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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혜원 | 2016.11.20 13:49 | 조회 3588


    1. 말씀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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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11. 20.

     

    주일 낮 예배

     

    문말씀 [요한복음 1:1-18]

       

    예전에 대구에 동산병원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실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떤 시골 할아버지 몸이 안 좋아서 할머니와 이 병원에 와서 진찰을 받고 원장이 처방을 내려줬습니다. 지금처럼 컴퓨터가 없어서 메모지에 처방전을 써 주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약국에 이 처방전을 내고 약을 받아 잘 다려 먹으라는 말을 들었는데, 약국 가는 것은 잊어버리고 잘 다려 드시라는 말만 기억하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약단지에 이 종이를 넣고 푹 달여 버렸습니다. 종이를 달이니 종이가 흐물흐물해져, 다시 종이를 바싹 말려 또 달이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종이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할아버지 병이 갈수록 차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다시 원장을 만나 손짓 발짓 설명을 해 가며 약을 더 달라고 하는데 대화가 안 되는 겁니다. 할머니가 원장님이 가슴에 품고 있는 대롱 같은 병뚜껑을 열어 종이에 발라줬는데, 그 약 좀 더 발라 달라라고 말하자 원장은 그때 불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야단을 쳤습니다. ‘할머니! 그렇게 귀한 약을 또 줍니까? 안됩니다.’ 할머니는 우리 영감이 많이 좋아졌는데 조금만 더 주면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면서 애원을 했습니다. 하지만 원장은 엄청 비싼 것이라며 다른 약을 주겠다고 당시 기억을 더듬어 간호사를 불러서 할머니와 함께 같이 약을 처방 받아 갈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감은 건강하게 살아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할머니는 처방전이 쓰인 종이가 약인 줄 알고 할아버지에게 먹였더니 차도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믿음이겠죠?

       

    말씀이 하나님이다. 우리가 눈으로 성경을 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다.’ 그러면 여러분 손에 들려있는 성경책의 말씀은 하나님이라는 결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이해, 긍정, 인정 하지만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말씀을 많이 듣고, 읽어도 내 인생에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말씀이 내 마음에 전달될 때 반감이 있고 그 시대에는 그럴 수 있겠다는 수준으로 받아들이지 말씀이 나를 바꾼다.’ 라는 믿음은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쥐약을 먹으면 그 사람은 쥐 죽듯이 죽습니다. 누가 주든, 누가 먹든 약 자체에 효력이 있기 때문에 약발을 받습니다. 말씀 자체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 자체는 하나님입니다. 말씀이 들어오면 일을 하는데 마음에 말씀이 안 들어옵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들어도 마음에서 거부해 버리면 그 사람 마음에는 일을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마음에 받아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대덕에 땅을 사서 수양관을 짓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입구에서 4층으로 바로 올라가는 길가에 나무를 심었는데 다 죽고 한 그루만 남았습니다. 왜 죽었는지 우리는 잘 모르니까 당시 김천시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나무 방향을 잘못 잡아 심었다고 했습니다. 잔가지 많은 쪽을 남쪽에 맞춰 심었어야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나무를 심을 때 방향을 전부 맞춰 심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니 원래 나무가 심겨져 있던 곳의 흙을 넣어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죽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전문가가 말하길 나무 봉을 뜰 때 뿌리가 흔들리면서 공간이 생겨 공기가 들어갈 수 있는데 그러면 나무가 죽는다는 겁니다. 그 후 나무 심는 것을 많이 보게 됐습니다. 긴 파이프를 나무 뿌리 밑에 박아 계속 물을 넣어 나무가 심겨진 웅덩이 흙을 걸쭉한 죽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흙이 푹 꺼지고, 또 흙을 부어가면서 콘크리트 이기듯이 이깁니다. 그렇게 심은 나무는 삽니다. 그래서 그 후에 그렇게 나무를 심으니까 모두 살았습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은 결국 식물을 죽입니다. 마찬가지로 잘못 알고 있는 성경에 대한 상식과 이론은 내 영혼을 멸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러면 믿음은 어떤 것이냐?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접하면 자녀가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느냐? 서두에서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그랬으니까 내 마음에 말씀을 받아들이면 이 말씀은 내 마음에 들어와서 일을 합니다. 독약을 먹으면 독이 몸에 들어와 일하고, 보약을 먹으면 보약이 내 몸에 들어와 일하는 것처럼 우리 가까이 있는 말씀을 받아들이면 이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일을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굉장히 어렵게 생각합니다. 말씀은 안 믿고, 믿으려고 하고 바뀌려고 하고 고치려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 의지입니다.

       

    말씀은 믿는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제가 한 대학교에 강의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몇 학생들이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려면 모자를 벗고, 모자를 벗기 싫으면 강의실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학생이 일어나 나가고 나머지 학생들은 모자를 벗었습니다. 모자를 벗으라는 내 말을 받아들이니까 모자를 벗는 것입니다.

       

    제가 중학생을 대상으로 마인드교육을 하면서 실시하는 캠페인이 있습니다. ‘하루에 세 명에게 세 번씩 세 가지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 보라고 합니다. 그 중에 한 분이 부모입니다. 8주 교육을 마치고 결과 조사를 했습니다. 그중 30% 학생들이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했었는데 캠페인 후에 이들이 살아야 할 소망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12% 학생들은 우리 어머니가 처음으로 웃었어요. 이제 자주 웃어요. 행복해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부모들이 일을 하러 다니다보면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없어지고, 핸드폰, 게임 등에 빠지게 됩니다. 부모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 화를 내게 되면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 골이 깊어집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죽고 싶은 충동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그 부모들과 대화를 하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부모와 자식 사이의 벽이 무너지면서 서로가 감사함으로 대화를 하게 되니 서로에게 있는 귀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수많은 사람들 중 예수님과 대화가 되었던 사람들은 다 변화를 입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서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하니까 그 사람이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누워있는 그에게 찾아가 몇 마디 말을 걸었고 그 말이 그대로 38년 된 병자 마음에 들어가 역사한 겁니다. 그런데 늘 상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말씀을 들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런 일을 할 때마다 불평하고 참람하다고 대적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성경의 얄팍한 지식으로 예수님을 대적하더란 말입니다. 방안에 물건이 꽉 차 있으면 새로운 물건이 들어올 수 없듯이 자기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다른 이야기는 못 받아들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려면 내 것을 버려야 합니다.

     

    창세기 7장에서 하나님이 죄악 속에 빠진 사람들을 쓸어버리려고 마음을 정하고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방주가 다 완성되었을 때 방주 안으로 사람과 짐승을 끌어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방주 안으로 아무도 안 들어가고 노아 8식구만 들어갔습니다. 수많은 짐승들이 있었지만 다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거기 보면 하나님이 정한 것과 부정한 것 다 끌어오라고 하셨습니다. 조건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들어갔습니까? 다만 노아의 말을 듣고 그 말에 이끌린 사람과 짐승만 들어갔습니다. 노아의 말을 들었지만 이끌리지 않은 사람과 짐승들은 다 방주 밖에 남아 물로 심판 받았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모세가 더디 오는 것을 보고 아론에게 자기들의 신을 만들어달라고 졸라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그걸 보고 기가 막혀서 돌판을 던지고 백성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26,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방금 전까지 함께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섬기며 춤추고 노래 부르고 제사지내면서 모세도 버리고 하나님도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레위 자손들이 모세에게 가 버렸습니다. 아론도 여기 속해 있었습니다. 금송아지 만들어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절일이니 번제 드리라고 해놓고 모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버리고 모세에게 가 버립니다.

    똑같은 일을 했는데 아론은 모세에게 가고 백성들은 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과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마음 안에 수많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자기 생각을 믿고 자기 옳음을 세워놓고 자기 정직함을 만들어 놓는 등 말씀 아닌 많은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편에 속한 자는 내게로 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만 섬기란 말입니다. 사무엘상 7장을 펴 보십시오.

     

    (사무엘상 71~4)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너희가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오려거든 네가 섬기는 이방신 아스다롯을 제하라.”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만 섬기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섬겼던 것들을 다 버리고 돌이키자 블레셋군이 쳐들어 왔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블레셋군과 싸우고 이들을 지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었을 때 모세가 여호와 편에 속한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라고 말했지 금송아지 안 만든 사람, 절 안 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여호와 편에 속한 자라고 했습니다.

    방주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아가 방주 지을 때 120년 동안 대적을 했든 재료를 훔쳐갔든 욕을 했든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다만 노아의 말을 듣고 들어가기만 하면 삽니다. 하나님은 우리더러 착하게 살아라, 교회 열심히 다녀라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해 놓으신 것을 받아들이기만을 바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성경 이사야 53장을 펴 보십시오.

     

    (이사야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찔림을 당하고 상함을 입으며 고난을 당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4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이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이 생각들이 여러분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데 그 생각 한 번 내려놓고 말씀을 그대로 받아보십시오.

    제가 자동차 면허시험을 보는데, 그 당시에는 학과시험과 기능시험이 있었는데, 학과시험에 합격을 하면 기능시험을 치르게 되어 있었어요. 저는 그 전부터 무면허로 차를 운전하고 다녔기 때문에 학과 시험 정도는 한 방에 붙을 줄 알았습니다. 결국 낙방하고 문제집을 사서 공부하는데, 첫 페이지에 총칙이 나와 있는데, 훑어보니까 쉬워서 덮어놓고 있다가 시험 보러 갔습니다. 또 떨어졌습니다. 너무 창피했는데, 그 일로 교회 모친님들께서 기도를 하셨어요. 그리고 저도 날을 정해서 틈틈이 문제집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보러 갔는데, 감사하게도 제가 공부한데서 문제가 나와 겨우 합격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날 기능시험도 함께 합격할 욕심에 기능시험장에 갔는데, 제가 시험치고 나오는데 빨간 불이 들어오더라구요.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학원에 등록해서 운전을 배우는데 너무 쉬운 거예요. 학원비도 아깝고 해서 선생님이 뭐라고 설명할 때 계속 혼자서 연습을 했습니다. 너무 쉬운데 강사 설명 듣고 있기가 시간도 아깝고 돈도 아까워서 혼자서 연습하다가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보기 좋게 떨어졌습니다. 떨어져서 학원에 찾아가니까 그 강사가 쳐다도 안 보면서 내가 당신 올 줄 알고 있었어, 왜 내 말 안 듣고 당신 맘대로 하는 겁니까라고 닦아 세우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 바꾸고 그 강사 말 잘 듣고 기능시험에도 합격을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해서 6번 만에 최종 운전면허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저는 제가 운전을 잘 한다고 믿었는데, 시험을 쳐 보니까 제가 틀린 거예요. 강사가 가르쳐 준 대로 하면 되는데, 내가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강사의 가르침을 밀어냅니다.

       

    성경 이사야 534절에서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생각은 틀린 거예요. 신앙은 우리 생각이 필요 없고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베드로 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이 십자가로 우리 죄를 담당하신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죄에 끌려가지 않고, 죄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은 생각에 대하여, 형편에 대하여 끝이 나고 오직 말씀에 의해서만 사는 삶으로 바꾸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몸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 향하여 살 수 있도록 해 놓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사야 534절에 나와 있는 우리의 생각은 틀린 것이 확실합니다.

    요한복음 6: 38-40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이사야 536절에서 하나님은 우리 무리의 죄악을 예수님에게 담당시키셨고, 베드로전서 224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셔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도록 이미 그 일을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다 해놓으시고 우리에게는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13-15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은 우리가 범하는 죄 뿐만 아니라 아담으로 말미암아 들어 온 근본 죄까지도 사하셨기 때문에 모든 죄를 사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고, 이미 2000년 전에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는 것이 중요하지 내가 무엇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내 생각은 어떠냐?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12-14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브리서922절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율법에 의하면 대다수가 희생 제물의 피를 통해서만 거룩하게 되기 때문에 율법도 피로 세운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는데, 그언약은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사했다는 언약입니다.

    그럼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언약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판결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판사 앞에서 판결을 받는 것처럼 죄인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판결을 받았는데, 그 판결문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판결은 절대로 뒤집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절대로 의롭다고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죄가 해결이 되어 의롭게 되어야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분명하게 해결해 놓으시고 의롭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시키시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끝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이걸 믿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무얼 열심히 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그냥 말씀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무얼 해 놓으셨는지 발견하고 믿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을 때 주님 안에서 새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1-4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기록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를 모두 사실로 믿으십니까?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믿으면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믿지 않는 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보고 절대 원숭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쁜 놈, 성격 못된 놈 이라는 소리는 해도 원숭이라고는 안 하지요? 제가 사람인 것에 대해서는 절대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것처럼 성경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여자가 결혼해서 남편을 믿지 못하면 두 주머니를 찹니다. 언제든지 버릴 때 챙겨갈 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을 믿는 여자는 친정에 있는 돈까지 끌어다가 남편 밀어주고 도와줍니다. 그것이 바로 믿고 안 믿고의 차이입니다.

       

    옛날에는 법원 앞이나 동사무소 앞에 대서소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글을 대신 써 주는 곳인데, 글을 못 배워서 문서 작성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대신 문서를 작성해 주는 곳이었습니다. 동사무소나 법원 직원들이 대서소에서 써 준 서류를 접수해줍니다. 그것처럼 이 성경은 하나님이 직접 글을 쓰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사람이 대신 썼단 말입니다. 그것이 여러분과 제가 갖고 있는 이 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이루어진 사실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기에게 맞는 말씀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노아시대 때 노아가 120년에 걸쳐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방주 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신다, 누구든지 방주에 들어오라라고 이야기 했을 텐데 아무도 방주 안에 들어오진 않았습니다. 노아의 소리를 들을 수는 있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믿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오는 것도 너무 쉬운 일인데 아무나 들어 올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가지고는 예수님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 판단, 보는 것, 갖고 있는 것, 느끼는 것, 깨닫는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신앙은 굉장히 쉽습니다. 나만 버리면 너무 쉽습니다.

       

    의사가 약을 처방해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약봉지 안에서 수면제는 골라내고, 위장약은 골라내고, 이런 식으로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본인이 느끼는 것만 먹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못하게 하는 것이 주사입니다. 몸속에 직접 약을 넣어버리니까 우리가 손을 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이 바로 이렇게 되어져야 합니다. 우리 생각이 개입되지 않고 말씀이 그대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여러분의 삶속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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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주일 낮 설교(2016.09.18) 김미선 2016.09.18 3877
    99 주일 낮 설교(2016.09.04) 송동현 2016.09.04 4707
    98 주일 낮 설교(2016.08.14) 송동현 2016.08.14 4916
    97 주일 낮 설교(2016.08.07) 송동현 2016.08.14 4556
    96 주일 낮 설교(2016.07.31) 송동현 2016.07.31 4535
    95 주일 낮 설교(2016.07.24) 송동현 2016.07.24 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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