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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선 | 2017.01.01 12:42 | 조회 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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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1일 주일 오전말씀

    마가복음 21~12

     

    방금 읽은 내용을 보면,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워 왔다고 나와 있습니다. 중풍병이 얼마나 심했는지, 이름이 누구인지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자기 스스로는 뭔가를 할 수 있는 기능이 다 마비되어 버린, 썩 좋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들을 교육해 주는 교육자가 참 신기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알코올 중독은 교육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알코올 중독자에게 딱 하나만 가르쳐 주면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중독자에게, 자신은 이미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을 스스로 억제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기능이 파괴되어버린 장애인이라는 것을 깨우쳐주면 중독을 고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습니까? ‘나는 나 스스로 뭘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즉 영적 기능이 파괴된 장애인이구나.’ 이 사실 하나만 깨달으면 됩니다. 이사야 1장에서는 우리는 발바닥에서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 새로 맞은 흔적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했다는 건 썩었다, 변질되었다는 뜻입니다. 형체가 파괴되어 버린다는 거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썩었어.” 이 사실을 일깨워 주고 싶으신 겁니다.

     

    예수님 앞에 중풍병자가 오기 전에 그 집에 용신할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가득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 말씀을 듣고 있는데 아무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갑자기 위에서 중풍병자가 달아내려 왔습니다. 자기가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닙니다. 이 친구는 자기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4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처음에 왔던 길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가면 되겠다.” 하고 왔는데 와서 보니까 빽빽하게 사람들이 있어서 못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들을 포기를 하지 않고 예수님이 계시는 그 집 지붕에 구멍을 내서 그곳으로 중풍병자를 달아 내립니다. “그냥 한번 데려 가보자.” 이렇게 하고 온 건 아닌 것 같아요. 이제 이 중풍병자가 처음으로 예수님과 대면을 합니다. 한 눈에 봐도 이 사람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말 병자인 게 눈에 딱 보입니다.

    5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말씀을 보면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누굽니까? 이렇게 물으면 사람들은 네 사람이요.” 라고 대답합니다. 물론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 네 사람을 들어 쓴 사람이 있습니다.

    3절에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세 라고 되어 있습니다. 네 사람을 끌어들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 네 사람도 자기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 사람에게 끌려 온 사람입니다. 이 사람 속에 믿음이 있단 말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중풍병자를 지붕을 뜯어서 달아 내리게 한 겁니다. 이 사람은 어떤 장애와 벽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만나는 데까지 그걸 밀고 들어갑니다.

     

    여러분, 성경(마태복음 15)에 보면 더러운 귀신들린 딸을 둔 여자가 예수를 찾아와서 무시를 당하고 외면을 당하는데도 돌아서지 않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라고 거절을 하셨습니다. ‘너 같은 개에게는 못 준다는 뜻입니다. “주님! 당신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그 부스러기를 주십시오. 나는 개 같은 여자입니다. 당신의 도움이 없으면 이 개는 죽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믿음을 보고 딸이 귀신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쓰시는 종과 교회를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전부 다 사이비이고 가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서 오신 분입니다. 그들이 볼 때에는 목수의 아들로 보이고 형편없는 유대의 촌놈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분은 하나님이 보내서 오신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사람들이 이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렸을 때 그들의 마음이 여기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마음이 있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서 나아만의 집에 있는 계집아이가 우리 주인 나아만이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문둥병을 고치겠나이다.”라고 하는 이 이야기 속에도 계집아이의 마음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읽다보면 계집아이의 입에 나오는 말마다 전부 다 하나님이 묻어 있습니다. 계집아이의 생각이나 느낌, 깨달음이 전혀 없고, 거기는 전부 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중풍병자를 달아내린 사람들에게도 그것밖에 없는 겁니다. 그것이 앞에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이기고 넘어가게 합니다. 예수님은 달아져 내려진 한 중풍병자를 통해서 이 친구를 달아 내린 사람들의 믿음을 보셨고 주님, 맞습니다마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하는 여인의 믿음을 봤단 말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능력이 귀신에 잡혀서 허우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 딸을 거기서 벗어나게 합니다. 주님의 능력이 주님을 에워싼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 아니고 엉뚱한 데로 가버린 겁니다.

    이 사람들은 누구보다 더 예수님 가까이 와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믿음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어떤 서기관들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하고 속으로 의논합니다. 8절을 보면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허락해 준 것 때문에 너희가 왜 마음이 어렵고 힘드냐?” 이 뜻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말씀을 듣고 역사를 맛보았지만 그들 마음에는 말씀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자기들 앞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사람으로 본 것입니다.

     

    한국의 폴보트라고 불리는 최성봉이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최성봉은 5살 때 고아원에서 나와 껌팔이하면서 호텔계단이나 화장실에서 자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호텔에 불이 나는 바람에 그 호텔 지배인들이 최성봉이 불을 냈다면서 생매장을 했습니다. 본능적으로 살고 싶어 흙이 들어가지 않도록 입을 막았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는 정말 나보다 더 험한 인생을 살았더라고요. 그 친구 이야기 들으면서 참 제가 많이 울었습니다. 자살까지 하려했었는데 그가 만났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분에게 음악을 배워 어떤 프로에 나와서 소위 말하면 대박이 터졌어요. 아무도 최성봉을 사람대접해 주지 않았습니다. 발길로 차고 떨어진 낙엽보다 가치 없던 인생으로 짓밟힐 수밖에 없었지만 최성봉의 잠재력을 본 사람에 의해 그는 새로운 세계를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일을 하셨어요. 모든 사람들이 거리끼는 이 중풍병자를 예수님은 다르게 보았습니다. 지붕에서 달려 내려올 때 어느 누구도 이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 한 마디가 들어가자 이 친구가 벌떡 일어나 걸어가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걸 보고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냄새나고 천대받았던 이 사람에게 말씀이 들어와 버리니까 모든 사람이 바라보는 대상으로 달라져 버린 겁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성경하나만 찾아드리겠습니다.

     

    [열왕기상 9:10~14] 솔로몬이 두 집 곧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이십년 만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갈릴리 땅의 성읍 이십을 히람에게 주었으니 이는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그 온갖 소원대로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지공하였음이라 히람이 두로에서 와서 솔로몬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보고 눈에 들지 아니하여 이르기를 나의 형이여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하뇨 하고 이름하여 가불 땅이라 하였더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있으니라 히람이 금 일백이십 달란트를 왕에게 보내었더라

     

    솔로몬이 왕이 된 후 24년 동안 성전과 왕궁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쓰인 모든 재료를 주변 사람으로부터 은혜와 덕을 입어서 얻었습니다. 그중 두로왕 히람은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제공해 주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당시 금 한 달란트가 42kg 정도 되는데 성전을 짓는데 어마어마한 금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이 너무 고마워서 히람에게 갈릴리 땅의 성읍 20개를 주었습니다. 히람은 그 땅을 보고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쓸모없.”라면서 가불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땅을 어떻게 바꾸었나 성경 한 번 찾아보십시오.

     

    [이사야 9:1~7]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전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는데 후에는 요단 저편 이발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히람이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가불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거기서 한 아이가 났는데 기묘자요 모사라, 그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마태복음21:10~11]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예수님이 나셔서 쓸모없는 땅이 가장 복된 땅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를 보십시오. 이 인간 박희진 속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 속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사람들이 무시, 천대하고 길바닥에 버리고 외면했습니다. 버림받아 길바닥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면서 뒹굴던, 거지 같던 인간 박희진 속에 예수님이 오셔서 제 인생을 바꾸어 놓으셨는데, 제가 저를 봐도 너무 놀랍습니다. 제게 있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능력의 손길로 하나하나 만들어놓으신 것밖에 없습니다. 제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 걸어다니는 것 자체가 간증입니다. 하나님이 버려진 20 성읍을 가장 영화로운 땅으로 바꾸신 것처럼, 버려지고 짓밟힌 땅에 찾아오셔서 이 자리에 앉혀 놓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란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과 나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버려진 땅에 주님이 오셔서 가장 영화로운 땅으로 변한 것처럼, 38년 된 병자, 혈루증 앓는 여자. 소경 이들 속에 주님이 들어가시니까 병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사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도 주님이 들어오신다면 변하여 새사람이 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일하고 싶어 하십니다. 사람에게 에워싸였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남들이 우리를 보고 모함이나 비방, 뭘 하든지 거기에 주저앉지 마십시오.

    신년사 약속의 말씀처럼 우리가 믿음으로 발을 내딛는다면 우리 손길이 닿는 그 땅이 변하고 그 사람이 변하여 가장 영화로운 삶을 사는 그 은혜가 우리 주변에 힘있게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이 한 해 놀라운 삶을 사는 역사가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온 믿음을 가진 사람들처럼 여러분과 나는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 믿음을 가지고 여러분 앞의 담을 넘으시고 벽을 무너뜨리고 발을 내딛으시면 이 기적 같은 역사가 우리 앞에도 동일하게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함께 힘 있게 달려다는 한 해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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