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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선 | 2017.03.19 12:12 | 조회 3471


    1. 말씀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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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9일 주일 오전 말씀

    누가복음 175~10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찌니라

     

    맹수들은 혼자 다닙니다. 호랑이나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는 누구를 만나도 겁을 안내고 혼자 잘 다닙니다. 그런데 약한 것들은 떼를 지어 다니면서 살아갑니다. 식물도 보면 자기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식물은 도움을 받기 위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옆 친구를 향하여 뿌리를 뻗고 엉키어 하나가 되어서 험난한 세상을 이겨냅니다. 참 지혜롭죠?

    레드우드는 참 좋은 나무인데 이 나무는 거대한 키에 비해 뿌리가 너무 짧습니다. 뿌리가 길면 한 3m, 짧으면 2m밖에 안 되는 짧은 뿌리로, 3000년 동안 살 수 있는 것은 절대로 혼자의 힘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서만 3000년이란 그 긴 세월을 버티고 살 수 있는 겁니다. 자기 혼자는 절대로 환경을 이길 수 없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이 나무는 옆에 있는 나무를 향하여 100% 마음을 열고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나무하고 자기가 하나가 돼버립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이 나무는 혼자가 아니고 두 그루, 세 그루, 오십 그루, 백 그루, 천 그루가 하나의 나무처럼 엉켜있으니까 초속 50m라는 아주 강한 허리케인 앞에서도 건재하게 버티고 사는 것입니다. 사람도 자기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은 그 부족함을 채워 줄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는 친구를 향하여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그 친구 밑에 들어가고 그 친구의 도움을 받으러 갑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누구의 말도 안 들었습니다. 그 마음이 결국은 예수님까지 무시하고 외면하게 합니다. 자신들이 아는 성경 몇 구절 가지고 예수님을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마음에 내가 옳다는 마음을 갖는 순간부터 남을 무시하는 마음이 만들어지게 돼 있습니다. ‘내가 틀렸구나. 내가 부족하구나. 내가 잘못 됐구나그걸 발견한 사람은 마음이 교만하고 싶어도 교만할 수 없습니다. ? 틀린 사람이니까. 틀린 사람은 자기가 틀렸기 때문에 틀리지 않은 사람 밑에 들어가서 배우려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 마음을 안 갖는 사람은 자기가 옳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도 그 사람의 삶을 이끌어주거나 간섭해 주거나 잡아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읽었던 성경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믿음을 더해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해도 뽕나무가 그리했을 거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믿음 있으면 믿음으로 살아보세요.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이 성막을 짓는 데에 금, , 놋과 청색, 자색, 홍색 실, 가는 베실, 세마포, 조각목, 등유 등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명하여 가라사대 내 놔라.” 그랬어요. 명령이에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니고. 그런데 즐거운 마음으로 내지 않은 자들, 자기를 위해서 감춰 두었던 금이, 32장에 보니까 결국 금송아지 만드는 데에 쓰였고, 그 금송아지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3000명 가량이 죽는 비극을 불러왔습니다. 25장에서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을 내기 싫어했던 결과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기쁨으로 하는 거지 법으로, 억지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왜 기쁨이 안 될까요? 왜 항상 범사에 감사가 안 될까요? 마음이 낮으면 감사 안 될 게 없습니다.

    신앙이 나한테 기쁨과 즐거움이 안 된다는 이야기는 하나님과 마음이 다르다는 이야기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의 것을 받으라 했으니까 성막에 드려지는 기명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의 것을 받아서 만드는 겁니다. 전도하기 싫으면 전도를 안 해도 됩니다. 하나님이 전도할 마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즐거운 마음을 주시고 감사한 마음을 주시기 때문에 내가 감사가 되어서 드리는 거고 기뻐서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법으로 하면 여러분은 하고도 괴롭습니다.

     

    예수님이 이 제자들보고 뭐라고 말했냐면 6절에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그러면 그 말을 듣고 뽕나무가 왜 순종을 안 하느냐.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원하고 구하면 주는데 그 무엇을 원하는 사람이 누구냐? 아무나 구한다고 안 줍니다. 첫째,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두 번째,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그러면 정말 여러분이 교회 안에 거합니까? 정말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있습니까? 하나님과 여러분이 하나가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합니까? 그러면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럼 구하기 전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한 사람인지, 주의 말씀이 내 마음에 거하고 있는지부터 체크해보셔야 합니다. 그게 안 되면 아무리 구해도 소용없다 그 말입니다.

     

    미국 가 있는데 문자가 많이 들어와요. 영동에서도 오고, 항간에서도 오고. 보니까 도로공사에서 왔는데 내 차가 어느 날 항간 톨게이트를 나갔는데 요금을 안 내고 나갔다고 합니다. 우리 아들한테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들아, 혹시 네가 내 차 끌고 다녔냐? 아빠 아니에요. 알아봐.’ 내 차는 아무도 안 타고 집에 그냥 놔뒀는데 왜 내 차가 톨게이트를 빠져 나갔지? 밤에 누가 끌고 갔다 왔나? 보니까 한 다섯 번이나 돼요. 세상에 누가 내 차를 끌고 다니지? 알아보니까 직원들이 잘못 파악한 것이었습니다. 승합차인데 149739. 그래서 나중에 전화가 왔길래 이건 좀 심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죄송하다고 하더라구요. “내가 알기로는 대한민국에서 아직까지 승용차에 같은 번호를 주지 않는다. 혹 승합차는 같은 번호가 있을 수 있지만 승용차에 제 번호는 딱 하나 있다. 찍힌 사진을 보고 내 차가 승합차인지, 승용차인지 그것이 구분이 안 되냐? 한눈에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 그런데 한 번도 아니고 다섯 번이나 왜 이렇게 하냐?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런 저런 변명을 하는데 그건 변명이고 아무 생각 없이 일처리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이런 문제를 놓고 보면 이 차가 승용차인지, 버스인지, 승합차인지, 트럭인지 알 수 있습니다. 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야밤에 차 등 켜진 것만 보고도 차종을 다 알아 맞힙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 뽕나무가 너희 말에 순종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단 이야기는 뽕나무가 문제가 아니라 너희에게 문제가 있다. 무슨 문제냐?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없다.’라고 하는 이야깁니다. 그러면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해라. 이루어준다.’고 했으니까 구했는데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 없든지, 말씀이 내 안에 없든지 둘 중 하나겠죠. 구할 때 대충 구해도 주시지만 정확한 것은 내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내 안에 거하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617~18절을 보면 돌감람나무가 가지가 꺾여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진 이야기가 나옵니다. 접을 붙인 것은 진액을 함께 받는 자 중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럼 돌감람나무가 가지가 꺾이면 죽어야 되는데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져 참감람나무에서 올라오는 진액을 공급받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주님 안에 들어가 있으면 주님의 것을 공급 받고 살겠죠. 주님의 것을 못 받는다면 가짜라는 겁니다.

     

    저희들이 뉴욕에서 포트웨인까지 14시간을 버스로 갔습니다. 그런데 히터가 안 되는 겁니다. 에어컨을 튼 것처럼 찬바람이 나왔습니다. 계기판에는 아무 문제없는데 찬바람이 나오는 것은 정상입니까, 비정상입니까? 비정상입니다. 그것처럼 내 생각에는 완벽하고 옳고, 다 맞는 말을 하는데 그게 안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믿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77,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여러분이 주인이고 종이 밭에서 일하고 돌아왔는데 와서 앉으라고 하면서 밥 먹자고 할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도리어 수종들고 그 후에 먹고 마시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며 종업원에게 같이 밥 먹자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오히려 물 달라, 차 달라 부려먹습니다. 당당합니다.

     

    9,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시키는 대로 했다고 해서 사례하거나 칭찬을 안 한다는 겁니다.

     

    10, 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찌니라

     

    종은 주인의 명령을 듣고 시키는 그대로 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명 받은 대로 하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무슨 명령을 받았습니까? ‘너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하라고 하셨죠? 여러분 복음 안 전하시잖아요. 이미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짓밟고 무시하고 외면하고 거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돈을 벌고 먹고, 자고, 살아야 합니다. 목적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종이 할 일은 주인의 말씀을 듣고 그 말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종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시키는 말을 대적하고 반기를 들고 말씀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종이 안 됐기 때문에 교회가 하는 일에 반기를 들고 대적합니다. 하나님보다 위에 있어서 말씀을 무시하니까 말씀을 듣고 깨달아도 여러분 생각대로 살지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말은 부족하다고 하는데 내가 하나님보다 옳고 똑똑하니까 말씀을 짓밟고 내 맘대로 사는 겁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이 혼인잔치에 계실 때 포도주가 바닥나서 마리아가 그 문제를 들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리아가 옆에 있는 하인들을 보고 주께서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해라.” 그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님이 하인들을 보고 항아리에 물을 길러 부어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합니다. 가져다주었더니 연회장이 그걸 마시고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라며 극찬을 합니다. 그런데 물이 포도주 된 것을 연회장은 모르는데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고 돼있습니다. 이 하인들은 주께서 시키는 그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말씀 앞에 아니오가 나오고 됩니까?

     

    똑똑하고 옳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 앞에 항상 이유가 있습니다. “참람하도다. 네가 감히 누군데 죄를 사한단 말이냐. 네가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목수 아들인 건 사실이지만 목수아들 안에 있는 예수님을 볼만한 눈이 없으니까 껍데기만 보고 이야기합니다. 이 하인들에게는 거부할 힘이 없습니다. 그대로 하는 어떤 힘이 와서 이들을 끌고 갑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좋아야 하지 여러분 마음에 맞지 않으면 목사 말도 안 받아드립니다. 그건 신앙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틀린 이야기 안 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다 옳은 이야기하고 깨달은 이야기하며 대화가 안 됩니다. “목사님, 정말 제가 잘 못 살았습니다. 내가 교회를 대적했습니다. 제가 교회를 헐었습니다.” 그런 말 하라고 해도 그 사람은 자기가 교회 안에서 늘 옳은 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자존심 상해서 못합니다. 사단이 그렇게 만드는데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인들을 보고 주님이 하신 말씀은 항아리에 물을 길러오라.”였습니다. 이 항아리는 인간의 마음을 말하고 물은 말씀을 말합니다. 여러분 마음에 항상 악하다. 행악의 종자다. 마귀 자식이다는 말씀을 세워본 적이 있습니까? 그 물을 떠서 가져다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마음을 누구한테 가져다 줘봤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넣어준 말씀이 있습니다. 사단은 그 말씀을 못 내놓게 하고 내 옳음을 내놓게 합니다. 그러니까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5장을 보면 나아만의 계집아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계집아이가 포로로 끌려와서 나아만의 집에서 삽니다. 여자아이는 소망이 없는 정말 불쌍한 여자입니다. 그런데 이 계집아이 마음은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아만 집의 종살이도 행복하고 소망스럽습니다. ‘내가 여기 있지만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나와 함께 계셔서 내 말을 듣는 이들은 복을 받게 되어있다.’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집아이가 나아만에게 가르칩니다. “우리 주인님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시면 좋겠습니다. 저가 문둥병을 고치실 겁니다.” 그 말은 당신 문둥병 고치려면 사마리아 선지자 앞에 가야합니다라는 의미입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두들겨 맞고 짓밟혀 죽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자기를 도우시고 그 말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죽지 않을 확신이 있습니다. 계집아이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지 형편 앞에 그 마음이 끌려가지 않습니다. 담대하게 나아만을 끄집어내서 사마리아로 내보냅니다. 레드우드가 버틸 조건이 없는데 나무뿌리가 엉켜있으니까 버티고 사는 것처럼, 이 계집아이가 있는 자리는 형편은 너무 어렵고 너무 처절하고 비참한 위치인데 하나님과 마음이 연결돼 있으니까 아무도 이 여자 아이를 절망으로 고통과 괴로움으로 못 끌고 갑니다. 하나님이 계집아이와 하나가 돼있으니까 수많은 어려움에서 지켜줍니다. 여러분은 세상사는 법을 배워서 살고 있을 겁니다. 인간의 지혜, 수단과 방법이 얼마나 갈 수 있습니까? 여러분, 주님을 믿으셔야 됩니다. 형식적인 신앙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셔야 됩니다.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에베소서 1:15~23]

     

    23절을 보면,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교회 머리이고 여러분과 나는 교회의 한 일원을 이루고 있는 몸의 지체일 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머리 되신 예수님과 끊어지면 죽습니다. 나뭇가지가 뿌리하고 연결이 끊어지면 말라비틀어지고 나무가 붙어있는데 열매가 없고 잎이 안 난다면 그 가지는 죽은 겁니다. 요한복음 152절에 하나님이 과실을 맺지 않는 나뭇가지를 잘라버리는데 이는 다른 가지에 열매를 더 맺게 하기 위해서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가 하나로 연결될 때 이 교회는 충만함을 입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어떻게 하나가 되느냐. 요한복음 157절에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로마서 11장에서 사도바울은 돌감람나무가지를 꺾어 참감람나무에 접붙인 이야기로 설명해 놓았습니다. 골로새서에는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서는 강도 만난 자를 주막으로 데려가서 주막 주인에게 맡겼다고 되어있습니다. 이 강도 만난 자는 주인 없이 사는 사람으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고 싶어서 내려갔습니다. 그러다가 강도를 만나 죽어 가는데 예수님이 살려서 그를 주막으로 데려가 돌봐주고 주막 주인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디에 맡겨져 있고 여러분의 주인은 누굽니까? 자신에게 한 번 물어보십시오. 내가 주인이니까 그 누구의 말도 안 듣고 내 맘대로 사는 겁니다.

     

    나아만의 집에 있는 계집아이는 표면적으로는 나아만을 섬겼지만 그 마음에는 하나님이 주인이었습니다.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하나님의 종이 계집아이 마음의 주인이었습니다. 계집아이는 알았습니다. 나아만이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와 연결되고 그 말만 들으면 문둥병이 대번에 낫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계집아이는 나아만을 선지자와 연결시켜서 나아만의 문둥병이 낫도록 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종과 하나가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 성경 찾아드리겠습니다. 열왕기하 3장에 보면 모압을 치기 위해서 여호사밧 왕이 여호람과 에돔 왕과 더불어 에돔 광야 길로 올라가다가 물이 없어서 죽음 앞에 직면합니다. 그러자 여호람은 슬프다. 하나님이 우리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고 이렇게 했다.”라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그 문제를 들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하나님의 종을 찾아갑니다. 하나님의 종이 말씀했습니다. “개천을 많이 파라. 너희가 바람도, 비도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이곳에 물을 채워주신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여호사밧 왕은 그 말을 듣고 개천을 팠습니다. 그러니까 다음날 아침에 거기에 물이 채워졌지요? 여호사밧 왕이 여호람과 연결되어 있을 때는 왕을 믿었던 모든 사람들이 광야에서 전부 목말라 죽여야 되었는데, 여호람과 관계를 끊고 하나님의 종과 연결되니까 모두가 살아나는 겁니다. 열왕기상 17장의 사르밧 과부 이야기도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자기 지혜와 수단, 재치로 만드는 떡은 결국엔 죽음으로 가는 떡이었는데 하나님의 종과 연결해서 만들어진 떡은 통에 가루가 다 하지 않고, 먹고 사는 떡이었습니다. 이 여자가 종하고 끊어져 있을 때는 자기를 고통과 죽음으로 끌고 갔는데, 엘리야와 연결이 되니까 분명히 죽어야 되는데 살아나는 겁니다. 아들도 살고 이 여자와 연결된 모든 사람이 살기 시작하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온전케 해놓고 다 주셨는데 왜 우리가 어렵게 살아야 됩니까? 종하고 끊어져 공급이 안 되니까 어렵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사밧 왕이나 사르밧 과부가 하나님의 종과 연결될 때 살아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종과 내가 연결될 때 살아납니다. 내가 나를 믿고 살았던 과거 26년의 삶은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밖에 없었는데 성경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그날부터 하나님은 저에게 제일 먼저 집을 주셨고 옷과 이불, 양식을 주셨고 정말 저 행복하게 살게 하셨습니다. 세상도, 가족도 다 나를 버렸지만 예수님은 저를 버리지 않으셨고 예수님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된 그날부터 제 인생을 이끌어주셨습니다. 그 주님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습니다. 주님과 마음을 함께 한 것 말고는 제가 한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성경 말씀 믿고 말씀을 따라 온 것밖 없는데 낸들 옳음이 없겠습니까? 낸들 내 입에 반듯한 말이 없겠습니까? 인생을 62년 살았으니까 철학도 있고 경험도 많이 있겠죠? 그런데 그것이 말씀 앞에 무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날부터 그걸 내가 내놓을 수가 없는 거였습니다. 그걸 들고 나오는 즉시 내가 버림을 받는다는 것을 아니까 제가 백 번, 천 번 옳아도 마지막에는 말씀 앞에 저를 꺾습니다. 교회와 연결되고 종과 연결되면 내가 이해가 되든 안 되는 삽니다. 돌감람나무 가지를 꺾어서 참감람나무에 붙여 놓으면 그때부터 나무뿌리에서 올라오는 진액이 이 가지를 살려놓는 것입니다. 붙어 있어서 뿌리에서 올라오는 진액이 가지에 전달되니까 이 가지는 죽고 싶어도 못 죽고 삽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어릴 때 저는 시골에서 감나무만 봤는데 이 감나무가 해거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감나무가 왜 해거리를 합니까? 나무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나무의 영양분이 다 고갈되어 그 다음해에는

    열매를 맺어도 그것을 다 못 지킵니다. 그래서 열매를 떨어뜨립니다. 소나무도 가을에 잎을 많이 떨어뜨립니다. 소나무는 압니다. 겨울이 오면 자신이 갖고 있는 영양분으로는 자기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최소한의 잎만 남겨 놓고 나머지 잎은 다 떨어뜨립니다. 아무리 귀하고 좋은 나무라도 튼튼하지 못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달렸던 열매도 다 떨어집니다. 반대로 아무리 천한 나무라도 튼튼하면 열매가 충실히 맺힙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이 언제 튼튼해질 수 있습니까? 예수님과 내가 하나가 될 때 가장 튼튼하고 견고합니다. 말씀과 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면 누구도 나를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예레미야 17장에 말씀을 한번 펴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예레미야 17:5~8]

     

    성경에 나무가 어디에 심기었느냐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권력을 삼은 사람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를 믿는 사람이지요? 말씀을 안 믿고 교회와 하나님의 종을 안 믿는 사람, 자기를 믿는 사람, 이게 혈육으로 권력을 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놓고 말씀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말을 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따 먹지 말라는 말씀을 이겨 버린 사람은 열매를 따 먹습니다. 그것이 말씀을 짓밟고 무시하는 것이고 대적자입니다. 사단에게 잡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믿는 사람은 말씀을 못 이기고 말씀 앞에 굴복합니다. 명 받은 대로 그냥 합니다. 무익한 종은 무슨 말을 해도 그대로 듣습니다.

    5절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막에 심기운 나무 같다고 말합니다. 사막에는 아무리 좋은 나무를 심어놔도 물이 없어서 죽습니다. 반대로 7,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고 의뢰하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어떻게요?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지요? 물가에 심긴 나무는 뿌리가 강변에 뻗쳐 있기 때문에 가뭄이 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둥병이, 나아만에게는 문제가 되지만 계집아이에게는 아무 문제가 안 된단 말입니다.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에게 가면 낫게 되어 있습니다.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도, 나사로가 죽어 냄새가 나는 것도 예수님에게는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은 하는데 마음에서 예수를 믿지 않으니까 형편 앞에서 여러분이 어려워하고 힘들어 하는 겁니다. 여호람 왕은 슬프다.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려고 세 왕을 불러 모아서 모압에게 붙이려는구나.”라고 말하잖아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 죽음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려나 보다.” 이런 마음 가질 것입니다. 허인수 목사님이 그러시잖아요. 그분은 암이다. 떡 해 먹자.” 그럽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린데 그분에게는 하나님이 이 병도 고쳐. 고쳤어.’라는 마음이 있으니까 암이 전혀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에게는 암이 문제가 됩니까? 허인수 목사님도 예수 믿고 우리도 예수 믿는데 우리는 끊어져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연결되어 있으면 문제라고 해도 문제가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과 우리를 이 믿음 안에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은 겁니다. 명 받은 대로 다 행한 후에, 우리는 무익한 종이오니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해라. 여러분은 누구 명을 듣고 삽니까? 여러분 마음에서 올라오는 옳은 생각을 따라 살지 않습니까? 그 삶은 여호람, 여호사밧이 가는 광야 길이고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가는 길입니다. 죽음의 길이란 말입니다. 사는 길은 말씀 앞에 나를 꺾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하인의 자리, 명 받은 것을 그대로 하는 위치에 앉혀 놓으셨습니다. 명령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 자리는 주님의 자리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명 받은 것을 행하는 위치에서 끄집어내서 명하는 자리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것을 이사야 1414절에서는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내가 은혜 입은 것, 쓰임 받은 것, 깨달은 것에 내 마음을 얹어놓고 교회와 종과 하나님을 이겨 먹고 삽니다. 그것은 우리가 버림받는 불행한 길입니다.

    하인들은 하인의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복됩니다. 주님은 여러분과 나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 위치에다가 두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자리, 그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리가 여러분과 내가 머무는 이 자리이고 그게 믿음이라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속에서 그 믿음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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