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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동현 | 2016.11.13 12:32 | 조회 4516


    1. 말씀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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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낮 예배

    본문말씀 [룻기 3:1~13]

     

    신앙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고 굉장히 쉽고 간단한 것입니다. 병원에 가보면 혈액이 부족한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빈혈기가 생긴다고 하죠? 피가 생산되는 부위에서 생산이 잘 되지 않아 그런 것입니다. 몸에서 피가 어디서 만들어집니까? 골수 안에 있는 조혈모 세포, 일명 모체라고도 하는 이 세포는 피를 생산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우리 몸에 60조 개 세포가 있는데 세포마다 하는 역할이 모두 다릅니다. 조혈모는 오직 혈액을 만들어 내는 일만 합니다.

     

    꿀벌은 계속 꿀만 따온다, 그렇게 배우셨죠? 아닙니다. 꿀을 따오는 벌이 있고, 정찰하는 벌이 있고, 새끼를 낳는 벌이 있고, 물 떠오는 벌이 있고, 보초병이나 군사도 있습니다. 정찰병이 정찰하고 돌아와 날개를 흔들고, 회전하면서 꿀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만큼 있는지 동료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꿀 따러 가는 벌들이 모두 따라 갑니다. 그러다보면 꿀이 바닥이 납니다. 그러면 정찰병이 알려준 나무 말고 옆에 있는 나무에서 따오겠죠? 벌은 절대 그렇게 안합니다. 바로 10m 옆에 나무가 있어도 정찰병이 가르쳐준 나무에만 갑니다. 꿀이 없으면 그냥 돌아옵니다. 이 벌은 평생 꿀을 따다가 죽습니다. 누가 먹든지 관심 없습니다. 사람들이 꿀을 다 빼앗아 가도 다시 넣어 놓습니다. 사람이라면 열 받겠지만, 벌은 채워 넣고 없으면 또 채워 넣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잘못된 것이 들어와 있어서 그렇게 안 되는 것입니다. 벌집 안에 있는 수 백 마리 벌은 딱 한 마리의 여왕벌에 의해 통솔이 됩니다.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지만 질서가 잡혀있습니다. 가끔 다른 곤충이 꿀을 빼앗아 가려고 벌집을 습격하면 보초병들이 달려듭니다. 동료들이 목이 잘려 뒹구는 걸 보면서도 또 달려듭니다. 언제까지? ‘네가 물다가 지켜서 못 물겠지.’ 할 때까지 벌들이 와서 싸우다가 죽습니다. 그리고 침입자가 지쳐서 힘이 없을 때 달려들어서 죽입니다. 그렇게 벌집을 지킵니다. 그들은 온 몸을 던져서 벌집을 지키는 일을 하고, 끝까지 싸웁니다. 한 마리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벌집을 지키는 일을 담당하고 있어서 거기에 생명을 겁니다. 우리는 이 벌한테 배울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힘들거나 어려우면 피하고 도망가는 방법을 배워서 잘 씁니다. 그래서 믿음을 배우지 못합니다.

     

    오늘 읽었던 룻기 3장을 보면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후반에 기업을 무르는 것이 굉장히 큰 축복인데 룻은 기업을 무르기 위해 보아스 앞에 나가야하는 큰 부담이 있습니다. 보아스의 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31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을 보면 나오미가 안식할 곳을 구해서 복되게 하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는 타작마당에 들어가 몸을 숨기고 있다가 보아스가 어디 눕는지를 잘 보고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고 합니다. 도덕적으로 보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이는 우리의 교양이나 기준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신앙하면서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말씀을 강하게 부인하는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자신의 잣대와 저울을 갖고 살기 때문에 남을 판단하지 자기 자신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4장에서는 읽는 것과 권하는 것을 네 자신에게 착념하라고 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을 들었을 때 룻의 마음에서 분명히 받치는 것이 있었을 건데 어떻게 어머니의 말대로 할 수 있었을까요? 룻은 시어머니의 말씀 앞에 자신의 그 어떤 견해나 옳음도 내놓지 않고 이끌려 가는 삶을 사는데,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은 다윗에 대해 당신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싫어합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아무것도 못하니까.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을 좋아하고 그렇게 삽니다.

     

    그러나 룻의 삶을 보면 묶인 강아지처럼 나오미에게 끌려 다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룻에게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벗겨내고 그녀를 가장 복된 삶으로 이끌어갑니다. 룻은 영원히 여호와의 회중에 들어올 수 없다고 저주를 받은 모압 족속인데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그리스도의 계보에 올라가는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룻이 뭔가를 해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나오미를 붙좇은 것밖에 없습니다. 그냥 나오미가 일러주는 말을 따라 그대로 산 것뿐인데 인생이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립니다. 시어머닌 말 한 마디 듣고 그대로 따른 것뿐인데 말입니다.

    룻기를 보면 어디를 읽어봐도 룻의 의견이나 주관, 뜻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나오미가 무슨 말을 하든 그대로 움직이는 그림만 그려져 있습니다. 다윗의 생애도 이 성경과 흡사합니다. “하나님, 이번에 전쟁할 때 어떻게 할까요?” “뽕나무위로 올라가라.” 우리 같으면 거기 올라간다고 됩니까?”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이 구원받겠어?” 이런 마음이 먼저 올라온단 말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말씀을 따라 움직일 때마다 안 될 것 같은데 되는 겁니다. 참 신비롭지요?

     

    하나님은 신분이 무엇이든지 간에, 어떤 마음을 갖고 있든지 간에, 또 그가 어떤 삶을 살았든지 간에 그런 것 따지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말씀을 믿는다면 그 사람을 책임지고 약속대로 일을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너 왜 의심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여러분이 회사 사장이라면 여러분을 의심하는 직원을 들어 일을 합니까? 세상은 자신을 불신하는 사람 절대로 안 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의심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잘못한 거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룻은 영원히 저주 받아서 여호와의 회중에 들어 올 수 없는 모압 족속인데 그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베들레헴에 오는 데에도, 보아스의 아내가 되는 데에도,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데에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6:9,10) 불의한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성경에 이미 낙인을 찍어버렸습니다. 이 말씀 앞에 예외는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저주로 끝날 겁니다. 그런데 11절을 보면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겁니다. 이 여자 룻은 모압 족속이라 영원히 여호와의 회중에 들어오지 못하고 저주 받아야 하는데 나오미에게 속해 버리니까 그때부터 룻의 모든 허물과 문제와 죄가 끝나버린 겁니다.

     

    여러분과 나도 룻처럼 저주받은 죄인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하나님이 세계에 들어갈 수 없는 인간인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과 은혜와 성령으로 죄를 씻음 받고 의롭고 거룩하게 되는 길이 있습니다.

     

    나오미가 룻을 보아스의 품으로 밀어 넣는데 그 곳이 룻이 안식할 곳이었습니다. 룻이 나오미의 마음을 모른다면 시어머니가 망령이 낫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룻은 시어머니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룻기 1장에서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려고 할 때 두 며느리가 함께 시어머니를 붙좇아 따라옵니다. 그 때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돌아가라고 강하게 몰아내치는데, 그 말을 듣고 오르바는 돌아가지만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길 원하다 면서 나오미를 붙좇습니다. 룻은 나오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세계를 보고 있습니다. 모압에 내려와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비어진 나오미를 베들레헴으로 이끌어가는 하나님의 세계가 룻의 눈에는 보이는 겁니다. 룻이 표면적으로는 나오미에게 이끌리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나오미의 마음을 잡고 있는 하나님께 이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하는 말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앞에 절대적으로 복종을 합니다.

     

    룻이 시어머니가 하는 이야기를 사람의 말로 들었다면 분명히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룻은 나오미가 하는 이야기에 대해 아니오가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시어머니가 시킨 대로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고, 보아스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에 눕습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사는데 하나님이 안 도우시면 하나님 믿지 마십시오. 우리는 망할까봐 두려워서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일개 회사에서도 사장이 부하직원에게 일을 시키면 부하직원은 사장님이 시킨 대로 하면 되고, 시킨 대로 했다면 그 후의 모든 결과는 일을 시킨 사장님이 책임을 지는데, 어찌 우리 하나님께서 당신을 믿고 뛰어드는 사람을 망하게 하시겠습니까?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부모에게 조차 버림받고 길바닥에 버려진 저의 인생을 하나님이 거두셔서 주막과 같은 교회 안에 나를 맡겨 두시고 지금까지 저의 인생을 이끌어 주고 계십니다. 제가 한 것이라곤 내 생각에 끌려 엉망으로 산 것 밖에 없는데, 하나님은 그런 저에게 개의치 않으시고 당신의 약속대로 신실하게 저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멋진 분입니까?

     

    룻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든지 나오미는 거기에 개의치 않고 룻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나오미가 룻을 위하듯이 주님이 그렇게 우리를 위하고 계십니다. 그 주님을 믿으십시오. 그 분에게 여러분을 맡기십시오.

     

    고린도전서 69절에서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11절에 보니까 유업을 받는 거예요. 우리로서는 절대로 안 되는데, 주님 안에 들어가니까 유업을 받을 자격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셔서 그 예수 안에 들어오는 자에게 열어 놓은 길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롭고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의 아들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길입니다. 그 세계를 우리에게 값없이 은혜로 주시려고 나오미가 룻을 이끌어 가듯이 우리를 주님이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들어오면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단은 이 놀라운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우리 마음을 방해합니다.

     

    룻기 3장에서 룻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나오미가 시키는 대로 한 것 밖에 없습니다. 신앙은 룻이 나오미의 말을 졸졸 따라가는 것처럼 우리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졸졸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따라가는 동안 우리의 부족함도 악함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단 하나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이런 말씀들이 우리의 삶을 가르치고 있는데, 룻이 나오미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했을 때 룻은 기업을 무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라가는 놀라운 은혜와 역사를 맛보게 됩니다. 룻이 모압에 그대로 주저앉았다면 이런 놀라운 세계에 들어 올 수 있었겠습니까? 절대 불가능합니다. 룻이 나오미의 이끌림을 받는 동안에 룻의 생애에 이런 놀라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나오미와 같은 교회와 종의 이끌림을 받는 동안에 우리가 어떤 인간이든지 간에 룻이 누린 이 복을 우리도 동일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모압이라는 내 세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세계로 이끌기 위해 우리 가까이에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종들을 두고 우리와 우리자녀들을 이끌고 계십니다.

     

    오르바나 룻이나 똑같이 나오미의 며느리였지만 오르바의 눈에는 어머니를 이끌어가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돌아서지만 룻은 그 하나님이 세계가 보이니까 다른 것 필요 없고 오직 어머니의 하나님을 얻기 위해 시어머니를 붙좇는 삶을 살게 됩니다. 룻이 나오미를 붙좇는 순간부터 모압은 더 이상 룻의 나라가 아니고 모압의 백성이 더 이상 룻의 백성이 아닙니다. 룻은 하나님을 버리고 모압이라는 세상에 나와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는 시어머니를 사랑하셔서 다시 베들레헴으로 이끌어가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허물도 묻지 않으시고, 잘 잘못도 따지지 아니하시고 복을 받을 수 있는 베들레헴으로 나오미를 이끌어가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면 내 인생도 복을 입겠다는 마음으로 룻은 시어머니에게 이끌리고 있습니다. 룻은 오직 시어머니를 이끄시는 하나님에게만 관심이 있지 다른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시는 종이 우리 앞에 그렇게 살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방향을 바꾸십시오. 선교회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앞선 종을 이끌고 있는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신다면 여러분의 생애도 똑같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우리를 위해 준비된 곳입니다. 구약성경의 도피성은 모두 부지중에 죄를 범한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성입니다. 누구든지 부지중에 죄를 범한 사람이 그 성안에 들어오면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도피성은 저주를 받은 민족이든, 그 누구든 관계없이 부지중에 죄를 범한 자가 들어와서 생명을 얻는 곳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함을 얻듯이, 도피성안에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룻이 보아스의 품에 들어가니까 보아스이 여자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도 룻이 보아스에게 속하는 것처럼 말씀 안에 속해서 예수님의 사람이 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삶을 사십시오. 룻이 나오미의 말을 붙좇아갔던 것처럼 여러분도 말씀의 인도와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면서 여러분뿐만 아니라 여러분 가정도 여러분이 속한 직장도 룻이 입었던 복을 함께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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