 합니다. 그 옳음이 자기를 옳은 사람으로 만들지만 다른 사람을 죽여 버립니다. 성경에는 두 종류의 소리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소리로 모든 것을 살리는 일을 하고, 반대로 사단으로부터 나오는 소리는 아무리 바르고, 옳고, 분명한 소리일지라도 모두 죽이는 일을 합니다.

     

    오늘 읽은 이야기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버지에게 아들이 있는데, 이 아들은 아버지와 사는 게 영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받아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로 갔습니다. 가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재산을 다 날려버렸습니다. 그 삶의 결과는 허랑방탕하게 살았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을 만났는데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참 기가 막혔습니다. 이혼하시고 아이 둘이 있는데, 딸은 결혼시키고 밤에 대리운전을 하며 사셨습니다. 15년 가까이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일을 하면서 돈을 모으셨는데 이 분이 다단계 때문에 돈을 다 날려버리셨습니다. 다시는 다단계를 안 한다며 마음을 접고, 빚 진 채로 악착같이 사는데 어느 날 어떤 교회에 다니는 분과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교회 전도 주간이라고 4명을 교회에 데리고 가야한다며, 꼭 좀 따라가 달라고 며칠을 졸라 교회에 따라가 줬습니다. 가보니까 교회에 등록을 하고 4주를 다녀야 된다고 해서 등록까지 하고 4주 간 교회 출석을 채워줬습니다. 그 이후 교회를 안 나가고 집에 있는데 교회 어떤 부인이 찾아와 계속 교회를 오라고 하도 하니까 교회를 따라 갔습니다. 그러면서 부흥회, 집회 등 다 따라다니면서 빚 진 이야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니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당신 빚을 다 갚아 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몇 달이 지나고 어떤 분이 자신에게 주식 증권이 아주 좋은 것만 나와 있다면서 이걸 사면 돈을 많이 번다며 사라고 권했습니다. 그 분은 고민을 하다가 하나님이 갚아준다고 그 사람이 그러니, ‘하나님이 빚을 갚게 해 주시려나보다생각하며 주식 증권을 샀습니다. 그러나 증권으로 많은 돈을 잃고, 건강이 악화되어 건강보조식품을 먹다가 강남교회 자매님을 알게 되어 저랑 연락이 되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어려서부터 십일조하고, 예배 참석하면서 열심히 교회에 다녔지만 어떻게 죄가 씻어지는 지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분에게 하나님이 인간을 왜 창조하셨는지, 인간은 왜 죄인이 되었는지, 죄는 무엇인지, 죄로 인한 심판은 무엇인지, 죄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구원을 받으면 어떻게 사는지, 차근차근 가르쳐 드릴테니 와서 배우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 분과 대화를 하면서 제가 받은 구원이 너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길바닥에 버려져 죽어 가고 있을 때 저에게 손을 내밀어 준 그 분이 복음을 가진 분이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제가 처음 만난 교회는 할아버지, 할머니 20여 분이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정말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이었지만 저는 거기서 정확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외형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지만 한 심령을 죄에서 벗어나 거룩하게 하나님 앞에 세워주는 그 곳이 바로 성경적인 교회입니다.

     

    환자가 몸이 아파 병원에 다니는데,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해서 치료만 받고 있다면 그것은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사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의사를 만나 의사기 시킨대로 하면 병은 낫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적인 하나님의 종을 만나면 성경의 말씀을 통해 죄의 병을 해결 받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의인으로 거듭나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아버지가 못 마땅하고 자기와 맞지 않으니까 아버지를 판단하며 살다가 결국 아버지를 떠나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있는 것을 다 허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 허비하고 나서 먹고 살 것이 없자 돼지 치는 곳에 붙어서 사는데, 먹을 것을 주지 않으니까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려 하는데 그것조차 주지 않는 겁니다. 이 아들은 굶어 죽어야 될 상황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이 아들은 자기가 죽는 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17절을 보면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가 어딥니까? 표면상으로는 돼지우리라는 장소를 뜻하지만 그 이면의 뜻은 다른 것이 있습니다. 즉 여기는 자기를 믿는 것, 자기 뜻과 자기 판단을 믿는 곳입니다. 그 결과가 죽음인 것을 둘째 아들은 발견합니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거기서 떠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자기를 의지해서 또 다른 길을 찾아가지요. 둘째 아들은 자기를 믿고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망했는데 또 다른 직장을 찾아 갑니다. 실패했지만 여전히 자기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악하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지만 내가 악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도 악한 나를 끌어안고 악한 나를 다듬어서 내놓고 있는 겁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면서부터 돌아올 때까지 하는 일은 전부 다 자기가 주체였습니다. 이 삶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야 끝이 납니다. 그런데 자기를 믿는 삶의 결과가 주려 죽는 것임을 발견해 놓고도 또 자기 생각을 말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어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둘째 아들은 돌아올 때 망한 아들, 아버지를 대적한 아들로 돌아온 게 아니고 품군으로 왔습니다. 이 생각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나는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아들로서 합당치 못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들입니다. 하나님과 똑같은 의인입니다. 똑같이 거룩하고 당당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아들로 사십시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서 살아가는 동안 모든 삶이 주체는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날부터 둘째 아들이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때부터는 아버지가 전부 다 하십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하시는 것을 받아들이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단은 이것을 뒤집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속습니다. 로마서 11장에 이것에 대해 설명해 놓은 구절이 있습니다.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은 자 되었은즉 돌감람나무 가지가 꺾여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진 이후에는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게 되어 있습니다. 즉 참감람나무와 똑같은 삶을 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돌감람나무 가지가 진액을 받으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참감람나무에 붙어 있으니까 뿌리에서부터 진액이 올라옵니다. 그러니까 꽃 피기 싫어도 꽃이 피고 열매 맺기 싫어도 열매를 맺는 겁니다. 가지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뿌리에서 올라온 진액이 다 알아서 하는데 그걸 관리하는 분은 농부입니다. 농부는 하나님이십니다.

     

    신앙은 내가 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해 놓은 것을 누리고 즐기는 겁니다.

    잃었다가 얻은 아들이라며 아버지께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잔치를 베풀어서 계속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이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변하기 싫어도 변합니다. 마음 꺾기 싫어도 마음이 꺾이고, 눈 뜨기 싫어도 눈이 떠지고, 믿음으로 살기 싫어도 믿음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이 내 마음을 바꾸어서 새 삶을 살게 만들어줍니다.

     

    열왕기상 17: 11-16

    저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로되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이 상황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기근에 시달려 굶주린 것이 아주 오래 되어 거의 죽음 직전에 와 있습니다. 여자가 가루 한 움큼으로 떡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는데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여자를 보고 그 떡을 달라고 합니다. “먼저 나를 위하여 작은 떡을 만들어 가지고 와라. 그 후에 네 말대로 해라.” 그리고 그 다음에 하는 말을 보십시오. 14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그런데 이 말을 들은 여자는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엘리야의 말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여자가 그 말 그대로 받아들였더니 신기하게도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다시 채워지는 겁니다.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져 여자와 아들은 기근에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신앙은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깨달을 필요 없습니다. 이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씀대로 그냥 따라 가면 됩니다.

     

    열왕기하 3장에서 여호사밧왕이 개천을 파라엘리사의 말씀을 듣고 말씀 그대로 개천을 팠을 때, 바람도 비도 없었지만 말씀대로 개천에 물이 채워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서도 사르밧과부가 엘리야의 말대로 통의 가루를 박박 긁어서 작은 떡을 만들어 엘리야에게 가져갔더니 통에 가루가 다시 채워지는 기적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여자의 통에 가루를 채워주고 싶으셨는데, 이런 방법으로 채워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이 언제 아버지께 돌아옵니까?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 생각을 믿고 따라간 결과는 죽음이구나.’ 라는 것이 보여질 때 그 자리를 떠나서 아버지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것을 성경은 회개라고 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버리고 말씀 앞으로 돌아가셔야 됩니다. 진정한 회개는 내가 틀렸구나, 내 생각과 판단의 결과는 죽음 이구나라는 것을 발견할 때, 그 사람은 자기를 신뢰하지 않고 불신을 하게 됩니다. 자기를 불신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만들어지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특별한 게 아닙니다. 자기를 믿지 않고 오직 말씀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안타깝게도 자신을 믿는 마음으로 자기 방법대로 살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갖다 붙일 때가 많습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 왕이 살았던 삶이 바로 그런 삶입니다.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했다고 말하면서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우지만, 하나님은 네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를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한다고 하시면서 사울을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도 따르고, 자신의 생각도 따랐습니다. 그게 하나님을 버린 것인데도 사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버린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씀만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믿고, 나도 믿는 것은 스스로 불행해지고 망하는 길입니다.

     

    탕자가 있는 자리는 죽음의 자리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가 죽음의 자리인지 축복의 자리인지를 아셔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따라가게 되면 저주를 받을지, 복을 받을지 모른다면 이 둘째 아들처럼 끝까지 가서 알게 되겠죠. 생각은 우리를 저주와 멸망으로 끌어가지만 말씀은 우리를 생명으로 이끌어 줍니다. 그래서 죽음으로 가던 사르밧과부가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니까 과부가 죽음으로 가다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과부도 살고, 아들도 살고, 엘리야도 같이 살게 됩니다.

     

    창세기 4: 6-1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찌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가인이 죄로 인해 고통하고 몸부림치면서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다고 하면서 두려워할 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그렇지 않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죽음을 면하는 표를 주시고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음을 면케 해 주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예레미야 29:11-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재앙도 없고, 불행도 슬픔도 없습니다.

     

    이사야 53: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이 해 놓으신 일로 인하여 우리는 평화를 누릴 수 있으며, 병에서도 벗어나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끌려 다니는 것도, 병에 끌려 다니는 것도 말씀을 안 믿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믿으면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자기를 믿고, 생각을 따라 간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떠나 아버지께 돌아가니까 살게 됩니다.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지고 돼지 마굿간에서 죽어가는 삶을 살고 싶다면 여러분의 생각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그런 삶이 싫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하나님 앞으로 가십시오.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면 허기진 배도 해결이 되고, 구멍난 신발도 해결이 되고, 때가 묻은 몸도 하나님이 깨끗하게 씻겨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문제 여러분이 씨름하지 마시고 문제 그냥 놔두고 주님 앞에 오십시오. 아버지 안에서 만나는 어떤 문제든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수 있지만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여호수아 20장에 도피성 이야기가 나오는데, 도피성은 고의가 아닌 우연히 사람을 죽이게 되었을 때 피의 보수자로부터 생명을 지켜주는 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억울한 사람을 보호해주기 위해 선정해 놓은 것이 도피성인데, 장로들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까지 완벽하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강도만난 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으로 주막에 옮겨지는데, 그곳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돌아올 때까지 주막 주인의 돌보심을 입게 되어 있습니다. 도피성과 주막은 돌보심을 받는 곳이지, 일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나는 돌봄을 입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문제 여러분이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나아오면 주님이 그 문제에 손을 대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픈 대로 아버지에게 돌아올 때 둘째 아들이 새 삶을 사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모든 걸 주셨는데도,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위한 성을 쌓아서 결국 망하게 됩니다. 반대로 이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난 그 곳이 죽음인 것을 발견하고 돌아와서 아버지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누리는 은혜를 입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 하나님 앞에 돌아가셔서 그 분이 주시는 모든 것을 누리면서 그 분과 함께 사는 복을 입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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